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자매는 바른 선택을 한 것이고 바른 시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고 바보 취급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혹시 이렇게 범생이처럼 행동하다가 친구들을 다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혼자 외톨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자매님! 성경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고 성실하게 변화를 만들어가는 자매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고후 2:14-16).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각 곳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게 하신다고 지적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꽃은 다만 꽃이기에 저절로 향기가 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저절로 발하게 됩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저절로 열매를 맺고 향기를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요 15:4). 자매님께서도 먼저 주님 안에 잠히 거하시길 바랍니다.
자매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대인관계입니다. 자꾸 남을 의식하는 것과 어떻게 시선을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약간의 대인공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남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점점 더 불편하고 더 부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아야할지 말아야 할지, 그래서 당황스럽게 되면 태연한 척하지만 더욱 힘들 뿐입니다. 이럴 때 자매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그만"이라고 말하십시오. "내가 남을 의식하고 있구나",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그 상황에서 "그만"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것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속으로 말하면 됩니다. 이 방법은 자신에게 생각의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주기를 끊어버리는 방법입니다. 자매에게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의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고 자신에게 명령을 해도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떠오른 생각에 계속 머물러 있지 않는 것은 자매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계속 그런 생각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자매는 스스로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남을 의식한다는 것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을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남의 판단에 맡기게 되면 결코 마음에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전 4:3-4)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장 의식해야 할 분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 보다도 우리의 겉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을 의식하고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자매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세상 친구들, 학교 급우들이라고 모두 쓸데없는 말만 하고 나쁜 행동만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 중에는 자매와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살려면 이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이고 빛인 것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타락된 세상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힘들어 하고 고민하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우정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도 있고, 외로운 사람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의 친구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분명 학교에도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아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함께 신앙을 나누고, 믿음에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를 찾으십시오. 또한 그런 친구가 되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웃음도 없고, 유머도 없고, 재미도 없는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의 발랄함을 찾으세요. 웃음이 있고, 남에게 재미있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대화도 나누세요. 행여 예전의 잘못된 모습으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이미 내 속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 나쁜 말이나 나쁜 행동을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앙을 포기하면서까지 인정을 받고 어울려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자매는 말씀을 읽으면서 잘못된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지난 일 년 동안 놀랍게 변해 온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성경에 보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 8:32)고 말씀하십니다. 신앙 생활하는 것이 우리를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로운 신앙인의 담대함을 회복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