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하월즈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


리즈 하윌즈는 1879년 웨일즈에서 열 한명의 형제 중 여섯번째로 태어났다. 철공소에서 일하시는 아버지 밑에서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였지만, 경건과 사 랑이 가득한 집에서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세상적인 즐거움에도 아주 흥미가 없었고 예수님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22세 때에 돈을 벌고자 고향을 떠나 미국에 가서도 리즈는 교회에 다니며 경 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 가운데서 태어났으며 참으로 구원이 필요한 상태에 있음을 깨닫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 마저도 리즈를 '전 교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 하나님은 사촌 에반을 통해 개입하셨다. "리즈 너는 구원의 확신이 있 니?" 라는 에반의 질문에 갈등했고 자신이 그저 크리스챤으로서만 만족하고 있 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때쯤, 리즈는 장티푸스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게 되 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갖은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매달리 는 순간, 이 때까지 돈을 버는 일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 등에서 느꼈던 즐 거움을 회개하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릴 것을 서원기도하였다.


회복되는 동안 리즈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구속과 부활을 항상 믿어왔지만 이 것이 그의 삶에 실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그 리스도가 오직 역사 속의 그리스도였을 뿐 개인의 구주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모르스 르우벤이라는 한 회심한 유대인의 전도 집회를 통해 십 자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리즈대신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모르고 죽음 의 공포 속에서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되었 다.


그리고 27세에 랜드린다드 사경회를 통해 성령 안에서 사는 삶에 대한 설교 를 듣고 그리스도께서 몸을 입고 오사 이 땅에 사셨던 것처럼 성령도 우리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은 당신 의 삶과 내 삶에 같이 공존하지 않는 것임을 명백히 하셨다. 나는 그분이 내 안에 들어와 거하시게 될 때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영광을 보았다. 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분이 이 어떤 것 하나도 그대로 용납해 두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나의 허 무한 본성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십자가 앞에 내어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당신 자신의 삶, 당신 자신의 본성을 심어주실 것이다." 그것은 무조건 적인 굴복이었다. 이 '랜드리다드의 체험'이 고비가 되어 그후 리즈에게는 성 화의 과정이 찾아왔다. 성령께서 리즈 하윌즈 안에서 새로 갈아야 했던 맨처음 땅은 '기도생활'이라 는 땅이었다. 기도란 곧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준다는 의미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기도하지 말고 오직 성령께서 주시는 기도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성령께서 그를 통하여 하신 첫번째 기도는 Will Battery라고 하는 한 젊은이 를 위한 기도였다. 그는 술기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요 더럽기 짝이 없었으며 모든 사람이 외면하는 사람이었다. 리즈는 자유 시간을 이용하여 먼저 이 사람 을 친구로 사귀며, 주일날이면 하루 종일 그와 함께 보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왔지만 그는 3년 동안 그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하며 모든 필요를 실질적 으로 채워 주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사람을 사 랑하게 되었다. 한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 다."


성령께서 리즈를 통하여 하신 두번째 놀라운 기도는 짐 스테익스라는 사람을 위한 기도였다. 이 일은 성령께서 리즈에게 '후히 내어주는 것'에 대하여 처음 으로 가르쳐주신 사건이기도 했다. 리즈가 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던 중 이 사람은 구원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고 주님께 기도하던 중에 그에게 2년치의 방세가 밀려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갚아주면서 짐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까지도 그의 '후히 내어주는' 모습 앞에서 완전히 깨 어져 버려 주님의 사랑을 영접케 된것이다. 그리고 오두막집 모임이 이들 부부 의 집에서 시작되어 매주 사람들이 참석하며 가장 포악하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거기서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리즈 안에 있는 한가지 단순한 욕망을 손대기 시작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식욕이었다. 한번은 리즈가 어떤 집회를 앞두고 마음에 커다란 부 담을 안고 있었을 때 주님은 리즈에게 하룻동안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구하 셨다. 이는 지금까지 안락한 집과 하루 네 번의 식사에 익숙해 있던 그로서는 커다란 갈등이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오자 그는 성령께 불순종 했다는 생각의 괴로움에 눈물로 회개케 되었다. 그날 이후 리즈는 많은 날 동 안 저녁을 먹지 않으면서 그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냈다. "우리 마음이 계속 어떤 것에 연연하게 된다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입니 다. 일단 그것을 그분께 돌려 드리면 그분은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 주 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되돌려 받아도 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것에 연연해하 지 않게 됩니다."


주님은 리즈에게 부랑자들에 대한 부담을 주셨다. 즉 성령께서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삶의 수준으로 끌어 올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리즈는 그 들이 어떻게 느끼는 지를 조금씩 배워야 했고, 그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 가 서 앉는 법을 배워야 했다. 리즈는 광부로서 고된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과 똑같이 하루 두 개의 빵과 치즈와 수프만 먹었다. 그리고 부랑자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 주었고 급기야는 자신의 집도 부랑자들을 위해 내어주었다.


또한 주님은 리즈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하셨다. 개인적인 접촉이 전혀 없 이 기도만을 통해서 한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이 일을 하기 위 하여 성령께서는 요15:7 말씀을 주시고 약속은 제한이 없지만 그 성취는 거함 에 달려 있음을 알려 주셨다. 이 '거함'을 늘 유지하기 위하여 날마다 중보기 도 시간 동안에 따로 시간을 떼어서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 다. 이를 통해 그저 살피고 중보기도만을 통해 한 자매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다.


또한 주님은 리즈를 폐병을 위한 중보기도로 인도하셨다. 중보기도자로서 이 제 리즈는 그 병자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자기가 위해서 기도하는 그 사람과 같이 아파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대신 내어주기까 지 서원하면서 3개월 동안 기도하였다. 그러나 3개월 후, 주님은 갑자기 그 여 자를 데려가셨다. 그리곤 리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중보기도는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너의 생명을, 지금 취하지는 않겠다. 그대신 나는 너를 살아있는 순교자로 사용하기 원한다. 나는 '살아있는 순교자'라는 말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내게 다음 사실을 분명히 해주셨 다. 즉, 내가 과연 내 생명에 대한 권리를 주님께 완전히 이양해 드렸다면, 이 제 나는 꼭 죽어야만 한다는 내 입장까지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리즈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해 주셨고 또 이처럼 그의 전 생애의 사 역에 있어서 주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가장 핵심적인 진리는 바로 중보기도의 진리였다. 랜드리다드 사경회에서 자신을 성령께 완전히 내어드릴 때부터 시작 해서 폐병에 걸렸던 그 여자를 도와야 했던 그 일에 이르기까지 성령은 리즈에 게 중보기도의 의미를 점점 더 분명하게 가르쳐 오셨다.


하나님은 중보기도자를 찾으시지만 이 세상에 그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 다. 그것은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당신의 가슴 아픈 선포의 말씀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사람이 없음을 보고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 또한 에스겔을 통해서 주신 실망에 찬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땅을 위 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 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고로" 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음성이 나와 있다.


보통 평범한 기도에는 꼭 필요하지 않지만 중보기도자라면 공통적으로 가지 고 있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 그것은 동화(하나가 되는 것), 고통, 권위이다.


동화는 중보기도자의 제 1법칙이다. 주님의 기도가 효험이 있는 것은 당신이 기도해 주시는 그 사람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유익을 모두 내버리시고 오직 우리의 필요와 우리의 가난만을 생각하셨다. 그리고 최대한 글자 그대로 우리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성령은 당 신이 택한 그릇을 그런 중보자의 삶으로 인도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밑바닥까지 깨끗이 처리하셔야만 한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 개인적인 야망,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인간적인 애정, 육신의 욕구들, 인생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회심한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안락이나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 발전이나 자기의 교분이 있는 모임을 위해서 살게 만드는 그 모든 것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십자가 아래 내려 놓 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론적인 죽음이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뜻한다. 참으로 이런 자가 성령의 종이며 이런 자의 삶을 통해서는 오직 성령만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 히는 삶이 계속될 때 중보기도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여기엔 온전한 순종 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내적인 씨름과 신음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의 말씀은 임하는 것이다.' 연약한 그릇이 성령 의 권세로 옷을 입고 구원의 말을 선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은혜의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믿음의 선물'과는 다른 '믿음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하는 기도는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뭔가 주실 것을 소망하는 기도이다. 그리고 그것을 주시면 기뻐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 기도해도 그와 똑같은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나 권세가 없다. 그와는 달리, 어느 특정 영역에 대한 중보기도의 자 리를 얻게 된 중보기도자가 있다면, 그는 '믿음의 은혜' 차원에 들어간 것이 다. 리즈에게는 병든자들의 아픔이 곧 자신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그들을 위해서 간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이다.


리즈는 아침 7시부터 저녁 4시 반까지 탄광에서 일하고 직장 일이 끝나면 매 일밤 집회에 참석했고 두번은 심방을 가서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그의 유일한 기도 시간은 집회 장소까지 3km를 걷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도 실재로 느껴져 리즈는 늘 모자를 벗곤 했다. 하지만 낮에는 리즈도 어떤 경우라도 모자없이 다니는 일은 없었다. 당시엔 탈모군단 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얼핏 보기에는 사소한 습관 같아 보 이지만 실은 성령께서 그를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죽게 하는데 사용한 첫번 째 도구였다.


또한 주님은 리즈로 하여금 대중사역에 손을 떼게 하심으로 밖으로 드러나는 성공적인 삶을 통해서뿐 아니라, 숨은 인생을 통해서도 그와 똑같은 기쁨을 맛 볼 수 있는 자로 빚어가셨다. 리즈는 친구에게 사역팀을 넘겨준 뒤, 런던에 있 는 고셋씨의 아들의 구원을 위한 중보기도를 맡게 되었다. 고셋씨의 아들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이후로도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 다. 그러니 그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길밖에 없었다.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너의 중보기도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이제 리즈는 사람들과 상대 하여 일하는 것을 일체 그만두고 오직 하나님만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리즈는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 하루 두끼만 먹었고, 기도하는 자세로 생활 (이는 모자를 안 쓰는 것), 사역 팀의 모든 외적인 사역을 그만두고 집회에도 참석치 않고 매일 저녁 세 시간을 무릎을 꿇고서 처음 두 시간은 말씀을 읽고, 다음 한 시간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투쟁을 하였다.


그러던 중 성경을 읽다가 주님은 민6:2-6 말씀을 통해 이 중보기도 기간동안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모든 날 동안 삭도를 대지 말 것을 들려주셨다. 처음엔 리즈도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 시대 모자를 안 쓰 고 다니는 것만 해도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에 다가 머리도 수염도 안자르는 거지중에 상거지같은 지저분한 생활이라니... 이는 엄청난 자기부인이었다. 그 러나 성령께서는 계속 말씀하셨다. "네 안에 세상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이 의 식될 수 있느냐? 세상이 어떻게 죽은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단 말이냐? 이 제 네 안에서 이것이 뿌리 뽑힐 때까지 너는 나실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6개월 동안을 나실인으로서 살고 나자 주님은 그에게 이제 중보기도 가 응답되었다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이 중보기도의 완전한 응답 소식을 들 은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리즈에게 있어 또 하나의 큰 체 험은 30년이나 넘게 누워 있었던 불구의 몸인 외삼촌이 낳을 것이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4개월 반 후에 치유가 된 것이다.


폐병에 걸렸던 그 여자의 경우 리즈의 중보기도는 6개월이라는 길고긴 싸움 후에야 응답되었었다. 그러나 "한번 응답 받은 중보기도는 곧 그 중보기도의 자리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성령께서 원하신다면 이후 어떤 경우에라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리즈는 인도의 어린 과부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감당케 되었는데, 누군 가를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려면 바로 그 사람처럼 살아야만 한다는 중보기도의 법칙아래 리즈는 식사량을 줄여서 이틀에 거의 돼지밥과 같은 오트밀 한 끼 분 량만 먹어야 했다. 이런 그의 4개월 동안의 중보기도를 통해 1949년 인도가 독 립되고 새 헌법이 제정되면서 과부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상속법 조항에 최소한의 법률적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은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그리고 때가 되자 광부의 일을 내려놓고 오로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고자 하는 방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옛날 사역팀에서 같이 일했던 엘리자베스 한 나 존스와 결혼하고 남아프리카 선교회를 통해 아프리카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영접하고 갓 태어난 사무엘을 삼촌에게 맡기고 리즈와 아내 둘다 의학과 간호 학 과정을 이수하고, 1915년 36세의 나이로 선교지로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가운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놀라운 회 개의 역사를 이루게 되었다. 이렇게 6년 동안의 선교 사역을 마치고 이들 부부 는, 웨일즈 성경학교, 고아들을 위한 어린이 집 등을 세워 복음을 전파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학교들을 세우는 과정 속에서 필요한 모든 물 질을 기도로서만 간구하였다.


여기엔 놀라운 기도 응답들이 수없이 많았다. 세계 2차 대전의 발발과 동시 에 하윌즈 선생과 그의 학교의 학생들은 전쟁의 승리를 얻기까지 자신들을 기 도의 산제사로 드렸다. 그리고 1945년 6월 세계 평화는 다시 찾아왔고 세계가 다시 복음의 문을 열어 만만이 이 세대에 복음을 듣게 될 것을 위해 기도한 6 년 간의 간구의 응답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1950년 2월 7일, 주님의 한 중보기도자의 이 땅의 전투가 끝나고 영광의 본향으로 가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노만 그럽 선교사는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는 방식부터가 달 랐다. 성령께서 그를 그렇게 다뤄 오셨기 때문이다. 한 젊은 크리스챤이 그에 게 하나님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듣느냐고 묻던 일이 기억난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들 목소리와 구별할 수 있습니까?" 젊은이가 "물론 구별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자 하윌즈는 다 시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와 똑같이 나도 하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는 진정 성령의 하신 사역에 온전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탁월한 중보기도의 사람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Nyskc Teachers Colloquium

Nyskc Teachers Colloquium NT는 Nyskc Teachers의 약자입니다 Nyskc는 신앙생활의 5대원칙으로 만들어진 신조를 통해서 예배회복을 이루려는 한편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 있는 곳으로 예배가 없는 곳에서 예배가 있는 곳으로 가며 교회가 없는 곳에서 교회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한 인도자 곧 교회 Teachers를 뜻합니다 교

월명(月名)의 유래

1월 : January ( Jan.) : the month of Janus (로마신화에서 머리의 앞뒤에 하나씩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대문의 수호신인 Janus 의 달을 의미한다.) 2월 : February ( Feb, ) : the month of the feast of cleansing ( 청정의식의 달이라는 뜻으로 cleansing을 뜻하는 라틴말의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