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있는 교사'
신념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힘이며 결단을 내려야 할 때 훌륭한 지침이 되어 인생의 기초가 된다.
이러한 신념을 우리는 철학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늘 확신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5:34).
강한 신념은 먼저 삶에서 의심을 몰아낸다.
지도자는 두 마음을 품으면 안 된다.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강한 신념은 또한 행동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신념을 갖는 것은 그 일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가능성에 대해 자신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 일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노력을 하게 된다.
강한 신념은 역시 철저히 헌신하게 한다.
예수님은 생사를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눅 22:42).
왜 우리는 교사이며 교육을 해야하는가?
이 질문에 확고한 답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하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으며
교사가 교육에 목숨을 건다면 성공하는 교사가 될 수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복음으로만 아니라 목숨 주기를 즐겨“(살전 2:7)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먼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한다.
마 28:19-20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을 .....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나에게 맡겨진 영혼이라면 제자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진리를 가르쳐 실천할 때까지 가르쳐야 한다.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우리는 달려갈 길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이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그저 되는대로 사는 허무주의나 쾌락주의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비록 감동적이기는 하나 개인의 가능성을 구현하는 자기완성주의도 아니다.
내가 잘 되면 남들이 배가 아프다.
나의 성공은 남의 실패를 전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성공의 결과를 남과 나누는 사랑이라면 나와 주변의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
사랑이 인생의 가장 귀한 가치이다.
그러나 이 사랑 중에서도 단계가 있다.
나의 가진 것을 적당히 나누어 주는 일, 함께 있어주고 물질을 나누어주는 것도 좋지만
나의 모든 것을 다 유산으로 주는 자녀사랑이 더 크다.
그리고 이보다 더 강력한 사랑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상대방을 나의 수준으로 훈련시키는 것이다.
생선을 달라고 하는 자녀에게 뱀을 주는 부모가 없고
대부분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생선을 주지만
현명한 부모는 나중에 내가 줄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해서
자녀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서 언제나 생선을 먹을 수 있게 해준다.
셋째, 교육의 댓가가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살전 2:19-20절에
“주님이 오실 그 날 내가 받을 면류관이 무엇이냐 바로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나의 자랑이며 너희는 나의 기쁨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전에 자기를 핍박했던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 교회 성도들이
이제는 ‘내 자랑이다 내 기쁨이다‘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자를 키워본 사람이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제자들을 생각하며
한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