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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 Your Eyes Upon Jesus" 2023 찬양학교 개강

"눈을 주님께 돌려"(마4:1-11)

엘렌 교장"오늘 2023년 찬양학교를 개원하면서 Opening Worship을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시며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학교 기간 중에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2023 Nyskc Family Conference ‘AR 감당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1 그후,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 내내 금식하셔서, 매우 배가 고팠습니다. 3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에게 빵이 되라고 명령해 보시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6 마귀가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뛰어내리시오. 성경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천사들에게 명령하실 것이다. 그들은 손으로 당신을 붙잡아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소.” 7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대답하셨습니다.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고 기록되어 있다.” 8 다시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화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9 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절하고 경배한다면, 이 모든 것을 주겠소.” 10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썩 물러가거라! 성경에 ‘오직 주 너희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를 섬겨라!’ 고 기록되어 있다.” 11 그러자 마귀가 예수님에게서 떠나가고, 천사들이 예수님께 와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제목을 생각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3:14-16에 있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And as Moses lifted up the bronze snake on a pole in the wilderness,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will have eternal life).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들린다(be lifted up)’라는 말은 ‘십자가에 매단다’는 뜻입니다.

‘Passion of Christ(2004)’에서 땅에 십자가를 놓고 그 위에 예수님을 못 박아서 십자가의 긴 쪽 기둥을 땅에 파 놓은 구멍에 맞추고 십자가 양쪽 가로지르는 막대기에 줄을 매달아 잡아당겨 십자가를 ‘들어 올리는(lift up)’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옛날 광야 시대에 모세가 장대 끝에 뱀을 매달아 높이 들고 누구든지 그 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상처가 나았던 것처럼, 나도 십자가에 못박혀 높이 들리게 될 텐데,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모두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구원의 진리가 심오해도 지키기 어려우면 복음(福音, Good News)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눈을 주님께 돌린다’는 말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그 예수님께 삶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달았다고 하잖아요? 이 글을 총독 빌라도가 직접 썼습니다.(요한복음 19:19). New Living Translation에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nd Pilate posted a sign over him that read, "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쓰시오” 하면서 억지를 부렸지만, 빌라도는 끝내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이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so that many people could read it) 아람어, 라틴어, 그리스어로 썼다고 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의 명패에 비록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씌어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바로 “당신의 왕이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이든지, 우리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저 분이 당신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신 당신의 구세주라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세 가지 사탄의 유혹(誘惑, temptation)을 받으신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읽으면서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절에 있는 “그후,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마귀에게 유혹(시험)을 받으셨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이 New Living Translation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n Jesus was led by the Spirit into the wilderness to be tempted there by the devil.” ‘then(그 후에)’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에’라는 뜻입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다”라는 음성이 들려왔다고 하지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갔을 때, 두 사람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제가 예수님께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예수님께서 제게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It should be done, for we must carry out all that God requires." So John agreed to baptize him(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3:15) 이 말을 듣고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지상(地上)의 언어가 아닌 하늘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광야(曠野)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게 하려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나요? 아니, 어떻게 예수님에게 사탄의 유혹을 받게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사탄의 유혹 속에 하나님의 의도(意圖)와 목적(目的)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가지고 계시는 목적은 언제나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So if you sinful people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your heavenly Father give good gifts to those who ask him)?” (마태복음 7:11)

이 말씀에서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사람(those who ask him)’은 누구를 말할까요? 그 앞에 “비록 너희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이런 말씀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너희 아버지께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죽음과 절망과 슬픔과 아픔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환난(trouble)이, 어려움(calamity)이, 핍박(persecution)이, 굶주림(hungry)이, 헐벗음(destitute)이, 위험(danger)이, 칼(threatened with death)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위협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8:35, 37)


바울은 왜 이런 선언을 했을까요? 바울은 그의 자녀들의 삶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믿습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 사탄으로부터 이런 유혹을 받은 것은 우리를 위해 받으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런 유혹을 받으셨을까요? 여기에 뭔가 큰 이유가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This High Priest of ours understands our weaknesses, for he faced all of the same testings we do, yet he did not sin(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알고 계십니다.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결코 죄를 짓지는 않으셨습니다).”(히브리서 4:15)


또 이 말씀을 한번 보세요. “Since he himself has gone through suffering and testing, he is able to help us when we are being tested(주님은 유혹받는 자들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고난당하고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2:18)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유혹과 똑같은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또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간성이 얼마나 연약한지 아시고 직접 경험하셨기 때문에, 유혹받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나가 사탄으로부터 받으신 유혹이 어떤 유혹이었는지 보십시오. 첫 번째 유혹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지도자가 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벌써 세계는 십년이 넘도록 경제 불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때 사람들은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도자로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과거와는 달리 온 세계 경제가 맞물려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경제 사정이 나쁜데, 어느 한 나라만 경제 사정이 좋은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경제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서 경제를 살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유혹이 바로 그런 지도자가 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두 번째 유혹은 자기 능력을 과시해서 인기있는 지도자가 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지금은 능력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펙을 부풀리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스펙을 부풀리다가 거짓말이 드러나면 좀 돋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아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채용하는 이력서에 없는 경력을 있는 것 같이 허위로 기재했는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요?


예수님이 받으신 세 번째 유혹은 경배의 대상을 바꾸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자기를 경배하면 이 세상을 통째로 넘겨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


그 일이 잘못된 일인지 알지만 눈 딱 감고 한 번만 그 일을 하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Do you really think it is weakness that yields to temptation? I tell you that there are terrible temptations which it requires strength, strength and courage to yield to(당신은 정말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연약함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유혹에 굴복하기 위해 힘과 용기를 요구하는 끔찍한 유혹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약한 사람도, 강한 사람도, 힘센 사람도 누구나 유혹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들을 모든 정공법(正攻法)으로 정면 돌파하셨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물론 중요하지만 빵 문제만 해결되면 사람이 행복해진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람은 절대로 빵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믿음을 지켰습니다. 나는 한 번쯤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거짓 편에 설 수 없다고 하시면서 “내가 경배할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호수아 24:15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을 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때 여호수아가 백성들 앞에서 이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바알 신에게 넘어간다고 해도)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받으셨던 사탄의 유혹이 지금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 유혹을 우리보다 먼저 받으시고 이 유혹을 이기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유혹을 이길 수 있는지 노하우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 힘만 가지고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와 달리 죄가 없으신 온전하신 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유혹을 이기신 분, 이 예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삶의 유혹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Let us then approach the throne of grace with confidence, so that we may receive mercy and find grace to help us in our time of need).” (히브리서 4:16)


동양의 철하자 공자(孔子, Confucius, B.C. 551-479)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Our greatest glory is not in never falling, but in rising every time we fall(인간의 위대함이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일어나는 데에 참 인간다움이 있다는 공자의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공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의지로 일어납니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유혹을 받으셨지만 결코 죄를 짓지 않고 이기신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야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눈을 주님께 돌리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삶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으로 넘어질 때마다 우리 눈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in our time of need(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때에)’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 분의 도움을 받기 위에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하게 나가야 합니다.


그것도 주님을 찬미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을 찬양하여야 하는 것은 이 땅에 모든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들은 예수님을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만난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미할 수 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나, 우리입니다. 우리 Nyskcian들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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