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의 기업
회복의 신학(Theology of Restoration)의 골격 3개 중에 하나인 교제기업의 회복을 생각해 보자 그중에서 단어적 표현부터 알아보기로 하자
주로 교제라고 번역된 헬라어 "코이노니아"(헬:koinonia, 영: Fellowship)라는 단어는 "나눔" 혹은 "교제", 또는 "교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에서 교제(코이노니아)라는 용어는 크게 두 가지의 개념으로 사용되어진다.
교제란 첫째, 하나님과 그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친밀한 관계를 뜻하며, 둘째,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 상호간에 나누는 친교, 공통적인 믿음과 경험 그리고 표현등을 일컫는 용어이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코이노니아)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1:9)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를 하게 하신다.
이러한 코이노니아라는 개념은 특히 신약성경에서 다양한 의미로 발전되며 사용되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다양한 점에 대해서 살펴 보자.
1) 떡을 나누는 코이노니아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
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여기서 '교제'란 '코이노니아'의 번역어이며, 이 성경본문만의 "떡을 떼다"는 것으로 살펴볼 때에는, 음식을 나누는 것인지 혹은 성찬식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의 교제가 되어진다.(참고: 행20:11)
즉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신약성경에서의 "떡을 떼다"는 것은 주로 성찬식 혹은 음식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떡을 떼는 성도들의 교제는 함께 음식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와 함께, 주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의식에서 그 절정을 갖게 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6-17)
위의 성경본문에서 "참예"라고 번역된 단어는 곧 "코이노니아"가 된다.
즉 예수님의 포도주와 떡을 나누는 성찬식은 성도들의 코이노니아가 되어지는데, 성도들은 모두 주님의 한 몸과 한 피에 참예한 자이기 때문이다.
2) 물질의 나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본문에서 "공급하며"는 "코이노네오"이며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일이 곧 코이노네아라는 단어가 사용되어진 것이다.
더욱이 신약에서는 헌금의 "연보"(고후9:13)과 가난한 자를 위한 "동정"의 모금(롬15:26)이라는 단어도 코이노니아라고 불리워지는데, 그러한 성도들끼리 물질을 나누는 구제나 선행을 위한 것도 주 안에서의 교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9:13)
여기서 '연보'라고 번역된 단어는 '코이노니아'의 번역어로서 문맥상 물질을 나누기 위해 내어 놓는 행위를 뜻한다.
"이는 마게도니아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15:26)
특히 롬 15:26은 이 코이노니아가 아가야와 마게도냐 지역의 성도들이 예루살렘 지역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행해졌음을 말하고 있는데 "동정하였음이라"라는 단어가 "코이노니아"이다. 즉 코이노니아는 물질적인 나눔을 의미한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
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4:15)
이 본문에서 참예하다는 단어는 "코이노네오"인데, 본문 바로 앞 4장14절의 괴로움에 참예하다는 구절의 참예하다는 것도 "코이노네오"인데, 코이노니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3) 말씀의 교제
코이노니아는 단지 사도 바울에 의해 강조된 것이 아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는 교제 즉 코이노니아의 악수를 나누었는데 이러한 동역자적인 교제도 코이노니아가 되어진다.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
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갈2:9)
위 성경본문이 말하는 교제의 악수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로 되어 있다.
즉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사도들은 할례자 즉 유대인들을 위한 전도를 하였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도를 코이노니아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성경본문이 뜻하는 코이노니아는 물질이 아닌 복음의 나눔, 말씀의 나눔을 의미한다. 빌1:5도 복음의 코이노니아를 뜻한다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빌1:5)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을 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15:27)
'나눠가졌으면'이라는 구절은 여기서 '코이노네오' 즉 '코이노니아를 나누다'(to share)란 말의 번역이다. 물론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복음을 뜻한다.
복음은 물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므로 복음을 나누어 가지는 코이노니아 또한 매우 귀중한 것이라 되어질 것이다. 이러한 코이노니아 사역은 전도와 선교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세상에 베푸는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제사로서의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이다.
그래서 마치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제처럼 보이는 코이노니아가 실제로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예물이 되는 것이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13:16)
여기서 '서로 나눠주기'란 '코이노니아'의 번역어인데 이러한 나눔이 곧 하나님의 제사가 되어진다는 뜻이다.
5)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코이노니아)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우리 성도들의 사귐과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함께 함이 되어진다.
또한 하나님과 기독교인의 교제가 "코이노니아"이지만, 또한 우리 믿는 자들의 사이의 교제도 "코이노니아"가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들 안에서 성령이 교통(코이오니아)을 하시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는지라"(고후13:13)
교제란 앞으로 남은 교회의 과제가 될 것이다.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눈 성도와 성도의 물질적, 영적, 복음적 교제가 곧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되어진다는 것은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귀한 멧세지가 되어질 것이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몸이라고 부르고 있으며(고전12:12)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고 있다(골1:9) 궁극적으로 지상의 교회는 인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상징하는 하늘의 모형이 된다.(히8:5. 히9:23))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2:19)
나아가 신자들의 교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자와 종, 남자와 여자와 같은 어떠한 구별이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자들은 동일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유기체적인 연결로 연합되어진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우리는 주일 예배를 드린 후에 모두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다.
같은 교회의 성도들은 단지 아는 사이, 혹은 같은 교인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코이노니아는 장차 교회의 과제가 되어진다.
진정한 코이노니아를 나누는 교회가 참 교회요 교회의 회복은 교제기업의 회복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살아온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이것을 회복시켜주시는 주님이 되신다 그분의 십자가 그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대속 그리고 화목제물이라는 예수님의 희생이야 말로 우리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즉시 회복되도록 한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am crucified with Christ: neverthless I live; yet not I, but Christ liveth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I know a man in Christ who fourteen years ago was caught up to the third heaven. Whether it was in the body or out of the body I do not know--God knows.(고전12;2)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At that day ye shall know that I am in my Father, and ye in me, and I in you.(요14:20)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That they all may be one; as thou, Father, art in me, and I in thee, that they also may be one in us: that the world may believe that thou hast sent me.(요17:21)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Abide in me, and I in you. As the branch cannot bear fruit of itself, except it abide in the vine; no more can ye, except ye abide in me.(요1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remains in me, and I in him(요6:5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If ye abide in me, and my words abide in you, ye shall ask what ye will, and it shall be done unto you.(요15;7)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If ye keep my commandments, ye shall abide in my love; even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abide in his love(요15;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or else believe me for the very works' sake.(요14:11)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But if I do, though ye believe not me, believe the works: that ye may know, and believe, that the Father is in me, and I in him.(요10:38)
그리스도인들의 교제기업의 회복은 너무나 필요로 하고 있다.
누구도 스스로 충족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잃었고 상실했기 때문이다
교제기업이 무너져 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이제 회복하여야 한다
이 회복을 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났고 예수님의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중보자요 Bridge요 회복자가 오셨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Believest thou not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n me? the words that I speak unto you I speak not of myself: but the Father that dwelleth in me, he doeth the works.(요14;10)
우리에게 교제기업의 회복이 없다면, 우리는 유약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제가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I am the vine, ye are the branches: He that abideth in me, and I in him, the same bringeth forth much fruit: for without me ye can do nothing. (요15:5)
교회 내에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모임이 있지만. 성도와 만의 교제를 우선시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하나님과의 하나가 되면 성도와 성도의 진정한 교제기업의 회복이 일어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깨닫지 못하고 오르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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