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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skc Teachers Colloquium'14

교회와 교육 그리고 부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2014년 Nyskc Colloquium에 참여하신 교회학교 교사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1993년 Nyskc Movement가 준비되어 1996년 Nyskc Conference가 시작되었고 2004년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일리노이 디켈브에서 Nyskc Symposium & Forum이 시작되면서 1993년부터 준비되었던 Nyskc Church Education of Institute(교회교육연구소)가 Society 부설로 본격화되었습니다

예배회복이라는 명제와 선교와 교육 구제라는 교회의 사명과 목표가 함축되어 있는 이와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Nyskc World Mission이 세워진 이래 교회교육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하여 준비되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난 2004년 이래 뉴욕에서 열어왔던 교회교육연구소가 2009년 켈리포니아 리버사이드 CBU에서 처음으로 Colloquium이라는 이름으로 열면서 뉴욕 인디아나 애리조나 그리고 오하이와 세이빌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Colloquium에서 다루어왔던 주제들은 교회교육에 있어서 교사들의 자질과 자세 그리고 사명 주일학교의 방향과 주일학교의 컬리큐럼 그리고 한글학교의 프로그램 그리고 영제교육인 CERT Method 그리고 교사들의 영적인 부흥을 위한 것은 물론 가장 중요했던 교사들의 예배회복을 강의하며 기도해왔습니다

교회교사의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학교가 살고 부흥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연구소의 교수들과 교사들이 함께 기도하며 말씀을 연구하고 교회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려왔습니다 그것이 부족할지라도 하나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대가로 세워진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계속적인 연구에 매진하며 나가고자 합니다


일반적 교육학에서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 교사와 가정 그리고 학생의 삼위일체가 되면 교육의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한 것처럼 교회학교에 있어서도 그러한 주장은 한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교회학교의 교육은 하나님을 배운다는 것이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을 배우며 그에 따른 지식은 물론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배운다는 점에서 다른 것입니다

즉 교육의 방향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에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에 기재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핵심이 되어 교육되어진다는 것이 일반교육과는 아주 다르므로 성경이 중심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내용은 물론 성경 속에서 강조하는 것들을 따르며 배우는 과정으로 진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된 교육이 진행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전도와 성령의 교통 그리고 헌신과 봉사 이 모든 것들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들은 교육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하고 사랑하고 찬양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가 하는 것들을 배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온전한 예배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교회교육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교회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심히 기뻐하실 만큰 자기의 모양과 형상에 따라 만드시고 다른 피조물보다 귀히 여기시고 기뻐하실 때 매우 기뻐하신 것처럼 우리를 지으신 이유는 영광을 받으시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받으시려고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랬던 인간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므로 죄가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는 물론 악한 세력의 노예가 되어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교육학설로는 성악설(性惡說 the ethical view that human nature is fundamentally [essentially] evil.)이라 말하며 교육철학자들은 인간은 악하다는 데서부터 교육을 주장합니다 그것이 기독교교육과 일반교육과의 기본적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일반 교육철학에서는 성선설(the theory that human nature is fundamentally good)이나 백지설을(theory of tabula rasa)주장합니다 성선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은 선하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또 백지설을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사람은 백지와 같이 태어났기 때문에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을 하던 간에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교육에서 성악설을 주장하는 이유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지으시고 생령을 불어 넣으시므로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본질은 흙이며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았다면 흙일 뿐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두 가지 흙과 하나님이 주신 생령 곧 생명을 자진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지으시고 곧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시면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먹지말라고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불순종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들에게 죄가 들어왔고 그들은 죄인이 되었으며 그들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몸에서 태어난 가인과 아벨은 그 죄가 유전된 것입니다

이로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악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배우지 않으면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아니하면 악하고 정녕 죽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교육되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선하고 옳고 바른 것을 배우지 아니하고 자연 그대로 버려둔다면 악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하고 배워야 하며 훈련되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요 메시야로 우리에게로 보내지신 분이며 곧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려고 오신 성육신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구주로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된 우리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며 영생을 얻게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은 장차 천국백성으로 되기까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법과 그 삶에 대한 것들을 배우며 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땅히 죽어야할 저주의 인생이 생명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놀라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감사하고 찬양하며 경배하는 삶을 사는 것을 예배자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영원전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려고 계획하시고 준비하셨을 때부터 이미 예배하는 자로 지으신 것이나 인간의 타락으로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주이시며 회복의 주께서 오셔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을 뿐아니라 하나님과 막혀있던 장벽을 무너뜨려 교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잃었던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죄성을 가진 존재라 그 아름답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마땅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예배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형식화된 모습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보다는 근심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회복되었다고 하면 이미 감격이 있고 감동이 있으며 그 입술과 온몸이 주를 찬양하고 경배하며 존귀와 영광을 돌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형식만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로 세우면 교회교육은 교회의 부흥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핵심 중에 하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가 목표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요 찬양하는 자 곧 섬기는 자로 세우는 것이 교회교육의 목표가 될 때 교회학교는 부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부흥은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자들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로 승리하거나 예배 성공자가 되면 그 기쁨과 감격과 감동은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완전하고도 확실한 감사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감격과 감동을 잃었기 때문에 교회가 힘을 잃었고 교회의 부흥이 멈춘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로 세우는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교회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 속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던 질문들입니다.

교회라는 낱말에 해당되는 구약성경의 용어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카할’(kahal, להק)이며, 다른 하나는 ‘에다’(edhah, צ)입니다. ‘카할’은 ‘부르다’에서 온 말로써 구약 성경에 대체로 ‘회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름 받아 모인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시내산 기슭에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듣기 위해 모인 모임이 ‘카할’입니다(신 5:11, 왕상 8:14).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모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제의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자기들은 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관계를 맺습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 26:11,12, 겔 37:27, 슥 8:8).

이 ‘카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많은 민족들로부터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그들과 계약을 맺음으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성전이라는 ‘에다’는 언어학적으로는 ‘카할’보다 더 오래된 말로서 ‘택한다’라는 뜻을 가졌으며 ‘쉬나고게’(συναγωγη) 곧 ‘회당’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나 건물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예수님께서 처음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희랍어 ‘에클레시아’(εκκλησια)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영어 단어의 ‘교회’(church)는 희랍어 ‘퀴리아코스’(κυριαλος)에서 온 것인데, 이것은 ‘퀴리오스’(주님)란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써 ‘주님께 속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주님께 속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는 곧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 속했음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가 게르만어 계통인 독일어에서 ‘키르케’(kirche), 스웨덴어에서 ‘쿠리카’(kurika), 그리고 영어에서 ‘쳐치’(church)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의 성경적 의미보다는 언어적의미만을 강조하여 교회는 장소나 건물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자들의 공동체라고만” 주장하고 있는 것은 편향된 교회론에 자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이유는 구약적의미는 완전히 제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약적의미에도 이스라엘백성 택한 선민이라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병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 성막 성전으로 이어지는 구약의 말씀을 신약적의미로 재해석하여 인정하지 않으려는 아주 잘못된 교회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교회당을 짓고 예배당을 세우는 사람들은 율법적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와같은 주장과 교리로 말미암아 유럽의 교회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눈물로 기도하며 세웠던 교회 안에는 모슬렘이 들어왔고 힌두교가 들어와 그들의 거짓된 신을 섬기고 있으며 술집이 들어오고 호텔과 콘도로 바뀌었습니다

건물인데 무엇으로 쓰던 상관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이지 않자 교회는 비게 되었고 다른 종교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주 포크너에 한 교회는 불교 사원이 들어왔습니다 그 교회에서 버린 의자를 제가 섬기는 교회가 주어다가 사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유럽의 2%의 그리스도인들만이 남아 있다는 통계는 바로 교회론에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면 신약의 에클레시아적인 공동체적 교회론과 더불어 에다 곧 시나고규적 교회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교회교육을 말할 때 이 두 가지를 다 생각하면서 가르치고 훈련되어야 합니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림 보혈과 죽음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었으며 더불어 살아가면서 빛으로 소금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세상 안으로 파송을 받기 때문에 세상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사람들의 모임이되 믿음의 공동체이지 인간의 법과 규칙을 따라 형성된 조직체가 된 것은 믿음 이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규칙이나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유지되고, 성장하고, 통솔되고, 지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의 형태와 목적과 사명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와 그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과 성령을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신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의 설립의 목적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주님의 성령 안에 하나되어 주님을 예배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배와 교육이 밀접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는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 곧 사회를 어떻게 사랑하고 섬기며 예배하는가를 배우고 훈련받는 곳이 교회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본질은 예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인 산다는 Nyskc Movement Paradigm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보여준 교회교육의 방향은 선교와 교육 구제입니다

이것을 교회의 사명이라고도 합니다

선교와 전도에 있어서 삼위의 하나님을 배우고자 하면 교재가 있고 또 선생이 있으며 배우는 자가 있고 전하는 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고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없이는 인간이 발달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화 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웃을 돕는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깨달았어야 하며 그러한 삶에 대한 은혜를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러한 교회교육의 삼대목표를 달성의 궁즉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로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자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자로 세움을 입기 이해서는 교회교육이 성경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면 교회와 교사는 부흥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지만 교회교육의 목표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로 세우는 교육과정이 되어야 하고 그 교육을 위해서 교사가 세워져야 하며 그 교제로서는 성경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교육 교사는 영적으로 온전한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큰 범주로 볼 때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하셨습니다


또한 엡4;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교사 혹은 멘토나 지도자로 세움을 입은 것입니다

Robert K. Bower는 "교회교육의 부흥을 위해서는 교사를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하였으며 Lois E. LeBar는 "그들의 소명이 무엇이든지간에 지도자 훈련을 받으라는 요청을 받아야 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소명자요 그 사명은 교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교사의 특징은 그 무엇보다도 삼위 하나님의 관계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C. B. Eavey는 "교사란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경험한 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새롭거나 묵은 것들을 전하되 그가 보고 듣고 한 것을 말할 때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부정할 수 없도록 전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일하도록 명령받은 것이지 부탁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교육의 교사란 그 사명이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명령에 대한 순종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David E. Jenkins는 교사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기독교 교육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육]”이며, 그 교육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행위”를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교육의 목적은 주님을 배우고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을 위하여 봉사 헌신 하도록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 사역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구속받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H.W. Byrne) 내가 교회교육의 교사가 된 것은 나 개인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교회의 본질의 문제라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교(mission)와 교육(didache) 구제(diakonia)가 그 목표이며 이를 위해 모이면 말씀(kerygma)과 기도 그리고 교제 (koinonia)하며 흩어지면 복음전파를 하여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교회의 본질적 이유 곧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교육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교육되고 훈련된 영적인 것들은 교회 밖에서 그 효력을 나타냄으로 빛과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Perry D. Le Fevere는 그의 "The Christian Teacher" 에서 그리스도안에서 불리움을 받았다는 감격을 "궁극적 관심과 헌신"이라고 불렀으며, 바로 이 관심과 헌신에서 우러나오는 교육적 행위와 봉사를 기능이라고 보지 않고 오히려 "소명"(vocation)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교사는 자신의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기본적 자세라고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며 교회학교 교사직을 수락 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

을 따라 교사라는 소명에로 초대되었음을 수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교사는 종의 신분이기에 희생적이며 섬김의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3)하셨습니다

Gains S. Dobbins는 교사의 근본조건으로 “섬기는 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개념을 완전히 용납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교사도 사람이며 죄성을 가진 존재이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 할 때만이 그 소명과 사명에 합당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교회교육을 통하여 주일학교가 부흥하고 각 부서들이 부흥함은 결국 복음이 전파되고 있으며 한 명이라도 더 구원에 이를 수 있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게 되며 그로서 교회가 부흥되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교육과 교사의 영적 자세와 사명은 결국 교회부흥으로 이루어는 놀라운 축복이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교회교육연구소는 이와 같이 예배가 중심되어 교회학교를 부흥시키고자 하는 기도와 연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흥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앞으로도 커리큘럼의 개발은 물론 주일학교의 성경적인 곧 성령이 함께 하시는 교회학교가 될 수 있도록 교회교육연구를 함께 연구하며 전세계 교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번 Nyskc Teachers Colloquium에 참여하고 연구하는 교사여러분들이 된 것을 환영하고 Nyskc Teachers Colloquium이 교회교육에 큰 도움이 되는 연구소로 거듭나고 발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전세계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 될 수 있도록 사용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부흥시킬 수 있는 기관이 되고 함께 하는 교사 여러분들이 이 일에 쓰임 받는 사명자가 되기를 축복하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June 6 2014



NWM 대표회장 최고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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