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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skc Symposium 2017 환영사

Nyskc Symposium’17

Diaphora. & Adiaphora.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John14:6)



Nyskc Learned Society

환 영 사

2003년 처음으로 학회를 구성, Gardena, California 대흥장로교회(권영국 목사)에서 목회자 포럼을 시작으로 그 이듬해인 2004년 그 명칭을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라 칭하고 초대학회장에 장상선 박사를, 부학회장에 윤사무엘 박사를 세우고 Dekalb, Northern Illinois Univ. 한인장로교회(안영철 목사)에서 Nyskc Family Conference가 열릴 때 함깨 열며 제2회 Symposium으로 격상했습니다.

그 후 2005년 Nyskc Family Conferenc’05 Washington DC.에서 제3회 Nyskc Learned Society를 가졌고 제4회부터는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단독으로 Atlanta, Georgia 아틀란타장로교회(서삼정 목사)에서 갖으면서 학회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제14회 학술대회가 NYSKC UNIVERSITY에서 열리게 됨을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허락하여 주셨음에 또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1993년에 예배회복운동인 Nyskc Movement로 시작된 Nyskc World Mission은 학회를 세우고 매년 미국의 각 도시와 한국을 비롯한 서남아시아 등 전 세계를 돌면서 Conference(훈련)를 개최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Miclot이라는 문화사역을 통해 극단과 방송, 출판 등 여러 분야로 그 사역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도 회복의 신학과 NYSKC 신학을 세우고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 간 매년 학술대회를 열어오는 가운데 비록 학술대회로서의 규모를 갖추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고 있으며, 참석한 목회자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고 Vision을 갖게 하는 학술대회였다고 자평(自評)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NLS(Nyskc Learned Society)는 California, Illinois, Washington DC. Georgia, Colorado, New Jersey, Ohio 지역에서 Nyskc Symposium을 열어왔으며 이 학술대회(Symposium)는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미국에서만 개최되어왔고 그러는 가운데 학회의 임원진도 바뀌어 현재는 학회장에 윤사무엘 박사(구약학), 학회실장에 James K. Choi 박사(조직신학)가 맡고 있습니다. 또 각 5개의 분과로 나누어져 회복의 신학(Restoration of Theology)을 비롯한 전가(Imputation)의 신학, 기다림의 신학을 연구하며 예배회복운동을 신학적으로 뒷받침 하고 있으며, 매년 Symposium을 비롯하여 각 나라의 Division HQ.를 통해 열리고 있는 목회자를 위한 Forum과 Seminar등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하며 발표했던 주제들을 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회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03년에는 “NYSKC의 5대 신조와 행동강령”(암9:11-15), 2004년에는 “예배와 교회” (NYSKC Movement 행16:17)라는 주제로 개최되었고 2005년에는 “회복의 사상(Nyskcism 요4:23-24)” 2006년에는 “내가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 (렘32장),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Colorado에 위치한 YMCA에서 “성령의 불로 태우라”(사4장), “회복의 신학과 설교”(Nyskc Movement의 정체성), “사실과 진실”(하나님의 관점 Theocentric-ism)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어 2010년에는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HAVE & BE)라는 주제를 통해 소유권과 위임권에 관한 연구발표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2011년에는 “시각과 변화"(하나님의 관점 & 사람의 관점), 2012년에는 “Think though Thinking”(빌4:8)에서 교회론을 중심으로 “구약성전과 신약교회의 비교”라는 연구가 성경 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013년 정기학술대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연구발표는 “모형(Typology)과 원형(Archetype)”으로 예배회복운동을 함에 있어 회복의 도구가 되는 성경해석부분과 또 예배회복운동의 성경 신학의 배경 곧 "Nyskc Movement of biblical interpretation background"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한편 Symposium’14 에서는 더욱 깊어진 Restoration of Theology & NYSKC of Theology 를 연구하며 “Restoration form the Loss”(상실에서 회복)이라는 주제로 연구, 발표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New Jersey Princeton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이후 GTS Ohio Campus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2015년 “예배는 회복이다” & “회복의 신학”(암9:11-15), 2016년에는 “모형과 원형”(Type and Antitype)의 “옛(Old)”것은 구약 성경의 “모형”이고, “새(New)”것은 신약성경의 “원형”이라는 주제로 NYSKC UNIVERSITY에서 가졌습니다.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라는 명칭에 걸 맞는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해야 할 일과 이루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NLS의 Vision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학회가 되어야겠습니다.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은 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처음 세워지면서부터 가져왔던 목표가 아닐까합니다. 다시 말해 NLS이 세웠던 다음과 같은 사업들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5개의 각 연구 분과들의 활발한 연구 활동입니다. 그 중 하나가 신학 연구(성경) 분과, 두 번째가 예배학 연구 분과, 세 번째가 교회학 연구 분과이며, 네 번째는 교육 연구 분과, 다섯 번째는 선교학 연구 분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 내용은(Subjects for Study Project) 회복의 신학 연구, 예배 회복에 따른 성경 연구와 Nyskcism 연구(성경해석학), Nyskc 연구, Nyskc Movement 연구, 예배론과 교회론 연구, 역동적 목회 사역 연구(PDP), 예배회복에 따른 Method 연구, Urban Mission 연구(예배중심의 선교), 교회 세대간의 Identity 연구, 다중 언어의 선교적 사명 연구 등이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은 연구 활동(Research Activities)으로는 학회와 부속기관(Institute), GTS를 통한 Seminar & Workshop, Forum & Conference등으로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제14회 Nyskc Symposium이 2017년 오늘 열리게 된 것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학을 하나 세운다는 것은 세기의 역사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금세기의 마지막 신학자라고 하면 Abraham Kuyper(1837-1920)를 들것입니다. Abraham Kuyper와 Herman Bavinck(1854-1921)는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대표적인 신학자이고, 그리고 소위 신칼빈주의(Neo-calvinism)의 주요 대변자들이었고, 그리고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Benjamin B. Warfield(1851-1921)와 더불어 세계3대 칼빈주의자로 칭합니다.

Kuyper는 1837년에 화란 국가교회(NHK)의 목사인 얀 프레드맄 카이퍼의 아들로 마아슬롸이스(Maassluis)에서 태어났고, 교사 출신의 어머니에 의해서 홈스쿨링으로 초등 교육을 받고 아버지의 목회지 레이든에서 김나지움을 마쳤고, 1855년에 국립 레이든 대학교에 진학하여 문학과 신학을 공부한 후에 1862년에 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국립 레이든 대학교(Rijksuniversiteit te Leiden)는 16세기에 빌럼 판 오라녀(Willem van Oranje)를 주축으로 스페인에 대항하여 일어난 네덜란드 독립 전쟁 시에 레이든 시민들이 세운 공에 대한 보답으로 세워진 대학교입니다. 스페인 군대가 레이든에 대한 공성전을 펼치는 중에 굶주린 레이든 시민들이 쥐를 잡아먹어가면서 까지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는데, Willem van Oranje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레이든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의 제안을 했으나, 그들은 그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대학교를 세워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었고, 1575년 네덜란드 내에서는 최초로 레이든 국립 대학교가 세워졌습니다.

그 Leiden Univ.에 신학부는 자유주의 신학의 견고한 성채(城砦), 근대주의의 아테네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Kuyper와 Bavinck의 지도 교수는 Johannes H. Scholten(1811-85)이었습니다.

Scholten은 네덜란드 자유주의의 대변자였습니다. 그의 지도하에 Kuyper는 [존 칼빈과 존 아 라스코의 교회론 비교 연구 Disquisitio historico-theologica, exhibens Joannis Calvini et Joannis a Lasco de Ecclesia Sententiarum inter se compositionem]로 1862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종교개혁 신학을 연구했습니다.

Kuyper는 신학부 재학을 통해 정통 신앙을 상실, 자유주의 신학도가 되었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그는 약 11년 동안 화란 국가 교회의 목회자로 시무(1863-1874)하는 한편 1880년 10월 암스테르담에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를 설립하고, 교의학을 비롯한 여러 과목의 교수가 됩니다.

Kuyper는 단순히 신학 교수로서 혹은 저술가로서만 지낸 것이 아니라 공적인 활동도 병행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학교 운동을 했으며 반 혁명당(Anti-revolutionaire Partij)을 창당하고 활동 했습니다. 1880년부터 20년간 자유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신문 편집인으로, 반 혁명당 지도자로, 돌레안치(doleantie)라고 불리는 교회 개혁 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함으로서 그는 교회 국가 개혁교회에서 정직을 당하게 되고, 그를 추종하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1886년 새로운 교단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1892년에 이르러는 1834년에 일차 분리 운동(Afscheiding)을 통해 국가교회로 부터 분리 교단을 세웠던 기독개혁교회-Bavinck가 소속된 교단-와 연합하여 화란개혁교회(GKN)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처럼 1880년대, 1890년대 20여년의 세월동안 Kuyper는 대학설립자, 정당당수, 신문편집인, 교회 개혁자등 다방면에 걸친 공적 생애를 보냅니다.

Abraham Kuyper는 1901년에 네덜란드 수상이 되어 자유대학교 교수직을 휴직하게 되며,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수상직을 수행하게 됩니다.

Kuyper의 휴직으로 인해 그가 맡고 있던 교의학 교수직이 공석이 되는데, Kuyper의 후임자로 Bavinck가 1902년 취임하게 됩니다. 한편 Kuyper는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교의 L. P. Stone강좌의 강사로 초빙을 받고 1898년에 칼빈주의 강연을 했으며, 그로부터 2년 후인 1920년 11월 8일 향년 83세로 소천 하였습니다.

Kuyper는 Calvin과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을 좋아했으며, 화란 국민이 자랑하는 시인 Willem Bilderdijk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개혁주의 원리가 신학이나 교회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학문과 예술 등 사회의 모든 방면에 스며들어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신학자입니다. 따라서 정통 신학자로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에 대한 섬김이로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냐 혁명이냐는 식의 모토에서 보여주듯 Kuyper는 반정립(antithesis)을 강조했고, 자유주의나 세속주의에 대해서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이었으며, 그로 인해 그는 교만하다는 평이나 혹은 독선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Kuyper는 전면에 나서서 전투를 지휘하는 Julius Caesar와 같은 Imperator 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학을 세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이 말하는 회복의 신학 역시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일생을 걸쳐 이루어 질 수도 있고 다음 세대로 넘겨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Abraham Kuyper나 Bavinck 같은 신학자 이후로 신학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신학자들이 세워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이 연구와 사역에 충실하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 신학계에 영향을 준 많은 신학자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박형룡 박사나 이영희 박사 같은 신학자들과 더불어 목회자로서 “별세신학”을 내놓은 이중표 목사는 신학적 조화를 앞세우고, 교회성장 신학에서 해답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회자 평생 신학으로, 혹은 교회갱신에 대한 신학으로, 한국교회의 연합 일치의 신학으로, 그리고 세계화 신학으로 발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목회자, 신학자들이 신학연구발표를 통해 현대 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자 지금도 많은 신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떤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과 은혜를 표현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물결이 온 유럽을 휩쓸고 지나갈 때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Kuyper는 신학자, 정치가, 목회자, 그리고 사상가로서 현대 교회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이것은 그의 능력과 고결한 인격, 그리고 초인에 가까운 그의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Kuyper의 이러한 힘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1897년 그는 그의 열망을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하나의 소원이 나의 생애를 지배하는 열정이 되어왔습니다. 하나의 높은 정신이 나의 마음과 영혼을 가시처럼 자극하여 왔습니다. 나에게 부과된 그 거룩한 임무로부터 도피하기 보다는 차라리 생명의 숨결을 나에게 거두어 가십시오. 세상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다시 가정과 학교와 국가에서 재건될 것이며 성경과 자연이 증거 하는 주님의 계명을 국민의 양심 속에 되새기고 국민들은 다시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게 될 것 입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심오한 신학자가 뜨거운 마음을 가진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으며, 매주 경건의 명상을 저술하는 시간을 가졌고 2천여 개에 이르는 묵상을 기록했습니다.

그 글의 성격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Kuyper는 칼빈주의의 영역이 좁은 의미의 신앙 고백적 해석으로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Luther는 칭의(稱義)에서 출발하였으나 Calvin은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 즉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우주론적 원리에서 출발했다”고 말합니다.

Kuyper에 의하면 칼빈주의는 교회의 제도에 그치지 않고 생활의 원리로 발전했으며 교리의 구성을 위하여 진력했을 뿐만 아니라 인생관과 세계관을 창조해 나갔습니다.

Kuyper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문화적 사명을 찾습니다. 이 문화적 사명이 타락 이후에도 보존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일반 은총이론을 근거로 “타락이전의 문화적 사명이 타락 이후에는 일반은총으로 나가 불신자들에 의한 문화 창달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이 되는 올해 "칭의, 불가항력적 은혜, 구원이라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외쳐와던 것을 주제로 삼아 “Diaphora & Adiaphora”(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John14:6) 개혁주의 5대 강령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Soli Deo Gloria)을 앞세우며 개혁주의 신학의 구원론(soteriology)과 성령론(Pneumatology), 교회론(Ecclesiology)

을 통해서 회복의 신학을 연구한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 본질과 비 본질(Diphora, Adiaphora)를 통해서 회복되어야 할 본질에 대한 연구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혁주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크게 3가지라는 것을 알고 접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God's Absolute Sovereignty) 즉 하나님 중심입니다.

또 하나는 성경 중심(The Authority Of The Bible)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말씀 중심(Word of Life) 교회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혁주의는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기독교 개혁운동으로 탄생한 Calvin을 중심으로 세워진 신학이기 때문에 일명 칼빈주의(Calvinism)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Charles Hodge는 개인의 이름(Calvin)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 명칭을 개혁주의로만 칭했습니다.

또한 독일 남부 스트라스부르크 (1500년대)와 팔라틴 개혁주의, 스위스 취리히, 제네바 Zwingli가 기초하고, Calvin이 발전, 그의 제자들이 전파한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Robert Letham은 신학사전 [New Dictionary of Theology]에서 정의하기를 “16세기의 개혁자들 중에서 취리히의 Zwingli와 Bolinger, Bucer와 Peter Martyr Vermigli, 제네바의 Farel, Calvin, Beza, Franc, Durkheim, 아만두스 폴리누스 등이 저술하고 시행한 것들과 그들이 작성한 신앙고백을 개혁주의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William Stanford Reid는 복음주의 신학사전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에서 “개혁주의라는 용어는 루터파와 재세례파(Anabaptist, 그리스어: Αναβαπτιστές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급진적 개혁을 따른 기독교 종파를 가리킨다. 그 사상을 이어받고 있는 현대의 개신교 교파들로는 아미시파,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등이 있다.)로부터 칼빈주의자들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서 Zwingli가 기초를 놓고 그 위에 Calvin이 기독교 강요에서 정립한 신학과 성경주석을 통해서 발전시킨 기독교 신학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개혁주의는 Calvin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이 통합신학을 지향했다면, 1200년대 Thomas Aquinas의 [신학대전], 카톨릭과 헬레니즘[Roman Catholic & Hellenism]을 하나로 통합, 아테네와 예루살렘을 통합한 것이 바로 스콜라의 교사들이 정립한 스콜라 신학이었습니다.

Thomas Aquinas나 Francis Schaeffer처럼, 이성으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하여, 철학과 신학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중세신학은 Vatican 체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유럽과 이슬람세계에서 카톨릭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고 보헤미아의 Jan Huss가 이런 경향에 대해 반기를 들고 전통보다 성경을 우위에 두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당시 로마카톨릭의 금서였던 독일신학 (Theologia Germania.)에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상이 나옵니다.

루터는 스승을 통해 이 책을 읽게 되고 공감하였습니다. 그래서 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개혁에 찬성하는 이들이 유럽 전 지역에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고 이런 경향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깨어나게 하셨습니다.

특히 스위스와 독일 남부 지역의 민중들이 새로운 신학과 신앙에 대해 갈망하며 영적 각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위스는 도시국가체제 운영, 강력한 왕권으로부터의 벗어남, 신자들의 자기 결단의 의지가 프랑스나 독일보다 넓어져갔습니다.

강력한 신앙운동에 대해 독일 남부 지역은 스위스와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중세 암흑기를 지나 새로운 시대 즉 여명기에 사람들이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신앙을 정리, 체계화, 학문화 하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개혁자들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John Calvin(1509-1964)이었습니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개혁주의란, 1500년대 스위스와 독일 남부 지역의 사람들로 하여금 카톨릭의 오류를 깨닫게 하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이 칼빈주의, 곧 개혁주의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을 일부 수용하는 반면 자기들이 주장하는 주요 교리 (Reformed doctrines)를 내놓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570년까지) 교부들의 신앙을 이어받다 Early Church Father(Latin, Greek)” 이는 교부들의 저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 공의회에서 채택한 신앙고백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200년 경 저자 미상의 신앙고백으로, 500-600년대에 이르러 최종판으로 사도들의 신앙을 담고 있으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부활, 재림, 니케아 신경(325), 삼위일체 관계 규정, 성자는 성부와 동일(homo-ousia)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똑같은 신이시다”라고 했습니다. (381년 Constantinople에서 이를 다듬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 함)

칼케돈 신경은 451년에 Nestorius, Eutyches 등이 “예수가 인간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극단적인 그리스도의 단성론을 배격하고 양성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고백, 신성이 인성 안에 혼합, 즉 분리되지 않고 서로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는 고백서입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도 5세기 고백서로서 삼위일체에 대한 확실한 결론, 성부, 성자, 성령은 세 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분, 성자는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으로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시고 재림하시며 심판하실 것이다 하는 신경을 동방교회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동방교회는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시지 성부의 영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서방교회는 성령은 하나님의 신이면서 예수님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1453년 동서가 갈라질 때, 성령론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령은 성부로부터 왔다고 했고 서방교회에서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Filioque) 오셨다고 고백합니다. 개혁주의는 서방교회로부터 고백된 신앙노선을 기본으로 된 것입니다.

또한 Calvin의 기독교 강요는 성경 기초, 초대교회 신앙 기초, 개혁운동의 5가지 슬로건 수용, 오직 은총 Sola Gratia (구원은 은혜, 공로주의 배격), 오직 믿음 Sola Fide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Solus Christus (그리스도만으로, 마리아나 성자로 통하는 것이 아님),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바티칸의 결정, 교리, 전통이 아니고 신앙의 기준은 성경만),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 (이것은 Luther도 그대로 받아들임) 이를 Calvin이 수용, 이런 기초가 보수 전통 신앙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한편 개혁주의 교리에는 특색이 있습니다. 예컨대 제한, 속죄, 구원론의 특징으로는 Jacob Armenius(1560-1609)가 Calvin(1509-1564)의 구원론을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1618-1619년 네덜란드 도르트(Dort)에서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모여 심의, 검토하여 칼빈주의 구원론 5대 교리를 확정한 것이 도르트 신경(일명 TULIP)이라 합니다.

Total Depravity 전적 타락,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 선택, Limited Atonement 제한적 속죄, 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총, 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견인입니다.

또 하나는 Abraham Kuyper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Sovereignty of God)를 발전시켜 정리하였는데 “창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징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 마지막 심판의 과정에서의 구원,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뤄짐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천명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으리로다“(롬11:36) 내가 믿는 신앙(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의 해설)이 기독교 강요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떻게 이뤄집니까?

Calvin은 “from top to bottom”(하나님의 통치, Lordship) 우주적 체계, 사회와 국가, 망원경으로, Luther는 “from bottom to top”(구원론), 이는 현미경적 시각에서 망원경으로 올라감을 말합니다. 또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예정하신 구원론,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말합니다. 예정론은 Martin Bucer가 만든 것인데, 인간을 노예로 만들었다는 비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1563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통치자가 요리문답을 만들게 합니다. 여기에서 예정론은 빠지게 되는데 개혁주의는 Augustine이나 Melanchthon처럼 하나님의 작정 안에 있는 “예정과 선택”을 믿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인간을 마치 하나님의 정해진 프로그램에 맞춰 기계처럼 움직이는 존재로 만든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운명론자로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리로서 신적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해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운명이 인간의 인격 곧 하나님이 주신 인격이 무시된 기계적인 것이라면, 예정론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과 인격이 함께 하며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인격이 있으므로 운명론과 예정론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제네바의 베자에 의해 철벽이 된 예정론보다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하는 온건한 주장이 독일 남부 지역과 스위스 자치 도시에서 개발되었는데 그게 바로 언약신학(covenant formula, I am your God, and you are my people)입니다.

언약신학은 구원을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로 성찰하면서 인간은 믿음을 통해 이 언약에 참여하는데 구속 계시의 점진적 발전 과정과 통일성이 그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것으로, 구약의 각종 언약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체결되는 새 언약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입니다.

Zwingli, Bolinger, Calvin, Olevianus, Ursinus, Ames, Cocceius, Rollock, Cartwright(장로교의 아버지), Cloppenburg, Witsius, Jonathan Edwards, Herman Barwinck, Geerhardus Vos(프린스톤 성경신학자) 등이 언약신학자들입니다.

또한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은혜와는 달리 “하나님의 일반은총”(마 5:43-48)은 인류전체에게 보편적으로 미치는 하나님의 호의적인 태도를 가리키고, 교회는 세상에서 이러한 일반은총에 대한 세 가지의 분명한 증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가 하나님은 신자들은 물론 불신자들에게도 자연적인 은사를 주셨습니다. 예컨대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나 변호사 또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억제하고 계십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원래 의도되었던 만큼 선하지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일반은총으로 인하여 그들은 극단적으로 악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가 어떤 때는 신자보다도 더 낫게 행동하는 것같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인내, 용기, 동정심 등의 미덕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인간 누구에게나 그 영향이 전적으로 상실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불신자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유익이 되는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사회가 질서 있게 돌아갈 수 있도록 인간들에게 사회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을 고취시킵니다. 일반은총은 죄악으로 상처입고 왜곡된 사회가 전적으로 부패하여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일반은총의 내용은 세상에서 신자들이 어떻게 살며 봉사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반은총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서 뿐만 아니라 세상과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하는 은혜의 모형이며,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살면서 공동의 목적을 추구할 때 그들과 긍정적인 연계를 발전시킬 것을 장려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 자신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별하는 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합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일반은총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 또는 예술 작품들을 하나님의 좋은 선물로, 때로는 초월의 세계 또는 은혜에 대한 암시로 받아들이면서 그것들을 즐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반은총은 신자들로 하여금 (Abraham Kuyper가 “대립관계”라고 불렀던)이 세대에서의 마찰이 신자와 불신자 사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있는 것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 싸움은 두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영적 권세 사이에 있는 것으로서 중요한 것은 이 두 권세가 모든 사람 안에, 그리고 모든 사람 사이에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은총의 가르침은 교회로 하여금 다양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는 여러 가지의 목적을 교회의 사역에서도 가져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 음식 공급 사역, 원목의 병원 사역, 목회자의 결혼 상담 등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명의 일부이며, 그것은 심지어 이 사역의 수혜자들이 신자가 아니거나 신자가 되지 않더라도 행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간절한 소망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것이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이러한 전체적인 사명 아래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사역을 행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한 사역의 가치를 다른 사역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서로 다른 다양한 것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이러한 사역들은 모두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사명 안에서 그 자체의 고귀함과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정의 없는 은총은 참다운 은총이 아님) 한 사역의 가치를 다른 사역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지 않습니다. 그 전체적인 사명 안에 예수님은 하늘나라에서 오셔서 이 세상에서 활동하심으로 하늘나라를 이 세상에 가지고 오셨습니다.

Abraham Kuyper는 하나님의 주권이 어떻게 교회와 가정을 넘어서서 세상 정부, 사회의 각 영역에 역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세상에 단 일보(一步)도 그리스도와 무관한 것은 없다.” (He is the Lord in every walk of life.)라고 하였고 각 분야에서 주님의 Lordship을 강조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주의 신학을 배운 그는 20대 초 목회를 하면서 자유주의적으로 하였지만, “목사님은 지성적이고 훌륭하지만, 목사님의 설교에는 생명이 없습니다.”라는 한 모범 성도의 지적에 충격을 받고, 더욱 고민하고, 자기를 반성, 그 여 집사님의 지적에 공감하게 되었고, 왜 이와 같은 질문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자유주의적인 점에 관해 지적받았음을 깨달았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어 보세요.” 라는 말에 그는 기독교 강요를 읽고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로 결단을 하기에 이릅니다. “주님, 저는 이제부터 네덜란드 교계의 화목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네덜란드 교회가 자유신학으로 인해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Dutch Reformed Church를 시작하였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교육하기 위해 자유대학을 설립하여 (“영역의 주권” 하나님의 Sphere 정치영역, 경제, 가정, 교육, 교회 등 각 영역은 서로 동등하다. 이중 어느 하나도 절대적일 수 없다. 이 영역은 동등하고 하나님께서 직접 각 영역에 영향력을 미침) 정부가 교육을 좌지우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대학 인가를 받고 기독대학을 운영하여 제자를 양성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일을 할 때의 신학적 이론이 “일반은총론”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특별하나,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일반 은총이다.)

Cornelius Van Til 탕자가 실패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심정으로, 탕자의 회복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며, 아버지의 기다림과 환영과 영접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이룸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진실과 본질(Diaphora)이 칸트의 이론으로, Post Modernism으로 되지 않습니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와 타락, 그리고 구속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볼 때 비로소 살 길이 보입니다.

특히 Kuyper의 일반은총 인식을 세상으로 가져오는 것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스 사상에서 Aristoteles는 Form(형상)과 Matter(질료) 이렇게 두 가지의 요소로 실체가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고 플라톤은 관념과 현실(Idea, Reality)을 구분했습니다.

또한 사물의 본체는 Idea(이데아)와 현상(Reality)으로 비너스는 이데아적인 여자의 모습을 만들고 싶은 바램을 가졌습니다. Socrates가 독배(毒杯)를 마신 것은 이 현상적인 육체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밝고 질서정연하고 자유로운 길인 이데아로 들어가기를 원하며 이를 아는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현상으로부터의 자유, 구원, 이는 어떤 면에서 불교의 원리와 흡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셀 수 없을 정도의 만상, 현실, 현상에서 벗어남, 출가, 해탈)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불교의 경전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없는 것이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존재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원효가 당시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라 밤에 동굴에서 잠을 자던 중 갈증을 느껴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보니 그 물이 해골바가지 안의 물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원효는 일체유심론을 주장했던 불교의 사상가)의 마음을 공부하였고, 마음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으로 그런 지식을 가지고 현상계(something to see) 즉 열반(涅槃)에 들어가는 것이 자유에 대한 이해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인간과 세계를 보는 관점은 창조(creation), 타락(fall), 구속 (redemption)입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속했다.”(개혁주의 현대신앙문서 58개 항목) “타락함으로 자생적 능력 상실” (철학 사상 모든 것이 헛되다) “인간이 할 수 없다. 죽음에 이르는 냄새 밖에 없다.” 또한 “구속이 절대 필요”하며 그밖에도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교리들이 개혁주의의 특색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John Leith)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 우상숭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역사 속에서 이룩되는 하나님의 목적, 거룩한 신자의 생활,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서의 생활, 설교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권징과 훈련된 생활, 조직된 교회의 중요성과 목회적 관심, 예배와 생활의 단순성 등 칼빈주의는 다른 신학보다 더 다양한 관심을 가집니다.

이런 개혁주의의 신앙 내용들은 벨기에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서, 도르트 신경,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요리문답서 등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개혁의 여러 유파들 가운데 주류는 역시 루터파와 칼빈파라 할 수 있는데 개혁에 임하는 양측의 입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루터파는 성경이 분명하게 명령하는 것이나 금지하는 것은 실행하되 그 밖의 것들은 성도들의 양심에 맡긴다는 입장인 반면, 칼빈주의자들은 루터파보다 엄격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는데 이는 불분명하게 보이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성경이 이미 분명하게 명령하거나 금지한 것들을 적용하면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고 그 외의 것들은 성도들의 양심에 맡긴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Luther의 개혁을 소극적인 개혁, Calvin의 개혁을 적극적인 개혁, 혹은 철저한 개혁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Abraham Kuyper는 개혁주의가 문명의 흐름에 있어 가장 앞서 있으며, 시대적으로 보면 그리스 로마적 이교 문명, 로마 카톨릭 문명, 칼빈주의로 표현되는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이 위력적인 네 문명들 중에서 칼빈주의가 가장 발달한 문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고대문명의 발생지는 네 곳인데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서남아시아의 바벨론,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문명은 보편 윤리적 측면에서 볼 때 세계의 다른 문명들에 별로 뒤질 것이 없습니다. 1970년대 초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죽(竹)의 장막’이라는 중국에 들어가 모택동과 주은래 등 공산지도자들을 만나고 와서 중국 지도자들에게는 철학과 경륜이 있다고 했습니다.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이나, 공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중국 문명은 어떤 의미에서 우람하고 찬란했으나 그들은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으로 자처했습니다. 따라서 유수(流水)일 필요가 없었으며, 호수(湖水)로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서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문명은 그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중국문명보다 동적(動的)이었고,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는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으로 뻗었고, 동남아로 흘러갔으며, 서남아시아를 넘나들었습니다. 불교로 갱신된 인도문명은 중국의 도교와 관념적 사고를 같이 하면서 국외 영향력을 증대시켰던 것입니다.

이집트와 바벨론은 중국이나 인도보다 훨씬 더 역동적(力動的)인 문명이었습니다. 양 문명은 중국이나 인도문명처럼 자기의 모습을 고수하지 않고 그리스와 로마 문명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바벨론 문명이라고 한다면 그 다음은 그리스, 로마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 문명은 규모와 영향력에 있어 오랜 시간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기독교적 성취를 통해서 삽시간에 그리스 로마 문명에 필적하였습니다. 히브리 사상의 두 축은 유대주의와 기독교 정신입니다.

유대사상은 선민주의(選民主義)를 강하게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유대인을 주(主)로 확신하고 나머지 민족들은 모두 객(客)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세계 최대의 정치력과 군사력을 가진 국가의 지배, 세계의 에너지 시장 지배, 세계의 식량시장 지배, 세계의 금융 지배, 세계의 정보 통신의 발신원과 정보 통신망 지배를 획책하고 있습니다. Freemason 같은 비밀결사까지 불사하면서 세계지배에 혈안이 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기독교는 유대사상보다 보편성을 곁들인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300여 년 전 지중해 연안 제국들을 통합해 사람들의 생각을 지역주의에서 국제주의로 바꾸어 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알렉산더 왕을 필두로 한 그리스인들이었습니다. 이 헬라인들의 세계 정복은 남다른 데가 있었는데 강자로서 군림하고자 하는 정치, 군사적 야욕보다는 어떤 이상을 펼치고자 하는 꿈 때문에 정복에 나섰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바로 헬라제국의 건설이었습니다.

헬라문화의 보급에 대한 Vision이 그들로 하여금 정복전쟁에 나서게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사상을 최고 가치로 생각했던 것처럼 헬라인들은 헬라 문화를 최고의 가치로 믿었고 유대인들이 종교적 선민의식에 젖어 있었다면 헬라인들은 문화적 우월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Platon 같은 이도 자기가 헬라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보면 그들의 문화가운데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문화적 혁명의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지중해 연안에 헬라인에 의한 보편주의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제국은 헬라인들과 같은 문화적 보편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세계 모든 거류민이 동포라는 사상, 이 사해동포주의는 헬라인의 산물이었습니다.

수 백 년 간 헬라의 지배를 받으며 헬라문화에 익숙하게 된 일부 히브리인들이 자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되묻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열리는 세계와 자기들 유대인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족적 편협성 안에 감금되어 있는 신적 특수성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성으로 열려있는 신적 특수성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사고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일부 유대인의 보편적 사고가 역사적 산물이라는 견해는 어디까지나 인간적 관찰에 의해 그렇다는 것일 뿐 그것의 논의에 절대적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깨어난 유대인의 보편주의는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전개에서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었고 유대 선민주의의 시조인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하나님은 벌써 만민(萬民)을 염두에 두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질 강한 나라는 만민의 구원을 지향하고 있는 한시적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다” (시 50:1)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만민의 예배를 위해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비록 그 만민이 이스라엘을 매개로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할지라도 종족, 신분, 계층과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사상은 유대사상을 극복,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월등한 사상체계와 삶의 질을 약속하면서 등장한 기독교 문명은 헬라문명과 더불어 서양문명의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중세의 카톨릭 스콜라 사상은 기독교 정신과 헬라교 사상을 한 지붕 아래 동거케 하려고 웅대한 사상적 복합구조물을 만들었습니다. 스콜라 신학의 노력 속에서 예루살렘은 아테네를 발아래 두고 한 식구가 될 수 있다고 자부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하늘 발 문명과 세상 발 문명을 통합하고 그 명주가 되려는 카톨릭 바티칸의 꿈은 바벨탑 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르네상스와 교회개혁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헤브라이즈와 헬레니즘의 통합 시도를 박살낸 교회개혁은 독일의 Luther, 스위스의 Calvin, Zwingli에 의해 주도됐으나, Luther는 문화 배척론, Zwingli는 문화 수용론, Calvin은 문화 변형론을 주장하며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Calvin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었고, 서구 자본주의 발전의 요인으로 앞의 두 인물들보다 Calvin의 영향력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개혁주의는 로마 카톨릭과 더불어 서양인들의 사고와 삶에서 결정적 작용을 하는 두 지렛대가 되었는데, 희랍의 이교철학, 로마 카톨릭, 이슬람교(사라센세력), 칼빈주의 등 네 사상의 세계관들이 뚜렷한 자취를 남기며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반드시 확인해여 하는 것이 있다면 개혁주의와 루터주의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Martin Luther가 활동하던 16세기 당시 독일은 제후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공교럽게도 성들의 자각은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나 정치 생활에 대한 실제적 권리, 곧 자결권(自決權)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들은 봉건제후 아래서 농노와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Luther가 바티칸을 향해 개혁의 봉화를 들었을 때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일반 대중이 아니었습니다. 정치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바티칸에게 불만을 품어온 제후들이 그의 신변을 보호해주며 개혁에 지지를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게르만 민족들은(독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루터교로 나갔으며, 작은 나라(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코트랜드, 영국의 한때, 미국)는 칼빈주의로, 그리고 라틴계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카톨릭으로 나갔습니다.

칼빈주의가 영향을 미친 나라는 시민들의 손에 의해 민주정치가 실시되고 교회의 개혁이 진행되었습니다. 정부나 교회는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1500-1600년대 중간지대인 작은 나라들이 칼빈주의로 민주주의가 정립되고 강소국이 됩니다.

스위스는 명품에 해당하는 산업국으로, 장사를 잘 하는 네덜란드 (Dutch pay 계산은 정확하게)로 칼빈주의가 잘 이루어진 나라는 이처럼 국가의 성숙, 국민의 자각, 시장 경제의 발전, 높은 도덕성, 윤리가 강화되는 등 놀라운 역사를 가집니다.

하지만 로마 카톨릭이나 정교회 쪽을 보면 대중은 볼모로 잡힌 존재였습니다. 고위 성직자들이 교회를 전횡하고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국가의 각종 자원을 나누어 가지게 되자 무지한 대중은 노예같이 일만 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어리석고 연약한 대중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어 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교계제도나 제의 중심, 또는 성물이나 성상 숭배에 빠뜨려 더욱 몽매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성경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들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시작과 동시에 성경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은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도록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백성의 상하 구별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했고,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셨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차별 없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관심, 참여와 누림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개혁주의는 이렇게 로마 카톨릭교회나 정교회와 달랐을 뿐만 아니라 개혁의 동반자인 루터주의와도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혁주의가 가는 곳에는 국가와 민족의 성숙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권이 존중되고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었으며 민주정치와 시장경제가 발전하였습니다. 문명의 흐름에서 개혁주의는 진정한 우월과 성숙의 표지였습니다.

그 이후 20세기 초 칼빈주의가 선교사를 통해 태평양을 건너 한국으로 왔고 전파되어 한국 기독교의 70%는 칼빈주의 장로교입니다.

20세기에 와서 백인계가 아닌 유일한 칼빈주의자는 한국교회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Church is the heavenly venture.”(교회는 천국의 기업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국교회는 새벽부터 불을 켜고 “주여! 주여! 주여!”를 부르짖는 칼빈주의 교회입니다.


백인들에게서는 이런 열정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1907년 평양신학교가 설립되고, 폭발적인 성령의 역사가 같은 해인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에 임한 후 길선주 목사는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요한계시록을 증거 했습니다. 독립운동서 서명, 장대현 교회 새벽기도 운동, 심지어는 소천하실 때도 새벽기도를 드리고 소천하셨습니다. 이 신학의 핵심에 개혁주의, 칼빈주의가 있습니다. 나라와 교회가 살길은 복음이요, 칼빈주의(개혁주의)입니다.



또한 개혁주의 신학자 죤 머레이(John Murray)가 그의 저서 “성취된 그리고 적용된 구속”에서 “구원적용의 다양한 과정이 어떤 순서에 따라 진행되고 있으며 그 순서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계획과 그의 지혜 그리고 은혜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하고도 결정적인 이유들이 성경에 나타나 있다”고 주장하며 로마서 8:23로부터 부르심(calling), 의롭게 하심(justification), 영화롭게 하심(glorification)이라는 구원의 순서를 부르심, 중생, 믿음과 회개, 칭의, 양자 삼으심, 성화, 견인, 그리고 영화라고 정리한 것 처럼 회복의 과정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Louis Berkhof의 저서 “조직신학”에서 성경은 “구원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하다”고 말하며 부르심, 중생, 돌이킴(회개와 믿음을 포함), 칭의, 성화, 견인, 그리고 영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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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입장에서 회복과 연관시켜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원에서 중생이나 돌이킴, 회개, 칭의와 같은 것은 구원과 회복이 함께 나눌만한 공통점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이견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복의 신학적 입장에서 구원의 순서를 설정함에 있어 다양한 각 단계들의 순서가 항상 같을 수는 없으며, 이는 신자의 살아가는 삶을 통해 수행되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칭의와 성화는 성도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연속의 과정이 아니라 동시에 나타나는 사건들이므로 구원의 순서가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하는 이 생명은 하나님이 거저 주신 선물이라는 말씀처럼 회복의 신학에서의 구원은 “생명기업의 회복”이라고 하는 것으로 중생이란 새로운 영적 생명의 시작을 의미하고 이는 성령에 의해 우리 안에 심겨 지며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믿음에 이르도록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심겨진 새 생명이 처음으로 나타날 때를 가리켜 중생이라고 합니다.(약1:18, 벧전1:23)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최종적인 완성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중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마19:28)

큰 범주에서 보면 구원과 회복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의 부패성에 관한 것으로, 신약 성경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철저하게 부패하였다는 사실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너희는 죽었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도다.(엡 2:1, 4-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3)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이 새로운 출생은 위로부터의 출생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생과 회복은 같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의 여정에서 그 어떤 순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구원자체가 곧 “생명의 기업의 회복”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Restoration of Theology에서는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에 대해서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중생은 일방적이지 상호협력적 사역이 아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은혜는 거절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말합니다. 또한 구원 여정 속에는 숨겨진 사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돌이킴”(Conversion)입니다. “돌이킴은 두 가지로 하나는 죄로부터의 돌아섬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섬김에로의 돌아섬”입니다. 이 돌이킴 역시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비록 돌이킴이 거듭남의 외형적 증거이긴 하지만 “거듭남을 통하여 얻게 된 새 생명은 우리가 그 분과 계속적으로 연합하여 있는 한 나타나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나아만(왕하5;15), 므낫세(대하33:12-13), 삭개오(눅19:8-9), 오순절에 모인 삼천 명(행2:1), 사울(행9:1-19), 고넬료(행10:44-48), 루디아(행16:14), 바울과 실라를 지키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행16:29-34)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 주께로 돌아오는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만을 섬기고 그에게 복종하기로 한 경우(수24:14-27), 히스기야 시대(대하29:10-36), 요시야 당시(왕하23:1-3) 또한 요나의 회개의 복음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의 돌아온 것(욘3:1-10)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죄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등하였으나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던 Augustine은 롬13:14을 읽고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할 힘을 얻게 됩니다. 천로역정의 저자인 John Bunyan은 자기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내면의 정서적 갈등과 고통의 세월을 보낸 후 최종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함으로 인해 회복 되었고 영혼의 평안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가야할 길은 아주 즐겁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주신 복이라고 하는 생명과 교제와 토지기업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과, 신학의 세계에서 회복과 구원을 주장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연구 논문과, 그들의 저서를 통해 회복의 신학을 더 깊이 연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이며 신학자로서 우리 회복의 신학의 연구목표가 분명하고 그 주제가 확실하다고 하는 이 명확한 방향은 우리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는 자들로 하여금 더욱 뜨거움을 갖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연구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회복의 사상”또 “기업을 주시는 창조주 하나님” “삼위 일체적 기업과”“회복사상과 언약의 공동체” “기업의 회복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등 회복의 신학의 성경적 구조에 관한 것들이 관심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경에 나타난 회복에 관련된 “안식, 안식년, 희년”과 같은 주제들은 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연구해야 할 주제들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회복자”이시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역시 회복을 위한 과정이니 앞으로의 연구 과제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계속해서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고 세워가는 이 일에 함께 하여주시길 간청 드리며 2017년 Nyskc Learned Society에서 주최하는 Symposium에 참여해 주신 모든 주의 종, 목회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May 22 2017

Nyskc World Mission HQ.

Rep. Goshen Choi, Pastor

19th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정기학술대회 개최 공지

Nyskc Symposium '21 개최 Main Subject: “Spirituality of Nyskc Movement" Nyskc Learned Society는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입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주최로 열리는 제19차 Nyskc Symposium (정기학술대회)가 5월24-27일까지 미국 뉴욕을 중심해 열리게 됩니다. 이번 학술회는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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