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Nyskc Symposium’17에 즈음하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2017년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 학술대회에 참여해 주신 목회자, 교수님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1517년 10월 31일 Martin Luther의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본격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며 열리게 되는 Nyskc Symposium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회복의 신학은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회복을 Reform, Restoration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회복”과 “개혁”을 동일한 의미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회복의 신학에서는 회복을 “본질로의 접근”(approach the of essence)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Reformed)역시 중세 로마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맞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점에 있어서 신학의 본질은 성경이라는 점에서 개혁주의 신학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텐베르크성당에서의 Luther의 도전은 로마 카톨릭교회의 그릇된 가르침에 반대하며 전통과 권위인 Adiaphora에서 Diaphora로의 방향의 전환이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을 모토로 개혁의 문을 활짝 열었던 종교개혁의 선구자들로는 Luther, Calvin, Zwingli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있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을 읽으며 구원은 선행이나 봉사가 아닌 오직 은혜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동안 로마 카톨릭의 구원론이 잘못 되었음을 밝히며 게시한 이 반박문은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 인쇄되어 불과 2주 만에 독일인들 모두가 읽게 되었고 두 달 만에 온 유럽이 다 읽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1000년 동안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믿음, 은혜, 칭의”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증명하면서 성경이 말하는 신앙으로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Luther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은 John Calvin으로 이어졌는데 그는 단순히 신학적인 개혁을 넘어서서 삶의 변화와 사회개혁으로까지, 특히 사회복지 사역들을 통해 빈민구제에 힘썼고 프랑스 기금을 조성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제네바로 온 피난민들을 도왔습니다. 또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주여, 우리로 주님의 지혜인 천국의 비밀을 공부하게 허락하셔서 우리의 신앙이 진보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하고 우리로 세움을 입게 하소서”라고 했던 그의 기도는 바른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Calvin은 신학과 신앙의 개혁을 넘어서서 사회개혁과 삶의 변화를 향해 나아가게 함으로써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John Knox에게로 이어졌고 그의 개혁신학은 1563년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619년 도르트 신경, 1646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통해 개혁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습니다.
또한 영국에서는 성공회를 국교로 확립하려는 Elizabeth 1세 여왕에 반대하며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를 모범적 교회로 삼아 개혁을 소망했던 개혁자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을 가리켜 “청교도”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국교회의 억압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James 1세 때 Mayflower호를 타고 아메리카를 향해 떠나게 됩니다. 얼마 후 Charles 1세 때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왕과 귀족들에 대항해 의회파 중심의 Protestant들이 들고 일어나 청교도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결과로 의회파의 수장이었던 Oliver Cromwell이 청교도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개혁교회들의 통일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소요리 문답서를 작성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핵심은 Diaphora로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회복의 신학이 주장하는 “본질로의 접근”(approach the of essence)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신학과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학을 연구하거나 혹은 신앙을 세우고 성숙시킴에 있어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본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습니다.
Luther는 성경을 보고 종교개혁의 동기를 얻어 개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이 진행되면서 빠른 시간 안에 유럽 각지에서 초대교회의 신앙과 성경의 가르침대로 교회를 회복하자는 칼빈주의의 신학사상을 받아들였고 칼빈주의는 개혁교회의 주류신학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의 역사성과 전통을 계승하는 것들을 Adiaphora로 보는 신학자들이 생겨났고,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신학자들, 혹은 이와 같은 개혁주의 교회들이 오늘날의 개신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추구하는 개혁교회는 Diaphora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번 Symposium에서 주제로 설정한 성경구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John14:6)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육신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말씀은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고, 말씀은 생명이며, “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는 곧 “생명”이며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나, 곧 말씀은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Diaphora의 연구는 회복의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시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 주고 계십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 곧 말씀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일한 길(the way)이라고 하신 것은 모든 인생들이 반드시 가야 할 길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길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방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전하게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말씀이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이 되셨습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입니다. 또 이 길은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화평의 길이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영광의 길이요,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말씀은 곧 진리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구원의 이치이자 동시에 구원의 도리입니다.
변치 않는 진리, 곧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진리입니다. 진리란 영원불변한 절대기준, 절대이치입니다. 말씀은 인간이 구원을 얻는 절대기준이 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 때 그 안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말씀되시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죄로부터의 구원과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말씀은 생명입니다. 말씀인 예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셔서 하나님과 분리되어 죽게 된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음과 어두움, 무기력에서 해방되어 생명력과 뜨거운 열정, 활력과 도전정신, 개척정신을 덧입게 됩니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복이요, 특권입니까?
말씀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까?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길이 되신 예수님을 만나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요, 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14:7) 그러자 이번에는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14:8)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이렇게 학회로 모이게 된 것입니다.
학회의 역할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발견하고 바르게 세워서 빛과 소금처럼 세상을 비추고 세상 가운데 녹고자 하는 것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가 중심이 된 신학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가 곧 회복이라고 하는 신학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 가운데 신령과 진리, 곧 성령과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주신 복을 상실한 것을 회복한다는 사상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상실을 회복하자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를 신앙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예수님은 구원자이시자 곧 회복자도 되심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성령님의 조망으로 신앙의 완성, 신학의 완성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신앙의 5대 행동강령과 신조 곧 기도, 말씀, 전도, 주일, 예물드림을 찬양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개혁주의 철학을 바탕에서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회복의 신학의 방향은 본질을 향한 Reform, 그리고 본질로 접근하는(approach the of essence) Restore, Recovery, 회복자로 오신 Redeemer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회복의 신학은 학문의 세계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 아니라, 신앙에서도 이 자리에 모이신 모든 분들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주의 종으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2003년 첫 모임을 가졌던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성령님의 붙들어주심으로 인해 나날이 Diaphora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갈 것입니다.
학회에 참여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학회 기간 동안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득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간구하며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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