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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skc Momentum Conf."낙엽도 바람타면 비상합니다(“Even the fallen leaves are extraordinary when the wind blows”)


낙엽이 무엇입니까 가을이면 나무 잎이 말라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노숙자처럼 추락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에서, 부모는 자녀 양육에, 직장인에게는 직업의 현장에서, 사회에서는 인간관계에서, 경제력에서, 건강에서 가을 낙엽처럼 떨어져 노숙자처럼 거리에서 뒹굴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 어떤 사람들은 바람타고 비상하는 가을 낙엽처럼 재기하여 인생을 아름답게 마감하는 사람도 있고 재기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보면 “재기를 꿈꾸는 부도 기업인들의 모임”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노숙자에서 재기하여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노숙자에서 유망 벤처 기업인”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7년여의 수배와 노숙자 생활을 딛고 유망 벤처기업인으로 일어선 `더웨이'의 김해일 대표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노숙자에서 연봉 1억 원을 버는 판매 왕이 된 이정훈 씨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97년 외환위기로 대리점 부도가 나고 노숙으로 떠돌다 대리운전 기사 등을 하면서 '희망의 끈'을 꽉 쥐고 일어났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비상하지만 마지막은 추락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 추락으로 다시 비상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버린 사람들을 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이라는 사람입니다. 졸지에 왕이 된 사람입니다. 신앙적으로도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도 잘 생겼습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인생은 자식과 함께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유다라는 사람입니다. 제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재정을 맡았습니다. 처음에는 비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추락하여 예수님을 인신매매하고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사비라 부부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신앙생활 잘 하던 부부였습니다. 초대 교회 멤버가 되어 헌금하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욕심 때문에 성령을 속이다가 아내도 죽고 남편도 죽는 일을 당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추락할 수는 있습니다. 높이 오른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자녀교육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결혼생활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추락의 현장에서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비상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으로 영광을 드러내며 인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세상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다 일어나 다시 달리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인생의 끝이 비참해진다면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 만나기 부끄럽겠습니까? 다윗도 한 때 간음하고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상합니다. 베드로도 한 때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며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지도자로 비상하였습니다. 야곱도 사기꾼으로 한 때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노년에 비상하여 12 지파의 아버지로 비상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한 때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상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한 때 살인하고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 생활을 거치며 비상하여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삼손도 이성에 약하여 추락하여 블레셋의 노예가 되고, 머리를 깎기 우고, 눈이 뽑히고, 맷돌을 돌리는 인생으로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개를 달고 비상하며 인생을 마감하는 것을 봅니다. 때로 우리가 추락하지만 추락한 현장에서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1. 추락을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께 나아와 능력으로 날개를 달아야 비상합니다.


삼손의 인생은 비상하는 인생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특별하게 태어났습니다. 당시 민족의 지도자인 사사가 된 사람입니다. 힘이 장사였습니다. 누구도 그의 힘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인에게 약했습니다. 약점을 관리하지 못해 추락했습니다.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져 블레셋 사람들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삼손을 포로로 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눈을 빼어 버졌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약한 눈이었습니다.

놋줄에 매여 맷돌을 돌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민족 지도자 삼손이 하루아침에 추락하여 장애인이 되고 노예가 되어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고 민족의 수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삼손을 조롱하는가를 보십시오. 25절 이하를 보십시오. 블레셋 방백들이 다 모였습니다. 남녀가 3천명쯤 되었습니다. 삼손을 조롱하며 승리를 자축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광경입니까?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어야 할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짓밟히는 것입니다. 조롱당하는 것입니다.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입니다. 추락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이 때 추락한 인생에서 어떻게 마지막 삼손이 비상합니까?


삿6:28절을 열어봅시다.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추락의 현장에서 외면하시지 않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추락의 현장에서 비상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본적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 회복력(캐런 레이비치, 앤드류 샤테 지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들은 15년 가까이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회복력이 개인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연구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행복과 성공에 꼭 필요한 것이 회복력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역경에 효과적으로 끈질기게 대응하는 능력, 역경을 극복하는 힘, 내면의 심리적 근육을 단련시켜주는 도구가 바로 회복력이라는 것입니다.

연구를 해 보니까 회복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유전도, 아동기의 경험도, 기회 부족도, 경제적 문제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일차적인 장애물은 인지 양식(Cognitive style)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고 양식(Thinking style)입니다. 개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어린 시절부터 겪은 사건들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개인의 사고 양식은 자기의 관점에 색을 칠하고 편견을 부여해서 자기 파멸적인 행동 패턴을 확립하게 만들더라는 것입니다.


“ABC 확인하기”를 소개합니다. 예를 소개합니다. 회사에서 지친 몸으로 집에 왔는데, 이번에도 배우자는 당신보다 먼저 퇴근하고도 저녁을 차릴 생각조차 안 하고 있습니다. 화가 납니다. 왜 화가 납니까? 배우자가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우자의 그러한 행위가 당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로 해석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배우자의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당신의 '해석'이 분노를 촉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다보면 크고 작은 역경을 겪는데 역경(Adversity)은 개인의 반응을 촉발하는 사건입니다. 실직, 이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마감 시한 위반, 친구와의 말다툼, 지각 등의 역경은 감정적 결과와 행동적 결과(Consequence, ABC 모형의 'C')에 직결됩니다. 즉, 그 사건에 응해서 느끼는 감정과 하는 행동으로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C'는 분노 또는 실망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에 대한 감정과 행동은 바로 나의 믿음(Belief, ABC 모형의 'B') 때문에 그렇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이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당신 생각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것입니다. “사고방식을 바꾸어라. 인생이 영원히 바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사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추락한 인생이 되었습니까?

만용을 부린 것입니다. 자기의 지위, 자기의 힘, 자기의 인기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만용을 부립니까? 힘을 얼마나 남용을 합니까? 그러나 삼손의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머리카락에 있습니까? 그의 출신 성분에 있습니까? 자신의 능력에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버리면 시체에 불과합니다.


삿16:20절 열어봅시다

우리의 능력이라는 것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종속적인 것입니다.

집 나간 탕자처럼 추락의 현장에서 마음의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집에 가면 먹을 것이 많고 아버지께 가면 회복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중요합니다.

다윗이 비상한 것은 다윗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물매와 돌을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니까 그것이 총알처럼 쓰임받는 것입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 추락하였지만 총리가 된 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창 39:2)"라고 말씀합니다(창39:3,23)"

모세가 지팡이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것은 모세의 힘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락의 현장에서 비상하는 날개를 달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다시 한 번 비상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삼손은 지금 비참하게 추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힘으로 된 것처럼 착각하며 살았던 삼손이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버리니까 볼 수 있는 눈이 빠져 버렸습니다. 은혜를 상실하면 눈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미래의 환상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보지 못합니다. 놋줄로 묶임을 당하였습니다.

세상 줄의 노예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연자 맷돌을 돌립니다. 소나 나귀가 돌리는 돌을 돌려야 하는 짐승처럼 전락해 버렸습니다.


세속의 쳇바퀴 돌듯 먹고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는 동물적 삶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노리개 감이 되어 버립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맛 잃은 소금이 되어 거리에 밟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문제가 심각하며 심각할수록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비상할 수 있는 날개를 하나님께서 달아 줍니다.


외아들이 죽은 나인성 과부도, 38년 된 병자도, 12년 동안 질병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 여인도 예수님께 나아가 추락한 이생 비상하였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묶여 있어도 노예가 되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마지막에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2. 추락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마지막 남은 것(기도)으로 날개를 달고 비상해야 합니다.

사람이 추락하면 과거에 집착하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을 합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다 적들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한 사람도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비상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삼손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도 없는 사람입니다.


삿16:26절을 보십시다.

소년이 있습니다. 볼 수 없는 눈을 대신해 줄 소년입니다. 기둥을 찾게 합니다.

다 나를 배신하는 것 같고 다 나를 떠나는 것 같지만 나를 돕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재기를 보십시오. 간신들의 모함으로 옥중에서 온갖 수모 끝에 겨우 목숨만을 건진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로 부임한 현지는 실로 참담하였습니다.

왜군의 재침으로 온 산하가 쑥대밭이 된데다 수군들은 거의 전멸되고 살아남은 병사들도 지리멸렬이었습니다. 통제사인 원균은 후퇴하다가 전사했고 수군사령부인 한산도는 이미 왜군의 손에 넘어가 있었습니다.


왜군의 배는 모두 330척이었습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 “나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상유12척)"이라고 합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이순신은 오히려 이만큼의 배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를 되뇌며 비상한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 하나님께 붙들리면 비상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물맷돌과 모세의 지팡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비상할 수 있는 신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에게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삼손은 다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볼 수도 없습니다. 그의 힘도 다 결박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에게 입술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입술로 무엇을 합니까?

예전처럼 떠벌리지 않습니다. 자기 힘자랑하지 않습니다.

말씀 가지고 놀지 않습니다. 그 입술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삿16:28절을 보면"부르짖어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소서"


그 때 그 신전이 무너집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이 감기게 됩니다. 조롱하는 사람들의 입술이 멈추게 됩니다. 수치가 살아집니다. 조롱의 눈길이 살아집니다. 살았을 때 한 일보다 마지막 죽음의 현장에서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삼손의 마지막 비상은 기도의 날개를 달고 일어났습니다. 기도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에서 기도하여 비상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삼손의 부모는 기도의 부모입니다. 기도로 아이를 낳았습니다(13:8). 기도로 기른 아들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위기를 당할 때 딱 2번 기도한 장면이 나옵니다. 잘 되니까 기도를 잃은 것입니다.

기도로 깨어있어야 유혹으로부터 이길 수 있고 교만의 늪에 빠지지 않는데 그 기도를 잃은 것입니다. 기도를 정비용으로 쓰지 않고 수리용으로만 사용한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때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기의 베드로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세 번이나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잠만 잡니다. 결국 시험에 들고 부인하고 저주합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을 받고 베드로는 변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로 비상하는 인생이 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기도로 감옥에서 나오게 됩니다.

사도행전 3장 1절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의 변화된 모습이 무엇이었습니까 제 구시 기도 시간이라는 규칙적인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이 그 이후부터는 달라졌습니다. 비상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총리로서 그 바쁜 중에도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비상하는 인생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조지 휫필드는 밤 10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만약에 10시 넘어서 어떤 사람이 찾아오면 꼭 이렇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모든 선한 사람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왜 오셨습니까?'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나는 남보다 두 시간 먼저 일어나서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한다!'라고 했습니다. 추락하였습니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병이어입니까? 네 명의 친구입니까? 그것을 가지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나가 추락의 현장에서 기도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추락의 현장에서 기도의 날개를 달고 비상하였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마7:7)”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우리가 추락할 때 하나님께 나아가 변화(회개)의 날개를 달고 비상해야 합니다.

삼손이 추락하고 몰락한 원인은 무엇입니까? 추락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추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서히 넘어졌습니다. 그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고 추락하였습니다. 그를 추락하게 한 근본적인 것은 죄입니다. 죄는 승승장구하여 항해하는 인생에 구멍을 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삼손은 무력에 의해 넘어진 것이 아닙니다. 죄의 유혹에 넘어진 것입니다. 추락하는 인생들을 보면 지극히 작은 것에 넘어집니다. 사탄은 우리를 추락시킬 때 죄를 가지고 넘어뜨리는데 죄같이 않게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삼손의 약점입니다. 작은 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나의 약점을 파고드는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삼손은 이성에게 약했습니다. 젊은 때 딤나에서 실수를 하였습니다. 한 기생(매춘부)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삼손은 사사입니다. 가사는 삼손의 주요 활동지인 소라에서(13:2) 약 60Km가량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자기 동네에서 바람피우지 않고 사람들이 모르는 먼 나라 여행가서 바람피우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 달려드는 들리라에게 넘어집니다(삿16:4; 15; 딤나 여인 삿14:16). 셰익스피어는 유혹을 가리켜 '내 팔꿈치에 있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유혹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술에 약한 것이 약점이고, 에서는 배고픈 것 못 참는 것이 약점입니다. 유다는 돈에 약했습니다. 모세는 분노를 의분을 참지 못하는 것이 약점입니다. 요셉은 경망한 것이 약점입니다. 베드로는 겁이 많은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바울은 건강이 약한 것이 약점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물질 욕심이 약점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성에게 약했습니다. 이것들이 인생을 추락하게 합니다.


비상하려면 이 약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변화하고 다시는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삼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개하였는지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를 보면 회개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라는 말을 볼 때 과거를 뉘우치는 흔적을 보게 됩니다. 이제야 자신의 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그는 깨닫고 그의 비참한 추락이 자신의 잘못인 것을 느끼며 '오 주여, 지나 온 날을 후회합니다. 회개합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런 식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지나온 날 사명을 잃었습니다. 인생을 낭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은혜를 낭비해 버렸습니다. 기회를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추락한 곳에서 다시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추락의 현장에서 비상의 날개를 달아줍니다. 사울도 추락하였고 다윗도 추락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다른 점은 사울에게는 회개가 없었도 다윗은 회개하고 비상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회개하며 양털같이 희어지고 다 용서해 주십니다. 죄악을 기억치도 않으십니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955년부터 에미 워너와 루쓰 스미쓰 교수팀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하기 그지없는 하와이의 어느 한 섬인 카우아이에서 그 해에 태어난 아이 833명 모두를 30년 넘게 추적 조사를 했습니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했고, 대부분 가족 구성원들이 가정불화, 이혼, 알코올 중독, 정신질환 등으로 시달렸답니다. 3분의 2 가량의 아이들이 이러한 열악한 환경의 희생자가 되어 일찍부터 학습부진에 시달렸으며, 약물중독에 빠지거나 정신질환을 앓았고, 범죄에 빠지거나 사회부적응자가 되었답니다.


18세가 되었을 때에는 많은 아이들이 전과자나 미혼모가 되었답니다. 심리학자 에미 워너 교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201명을 추려 성장 과정을 분석했답니다. '고위험군'이라고 불린 아이들 중 3분의 1인 72명이 밝고 건강한 청년으로 문제없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속성이 있었는데 바로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 있었다고 합니다. 워너 교수는 그것을 '회복탄력성'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열악한 가정환경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정신질환의 요인 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성장하여 성실하고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회복탄력성은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이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능력입니다. 물체 마다 탄성이 다르듯이 사람도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삶의 탄력성이 있어다는 것입니다. 이 회복탄력성을 세 가지 요소로 말합니다. 자기조절능력(감정조절력 + 충동통제력 + 원인분석력), 대인관계능력(소통능력 + 공감능력 + 자아확장력), 긍정성(자아낙관성 +생활만족도 + 감사하기)이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긍정성입니다.

긍정성을 강화하면 자기조절능력과 대인관계능력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성을 습관화하면 누구나 회복탄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늘 실수 할 수 있고 그 실수로 나락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늘 비상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회개하며 다시 살아납니다. 회개하며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회개하면 인간관계가 변합니다. 회개하면 부흥합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의 기회를 상실하고 결국 비상하지 못하고 추락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성만찬을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요한복음 13장 21절)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하고 비상하였습니다. 사울은 회개하지 못하고 추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고 비상하였습니다.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 회개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것이 근본적인 죄입니다. 믿음이 힘이 있기 때문에 사탄은 계속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을 보니까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이긴다고 합니다. 삼손은 믿음을 주는 사람과 사귄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여인과 사귀었습니다. 믿음이 없어지니까 반항하게 됩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이방여인과 결혼합니다.(14장)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비상하는 하나님의 일을 가장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여인의 말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퍼즐 맞추기 놀이로 취급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 앞에 상대화시켜 버립니다. 하나님께 내어 주어야 할 마음을 드릴라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한 번도 제대로 절제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나쁜 환경에 자신을 던져 버렸습니다. 받은 바 은사를 믿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서 사용해 버렸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추락한 인생에서 비상하려면 회개하였으면 됩니다. 그러나 회개의 기회를 상실해 버립니다. 아간 추락한 인생에서 비상하려면 회개했으면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추락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회개하고 비상하였습니다.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오니까 비상하는 인생이 됩니다.


회개하면 기도 응답을 받고 (대하7:14) 회개하면 죄 용서를 받고(사55:7,렘3:12, 31:9) 회개하면 위로를 받고(마5:4, 사57:15, 눅15:7)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고(행2:38) 회개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시51:17) 회개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고(시51:12,13) 회개하면 새로워지고(겔18:31) 회개하면 부흥이 이루어집니다.(욥22:23-29)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땅을 고칠찌라(대하7:14)”


추락하였지만 마지막 비상하려면...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날개를 달아야 비상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의 날개를 달고 비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의 날개를 달고 비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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