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kc Leadership Academy'15

인 사 말

Nyskc Leadership Academy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GTS에서의 일정들이 벌써 몇 년이나 되었는지 이제 우리는 서로에 대하여 익숙하고 만나면 반갑고 또 주님 안에 하나임을 확인 할 수 있게까지 될 만큼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들의 모임은 이미 NYSKC 신앙의 무장되어 있고 또 그동안 ‘예배는 회복이다’ 라는 예배회복에 미약하나마 교회에서 그리고 나의 삶에서 헌신하여 달려왔으며 또한 매년 컨퍼런스와 아카데미를 통해서 신앙의 성숙을 가지며 교회에서 헌신자로 세움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증거가 됩니다

헌신자로 세움을 입은 여러분들이 교회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충성하는 것도 아니요 헌신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신앙이 어렸을 때 그 형제자매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부족함이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는 충성이 무엇인지 헌신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처럼 부족한 가운데 교회의 지체로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우리의 몸도 약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감추어진 부분이 있고 잘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충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모든 부분들이 협력하여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헌신과 충성은 이웃들에게 비교하여 그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말씀 중심 곧 성경말씀이 기준이 되어 충성과 헌신하는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80/20이라는 말은 경영학에서 쓰는 말이지만 상위 20%에 해당하는 사람이 Leadership를 가진 사람이며 이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이 움직여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진정한 Leadership를 가지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외 누가 세상을 움직이겠습니까

그러므로 Biblical Leadership를 정의한다면 만유를 움직이시는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사람이 진정한 Leadership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 전적으로 의지하고 붙어 있는 사람이 Leadership를 가졌으니 세상이 말하는 80/20이라는 수치는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Nyskc Leadership Academy는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한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젊은이들이 올바른 뜻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면 압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살아 있으면 미래가 있다고 말하고 청년들이 죽어 있다면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말합니다

어는 정도 국가 적으로 볼 때 맞는 것도 있지만 교회는 조금 다릅니다

꼭 젊은이만 있으면 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보다 하나님께 얼마나 자기를 드리느냐 하는 즉 희생적인 삶 충성과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느냐가 국가의 흥만성쇠를 가늠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 받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충성한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히3: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충성한 것이 모세처럼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삶이란 40세까지는 애굽에서 왕자처럼 살며 많은 지식과 견문을 넓혀 세상의 학문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삶보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왕자의 삶을 포기하고 미디얀 광야에서 양떼를 다스리며 40년의 세월을 보내며 광야의 훈련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훈련 받았습니다 그리고 40년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기가지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삶을 살면서 80세가 돼서야 주님에게 쓰임을 받아 모세 한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백성이 도리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문제이겠습니까 꼭 젊은이들만이 미래이겠습니까 어린아이 젊은이 늙은이 상관없이 하나님을 섬기며 의지하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젊은이요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처럼 된 이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교회와 나라와 가정의 흥망성쇄가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엘서를 인용한 사도행전2:17“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MS, MS2, MAS 들은 근시안적으로 볼 때 Nyskc Movement에서 있어서 구별된 사람들이요 하나님께 희생의 제물로 드려진 헌신자들이요 Nyskc World Mission에 있어서는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예배회복운동을 하면서 이루어진 열매들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크게 보면 로마서12:1-2절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을 받들어 살아가고자 하는 헌신자들로 교회와 나라와 가정의 희망이요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나라와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헌신자들로 인하여 미래를 보장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같이 세상과 구별된 사람 곧 다니엘 선지자가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나이에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 나라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며 나이가 많이 들어 죽기까지 구별된 삶을 살며 하나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처한 주위 환경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온 나라가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세력이 급격히 약하여져 북 이스라엘은 이미 망하였고 남 유대도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하여 왕과 신하와 상당수의 백성들이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맏이합니다. 이제 다니엘도 그의 세 친구와 함께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새로운 길이기도 하였습니다.

바벨론의 왕은 포로로 잡혀 온 젊은 중에 몇 명을 골라 바벨론의 문화와 궁중예법, 지도자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들을 왕궁에 두어 이스라엘나라를 바벨론에 예속화시키는 정책을 쓴 것입니다. 거기에 다니엘과 세 친구도 뽑혔습니다.

비록 나라는 망하였지만 개인적으로 그들은 얼마든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출세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문화가 발달된 곳입니다. 엄청난 부유함도 누리는 나라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궁중에 살며 새로운 귀족 계층이 된다는 것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개인에게 주어진 출세의 기회를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방 신을 섬기는 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우상에게 절하고 향락에 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곳입니다. 마음 한 번 잘못 먹으면 우상숭배와 함께 세속의 향락으로 끝없이 떨어질 수 있는 엄청난 위기에 다니엘은 직면하여 있는 것입니다.

현대화되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세상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와 향락의 물결이 도도하게 흘러 젊은이들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디면 엄청난 죄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세상입니다

다니엘에게는 한 가지 삶의 원칙이 있었습니다.

다니엘 1: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다니엘의 삶의 원칙이요 기준입니다.

삶의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찬송을 부르며 경건한 모습을 하지마는 세상에 나가면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이기적이고 뇌물을 좋아하며 쾌락을 즐기기를 하나님보다 더 즐기게 됩니다.

MS, MS2, MAS들은 삶의 원칙과 기준이 분명하여야합니다. 그 기준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정하여진 기준이라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구별된 삶을 살기로 뜻을 정하여 살았습니다

다니엘은 포로 된 자로서 왕의 진미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궁중전골, 갈비, 싱싱한 회는 물론, 상어지느러미, 제비집 등 별별 희한한 음식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자신을 교육시키는 환관장에게 고기로 된 음식은 아무 것도 먹지 아니하고 채소만 먹겠다고 합니다.

혹시라도 고기 중에 우상에게 드려졌던 음식이나 율법에 금한 고기가 있을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마시는 포도주는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러나 혹시라도 우상에게 드려졌던 것일 수도 있고 경건 생활에 해롭다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고기나 포도주를 먹지 않았으니까 나도 고기나 포도주를 먹고 마시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신의 몸을 더럽혀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기란 그렇게 쉽지 아니합니다.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인간의 본능적 유혹도 물리치기 어려웠을 것이고 왕이 하사한 음식을 먹지 아니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러한 유혹과 육체의 안일보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한 생활을 하라 곧 구별된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원칙이었고 여러분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환관장은 다니엘의 제안에 대하여 매우 걱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혈색이 좋지 못하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대노하였을 것입니다. "이놈의 자식 매우 건방지구나! 포로인 주제에 반항을 해! 그것도 황제의 성은을 거절하겠다고? 여봐라! 이 놈을 당장 옥에 가두어라!"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 1:9절에 보니 하나님이 다니엘 때문에 환관장으로 하여금 은혜와 긍휼로 다니엘을 대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을 따르는 주의 백성을 아주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들의 모습이 초췌하면 왕이 내 머리를 그냥 두지 않을 터인데 어떻게 하나?"

그 때 다니엘은 그에게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열흘만 시험하여 얼굴을 테스트해 보고 마음대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채식의 우월성을 깨닫고 이러한 제안을 한 것이 전혀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줄 분명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후에 사자 굴에 던짐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구해 주실 줄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헌신자들 중에도 자기의 지식과 능력과 힘을 과신하여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주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내 주먹을 믿으라고 하나님을 조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장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이러한 자는 반드시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윗과 같이 사무엘과 같이 다니엘과 같이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앞으로 전진하는 헌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경건하게 기도하는 습관을 이용하여 적들이 다니엘을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다니엘은 물론 적들의 계략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여전히 기도를 쉬지 아니하였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짐을 받게 됩니다.

다니엘에게 있어서 기도는 이 세상의 어떠한 일보다 중요한 일이었고 생명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무슨 기도를 드렸을까요? 아마도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일 것입니다. 결국 그러한 끊임없는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스라엘 나라가 회복된 것입니다. 헌신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의 믿음을 위하여 교회와 나라와 가정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반드시 회복되어 일어서게 될 것이고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 회중교회 파커 목사님은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하였는데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말하기를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줍니다. 매일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서는 주의 정원에 피어있는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뜻을 정하여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기특한 다니엘과 또 세 친구에게 지식과 명철을 더하게 하시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이상과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단 1: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뜻을 정하여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뜻을 정하여 살아가는 사람 곧 하나님게 구별되어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군사로 일꾼과 종으로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Nyskc Leadership Academy’15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 헌신된 백성들만 모여서 예수님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헌신의 훈련하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입술에서 찬양하는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예배는 회복이다” “예배회복” 이라는 단어는 Nyskc Theme처럼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는 것인데 그 중에 가장 이슈되는 단어는 ‘예배’(Worship)입니다

예배는 사랑한다 로부터 시작하여 드리다 바치다 구별되다 헌신되다 희생 정말 많은 단어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신자라는 말에 앞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이요 이들은 생명을 거져 얻었으니 하나님에게는 크게 빚진 자이므로 채무자요 은혜를 갚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크다고 하는 사람들이 헌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넘치는 사람들이 헌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먼저 헌신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 주셨으며 생명을 주어 살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놀라운 사랑에 감동 감격하여 감사하여 주님 앞에 헌신할 것을 다짐한 사람입니다

구약적으로 보면 불순종의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에게 예배를 주어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여셨다면 신약적으로 보면 우리를 살려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영생을 얻었으니 감사해서 헌신하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 우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Leadership Academy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우리에게 주신 시간이 아름답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시간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성령에 충만함으로 가득찬 Academy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교수님들의 강의가 여러분에게 세상과 구별된 헌신자의 삶에 더욱 힘있게 하리라 믿습니다 이번 Academy를 통해서 섬기는 교회와 가정에 더욱 충성하는 일꾼이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예배가 회복되는 시간이요 또 예배회복운동에 한 지체로서 그 역할을 함에 있어 부족됨이 없는 구별된 충성꾼이 되어 주시길 간절히 소원하여 인사를 드립니다

May 19 2015

NWM 대표회장 최고센목사

Theology of Leadership

Ⅰ. Serve in leadership

1.섬기는 리더십

리더십이란 무엇이며, 누가 리더인가? 리더의 의미를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며, 그들의 행동과 가치관,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다면 모든 크리스천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위에서 요구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멕그레고 번즈는 “변화를 가져오는 리더십은 리더와 따르는 자 모두의 비전과 가치관, 포부를 새로운 기대치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관계”라고 저서인『리더십』에서 주장하고 있다. 현대의 실업철학자인 피터 코스텐 바움에 의하면 그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즉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격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에 해답은 다음의 세 가지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음으로서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얻은 자라는 이해에서만 찾아낼 수 있다.

둘째, 나는 내일 여기에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오늘의 두려움과 걱정들이 우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진리 앞에 재조명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셋째, 나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의 존재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며, 그분이 창조하신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는 이러한 정체성에서 안정감과 의미를 갖게 되고, 여기에서 인격자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자로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 곧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이다.

리더십의 근원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근본적인 원리에 근거할 때 그분과의 관계에 우리 자신을 투자하는 길은 고독(홀로 있는 시간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연구(말씀을 묵상하는 것), 예배(개인적 예배와 함께 드리는 예배), 공동체(가족, 친구나 소그룹에 이르기까지 삶의 부분을 균형 잡는 시간), 사역(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나누며, 맡겨진 은사를 사용함으로 변화를 가져오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신약성서 가운데 유다서에 기록되어 있는 리더십의 귀중한 부분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다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리더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쏟아 부은 ‘사랑의 일관성’을 리더들이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리더십은 평강(shalom)의 관계, 즉 인도받는 자들의 온전한 복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는 관계라고 강조한다.

유다는 헤세드(Hesed)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리더십의 심오한 측면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늘 실패함으로 언약관계에서 우리의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인 우리에게 자신을 위탁하신 긍휼과 신실하심을 말하며, 이 긍휼이 바로 위탁한 바를 행하는 섬기는 리더십이 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다른 사람의 미래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 다른 사람의 미래에 변화가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도 그렇게 하는 것, 그가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음을 알고도 그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이는 그에게 변화할 공간을 주고, 변화의 지점에 있는 그에게까지 위탁하는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의 원리

섬기는 리더십은 ‘지도를 받는 이들의 성장과 공동체가 공유하는 사명의 달성’을 위한다. 또한 섬기는 리더십은 비전에 관한 것이다. 이는 따르는 이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현재에 힘을 더해 주고, 내일을 향한 강력한 비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 사명이 성취되는 것을 본다.

섬기는 리더십은 인격에서 우러나온다. 사람들은 존경하고 신뢰하는 자의 영향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섬기는 리더십은 책임지는 관계이다. 그리고 리더 역시 공동체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리더십의 기본 원리가 제시된다.

2. 섬기는 리더십의 모델

경영적 원칙 1.

리더십은 따르는 자의 성숙도에 맞게 조정되며 변동이 가능해야 한다.

리더는 관계 속에서 영향을 준다. 리더십은 영향의 관계다. 리더십은 그들이 따르기로 선택함에 달려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리더는 리더십을 형성하려고 노력할 때 영향을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맞추어 모든 리더십을 조정해야 한다.

폴 허시와 케네스 블랑샤드가 개발한 리더십 모델에서 리더들은 따르는 자들의 성숙도에 맞추어 자신들의 리더십 유형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한 단계의 성숙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정문제 혹은 직장에 오는 도중 일어난 일들은 그 사람의 자신감의 정도를 낮출 수 있다. 리더들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변하면 성숙도도 변하며, 리더는 관계를 통한 리더십의 적절한 유형으로 상황에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

리더십이 지향하는 바는 우리가 맡은 모든 사람들의 능력과 자신감을 증가시켜 리더십을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그들을 가장 높은 단계의 성숙도로 올려놓음으로써 특정 부문에서 그들이 리더로서 섬기기를 원한다. 리더십의 성공 여부는 따르는 자들의 성장에 의해 측정된다.

제임스 맥그레고 번즈는 모든 리더십 관계에서는 ‘교환’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번즈는 훌륭한 리더십은 그 과정 안에서 리더와 따르는 자 모두가 성장하는 리더십이라고 주장한다. 변화시키는 리더십은 임무가 완성되는 것을 넘어서서 더 높은 수준의 성숙, 또는 도덕성으로 향상되는 것이며, 리더와 따르는 자의 비전과 가치관, 신념이 ‘변화되고 확대되는 것’이다.

경영적 원칙 2.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고(empower) 성장시키는 전략적 방법

리더십은 사람들을 의존에서 능력의 부여로 옮기는 리더십을 요청한다. 리더들은 능력을 주는 분이 되고, 능력의 부여가 요청된다. 리더는 자신의 지위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고 양육하며, 따르는 자 안에서 보이는 이상의 잠재력을 보고 그 잠재력을 계발하는 데 자신을 위탁한다.

리더는 멘토링(mentoring)과 코칭(coaching)과 팀 형성(team building)을 통하여 따르는 자들의 성장과 발전에 실질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형성은 리더와 따르는 자 사이에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합의와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멘토링’은 상호적인 배움의 관계다. 내 생애에서 나는 일련의 중요한 멘토들을 갖는 축복들을 누려왔다. 풀러 신학교의 사무장이던 글렌 바커는 임종 때까지 12년간 나를 의도적인 멘토링 관계에 끌어들였다. 또 지난 17년간 나는 맥스 디프리와 일종의 멘토링 관계를 가져왔다. 그는 내가 본받고 싶어하는 가치관으로 형성된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이런 지혜로운 멘토들에게 자문을 구할 수 없었다면 어떻게 리더십에 관계된 일에 종사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코칭’은 조직체의 수직적인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며, 리더를 사람들 가운데 둔다. 코칭은 사람들 곁에서 나란히 걸음으로써 사람들을 성숙도 발전 선상에서 위로 이동시킨다.

에밀리 그리핀은 『깊이 생각하는 경영자』에서 리더들은 그들의 손 안에 깨어지기 쉬운 것, 곧 그들이 섬기는 사람들의 희망과 꿈, 생각과 수고를 가지고 있다. 리더들은 이러한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야 하며 권력으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팀 형성’은 똑같은 관계에 대한 두 개의 관점이다. 전 미국 보건교육 및 복지부 장관인 존 가드너는 “현대의 가장 뛰어난 리더들은 자신의 재능과 기술을 보완해 주는 재능과 기술을 가진 자들과 한 팀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리더십과 경영에 관한 문헌에서도 리더십의 팀 접근법으로 코칭, 참여적 경영, 작업 그룹, 팀 프로젝트 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팀 형성에 있어 중요시되는 요소들로 사명과 방법에 대한 주인의식, 공유된 비전과 꿈, 정보의 전달, 편한 관계, 가까이 하기 쉬운 리더십, 신뢰하는 관계(신뢰는 조심스럽게 보살펴야 할 깨어지기 쉬운 선물이다), 취약성(팀 리더들은 자신의 약점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위임(완전한 위임은 사람들을 세워 나간다. 그것은 당신을 신뢰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므로 그들에게 자신감을 준다)이며 팀원들은 조직체의 성과들을 소유해야 한다.

또한 지위의 평등(각 팀원은 자신이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될 것을 기대한다), 실수에 대한 관용(효율적인 리더는 팀이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좋은 팀은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하며, 실패하고 그 실수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이다.

유능한 팀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유능한 리더의 섬김을 통해 결정을 내리도록 책임을 지는 것 또한 필요하다.

3. 비전과 소망

경영적 원칙 1.

계획

계획은 그 조직체의 존재 목적과 사명과 가치관 또는 문화, 전략들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며, 그것은 리더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리더는 조직체가 갖는 목적과 의미와 소망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한다.

경영적 원칙 2.

비전 선언문, 사명 선언문을 작성하라

비전 선언문, 사명 선언문은 조직체의 사명, 가치관, 조직체의 현실, 미래의 시나리오, 조직체의 향후 5년 계획, 구체적인 전략들 및 통합된 목표․목적․행동들, 시간 계획, 책임의 소재와 담당자, 각 개인에 대한 평가, 사명과 가치관으로 다시 돌아와 체크하는 질문을 담고 있어야 한다.

조직체의 사명과 가치관은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인 기록해 놓은 가치 기준을 가르치고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강화시켜 조직체가 공유하는 가치관이 되도록 하여 그 문화 속에 깊이 새겨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조직체의 현실은 연구와 조사를 필요로 하며 종종 상황적 분석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때는 계획과정 중 조직체의 모든 분야의 장점과 단점, 기회와 도전을 평가하는 시간이다. 또한 고객과 경쟁자들을 돌아보고 고객의 영향력과 그들의 우리에 대한 인식을 살피는 한편, 경쟁자들의 단점과 약점은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경쟁하는가를 살피게 된다.

미래의 시나리오는 주위 환경에 대한 감사와 조직체에 대한 감사를 통해 계획이 현재의 연장이 되지 않도록 하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의 배경을 마련한다. 이 단계에서 시나리오라 부르는 비전의 초안이 만들어지고 검토된다. 이 시점에서 리더십 팀은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목표와 감사 결과 대두된 문제와 재정적, 물질적 계획이라는 현실 사이에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앞으로 5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개발하고 싶은 전략들과 함께 현실적인 예산을 책정한다.

5년 동안의 계획을 세운 결과로서 실천하기 위한 필요한 전략과 통합된 목표, 목적, 행동이 선정된다. 이 전략들은 매년 주요 목적에 맞게 규정되어야 한다.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위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계획은 바로 이 점에서 실패한다. 개개의 목적이 책임지워져 임무로 맡겨질 때까지 실제 적용되는 계획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잘하고 있는가? 먼저 전략의 진행과 효율성에 관한 정보가 리더십 팀에게 보고된다. 그리고 이 전략들을 사용함에 있어서 현재의 위치와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을 점검한다. 마지막 질문은 최종적이며 전략적이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 사명을 이행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행하고 있는가?

사명 선언문은 조직체의 모든 결정들을 검토하고 평가하는데 사용되는 마지막 목표, 또는 기준이 된다. 사명 선언문은 일에 대한 가치와 목적을 주고, 그들의 활동에 방향을 제시하며, 소속감을 준다. 또한 조직체가 성숙해가면서 조직체 문화의 중심이 되며, 조직체 밖의 사람들에게 의사를 전달한다. 『조직체 문화와 리더십』의 저자인 에드가 쉐인은 ‘사명 선언문’은 조직체의 최종적인 생존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한다.

좋은 사명 선언문은 간결하고 읽기 쉬우며, 이해하기 쉽고 한 쪽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정기적으로 검토되고 적절한 때 수정될 필요가 있다.

경영적 원칙 3.

시나리오

좋은 시나리오는 ‘사명과 가치관’을 분명히 나타내야 하며,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묘사해야 한다. 시나리오는 10년 내지 15년 앞을 내다보아야 하는 한편 ‘현재’에 닻을 내려야 한다. 또한 시나리오에는 ‘꿈의 측면’이 있어야 한다. 또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결과도 포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집 없는 사람들을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당신의 조직체나 공동체가 속한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지를 이야기하라.

시나리오는 또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언제나 토론과 수정이 가능해야 한다. 그것은 당신과 그것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 모두 열정이 형성되어야 한다

4. 가치관을 통한 영향

경영적 원칙 1.

인격, 문화, 그리고 가치관

리더십은 리더 자신의 인격을 통하여 따르는 자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의 수준으로 문화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전장에서 리더의 첫 번째 책임으로 비전을 분명히 표현하고 조직체의 사명과 가치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면 리더십의 두 번째 책임은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다.

리더십에 관한 문헌에서 공동체의 성품과 그 공동체에 속한 개개인의 인격을 합쳐 조직체의 문화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조직체에서 리더십이 제시하는 가치관보다 그 조직의 문화에 따라 살려는 경향이 있다. 리더는 의도적으로 사명에 제시된 가치관을 가지고 공동체의 문화를 강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지난 10년에 걸쳐 리더십에 관한 문헌에서는 조직체의 문화와 조직체의 가치체계의 중요성이 점차 거론되어 왔다.

MIT대학에 소속된 슬로운 경영학교의 저명한 에드가 쉐인 교수는 리더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는 문화를 창조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제안한다. 쉐인은 조직체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는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기본적인 가설들과 신념’으로 그 조직체에 대한 관점을 정의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미주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일 오전 11시에 모인다. 그 이유는 소젖을 짜는데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이다.

교회 구성원들 중에 소를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문화는 그 조직체의 행동과 결정, 정책과 과정을 결정함으로써 조직체의 모든 일을 지배하는 가치관으로 형성된다.

만일 문화가 우리가 지지하는 바와 일치하지 않은 가치관을 만들어 낸다면 리더는 가치관이 그 문화에 새겨지고 지속될 때까지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강화해야 한다. 리더들에게는 조직체의 문화와 가치 체계를 검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전략은 문화에 의해 구속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효율적인 조직체의 삶과 생기 넘치는 크리스천 공동체의 삶 둘 모두 합친 것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고 보고 있다.

경영적 원칙 2.

리더가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고 강화할 수 있는 방법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에 반영되고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지 적어보아야 한다. 조직체의 가치관 문서는 리더의 초안과 구체화 작업, 그리고 공동체의 면밀한 조사를 통과한 후에야 제대로 정비된다. 그리고 이 가치관 문서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적인 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늘 열려 있어야 하며, 리더의 지속적인 위탁과 책임감 있는 헌신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

문화를 창조하고 강화하는 것은 장기간에 걸친 과정으로 여기에는 리더십의 장기적인 헌신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리더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람들과 동행하며, 새로운 문화를 본으로 보여주며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5. 관계를 통한 영향

사람들에게 동기와 능력을 주는 데 관해 유다서의 생생한 묘사는 힘과 목적, 그리고 관계를 포착한다. 자칭 리더들은 거친 물결처럼 물을 많이 튀게 했으나 아무 곳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그 리더십에만 관심이 있었고, 막상 섬겨야 하는 사람들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반면 진정한 리더십은 의존의 관계다. 빌레몬서에는 바울이 가진 비전을 두기고가 이행해 간다.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며, 함께 섬기는 자이며, 신뢰할만한 전달자요, 사람들을 격려하는 자인 두기고는 골로새 교회의 드라마에서 매우 중대한 인물이다. 바울은 그가 성취하기 원하는 그 일을 두기고가 성취하기를 바라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려면 경영에 관한 책들과 정기 간행물들은 패러다임의 변화와 새 정보시대에 관해 쓰고 있다. 이것은 패러다임의 변화 중 하나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한 회사나 한 직책에 머물지 않는다. 또한 조직체는 주위 환경과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변화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조직체의 변화하는 상황에서 계속 기여하려면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이것은 리더십에 관한 새로운 도전이다. 리더십은 조직체의 삶에서 계속 그들을 새롭게 하여 조직체의 삶에 다시 들어가게 해야 한다.

경영적 원칙 1.

권한을 위임할 동역자

유급, 무급에 관계없이 리더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일하는 자원하는 마음과 정신을 가진 구성원들을 세워야 한다. 모든 자원하는 관계에서는 교환이 일어난다. 그들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일이 당연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유급이나 무급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투자한 시간에 대한 보상을 원한다. 이것은 조직체의 관리에 있어 기본적인 원칙이다.

경영적 원칙 2.

유급 또는 무급 자원자를 뽑기 위한 인적자원 계발 모델은 어떤 것인가

자원자를 모집할 때는 몇 가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가?’, ‘그것을 성취하려면 어떤 종류의 직원을 둘 필요가 있는가?’, 사명을 구체적으로 성취하기 위해 우리 조직체는 어떤 부문의 재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자원자들의 고용과정에서 “당신은 왜 여기서 일하기를 원합니까?”라고 묻는데 이것은 이 경우에 적합한 매우 긴요한 질문이다.

일단 자원자가 조직체의 새 멤버로 고용되고, 새 직원이 그 조직체에 흡입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리더십 관계가 크게 부상한다. 이때 좋은 지침서는 자원자들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는 데 귀중한 도구로 쓰인다.

좋은 지침서 및 직무내용 설명서의 요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대하는 직무의 내용과 업무 수행기준을 명확히 규정하라(Clarify expectation).

둘째, 그들이 해야 하는 업무의 목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라(Agree on objectives).

셋째, 판단과 비평이 아니라 계발과 성장을 위해 그들의 성장을 검토 평가하라(Review progress).

넷째, 더 나은 임무수행을 위해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라(Equip for performance and growth).

직무내용 설명서 또는 지침서는 그 직책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요구조건에 대해 문서로 작성된 기록으로 구체적이고 간결해야 한다. 일의 질에 대한 기대나 어떤 수준의 임무수행이 기대되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이것 또한 분명히 설명되어야 한다. 동시에 리더는 자원자의 요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더는 팀원들의 성공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리더는 자원자가 그 사명에 기여하도록 목적의 설정과 검토과정을 통해서 조직원이 사명에 대한 공헌을 통해 계속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조직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들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조직체의 최소한의 투자로서 ‘임무수행 검토’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일 년에 한번 하는 평가는 충분치 않다.

조직원이 그 일에 대해 여전히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동안 평가가 주어질 필요가 있다. 베스트셀러였던 『1분 매니저』는 계속적인 검토와 평가를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그 제안된 방법이 지니고 있는 조금은 기계적인 면에 대해 『59초 고용인 : 당신의 1분 부장보다 1초 앞서 있는 방법!』이라는 또 다른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나는 위 저자의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계발의 마지막 원칙은 조직원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훈련과 성인교육을 제공할 것을 강조한다. 임무수행 검토의 목적이 조직원으로 하여금 더 큰 책임을 감당하도록 준비하고 계발하는 것이라면 검토결과 이를 위한 어떤 행동이 있어야 하며, 추가 교육은 그 행동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6. 책임을 통한 영향

경영적 원칙 1.

책임과 취약성

리더는 책임을 지기 때문에 상처 입기 쉬운 취약성을 지닌다.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의 관계에서 사명과 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자기자신을 내어 준다는 일은 리더에게 커다란 도전이며 모험이다.

경영적 원칙 2.

책임과 용서

우리에게 리더십을 맡기시는 하나님의 위탁 뒤에는 우리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비전을 성취하시겠다는 용서의 희망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용서를 바탕으로 따르는 자들은 자신의 리더 역시 연약하다는 것을 헤아리고 용서하며, 리더들 역시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가운데 자신을 용서해야 한다.

나는 리젠트 대학에서 리더십의 책임을 맡았을 때 그 일이 내 능력을 초과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리더십에 맡기신 사명과 공동체에 대한 중대한 책임을 느끼며, 이 절대적인 의존성과 필요로 인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을 섬기고 지혜와 비전과 힘을 얻기 위해 기도할 시간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성경책 앞에 종이와 펜을 두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동안 어떤 착상들이 떠오르면 잠시 중단하고 그것들을 기록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중보기도 가운데 올려드리고 내 자신의 안건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이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의 관점으로 일을 보는 시간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듦으로써 하나님과의 시간을 계획하라. 리더십은 섬김의 관계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그 관계에서 나오는 힘으로 남들을 이끌게 된다. 또한 리더들은 스스로 배움과 성장을 위한 시간을 내야만 한다.

이것은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과 동일하다.

연구하며 배우며, 계속해서 새롭게 되는 것은 리더십에게서 필수적이다. 피곤하면 비전을 유지하기 힘들게 된다.

또한 리더는 사고를 풍부히 하며, 인생에 대한 관점을 넓히기 위해 양육받을 수 있는 조직체 밖에서의 관계들이 필요하다. 리더들에게 올바른 시각과 에너지를 주고, 또한 그들이 무언가를 가져와 조직체와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조직체 밖에서의 위탁과 관계 형성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가족에의 위탁과 친구들과의 관계와 우정을 통해 리더십 관계와 삶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비전과 가치관에 더불어 취약성은 리더십의 결정적인 요소들이다. 오늘날 경영에 관한 문헌에서 용서에 관한 부분은 거의 없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일 수 있다. 리더십은 용서를 필요로 하며, 용서는 리더십을 양육한다. 리더는 자신의 실수를 통해 배움으로써 남들을 이끈다. 그리고 리더는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패하고 배울 기회를 줌으로써 다른 리더들을 계발해 낸다. 리더는 자신의 취약점을 포용하고 조직원들을 용서해야 한다.

지식은 능력이다. 정보 또한 능력이다. 개인적인 성실성과 정직, 그리고 비전의 확신 역시 능력으로 간주된다. 당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갖는 안정성은 주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다. 효율적인 리더는 그들이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능력을 주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리더십은 비전과 가치관, 그리고 섬김을 함께 추구하며 각 사람을 돌보는 적절한 방안들을 소유한다.

섬기는 리더십은 소망과 비전을 제공하며 그 약속한 바를 이룬다. 더불어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며, 변화를 가져온다. 리더는 따르는 자들의 성장과 발전에 투자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이 되도록 능력을 주는 변화시키는 관계다. 훌륭한 리더십은 그 과정 안에서 리더와 따르는 자 모두가 성장한다.

이러한 관계 중심의 리더들은 그 공통사명에 자신이 ‘기여할 책임’을 진다. 리더십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를 두며,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상호의존적인 관계’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안에서 현재 보이는 이상의 잠재력을 보고 그 잠재력을 계발하는데 자신을 위탁하는 것, 섬기는 리더십은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다.

Ⅱ. Biblical Leadership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로서 “어떻게 우리의 리더십을 향상시킬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다양한 리더십 이론과 모델들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교회의 지도자로서 우리가 따라야 할 유일하면서도 완벽한 모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릭 워렌 목사님이 강의 하신 바탕으로, 성경적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1. 자기 이해(Identification)

리더로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강점과 약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강점만 있는, 약점이 전혀 없는 리더는 없을뿐더러, 그런 리더가 되기 위한 노력은 우리에게 짐만 지울 뿐 우리의 성장을 돕지는 못한다. 리더로서 우리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 모두를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좋은 리더는 약점이 없는 리더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리더이다.

예수님께서는 18번이나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그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셨다. 리더로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라.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 하나님에게 있어 당신은 가장 귀중한 존재이자 당신의 시대에 당신의 자리에 꼭 필요해서 세워진 리더임을 잊지 말라.

2. 명확함(Clarification)

리더는 자신이 성취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당신의 삶의 부르심이, 당신을 리더로 세운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삶의 방향은 당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당신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방향을 전환하라. 그 누구도 당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지 않다. 누구도 당신을 희생자로 만들지 못한다. 그 누구도 당신이 지금 섬기고 있는 방식으로 섬기도록 강요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다. 그분은 분명한 목표를 설정한 솔직한 리더였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계셨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계셨을 뿐 아니라, 그의 삶을 무엇을 위해 투자해야 할지도 알고 계셨다. 그분은 분명히 목적이 이끄는 리더셨다.하나님은 당신의 삶과 사역의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소홀히 하거나 다른 무엇을 이보다 중히 여긴다면, 결국 당신의 삶은 낭비되고 말 것이다.

리더란 하나님이 자신을 보내신 목적, 하나님이 자신이 섬기는 조직을 세우신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열정을 가지고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3. 동기(Motivation)

리더는 누구를 기쁘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의지나 바램과는 달리 우리는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반면, 다른 사람에게는 실망을 안겨다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해야 할까?

예수님은 한 사람의 청중을 위해서 사셨다. 그분의 모든 목적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대중의 만족이나 지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다. 이것이 바로 리더로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교훈이다.

당신의 사역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의견에 집중하시기 바란다. 여러분에게 갈채를 보내는 사람들이나 조롱하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곁길로 빠지게만 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사역을 하라.

4. 협력(Collaboration)

동역자와 함께 사역하라. 리더십은 당신 혼자 있을 때 발휘되지 않는다. 항상 팀이라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리더들은 위대한 팀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만약 당신이 팀을 이루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더 이상 리더라고 할 수 없다.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리더십은 영향력이고, 누군가가 당신을 따르고 있는가, 아닌가로 평가된다.

예수님은 팀 사역에 있어서도 모범을 보이셨다 주님은 절대로 혼자서 사역하시지 않으셨다.

마가복음3장14절에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다른 사람들의 협력을 허락 하셨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사역을 위한 비전을 주셨다면, 주님께서는 그 비전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함께 붙여주실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비전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5. 집중(Concentration)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 삶은 중요한 것으로부터 여러분의 관심을 빼앗고 흩어지게 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좋은 것들로 인해서 우리의 주의는 흩뜨려진다. 사탄은 나쁜 일이나 안 좋은 일로 당신의 삶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반드시 좋은 일들로 도전해 올 것이다.

예수님은 집중력의 대가이셨다. 주님께서는 삶을 마치 레이저와 같이 한 곳에 온 힘을 집중하셨다. 자신의 삶이 산란되어지는 것을 거부하셨다.

누가복음 9장 51절에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주님은 굳은 의지로 이 일을 행하셨다. 주님은 중요한 일을 향한 의지를 분산시키는 어떤 것도 허용치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에 엄청난 잠재력을 심어주셨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당신의 삶을 사용하실 것이다.

6. 묵상(Meditation)

하나님께 귀 기울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것을 여러분의 삶의 습관으로 만들라.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기도는 주님의 삶에 있어서 규칙적인 부분이었다. 마가복음 1장 35절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하셨다면, 우리 역시 필요하다. 당신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새롭게 하고 재충전할 묵상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는 홀로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7. 휴식(Relaxation)

재충전할 시간을 가지라. 리더십은 우리의 힘을 고갈시키는 일이다. 이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우리는 단순히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하셨다.

마가복음 6장 31절에 예수님께서는“(예수께서)이르시되 너희(12 제자들)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주 힘든 사역을 했고, 그래서 그들이 지쳐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들은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에서 휴식을 취할 것을 명하셨다. 휴식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도 말씀하신 것이다.

네 번째 계명은 일곱째 날에는 아무 일도 말라고 하셨다. 일주일에 하루 동안은 당신의 사역으로부터 잠시 물러날 필요가 있다.

매일 관심을 돌리고, 매주 물러나고, 매년 버리는 습관을 가지라. 매일 관심을 돌린다는 것은 매일 재미있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다.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취미를 가지라. 매주 물러난다는 것은 매주 휴식을 취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하루의 쉼을 가진다는 의미이듯 매년 버린다는 것은 매년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이다.

당신의 리더십은 당신의 교회가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잠언 11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현명한 리더십 없다면 그 리더십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진리다. 현명한 리더십 없이는, 여러분의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예수님께 리더십을 배우십시오.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인도자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Ⅲ. 레위기 Leviticus

레위기는 모세 오경의 세 번째 책이다. 히브리어 표제는 와이이크라(wayyiqra),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레1:1)이다.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막을 준비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것을 다룬다면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에 대하여 규정하시고 어떻게 죄를 용서하시며, 어떻게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피하도록 도우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뜻이 백성들에게 계시되며, 하나님의 임재(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심)가 어떻게 보장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준다. 레위기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선포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신 민족이 되는지를 설명해준다(풀 하우스).

우리는 레위기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입은 자들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며 섬기며, 십자가 앞에 나아가므로 날마다 정결케 되며, 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또한 레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을 계시하시고 임마누엘이 되심을 가르치며, 새언약의 백성으로서 세상에 선포되며,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된다.

1-7장: 언약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드리는 제사

이 장들에서는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관점에서 희생제사를 다루고 있으며, 예배하는 자가 자신의 희생제물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제사에 대한 규례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에 대한 것이다.

1) 번제는 죄와 관련이 없는 경우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죄와 관련된 경우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되는 것 이다. 이 제사는 그 누구도 대속을 위해 자기를 대신할 동물이 없이는 언제라도 거룩하 신 여호와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계시한다.

예물을 드리는 자는 이 희생제사를 통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이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신 것과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시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신 것을 의미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서 하나님께 헌신된 자들이다.

2) 소제는 짐승의 피흘림이 없이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로서 희생제사에 더하여 바치던 제사이다. 자기의 육신의 소산물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헌납하는 상징이다. 이 제사는 이스라엘의 예배자에게 이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제사는 하나님께서 첫 열매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풍성하신 선하심을 입증하는 증표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안에서 우리를 구속하셔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범사에 감사하는 백성으로 삼으셨다.

3) 화목제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굴복하고 희생제물이 흘린 피에 근거해 그분께 나아간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공동체 식사 가운데) 축하할 수 있다. 화목제는 하 나님과 인간과의 화평과 동시에 인간 대 인간의 화평을 상징하는 제사이기도 하다. 그리 스도는 우리의 화목제물이심을 상징하는 제사이다(요일4:10).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흘리신 피로써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로서 세상에서 복음으로 화목케 한다 (마5:9).

4) 속죄제는 하나님 앞에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으로서 고범죄(고의성을 띤 죄) 가 아닌 것이어야 한다. 고범죄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민15:30). 이 제사는 하나님 과의 관계에서 수직적인 성격을 갖는다.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친교를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영적인 정화제(cleanser) 역할을 한다.

속죄제는 정규적인 죄에 대해 그 죄로 인한 오염과 타락을 씻음으로써 용서를 베풀고, 죄인이 하나님과 충만한 교통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계획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속 죄제로 드림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셔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셨다.

5) 속건제는 성물(聖物)을 사취하거나, 사람에게 적법하게 속한 것을 무단으로 점유하거나, 그것에 대해 거짓 맹세함으로써 그들의 것을 가로채는 죄로서 인간 대 인간의 죄를 속하 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개인적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속건제로 드리시 므로 많은 씨를 보게 되었으며(사53:10), 먼 데 있던 우리들을 화평을 이루어 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다(엡2:17-18).

8-10장: 제사장법(교회의 영적 리더들)

8장은 여호와를 섬기는 가운데 영적 리더의 자리에 서도록 구별된 사람들이 사역에 임명되거나 섬김에 봉헌될 때 항상 공개적이고 모든 회중에 의해 증거되어야 하는데, 그럼으로써 그 부르심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증할 수 있게 된다. 죄의 용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섬김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성령님에 의한 하나님의 능력 주심이 있어야 한다.

사역하는 이들은 속죄의 근거로 그 일을 행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이들은 자신을 그분께 온전히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 여호와를 섬기는 일은 평생의 헌신이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되기 전에 그들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어떤 것을 할 수 있게 되기 전에 그들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어떤 일들이 먼저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그들을 향하여 역사하셔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성령으로 역사하셔야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섬길 수 있다(모세오경. 빅터 헤밀턴).

9장은 새로 임명된 대제사장 휘하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제사의 시무식을 기록하고 있다. 이 제사는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임재를 체험하는 가운데 믿음의 확신을 얻을 수 있는 제사 의식의 극적인 시작을 제공해주었다. 제사장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에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위한 그의 사역이 헛되다는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비록 제사장이 성스러운 임무를 띠고 있고 성스러운 직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끊임없이 죄 씻음을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하나님을 본 자, 믿음으로 그분의 뜰에 들어가 그분을 예배한 자에게 확실히 보장되었다.

10장은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는 이들, 곧 영적 리더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행동 가운데 규율을 따르므로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순종, 혹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길을 떠나는 것은 재난을 가져온다.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심을 받은 그리스도는 죄없으신 분으로서 성령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신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신다. 교회의 영적 리더들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을 본받아 복음을 순종하며, 주님의 양들이 거룩함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왕같은 제사장의 삶으로 이끌어야 한다.

11-16장: 정결과 부정에 관한 법

인간의 삶에는 자연스럽게 더럽혀짐과 질병이 빈번히, 거의 매일 일어난다. 그래서 율법은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다. 차단이나 격리, 정결 의식을 통한 정화, 성화 의식을 통한 거룩해짐 등이 그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베푸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분의 율법에 순종하고 규정된 의식을 준행함으로써 믿음을 보여야했다. 옛 언약에서 성전, 제사, 정결케 함, 절기, 제사장 등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레위기 제사 제도의 일부였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종결된 것은 율법의 의식이지, 그 율법이 계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규례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고 일시적인 것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계시와 그것이 요구하는 것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적용될 수 있다. 거룩함이 없이는 여호와를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성화되거나 혹은 거룩하게 되었고, 따라서 거룩한 백성이라고 바르게 고백할 수 있다(벧전1:2, 2:9-10).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거룩한 삶의 실체를 통해 반드시 확증되어야 한다(골1:22, 벧전1:15). 신약은 도덕적 불완전함과 부정함, 즉 구약에서 우리를 부정하게 만들었던 범죄 행위는 여전히 새 언약 안에서도 범죄한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함이라는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회개와 고백 그리고 용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종결된 것은 (1) 백성들이 성소에 오는 것을 가로막은 더럽혀짐과 질병에 대한 분류, (2) 부정함을 제거하는 의식이다. 신약에서 부주의와 무지에서 온 죄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모든 죄는 여전히 죄로 불리며 주님을 향한 예배와 섬김에 참여하기 전에 용서와 치유를 필요로 한다.

둘째, 피부병이나 신체의 유출과 같은 인간의 더럽혀짐은 죄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신체적(지상적) 조건이었다. 신체의 유출과 더럽혀짐을 위한 제사 의식이 규정될 때 죄의 고백이 요구되거나 제사장이 용서의 말을 전한 적은 결코 없다. 유일하게 요구되는 것은 정결하게 되는 때까지 성소로부터 떨어지는 것이다.

셋째, 고백과 용서를 필요로 하는 것들은 또한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죄였지만, 덜 뻔뻔스러운 죄(부지중에 저지르거나 알지 못하고 지은)는 속죄제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었다.

넷째, 사람들이 저지른 중대한 범죄(도덕법을 위반한 것처럼 계획되고 고의적으로 율법을 위반한)는 이스라엘에서 속죄제를 통해 해결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용서하심을 필요로 했다.

11장 - 음식 규정에 대한 주된 구상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서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밑바탕에 놓인 동기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들이 이웃에 있는 민족들의 신앙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막아주고, 그들을 가나안 족속의 저속한 더러움과 악들로부터 보존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이 정한 음식 규정을 따름으로써 이교도 이웃들과 동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거룩이라는 것은 사람이 밥상 위에서 취하는 그의 태도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람이 부정한 것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가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부정한 것을 또 하나의 성전, 곧 자신의 몸에 집어넣는 것 역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고전3:16, 6:19-20). 음식의 문제는 가족 구성원들과 집 안에서 행해지는 거룩의 문제이다. 이것은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신실하게 삶으로 실천하는 거룩의 문제이다(빅터 헤밀턴).

왜 배로 기어 다니는 짐승들이 인간이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으로 규정되었는가? 이것은 일종의 죄책감의 연상 작용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뱀은 인간을 유혹해서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도록 만든 것 때문에 종신토록 “배(가혼)로 다니라”(창3:14)는 저주를 하나님께 받은 바가 있다. 그런데 먹는 것이 금지된 짐승들도 역시 배(가혼)로 밀고 다닌다(레11:42).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롬12:2).

12장 - 정결에 관한 규례는 부정한 것은 어느 것이라도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진리는 영광에 들어가는 것도 주관할 것이다. 산모가 “부정하다”(현대 의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감염되기 쉽다”)고 선언함으로써 레위기는 산모와 태아를 혹시 있을지 모르는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켜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결혼과 출산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계속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영광으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이다(막12:25, 요일3:2-3).

13장 - 피부병으로 인한 더러워짐과 의식들은 세상으로부터의 깨끗이 씻김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이 환경으로부터 옮기시고 그들을 영원히 정결케 하실 미래의 성화(혹은 영화)에 대한 필요성을 상징하고 있다. 곰팡이와 진균 감염은 세상에 들어온 죄의 영향을 다룬다.

즉 오염과 타락, 더럽혀짐과 죽음의 저주가 평생 동안 온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들로부터 구별되기 위하여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곰팡이를 죄의 영향력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여 세상으로부터의 영적 오염을 피하라는 개념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의복(슥3:3-4, 유23절, 계3:4)은 사람의 죄나 의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반점이 생긴 옷을 제거하고 멀리하는 것은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와 그들에게 미혹된 사람들의 영향력을 제거해야 함을 말한다. 반점이 생긴 옷을 제거하고 흠 없는 옷을 입는 것은 거짓 가르침과 죄로부터 순결을 지키고 의의 행동 가운데 포함되는 것을 의미한다.

14장 - 민12:9-11과 대하26:19등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벌로써 나병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출15:26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으로 병을 내려주실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들 가운데 맹인이나 절름발이들은 치유를 받았지만 문둥병자들은 깨끗케 됨을 받았다. 이 단어가 다른 문맥들에서 사용된 예를 살펴보면 이 단어는 아주 뚜렷한 도덕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행15:9, 고후7:1, 엡5:26, 약4:8, 요일1:7, 9).

정결은 육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피부병 이후의 정결 의식은 정결해진 사람조차도 속죄의 제사 의식을 통해서만 거룩한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새 한 마리는 죽임을 당하고 다른 한 마리는 놓아주는 가운데 예배자는 자신의 병 역시 이렇게 혹은 저렇게 끝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마치 다시 하늘을 날개 된 새처럼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다.

곰팡이와 진균에 감염된 이후의 정결 의식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거룩함을 요구하시며, 그 거룩함은 정결, 건강, 깨끗함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부정함은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을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또한 그분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시는 언약 공동체로서의 역할로부터 분리시킨다.

표피의 질병과 그 처방은 죄와 그 결과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의 교제와 회복은 죄와 그 결과에 대한 치유를 요구한다.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치유와 죄사함과 교제가 회복된다.

15장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것이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것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주제는 만성 감염, 생식과 관련된 유출, 월경 그리고 신체적 배설 등과 같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에서도 계속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이며, 따라서 거룩한 범주 안에 포함되지 못한다.

또한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질병과 감염을 막는다. 육체적인 불결함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인 불결함 역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을 만든다.

하나님의 치유는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정결하게 만드시는 것이다(빅터 헤밀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모든 육체적 문제로부터 자유함을 얻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을 만드는 것에서 정결함을 얻도록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며,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갈 때 모든 육체적 도덕적 문제로부터 자유를 얻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16장 - 속죄일 의식은 완전한 속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규정이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모든 죄와 모든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 정결하게 하는 길을 마련하셔서 그들로 그분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셨다. 자비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삶 속의 잡동사니들과 쓰레기들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한 날을 따로 떼어 놓으셨다.

6, 11, 17, 24절에 일곱 번이나 사용된 “자기를 위하여”란 표현은 높은 위치에 있는 성직자가 먼저 자기 자신의 잘못들을 바로잡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해 주고 있다.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진 밖으로 끌려 나가는 속죄염소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위한 의미심장함으로 가득 차 있다.

17-26장: 거룩함을 위한 규례

17장 - 피의 신성함. 피를 먹는 것의 금지를 크게 강화시키는 것은 이런 피흘림의 고귀한 용례다. 하나님께서는 피로 속죄를 삼으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는 생명(피가 가리키는)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고 제물이 갖는 피의 신성함을 보존해야 한다.

이 교훈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속하기로 계획하신 것을 거짓 신에게 제물로 바치거나, 경쟁 신당에 바치거나 속화되거나 평범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믿는 자인 우리는 그분의 피를 ‘마시라’는 가르침을 받는다(요6:53-54). 결국 이것은 속죄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그분의 피를 실제로 마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위한 그분의 제사를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함을 의미한다.

18장 - 육체관계의 신성함.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에 대한 충성과 계명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적 경계를 침범함으로써 창조 질서를 위반하지 말아야 한다(친족간의 성관계, 모든 불법적인 성행위). 이 율법들은 여성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안전과 존엄을 보존한다.

여성이 남성의 욕망의 무차별적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한 가정에서 권력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그 힘을 성적 충족을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존경과 존엄은 가정 안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는 성적 친밀함이 결혼을 위해서만 주어진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모든 악함에 대한 심판을 요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장 - 거룩한 민족은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보이기 위해 모든 인류를 사랑해야만 한다(풀하우스). 사랑을 통한 거룩함.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며(율법의 정신), 세상과 구별된 그분의 기준을 따라 살고, 이웃에게 친절과 공의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분의 거룩하심을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랑을 나타내신 것을 본받고, 복음(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순종하므로 삶의 모든 영역에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레 19:2을 인용하면서, 핍박의 절정에 직면서 그의 독자들이 계속해서 거룩을 지켜나갈 것을 당부한다(벧전1:13-16).

20장 - 타락한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백성은 이교 신앙(거짓 종교)을 그치고, 이교 관행(부모를 저주, 비정상적 성적 행위)을 멀리하고, 여호와를 향한 거룩한 삶을 개발해야 한다. 신약 역시 간음, 근친 상간, 동성애, 수간, 우상숭배, 하나님의 거룩함에 우선하는 자기 만족에 대해 정죄한다.

바울 사도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람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선언한다(롬1:18-32). 그러나 그는 처벌을 하나님께 맡겨야 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려고 세상에 왔으며, 진정으로 뉘우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21장 - 거룩한 명령들. 여호와 앞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슬픔의 순간에도 언약의 소망을 유지해야 한다. 결혼 가운데 언약의 순결함을 보여야 한다. 자신의 의무를 책임져야 한다. 공적인 예배를 인도한다면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적 지도자로 부르신 사람들은 행하는 모든 일 가운데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며, 회중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22장 - 제사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신실한 예배자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을 갖고 나아간다. 영적 섬김이 오직 여호와께만 드려지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받으실 만한 제물과 함께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사에 근거해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장 좋은 것, 곧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도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23장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 매주 노동으로부터 쉼은 이스라엘이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며, 또한 자신의 노동의 노예가 아님을 말해준다. 또한 안식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머무르도록 인도해 준다(Vrizen. An Outline of Old Testament). 안식일의 안식은 세상 일의 완전한 중단을 요구한다. 성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노동을 멈추고 여호와의 안식일의 안식을 축하하는 믿음의 공동체에 참가함으로써 언약에 대한 동참을 증거한다. 이스라엘의 전 역사는 불신앙과 함께 약속된 안식의 성취가 미루어지는 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 약속의 성취가 시작되는 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과 함께 왔다.

그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초대하실 때 그분은 오랫동안 기다려졌으며, 새 언약 가운데 약속되었던 종말론적 안식을 제공하고 계셨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장래의 안식도 확증받았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삶, 곧 자신의 시간, 자신의 재능, 자신의 활동, 자신의 우성순위를 하나님께정결하게 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가운데 더 큰 축복과 더 큰 성취를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안식일의 안식 안에서 계획하셨던 것을 누리기 시작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구원과 따라야 할 순결한 삶의 기념을 통해 영적 유산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월절(무교절)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는 절기로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성취되었으며,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은혜를 기뻐한다. 즉 영적 명절을 지킨다.

초실절(맥추절)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초실절을 오순절(칠칠절:유월절 후 7주를 지난 50일만의 절기)이라고 한다. 오순절은 성도의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질 교회 형성의 예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영생에 필요한 것을 베푸셨다는 것과 주님 안에서 죽은 모든 이에게 위대한 추수가 올 것임을 알게 된다.

초막절(수장절)은 광야 여정 속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이다. 또한 한해의 추수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광야와 같은 세상의 여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구원의 완성을 기뻐할 것을 바라본다.

거룩한 절기력에 따르면 칠 월의 속죄일(26-32절) 다음에는 바로 칠 월의 초막절(33-44절)이 이어진다. 그리고 이 절기에는 “너희 하나님여호와 앞에서 칠 일 동안 즐거워하도록” 되어있다(40후반절). 이 말씀들을 통해 레위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그분에게 반하는 모든 것들, 네가 망쳐버린 모든 것들을 네 삶에서 제거하라. 그리고 나서 즐거움을 만끽하라”고 말씀한다(빅터 헤밀턴).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하나님과 관계를 무너뜨린 것을 내려놓고 제거하므로 영적 명절, 즉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풍성히 누려야 한다.

24장 - 하나님의 백성(즉, 제물을 드리는 백성, 행동을 취하는 지도자)이 드리는 헌신된 예배(즉, 신실하고 올바르게 가져온 제물)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밝게 비춰지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공급하심이 계속 될 것임을 확증한다(1-9절).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히 보존해야 한다(즉, 여호와의 거룩하고 주권적인 성품이 세상 가운데 보존되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공의는 신성모독자를 심판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성모독자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다만 그분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장차 올 세상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25장 - 안식년(매 칠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희년(매 오십 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 대한 율법. 안식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며, 그들은 모든 백성들이 그분의 풍성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책임을 갖고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성경에 안식년이 지켜졌다는 증거는 별로없다. 그러나 역대하 36장 21절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그 땅이 안식, 곧 칠십 년간 휴식을 누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