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사 말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고 하는 Theme를 생각할 때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예배가 회복되어야만 교회가 살아있고 예배가 회복되어야만 나라도 살아 있으며 예배가 살아나야만 가정과 가족의 개개인이 살아 온 인류가 살아 있는 세상이 된다고 하는 뜻이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예배회복이 중요하므로 예배에 대한 정의나 혹은 예배가 무엇인지 알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 합니다
예배에 대한 뜻을 다 정리한다면 성경의 부피만큼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볼 정도로 그 뜻은 아주 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예배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나를 복종시키며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주님 앞에 종으로서 섬김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적으로 보면 순종한다부터 시작하여 경외한다 경배하며 찬양하며 경외함으로 나아간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나 긍극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모든 영광을 주께 돌리며 경배하며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여야 하겠지요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중에 가장 기뻐하셨던 존재이며 만드신 목적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다고 소요리문답에서는 정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지으시 존재요 기쁨을 드리기 위하여 피조된 존재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섬기며 경외하며 감사하며 나가는 것을 예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전적의미로 볼 때는 '예배(worship)'라는 용어는 앵글로색슨 어인 worth-ship을 줄인 말로서 ‘가치를 어떠한 대상에게 돌린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말할 수 있으며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예배의 의미는 아바드(abad)가 사용되었는데 이 말의 뜻은 일한다(work), 노동한다(labor), 섬긴다(serve) 등의 뜻이 있으며 '성전에서 봉사'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배의 의미로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낱말은 프로스쿠네오(proskuneo)인데 이 뜻은 '손에 키스하다', '무릎을 꿇다', '허리를 굽힌다'(kiss the hand and the ground toward)는 뜻으로 이는 예배자가 자신의 몸을 꿇어 엎드리는 외부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란 주 예수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나님과 사람, 곧 예배 자와의 교제 혹은 만남이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 대한 단어를 신구약적으로 종합해 보면 예배는 주관적인 체험적인 내적인 마음의 태도(경외, 존경, 경탄)와 객관적인 행위인 외적인 행동(엎드림, 섬김, 절함)의 결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얻으려고 교회를 갑니다 또 어떤 성도는 설교를 들으러 예배에 참석하고, 어떤 성도들은 자신의 질병을 고침 받기 위하여, 어떤 성도들은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하여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배정신에 아주 작은 한 부분에 편중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무엇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드리기 위한 예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전적 의미일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서 보여주는 예배의 의미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왜 예배회복이 필요한 것인지를 예배의 의미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과 3장에 걸처 나오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산을 거니는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뜻대로 영광돌리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말씀에 불순종하므로서 죄가 들어왔고 타락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두려워 숨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단절은 결국 회복해야 할 과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다 잃어버렸으며 상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자유롭고 넉넉하며 풍성했던 것들은 없어지고 땀을 흘려야 했으며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했고 하나님과 교제가 불가능해 졌으며 생명을 잃어 죽을 수밖에 없는 제한적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잃은 인간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므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예배를 주셨으며 이 예배를 통해서 인간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켜주시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된 것입니다
구약에서 제사라는 형식과 제도로 희생을 통하여 대속의 모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장과 희생물을 통하여 예배 하였습니다
하지만 46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헐어 버리고 지금까지 희생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한 제사가 예수님 자신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즉 예배의 핵심이 제사에서의 희생이었다면 이제는 예수님 자신의 희생으로 바뀌었음을 신약에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컨대 예배는 곧 예수라고 하는 의미이며 예수님이 곧 회복이라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형식이 아니라 인격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 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거룩하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오직 제사로서만 가능하였다면 신약에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곧 하나님이 주신 회복의 도구요 회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림으로 회복이 이루어지고 예배를 드림으로 죄인된 인생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중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 할 때 첫 번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함을 말씀하고 있고 두 번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툴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를 위한 도구와 성공적 예배를 위한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위한 도구라면 기도와 말씀 성령의 교통과 하나님에 드려지는 시간과 정성과 마음과 물질 즉 헌신과 찬양이라고 말한다면 성공적 예배를 위한 도구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와 그에 따른 여러 가지 것들 중에 인도자와 한 몸을 이룬 아내이며 사모님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부부요 한 몸이며 늘 대화 하고 의논하고 함께 동거동락하며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며 한 생각 그리고 한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사모님이 회복되어야 교회가 살아나고 부흥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주장하십니다 사람이 어떻게 해야 부흥하며 성공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시기 위하여 주의 종을 세우신 것이며 그를 통하여 뜻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목사님이 중요하다면 당연히 한 몸 되는 사모님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모님이 회복되어야 하고 사모님의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MH Conference Chicago'09는 이런 의미를 가지고 열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모님들이 모이지 못하는 현실이 우리 앞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목회에 전념하시는 목사님의 배필로 함께 힘쓰셔야 할 마땅한 사명에 접근하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온전히 함께 가기에는 어려운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목사님과의 동역이나 사역을 교회에 제한하여 활동범위를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사님의 목회를 돕고자 여러 가지 형태로 도울 수도 있고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상의 것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사모님으로 교회사역이 최상에 것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에 말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 말입니다
그것은 함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배하며 영광되기를 원하시므로 기도하고 섬기며 기쁨과 감사로 교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물가에 찾아온 여인은 사마리아 수가성 사람이었습니다
물가로 나온 여인입니다
유대인이면서도 이방인들보다 더 못한 취급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앗시리아가 행한 민족동화정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방민족과 혼합되어 사마리에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아픈 역사로 인해 철저하게 자신들의 민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마리아 수가성에는 유대인들의 왕래는 물론이고 이웃 나라로부터도 멸시를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수가성에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멸시받는 사람들 중에 부끄러운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인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물길로 우물가로 나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물을 길러 나왔는데 물 길을 그릇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이 여인은 이 우물이 야곱에 우물이었고 이 우물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달라 하신 예수님을 향하여“당신이 야곱보다 크니까”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을 길러오지 않도록 목마르지 않는 물을 내게 달라고 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섯 번째 살고 있는 남편도 남편이 아니라고 할 만큼 삶에 지쳐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잘못된 예배를 알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에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또한 그 여인은 메시야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으며 기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메시야를 발견한 여인이 되었던 것을 보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는 회복을 위한 도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수가성 여인이 물가로 나오게 된 것은 그저 물이 필요해서 나온 것뿐입니다
물을 길러 나왔지만 물길을 도구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던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우물가로 찾아주신 사랑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물가로 나오셔야 합니다
물가로 나오라고 주님 부르시고 있습니다
사모님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인생들을 이렇게 부르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금 비약된 표현이지만 물을 길러 우물가로 나왔을 뿐인데 주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셨습니다
여기 우물가는 그 옛날 야곱의 우물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가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그곳은 교회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모형인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우리들이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전도의 핵심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며 또한 그를 위하여 교회로 모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마리아 수가동네의 여인은 물을 길러 나왔을 뿐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얻게 되었고 또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주님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여인의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겠습니까
2009년 Nyskc World Mission 임원목사님들의 사모님들이 모여서 Nyskc MH Conference를 갖게 된 것을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만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은 이번 MH Conference를 통해서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교회론을 중심으로 신학과 신앙을 정리하며 우리 자신부터 다시한번 교회의 중요성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Conferenc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일리노이 한인장로교회와 안영철목사님과 안선신사모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Nyskc MH 위원장이신 안선신사모님의 수고와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Nyskc 중부본부장이신 김기철목사님과 부본부장 홍기일목사님 임원목사님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MH Conference가 이곳 미국을 시작하여 앞으로 전세계 220개국에서 열릴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한편으로 이번 Conference에 참여하신 사모님들께서 Nyskc MH 강사로 준비되는 계기가 되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이 이르는 곳이면 함께 다가갈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에 참여하여 강의하는 사모님으로 거듭나는 비젼을 제시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