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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mos (1)

(Amos서는 나이스크를 연구함에 있어 중요한 신학적입장이다

예컨데 왜 예배가 무너졌느냐 하는 것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Nyskc를 말하려면

그리고 Nyskc Movement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교회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말씀이다)


1. Amos

이스라엘과 주변 국가들의 심판 선언(1-2장)


Introduction

1. 아모스와 그의 시대(여로보암 2세)


선지자 아모스는 호세아와 동시대인으로 그 보다 약간 연장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존재를 위협할 정도의 지진이 일어나기 직전, 곧 주전 760년에 몇 주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 전했다. (암 1:1)은 아모스의 시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다 왕 웃시야(주전 792-740년)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여로보암 2세, 주전 793-753년)의 시대의 지진 전 2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암 1:1)." 아모스는 베들레헴 남쪽 약 5마일 지점에 있는 시골 지방인 드고아 출신이었다. 아모스는 잘 교육 받은 사람으로 그 당시의 사회, 사법, 국제 문제 등에 정통하였다. 그는 주요 제의 장소인 벧엘과(7:10-17),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와(3:9, 4:1, 6:1), 또는 길갈에서(5:5) 공개적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또한 그는 주변 민족들(아람, 블레셋, 에돔, 암몬, 모압)의 지리, 역사, 사회, 정치적 상황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1:3-2:3). 아모스는 하나님께 복종하였고, 그의 언약적 책임에 대해 염려했다. 그는 지혜 전승에 정통한 유대의 현인이었다. 일반적으로 지혜자는 자기 보존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것을 현명한 것으로 생각했다(5:13). 그러나 그는 잠잠히 있을 수가 없었으며, 또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가슴 속에서 불타는 불이되었다(3:8). 그는 자신을 "직업적인 선지자들"과 구별하였다(7:10-13). 그는 부도덕과 압제와 부정한 행위들로 얼룩진(2:6,7, 4:1, 5:10,12, 8:4-6) 부자들의 생활을 질책했다(3;10,12,15, 5:11, 6:4,8).


아모스의 비평은 그가 사업가였기 때문에 더욱 더 효과적이었다(1:1, 7:14-15). 그는 유대 광야 변경의 자신의 처소로부터 불러내신 하나님을 위해 모든 소유를 두고 떠났다(7:15). 그는 냉혹한 귀족 계층이 자신과 자신의 메시지를 거부할 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소명을 좆아 북쪽의 이스라엘로 갔다. 그러나 벧엘 성소의 제사장 아마샤는 아모스에게 예언을 금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아모스는 그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현실정책을 반대했으며, 우주적인 심판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과감하게 선포했다. 아모스는 계시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환상을 받았다(7:1-9:10). 그는 이 메시지에 깊이 감동하여 북왕국에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했다. 심판의 긴박성이 그의 예언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 아모스는 여호와의 날이 이스라엘에 얼마나 임박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여로보암 2세(주전 793-753년) 재위 초기에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지역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6;13). 그러나 주전 760년에 아람이 요단 동편을 침략하으로(1:3,13) 차츰 영토를 잃어가고 있었다. 앗시리아는 우랄투(Urartu) 왕국에(주전 810-743년) 점령된 채, 주전 743년에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첫 전쟁을 일으킬 때까지는 계속해서 아람을 점령할 수 없었다. 또한 주전 760년에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재개된 군력 증강은 대지진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주전 760년 무렵 이스라엘 세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종말이 그토록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선지자 요나는 여로보암 2세 치하때에 이스라엘의 생존을 연장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을 선포하였다(1:5, 주전 732년). 그러나 아모스는 다른 민족들의 멸망도 함께 예고하였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한 줄을 깨닫지 못한 채, 지도자들은 타락한 부(좋은 예로 "상아가 박힌 침상)를 탐닉하였고, 최고급의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4:1, 5:11, 6:4,6).


열왕기하는 여로보암 2세를 설명하는데 일곱 구절만을 할애하고 있다.(왕하 14:23-29) 여로보암 2세는 그 어느 왕들보다도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지도 않으셨고, 또한 이스라엘이 대적들에게 받는 심한 고난을 보시고 이스라엘을 여로보암의 손을 통하여 잠시 구원하였다. 그리하여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할 무렵 이스라엘은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페니키아 무역에 직접 손을 대고 있었으며, 자체적으로도 몇몇 주요한 무역로를 개설하여 막대한 물자들을 거래하고 있었다. 이러한 호황은 수도인 사마리아로 하여금 부와 사치의 중심지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엄청난 부를 누린 것은 소수의 권력층에만 제한되어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하게 되어 수많은 백성들이 피와 땀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민생보다는 재물을 쌓기에만 급급했고, 부자들은 사치와 안일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제사장이나 선지자도 이 일에 대해 항거의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들 자신들도 도덕성을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종교 지도자들은 사회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의지를 가질 수가 없었으며, 그 때에 바알 종교가 백성들 중에 만연되어 신전에는 종교 창녀들이 우상 숭배와 음행을 조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 처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는 아모스였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짐", 또는 "멍에"를 뜻한다. 그는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였으며(암 1:1, 7:14. 15),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6km 떨어져 있는 드고아에서 살았다. 그는 남왕국 유다 사람이었지만 유다 왕 웃시야(B. C. 738-742)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 2세 때에(B. C. 786-746)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땅으로 건너가 벧엘 궁전을 향해 말씀의 짐을 풀었다.(암 1:1) 아모스는 어느 민족, 어느 종교, 어느 계층을 막론하고 불의와 부패가 성행되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서 그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수고 깨뜨렸다. 또한 그는 장차 국가에 닥치게 될 일들에 대해서도 예언하였는데, 그가 전했던 메시지들은 너무도 예리하고 완벽한 것이었기 때문에 후대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그 구절을 인용하기를 좋아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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