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신학연구 학회 개론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Nyskc World Mission 대표회장 최고센 목사에 의해서 지난 2003년 뉴욕에서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Gardena, California 대흥장로교회(권영국 목사)에서 Pastoral Forum을 시작으로 그 이듬해인 2004년에 초대학회장에 장상선 박사를, 부학회장에 윤사무엘 박사를 세우고 Deckalb, Northern Illinois Univ. 한인장로교회(안영철 목사)에서 제2회 Nyskc Symposium’04를 열었습니다.

그 후 2005년 Nyskc Family Conference Washington DC.’05 와 함께 제3회 Nyskc Learned Society를 학술대회를 갖었으며 이후 제4회부터는 Atlanta, Georgia 아틀란타장로교회(서삼정 목사)에서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를 독립, 처음으로 Nyskc Symposium 개최하면서 학회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14회 학술대회가 NYSKC UNIVERSITY에서 열리게 됨을 성삼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허락하여 주셨음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지금부터 24년 전 1993년 7월25일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효과적으로 감당하고자 Nyskc World Mission을 설립하고 그 안에 4개의 핵심적인 사업방향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가 Nyskc Conference입니다. 예배회복운동의 실질적인 예배훈련인 Conference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매년 진행되고 있으며 훈련은 다음과 같습니다.

Nyskc Family Conference(IST, MH. NS. MS. MAS. NC. NP. NCA. NF)

Nyskc Mission Family Conference

Nyskc Momentum Conference(MAS. NC)

Nyskc Steward Seminar(NS) 훈련입니다.

또 하나는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사업입니다.

Nyskc Movement가 세계적인 예배회복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문적 뒷받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예배회복운동에 바탕이 되는 신학이 없다면 단순한 Event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학회를 설립, 매년 미국에서 Nyskc Symposium(학술대회)을 열고 있습니다.

“받은 것이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이며 회복할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하는 성경적이며 신학적인 주제가운데 “회복의 도구는 곧 예배다”, “하나님은 인간의 회복을 위하여 가죽옷을 주셨고 가죽옷은 예배로 발전하였으며, 그 예배 곧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단절된 교제가 회복되었으며 생명과 토지가 회복될 수 있었다”,”예수 그리스도는 회복자로 성육신하셨으며 완전한 회복을 위해 다시오심”을 신학적으로 규명하고 적용, 실천을 이루기 위한 학회입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의 3가지 연구 핵심 신학은 “Theology of Restoration , Theology of NYSKC, Theology of Imputation” 입니다.

세 번째 사업으로는 School of Goshen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NYSKC UNIVERSITY와 GTS(Goshen Theological Seminary), Nyskc Leadership Academy, Nyskc Institute( Nyskc Institute of Church Education (교회교육연구소,NICE)

International Nyskcian Leadership Training Center: 지도자 훈련원 INLTC)가 있으며,예배 회복운동을 이어갈 지도자 양성을 비롯해 우리 주님의 명령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제자를 삼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예배회복을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어가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 핵심 사업은 문화사역인 Miclot입니다.

“빛과 소금처럼 혹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5:15)는 말씀처럼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의 문화의 변화 속에서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 문화가운데 그 영향력을 끼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예배의 문화를 세우고자 설립하였습니다.

Theater Producation(극단 미클랏), Music Chamber Society, Art Society, Media:SKBTV. Publishing:Miclot (도서출판 미클랏), Magazine:Restoration of Worship(계간지), 방송, 출판, 예술분야로 음악, 미술 등 여러 분야로 그 사역의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4개의 핵심 사업 가운데 Nyskc Learned Society는 매년 학술대회를 열어오는 가운데 아직은 학술대회로서의 규모를 갖추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고 있으며, 현재도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고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 역시 참석한 목회자님들께 새로운 도전과 Vision을 갖게 하리라 확신합니다.

지난 13년 동안 NLS(Nyskc Learned Society)는 California, Illinois, Washington DC. Georgia, Colorado, New Jersey, Ohio 등지에서 Nyskc Symposium을 열어왔습니다. 이 학술대회(Symposium)는 미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열리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개최되어왔고 그러는 가운데 학회의 임원진도 바뀌어 학회장에 윤사무엘 박사(구약학), 학회실장에 James K. Choi 박사(조직신학)가 맡고 있습니다. 또 각 5개의 분과(신학(성경) 연구, 예배학 연구, 교회학 연구, 교육학 연구, 선교학 연구)로 나누어져 회복의 신학, NYSKC 신학, 전가(轉嫁:Imputation)의 신학, 기다림의 신학 등을 연구하며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신학적으로 뒷받침 하고 있으며, 매년 Symposium과 각 나라의 Division HQ를 통해 열리고 있는 목회자를 위한 Forum과 Seminar등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하며 발표했던 주제들의 공통점은 “회복”이었습니다.

2003년에는 “NYSKC의 5대 신조와 행동강령”(암9:11-15), 2004년에는 “예배와 교회” (NYSKC Movement 행16:17)라는 주제로 개최되었고, 2005년에는 “회복의 사상(Nyskcism 요4:23-24)” 2006년에는 “내가 포로 된 자를 돌아오게 하리라” (렘32장), 그리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Colorado에 위치한 YMCA에서 “성령의 불로 태우라”(사4장), “회복의 신학과 설교”(Nyskc Movement의 정체성), “사실과 진실”(하나님의 관점 Theocentric-ism)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어 2010년에는 “무엇을 회복할 것인가”(HAVE & BE)라는 주제를 통해 소유권과 위임권에 관한 연구발표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2011년에는 “시각과 변화"(하나님의 관점 & 사람의 관점), 2012년에는 “Think though Thinking”(빌4:8)에서 교회론을 중심으로 “구약성전과 신약교회의 비교”라는 연구가 성경 신학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013년 정기학술대회의 가장 핵심이 되는 연구발표는 “모형(Typology)과 원형(Archetype)”으로 예배회복운동을 함에 있어 회복의 도구가 되는 성경해석부분과 또 예배회복운동의 성경 신학의 배경 곧 "Nyskc Movement of biblical interpretation background"에 대한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또, Symposium’14 에서는 더욱 깊어진 Restoration of Theology & NYSKC of Theology 를 연구하며 “Restoration form the Loss”(상실에서 회복)이라는 주제로 연구, 발표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New Jersey Princeton의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이후 GTS Ohio Campus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2015년 “예배는 회복이다” & “회복의 신학”(암9:11-15), 2016년에는 “모형과 원형”(Type and Antitype)의 “옛(Old)”것은 구약 성경의 “모형”이고, “새(New)”것은 신약성경의 “원형”이라는 주제로 NYSKC UNIVERSITY에서 가졌습니다.

세계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라는 명칭에 걸 맞는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연구해야 할 과제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NLS의 Vision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Vision과 연구 과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배회복운동을 시작할 때 가졌던 Vision들이 NLS(회복의 신학연구학회)를 세워가는 동력이 되었고, 그 방향은 지금도 계속진행 중에 있으며, 연구 내용은(Subjects for Study Project) 회복의 신학 연구, 예배회복에 따른 성경 연구와 Nyskcism 연구(성경해석학), NYSKC 연구, Nyskc Movement 연구, 예배론과 교회론 연구, 역동적 목회 사역 연구(PDP), 예배회복에 따른 Method 연구, Urban Mission 연구(예배중심의 선교), 교회 세대간의 Identity 연구, 예배중심의 선교연구, 다중 언어의 선교적 사명 연구 등이 있습니다.

또 이와 같은 연구 활동(Research Activities)으로는 학회와 부속기관(Institute), GTS를 통한 Seminar & Workshop, Forum & Conference 열면서 그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북미는 물론 남미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과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일본과 한국, 러시아 등 전 세계를 향하여 목회자들을 위한 Forum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Nyskc Symposium‘17은 NYSKC UNIV.에서 5월22일부터 25일까지 3박 4일간 “Diaphora. & Adiaphora라는 주제 속에서 “I am the way, the truth, and the life:”(John14:6)라는 제목으로 진행됩니다.

*신학을 세운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어떻게 『회복의 신학』이라는 분야를 연구하게 되셨는지 그 동기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동기라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성경을 애독하다가 발견하게 되었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시면서 복을 주셨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을 애독할 때마다 늘 궁금했었습니다.

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에 길에 서지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복이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복이 없으면 안 된다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는 확실한 대답을 얻었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복이란 무엇일까,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제 복을 주셨고, 그 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 복은 언제 받았을까, 그런데 우리는 복을 달라고 기도하는가, 복을 받았기 때문에 복을 잃어버린 우리들이 그 복을 다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복이 우리의 기업이 아닌가, 받은 복은 어디서 어떻게 상실하였나” 등에 관한 답을 성경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애독하는 가운데 우리가 받은 복이 하나이지만 그 안에는 크게 셋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회복의 신학은 요한복음을 연구하기 시작해 창세기로, 다시 성경전체로 연구를 하게 된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회복의 신학”이라는 표현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고 또 신학의 분야를 연구하며 그 결과를 얻는 다는 것이 세기를 거처 있을까 말까 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허락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회복의 신학이란 무엇입니까?

회복(4R: recover, restore, reform, redemption)의 사전적 의미는 “처음 것으로 돌아가는 것, 본질로 돌아가는 것, 본질로의 접근, 원래의 상태로 돌이키거나 원래의 상태를 되찾음,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속사에서는 회복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그 중 하나가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죄로부터 의로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히브리어 히치디크(hidsdik)은 “의롭게 하다”는 뜻이 있고 신약의 헬라어 디카이오(δικαιω) 역시 “의롭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의롭게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보다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으로서 죄 사유(赦宥)의 선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시32:1, 마12:37, 눅7:29, 롬3:4, 20-28, 롬8:33-34)

부패되어 전적으로 타락했던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원죄가 행위의 죄 이전에 인간타락을 말하듯이 칭의는 본성의 회복을 말합니다.

회복의 신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상실한 것이 무엇인가.

왜 잃게 되었는가.

그리고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전적으로 부패되었다. 전적으로 타락했다. 전적으로 죽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상실했다.”

사람을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던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부패되고 타락되어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즉 상실에서 회복하는 것이 회복의 신학의 시작입니다.

다시 말해 “잃은 것과 찾은 것” “상실에서 회복”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은총에 신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바로 회복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받은 것과 잃은 것”, “잃은 것에 대한 회복”,”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주제들이 “주신 하나님과 잃은 사람”, “잃은 것을 찾아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조명한 것이 회복의 신학이며, 그 과정에서 “사람이 잃은 것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회복의 도구들에 관한 연구가 NYSKC 신학이다”라고 정의하며 이 과정에서 “회복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불가항력적으로 베풀어주신 은혜의 연구”가 “Theology of Imputation”이라고 정의 합니다.

다시 말하면 회복의 신학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연구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왜 잃게 되었는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회복을 이루게 하시는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원래 신학이라는 뜻은 신을 뜻하는 "theo-"와 학문을 뜻하는 "-logy"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모든 연구이며, 좁은 의미로는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케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회복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와 회복사에 대한 찬양입니다.

인간이 세계와 우주, 자연과 질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보고 느끼고 관찰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신학적 행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함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특별계시, 일반계시로 배우는 존재입니다.

신학의 참된 본질은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시며, 회복자이시며, 위로자이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며, 그 분의 은혜를 찬양하며 그의 목적에 맞는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회복의 신학을 어떻게 연구해 가십니까?

신학에서 말하는 방법론에 의거하여 첫 번째로 성경에서 성경을 유추(analogia scripturae)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학이 그렇듯이 신학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서 부터이듯 회복의 신학 역시 과학적 연구의 학문이나 신비적인 세계를 서술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 곧 특별계시를 기초로 하여 그 학문에 타당성을 가지며, 성경의 방법에 따라 신학의 본질과 목적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학의 유일한 원천(fons or principium unicum)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이 원하는 것만을 찾아 선택하는 것은 (the cafeteria style)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닙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신앙의 원천은 성경이다.” 라는 뜻에서 Sola Scriptura(오직 성경)는 신학의 전제이며, 해석의 시작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므로 하나님에 뜻에 따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성경을 성경 곧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믿음에서 유추(analogia fidei)합니다.

“신학은 믿음의 학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적, 논리적, 과학적인 것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적 논리로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공현(Epiphany)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며, 점차적으로 그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성경은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세 번째는 성령의 내적조명(testimonium spirtus sancti internum)의 방법입니다.

John Calvin은 성령의 내적조명신학이 하나님의 계시와 교통해 가는데 있어서 절대적이라고 한 것처럼, 인간의 이성과 학문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경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회복의 신학 역시 성경과 믿음 그리고 성령의 조명으로 세워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3가지의 신학연구의 방법론을 체택하여 연구하고 있습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의 설립목적 혹은 연구목적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의 목적은 성경에 나타난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여 기업의 회복을 이루는 연구와 이를 통해서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더욱 확산하기 위한 연구학회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복의 신학연구와 NYSKC 신학연구, 기업의 회복을 이루기 위한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확산하기 위한 연구학회입니다.

또한 연구목적 역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자로 세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 연구학회)는 설립을 최고센 목사님이 하셨는데 왜 학회장이나 부학회장 혹은 연구실장 같은 분을 세우셨나요? 목사님께서 연구한 학문인데 목사님께서 직접 하셔야 맞는 것이 아닐까요?

설립자와 연구자는 얼마든지 따로 있을 수 있고 다만 아디어라고 할까요 하나님이 주신 이 한 가지를 한 사람이 연구하는 것보다 더 능력있는 분들과 함께 연구한다면 더욱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뜻에서 현재 학회장님은 구약학 중에 고대 근동학을 전공하셨습니다. 구약을 하셨기 때문에 제단과 제사, 제사장과 성막, 율법과 언어 연구에 뛰어난 분이십니다. 부학장님이나 연구실장님은 신약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회복의 신학을 쉽게 받아들였고 그 뒤로 계속해서 연구하시는 분들이라 학회를 맡길 수가 있었습니다. 초대학회장이셨던 장상선 박사님 역시 신약학 전공이었습니다.

귀하신 분들이 학회를 맡아주셔서 저는 다른 사역에 전념 할 수가 있었습니다.

*세계 신학계에 이처럼 학회를 구성하고 Movement를 하고 있는 단체들이 또 있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학회는 학회로만 활동을 하고 있을 뿐 NLS(회복의 신학연구학회)처럼 학회를 넘어 신학을 신앙의 훈련으로 발전시키며 활동하는 단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회복의 신학이라는 연구 분야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그와 같은 이름의 학회도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단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학회를 세울 때는 그 뒤에 학교가 있든지 아니면 전공한 사람들로 구성을 하고 있지 회복의 신학연구학회처럼 없는 학문의 방향을 세워놓고 연구해 가는 학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NLS의 경우 현재는 NYSKC University 소속되어 있지 않고 NWM안에 소속되어 있지만 차후에는 결국 학교로 들어가게 되리라 봅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의 연구 분야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NWM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NWM은 1993년 7월25일 설립되었으며 설립목적은 Nyskc Movement(예배회복운동)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효율적으로 해나가며 또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때 이미 “회복과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상당부분 정리되어 있었고, 회복의 신학이라는 명칭을 제 나름대로 사용하고 있었던 터라 목회의 방향과 신학 연구 방향을 알리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Nyskc Movement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암9:11-15절의 말씀과 요4:23-24절의 말씀, 롬12:1-2절의 말씀, 또 히11:4절의 말씀, 창1:26-28절의 말씀 창3:21절의 말씀 등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처럼 성경중심에서 예배회복운동을 시작하게 하였고 회복의 신학을 더 연구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연구 분야는 당연히 “회복의 신학” 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따른 구원론과 성령론, 교회론을 연구합니다.

그 이유는 구원론은 생명기업의 회복을 연구하기 위함이며, 성령론은 교제기업의 회복을, 교회론은 토지기업의 회복을 연구하기 위해서 이렇게 세 가지 성경적 연구와 신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무엇보다 예배론이 아주 중요한 Subject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신앙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학문의 세계라고 생각하며, 절대적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복의 신학의 근거는 조직신학과 실천신학의 위치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목적이 “예배는 곧 회복이다”라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신앙의 모두를 합친 것과 같고, 신학을 연구하고 신학을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존귀와 영광, 찬양과 경배를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배를 조직신학적인 입장에서 조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회는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 크게 신학의 3가지의 연구 분야로 나뉘었다고 말씀드렸는데 “Theology of Restoration(회복의 신학)”, “Theology of Nyskc(Nyskcism: 나이스크 신학,” “Theology of Imputation(전가의 신학)”등이 조직신학을 중심으로 연구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분야를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다섯 개의 연구 분과로 나뉘어져 다음과 같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학적 연구 분과입니다.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신학에서 회복을 찾아 연구하는 분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학을 연구하면서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학의 모든 근원적인 것이 성경 연구입니다 그러므로 신학과 성경을 한 연구 분야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배분과로 회복과 예배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예배는 곧 회복을 위한 하나님이 주신 Tool이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 속에는 기도와 말씀, 그리고 경배와 찬양, 존귀와 영광이 함께 하므로 그 연구 분야가 매우 방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연구 분과가 있습니다. 단과 성막, 성전과 회당, 그리고 교회라는 것까지 그 범위를 두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여 부르신 공동체 곧 교회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인 것이 교회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체가 모여 교회를 이루었다고 하는 에클레시아를 연구합니다. 특히 구약에서 보는 성전과 교회, 신약에서 보는 교회와 공동체를 연구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론에 대해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신약신대의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강림 없이는 혹은 성령 충만 없이는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론은 신약적으로 하나님의 신이 함께하므로 성전에 나아가 여호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교회 그리고 성령에 대한 연구는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 하나는 교육연구 분과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교회교육 혹은 기독교교육은 회복을 위한 Method나 프로그램을 연구함에 있어 아주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은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주의 말씀 곧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배우며 또한 그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유익하게 되며 이것이 곧 회복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교육 중에 선하고 인격적이며 사회를 정직하고 아름답게 세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첫째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하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도 교육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교육연구 분과는 교회교육과 기독교교육에서 교육학자는 물론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가르침과 교육을 연구하고 교회교육에 적용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며 기독교교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들을 연구하는 분과입니다. 교회교육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교회는 물론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섯 개의 분과 곧 신학(성경)연구, 예배연구, 교회연구, 교육연구, 선교연구 분과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또 하나는 선교연구 분과입니다. Nyskc Movement는 Urban Mission의 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Backcountry Mission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Church Movement이기 때문에 도시적 선교를 도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현재까지 각 대도시를 돌며 Family Conference를 가진 것은 바로 선교 활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구원과 회복을 위한 훈련을 해 왔던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는 Nyskc의 Theme를 세우고 그 방향으로 달려 온 것이 곧 선교의 한 방법이라는 것을 말 할 수 있습니다.

선교 연구 분과는 주님께서 내리신 마지막 지상명령인 “땅 끝까지 복음을,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에게,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것을 전하라” 하신 것을 연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연구 분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린다면 1.회복의 신학 연구 2.예배회복의 성경적 연구 3.NYSKC & Nyskcism연구 4.Nyskc Movement의 연구 5.예배와 교회신학 연구 6.Nyskc 목회 사역 연구 7.예배회복을 위한 Method 연구 8.Urban Mission 연구 9.교회의 세대간의 Identity 연구 10.다중 언어의 선교적 사명 연구입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에서 진행하는 Symposium과 Forum은 각각 어떻게 다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연구원이나 회원이 모두 목회자 혹은 신학자들입니다. 그러므로 Forum의 경우는 목회자를 찾아가서 전하며 강의하는 연구모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즉 불러 모아서 하기 보다는 찾아가서 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연구한 것들을 강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Symposium의 경우는 말 그대로 학술대회입니다. 즉 학회에서 지정된 교수 및 연구원들이 연구한 것들을 발표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며 연구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여 회원 간에 정보를 교환하는 학술대회로서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만 열리고 있습니다.

또 Symposium의 경우 일 년에 일 회, 정기적으로 5월 중에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개최되어 열립니다. 하지만 Forum의 경우는 학회의 필요에 따라 시간과 장소와 위치에 상관없이 전 세계에서 열고 있습니다.

특별히 Nyskc Movement의 확산을 위한 목회자들의 강의를 감당하며 “Theology of Nyskc” 나 “Theology of Restoration”에 관련된 내용들을 주로 강의 합니다.

*회복의 신학은 “기업의 회복이다” 여기서 기업의 정확한 뜻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주신 복이 우리의 기업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기업(Inheritance)사상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라고 하면, 쉽게 떠올리는 단어가 기업체, 중소기업, 대기업 등에서 쓰는 기업이라는 말입니다.

한자로는 企業이라고 쓰고 영어로는 a company, a corporation, a business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기업(基業)이라는 단어는 “기와 산업”을 나타내는 업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基는 “터 기”라고 합니다. 이 한문은 “형성 문자”에 속합니다. 형성 문자란 뜻을 나타내는 부수에 음을 나타내는 부분이 합해져서 새로운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 글자는 뜻을 나타내는 “흙 토” (土 = 흙)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기(其)가 합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음을 나타내는 其(기)는 벼를 까부르는 키의 모양과 그것을 놓는 대(臺)의 모양을 합하여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이 글자에 있는 “흙 土”는 흙으로 땅을 높이고 굳혀서 집터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터 기” (基)는 흙으로 땅을 높이고, 굳혀서 집터를 만들고 토담을 쌓아서 집의 토대(土臺)를 만든다는 뜻이 됩니다.

이처럼 “터 기”가 토지나 집 등의 부동산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기업의 업(業)이라는 글자는 직업이나 일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업이라고 하면 “대대(代代)로 이어 오는 재산(財産)과 사업(事業)”을 의미합니다.

기업이라는 말을 영어로는 an inheritance 혹은 a heritage라고 씁니다. 영어로도 이 단어는 부모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의 기업(The inheritance in the Old Testament), (분깃 혹은 선물 등의 단어도 있음, 아후자, 'achuzzah)이라는 단어는 “부모나 근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사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기업을 연구하면 그것은 창세기1:26-28에서 하나님이 주신 복이 그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 기업이 되어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는 의미에서 유업(inheritance) 혹은 유산(heritage) 곧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에게 복을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사람이 지음을 받을 때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창2:7-8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창5: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사람에게 주신 복은 어떤 복입니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남자와 여자로, 사람이 된 것이 복입니다.

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된 것이 복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복입니다.

즉 사람이 받은 복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졌기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는 토지의 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흙으로 지어진 존재가 생명이 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받은 복은 생명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복이 사람의 기업(Inheritance)이 된 것입니다.

레위기서를 보면, “토지를 영영이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매각하거나 소유권을 타인에게 영구히 이전하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땅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근본적으로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나그네로, 우거하는 자로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산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으로 볼 때 우리의 기업은 토지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기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 이 땅 위에 거하고, 함께 살고, 동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도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었습니다.

그래서 희년이 되면 묶였던 자가 해방되어 진정한 사람이 되고, 그리하여 그 사람이 자기 땅에 돌아옴으로서 진정한 자유, 즉 신분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동시에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기업과 분깃으로 삼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의 기업의 의미는(The inheritance in the New Testament)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신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눅4:18-19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구약의 희년이 자유의 해요, 해방의 해요, 은혜의 해였던 것처럼, 이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to proclaim the favorable year of the LORD)고 하셨던 것입니다(눅 4:19).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해방되어 원 주인인 하나님 안으로 돌아가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사시고, 대속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이 된 우리는 하나님의 영토 즉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롬8:16-18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엡1:10-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also we have obtained an inheritance, having been predestined according to His purpose who works all things after the counsel of His will)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라고 번역되었지만 NASB는 "we have obtained an inheritance" (우리가 기업을 얻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어 성경에는 The Interlinear Literal Translation of the Greek New Testament는 "We were chosen as [his] inheritance" (우리는 그의 기업으로 선택되어졌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들 중에서도 예루살렘 바이블은 "we were claimed as God's own" (우리는 하나님의 친히 소유하신 존재들로 선언되었다)라고 하였고, Holman Christian Standard Bible도 "we were also made His inheritance" (우리는 또한 그의 기업이 되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그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만들어 주시는 분, 바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는 자”이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인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고, 천국을 기업으로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에 우리에게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려고 예정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엡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to the end that we who were the first to hope in Christ would be to the praise of His glory.)

하나님께서 가지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 혹은 찬양 그 자체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업을 상실했다고 하는 것은 받은 복을 잃었다는 뜻인데 여기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다 지으시는 동안 기뻐하셨고 그 중 사람을 지으시고는 “심히 기뻐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 해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심히 기뻐하며 지으신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업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신 복입니다.

하지만 받은 복 곧 기업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신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창3:1-6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결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창3:6-1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창3:10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였고 창3: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고 말씀 하셨고, 창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으며, 토지가 저주를 받게 되었고,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주신 복이요 기업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곧 그것이 죄를 얻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하여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었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덩굴과 엉겅퀴 내게 되었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나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복을 잃어버렸으니 그 하나는 생명기업을 잃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기업을 잃었고, 또 하나는 토지기업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회복의 신학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를 회복시킬 하나님의 방법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은 상실한 것을 어떻게 회복 할 것인가 하는 것도 우리에게 예표로 보여주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여자의 후손” 그리고 “가죽 옷”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여자의 후손이 본질이라면 가죽 옷은 여자의 후손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데 그 사역으로는 그의 가죽 옷을 우리에게 입혀 주심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도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교제 곧 교통을 이룰 수 있으며 토지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회복의 신학은 “성경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여자의 후손, 가죽 옷”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은 예수그리스도시며 가죽 옷은 대속의 제물 혹은 화목의 제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사건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결국은 우리의 구원자요, 회복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신 하나님입니다.

가죽옷은 동물을 죽여 그 가죽을 벗겼을 때만 얻어지는 것으로 가죽옷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것은 창세기 4:3-5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벨이 동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은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동물로 제사를 드렸다는 증거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벨이 동물로 드리는 것을 어디서 배웠겠는가 하는 것과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보더라도 가인이 드린 제사는 자기 마음대로 드린 제사였다면 아벨은 그동안 아담과 하와가 드린 제사를 하나님이 열납 하시는 것을 보고 그대로 드린 제사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가죽옷의 사건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예배의 모형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회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도구는 예배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구속사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잘 알다시피 한국에만 유일하게 극단적으로 구원만을 주장하는 일명 구원파라는 이상한 NonChristian 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보아도 구원파라고 하는 무리들을 찾아보기가 힘든데 그 이유는 성경에는 우리가 구원만 받으면 다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만을 신앙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구원 곧 생명만 얻으면 마치 신앙생활을 다 한 것 같은 착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 곧 생명기업의 회복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 하나로 다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과의 단절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교통, 혹은 교제라는 말은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것을 넘어 “Communion” 즉 “하나 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 분과 하나가 되려면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거룩하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을 구원받은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교제가 회복되어야 하며 주님 안에 내가, 주님이 내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백성이 되었으면 교통도 이루어져야 하고 이 땅에서의 삶도 주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즉 구원 받은 자의 행위라고 할까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처럼 크리스챤이라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구속사”에서 구속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코페르”에서 온 말로 “덮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의 죄나 허물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고발하고, 심판하시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인류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성경의 주제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로 보는 것을 “구속사적 성경해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를 관리하고 경영하시는 “경륜” 또한 구속사적으로 볼 때 “구속 경륜” 또는 “구속사적 경륜”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구속은 해방과 같은 뜻으로 죄의 속박에서 죄 값을 주고 풀려나 자유롭게 되는 구원을 뜻합니다. 성경상의 죄는 먼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원죄로 이는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죄가 유전되어 원죄를 안고 태어나므로 죄인이요, 그렇게 죄인이기에 세상 가운데서 죄를 짓게 되는 자범죄를 가지게 되므로 인간 스스로는 결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죄 값을 대신 치루는 대속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자격자는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이며 사람으로서 죄가 없어야 죄인 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죄를 속하기 위해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한 것이 바로 구속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구속사라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 역사를 말합니다.

성경을 볼 때 예수 구속사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대속이 예언되고 계시된 것이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로 오실 것을 말씀하시고 그 말씀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종말까지 이어지는 것을 구속사라고 합니다.

다시 정의해볼 때 구속사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구약의 수많은 선지선열을 통해 여자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준비하시고,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십자가를 통하여 구속하시고, 잃어버렸던 생명의 구원을 위해 인류와 만물이 새롭게 되기까지 계속적으로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사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보혈을 흘려주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잃었던 생명을 찾았다고 말할 때 그것이 단지 생명뿐이겠습니까? 구원과 동시에 모든 것이 회복되었겠지요.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구원이 오직 잃었던 생명만 다시 찾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회복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들이 잃은 것이 비단 생명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토지기업의 회복도 중요한 것임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회복은 서로 같이 가는 뜻이기도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신학적 연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복 곧 기업을 상실한 뒤에 그 잃은 것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회복의 역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원자요, 회복자로 보는 것이 회복의 신학입니다. 즉 회복을 위해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가, 가죽 옷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회복을 이루어 가시며 그로 인하여 구약에서는 우리에게 회복의 도구인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로 우리에게 표현해 주셨고 신약에서는 화목제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하며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신학의 핵심 단어는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 곧 기업”, “여자의 후손과 가죽 옷”, “예배와 예물”, “회복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아 회복할 수 있도록 예배를 가르쳐 주셨으므로 ”예배는 회복을 위한 도구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복의 신학에서의 핵심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신학적으로 말할 때는 회복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며 회복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주제로 삼을지라도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면서 예수님을 중심으로 혹은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말하고 신학을 말하는 것이 회복의 신학입니다.

절기의 모든 주인은 예수님이신 것처럼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최고의 가치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고 발표하며 그 안에서 주장하는 것도 다 예수님입니다.

한국에서 성막을 가장 오랫동안 연구하신 목사님의 글을 보면 “성경은 예수다” 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전적으로 “아멘!”합니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회복의 신학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기업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복, 곧 생명과 교제와 토지기업의 회복이 핵심가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회복을 “본질로서의 접근 곧 변화”라고 말씀 하셨는데 여기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따라서 종교개혁의 핵심은 “Back to the Bible” 곧 Diaphora로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과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한다면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려고 해도 성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신학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계시라고 말합니다, 물론 자연계시도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방법인데 사람마다 그 느낌과 생각이 다 다르므로 불확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는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므로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아니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태초의 근원이요, 창조의 시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기 때문에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본질로의 접근”(approach the of essence)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신학을 연구하거나 혹은 신앙을 세우고 성숙시킴에 있어 성경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본질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성경으로 돌아가자”며 Reformation을 주장했습니다.

Luther는 “성경을 보고 종교개혁의 동기”를 얻어 종교개혁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추구하는 개혁교회는 “Diaphora로 접근하자”고 말합니다.

*회복의 신학에서 쓰고 있는 몇 가지 약자, 예를 들어 4R, NYSKC, ICRDPM 등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회복을 의미하는 “NYSKCISM”이라는 사상입니다.

철학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5대 강령 혹은 5대 신조, 곧 NYSKC라고 말하고 이것을 사상으로 또한 행동 강령으로 삼고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을 NYSKCISM 으로 무장된 Nyskcian 이라고 말합니다.

N은 NEW LIFE(영혼의 호흡) 곧 새벽기도라고 부릅니다.

Y은 YIELDING FOR MANNA(영혼의 양식) 곧 성경애독이라고 부릅니다.

S는 SALVATION FOR ONE BY ONE(성도의 열매) 곧 개인전도라고 부릅니다.

K는 KEEPING FOR LORD’S DAY(성령의 교통) 곧 성수주일이라고 부릅니다.

C는 COMPLETE OFFERING(축복의 도리) 곧 일조전납이라고 부릅니다.

NYSKCISM에는 회복의 사상 4R(reform, restoration, recovery, redemption,)과 신앙의 5대 신조 그리고 강령이 보여준 것처럼 “본질로 접근” (essence approach)이라는 진행형 곧 “변화되어 간다” (Transformation)라는 과정이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암9:11-15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회복을 이루는 6가지를 ICRDPM이라고 합니다.

I 는 (in that day) 곧 “그 날에”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C 는 (close up) 곧 “그 틈을 막으라” 세속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라는 사상을 말합니다.

R 은 (raise up) 곧 “일으키라” 퇴락한 것을 일으키라는 사상입니다.

D 는 (Develop) 곧 “건축하라” 황무한 성읍을 건축하는 사상입니다.

P 는 (plant) 곧 “심으라” 심고, 뿌린다는 사상입니다.

M 은 (make) 곧 “만들라” 만들어간다는 사상입니다.

이 6개의 사상은 사실은 4R에 포함된 하나의 사상입니다 다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이번에는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구속사는 “성경은 대속이라는 관점”이고 회복사는 “성경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보면 되겠군요.

“성경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한다면 “성경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라고 같이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구속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회복사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원은 생명”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잘못 적용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생명을 구원받으면 교제나 토지도 다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생명이 없는데 교제나 토지가 무슨 필요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명은 이 땅에서 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교제와 토지의 회복은 지상과 천국을 동시에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사는 생명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속사를 주장하는 신학자와 회복의 신학은 서로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단지 하나는 구원, 하나는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성경에 접근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며 또한 회복의 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 받은 복은 세 가지요, 잃은 것이 세 가지 곧 생명과 교제와 토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 해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데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세 가지 곧 생명, 교제, 토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고, 그것을 잃어버렸고,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셨고 그분이 우리의 회복을 위해 가죽 옷이 되어 주셨으며 그 가죽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제사 곧 예배를 회복의 도구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회복의 신학을 연구하시면서 “예배가 회복의 도구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예배의 사전적 의미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배(Worship)라는 말은 “가치(Worth)있는 지위”(신분, Ship)에게 적절한 영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오직 창조주이시며 구속주 되신 하나님께만 그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96:8에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라고 하였고 이를 기초로 Covenant Seminary의 레이번 교수는 “예배는 진실로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와 존귀와 찬송과 사랑과 복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으로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수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 대상이 확실하며, 예배를 드려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약속을 변개하고 식언하는 불완전한 인간이나(민23:19) 혹은 아무 이성도 없는 짐승 또는 밝혀지지 않은 어떤 외계적 존재는 결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사람을 친히 그 형상대로 빚으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그 예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송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당연한 창조 질서이자 법칙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은 사람 된 그 존재적 의미를 바로 찾는 것이요, 창조주의 그 창조 목적을 바로 실현하는 것이며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고 하셨고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150:6)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배 용어들을 보면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곁에 나타났을 때 아브라함이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영접한다”(창18:2), “욥이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욥1:20) 등에서 사용되어진 “샤하이(Shahai)”라는 단어로 “굴복하다”, “머리를 숙이다”, “엎드리다”는 뜻으로 구약성경에만 무려 120회 이상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무릎을 꿇고 엎드리는 행위를 나타냄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섬긴다는 뜻의 “아바드(Abad)"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예배가 단순히 어떤 예식이 아닌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에베드)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곧 예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말은 ”봉사한다“, ”섬긴다“라는 뜻이며, 이런 의미에서 유대인의 종교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 일관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배를 의미하는 용어는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프로스퀴네오(Proskuneo)”라는 단어인데 신약 성경에 약 60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고 하신 말씀과, 예수께서 수가성의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고 말씀하실 때에 사용된 용어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뜻은 “무릎 꿇다”, “허리를 굽힌다” 등으로 존경을 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라트레이아(Latreia)”인데 이는 예수님께서“...다만 그 분만 섬기라”고 말씀하시며 유혹하는 사단을 향해 최종 선언을 하실 때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종으로서 자신의 상전만을 섬겨야 할 신분”을 나타냅니다.

셋째로는 “레이투르기아(Leitourgia)”로 이는 일반적으로 예전과 의식에 관계되며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섬기고(빌2:30), 예루살렘 교회에 연보로 섬기는 일(고후9:12),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 구제하는 일(롬15:16,27) 등이 바로 “레이투르기아”로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봉사(奉事)를 뜻합니다.

넷째는 “호모로기아(Homologia)”인데, 이는 죄의 고백과 찬양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가운데 시인(Confess)이 이에 해당됩니다.

또한 교회적 예배의 용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며 보편적인 교회적용어를 살펴보면 우선

“예배(Worship)”라는 말은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의와 권위를 인정할 때 사용되는 이 말은 영국에서 시장(市長)을 호칭할 때 “Your Worship", 미국에서는 ”Your Honour"등으로 쓰이는 것을 통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이 종교적 용어로 예배를 지칭할 때는 바로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대한 경의와 권위가 함축되는 것입니다.

종교의식을 나타내는 용어 “컬트(Cult)”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떤 것을 숭배한다”는 의미와 이교적 배경의 주술적 요소가 내포됩니다. 이 말이 기독교에서 사용되었을 때는 거의 외형적 예배 의식을 나타내며, 주로 로마 카톨릭의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를 번역하면 “제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종교 의식뿐 아니라 심지어 이단 종파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워십”에 비해 “컬트”는 정형화된 어떤 틀과 형식을 생각게 합니다.

또한 예전적 의미를 가리키는 용어 “리터-얼지(Liturgy)”는 대부분이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치뤄져야 할 하나의 행사를 가리킵니다. 세례식, 성찬식 등의 어떤 예식을 가리킬 때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보다 넓은 의미로는 예배의 모든 것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