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흙 속을 '진무(塵霧)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흙이란 고난, 좌절, 한계상황, 숙명을 상징한다.
씨앗은 이 흙 속에 들어가야만 싹이 나고, 입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땅속에 들어가서 암흑과 습기와 절망과 죽음과 지옥 그리고 썩음, 이것을 거처 나오는 것이 싹이고 잎이며 꽃이고 열매이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듯 사람은 하늘에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은 "하나님 가슴에 안겨야"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씨앗도 열매를 맺기까지 일곱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이 과정은 철학적 용법으로는 소아(한 알의 밀)가 무아(땅에 떨어져 죽은 상태)가 되고 마침내 대아(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과제는 어떻게 '소아'가 '대아'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소아가 대아로 되는 상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무아'에 이르는 길을 기독교는 십자가로 상징한다. 즉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곧 무아요, 십자가이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이 바로 다시 사는 것(New Birth)이다.
모든 인간의 삶 중에서 첫째가는 문제는 우리 자아에 관한 문제이다.
"내가 어떻게 하면 참 내가 되느냐?"
내가 가짜의 나를 잊고 진짜의 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키엘케고르는 "나는 '있다'가 아닌 '없다' 즉 대아"라고 설파했다.
대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이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빨리 '내 중심적인 것을 죽이느냐', '자기를 제어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나 가정생활, 사회생활에서나 우리의 삶이 소아에서 대아로 이르러야 비로서 나도 살고 가정도, 섬기는 교회도, 국가도 살 수 있다는 이 진리를 겸손히 받아 드릴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