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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시작(시간)

1. 구약에서 하루의 시작 시간


구약에서 하루의 시작은 저녁(히브리어:에레브)부터이다. "에레브"는 해가 완전히 지기 직전의 시간들로서 하루를 종결하는 마지막 시간이다. 구약 성경에서 "저녁", "해질 때", "저물 때" 등으로 번역되었다. "에레브"의 시간 영역 중의 최고점은 해가 서산으로 점점 기울어지다가 완전히 해가 넘어가는 해질 때의 시간으로, 이는 하루가 끝나면서(낮이 끝나고) 다음날이 시작되는(밤이 시작되는) 구분점이 된다. 그러므로 하루가 끝날 때와 하루가 시작 될 때 즉 분기점을 나타내는 단어가 "에레브"이다(창 1:5; 출 12:18; 레 23:32). 이 때에 "에레브"는 낮의 연장 선상에 있는 하루의 종결점을 나타내기 때문에, 새로 오는 날이 아니라 그 날 자체에 포함된다.


1) "에레브"가 사용된 예들 창 1: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 라".


출 12:8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 을 것이요." 레 23:32 "이는 너희의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구일 저 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2. 구약에서 날과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들


1) "두 저녁들 사이"(히브리어: 벤 하아르바임) 출 12:16의 "이달 십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 을 잡고"에서의 "해질 때"는 히브리어로 "벤 하아르바임"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 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둘 사이를 뜻하는 전치사 "벤"과 저녁을 나타내는 명사 "에레브"와 복수를 나타내는 "임"의 합성어이다. 유월절을 나타내는 레 23:5의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와 민 9:3, 5의 "그 정기 곧 이달 십사일 해질 때에 너희는 그것을 지키되 그 모든 율례와 그 모든 규례대로 지킬지니라, 그들이 정월 십사일 해질 때에 시내 광야 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다 좇아 행하였더라"에서 언급된 "십사일 저녁"과 "십사일 해질 때"도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 다.


이 단어는 모세 오경에서 출애굽 사건과 함께 일관성 있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유월절 양잡는 시간과 조석으로 드리는 상번제 중 저녁 제사를 드리는 시간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 다. 출 29:38~46과 민 28:4에는 아침과 저녁 제사 드리는 상번제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출 29:39의 "저녁 때"와 민 28:4의 "해질 때"가 모두 "벤 하아르바임"이다. 이미 알려 진대로 상번제의 아침 제사 시간은 오전 9시이고 저녁 제사 시간은 오후 3시이다. 그러므로 "벤 하아르바임", 즉 유월절 양을 잡는 시간은 오후 3시이다. 히브리 문화에는 두 종류의 저녁이 있다. 첫째는 해가 최고로 떴다가 기울어지는 시간 즉 정오인 낮 12시부터 시작하는 첫번째 저녁이다. 둘째는 해가 기울어져서 완전히 지는 시간(오후 6시, 계절에 따 라 차이가 있음)에 두번째 저녁이 있다. 그러나 "두 저녁 사이"라고 했을 때 오후 3시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출 12장의 유월절 어린양 잡는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표상이며 그림 자였다. 신약 성경을 보면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표상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에서 정확히 성취되었다. 막 15:25~37에는 십자가 사건들이 시간과 함께 설명 되었다. 예수께서 운명하신 시간이 제9시 곧 유월절 어린양이 제물로 드려지는 시간이었다. 이것은 유월절 어린양이 가지고 있던 표상적 의미가 시간까지 정확 하게 성취되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또한 마 27:46~51을 보면 주께서 십자 가에서 운명하신 시간은 저녁 제사 드릴 시간으로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저녁 제 물로 드릴 어린양을 잡으려 하는 순간이었다. 그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면서 양을 잡으려고 하던 칼은 제사장 손에서 떨어지고 양은 도망갔다. 이제 더 이상 양을 잡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표상이 실체로 성취되었다.


2) 구약에서의 "에레브"(저녁)와 "라옐라" 혹은 "라일"(밤, 어두움) "에레브"는 위에서 이미 설명하였다. "에레브"는 구약 성경에서 131회 사용 되었다. 우리말 성경은 "저녁, 저물 때, 저물매, 저물도록" 등으로 번역되었다. 일 반적으로 저녁과 밤을 구분 없이 같은 시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12장에서는 동일한 유월절 사건을 기록하면서, 8절의 밤은 "라옐라"로, 18절의 저녁은 "에레브"로 각각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라옐라"와 "에레브"는 각각 다른 시간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목전 에 둔 위급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통일시키고 혼란을 방지하 기 위해 각 의식들을 집행할 시간들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또한 이 시간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에게서 성취될 표상이기 때문에 철저한 구분이 필요하였다. 출 애굽기 12장에는 양을 준비하는 방법과 시간, 양을 잡는 방법과 시간, 양 고기를 먹는 방법과 시간들이 철저하게 세분화되었다. "벤 하아르바임"은 해가 최고로 떴다가 기울어지는 시간인 첫 저녁과, 해가 서 산에 완전히 지는 시간인 두번째 저녁 사이를 가리키며 그 시간의 폭이 넓고 유동적이다. "라옐라"는 해가 완전히 져서 캄캄한 밤의 상태, 즉 어두움의 상태로서 실제의 하루의 시작 은 밤의 첫부분부터("에레브"가 지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저녁이라 하면 캄캄한 밤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에레브"와 "라옐라"는 결코 같은 시간이 아니며 각자 공유될 수 없는 다른 시간 영역들을 뚜렷하게 나타낸다. 만약 "벤 하아르바임"이나 "에레브"나 "라옐라"가 모두 특 정한 시간이 아니요 밤을 나타내는 동일한 시간을 가리킨다면 절기나 제사, 안 식일을 지키는 데 많은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성경은 혼란을 막기 위하여 각 각의 시간들을 구분하는 서로 다른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원어에 대한 이 해 없이 단순히 한국적 사고 방식으로 저녁이나 밤 시간들을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생긴다.


3) "에레브"(저녁)와 안식일 구약에서 하루의 시작을 "저녁부터"(에레브)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로 안식일을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왜 안식일의 시작을 지시해 주는 시간을 "에레 브"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지시하였는가? 성경은 안식일을 경황 중에 맞지 않도 록 미리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래서 안식일 전날을 "예비일"이라고 하였다.


"에레브"는 하루의 마지막 시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날을 예비하는 시간이기 도 하다. 사실상 안식일은 해가 진 후에 시작되지만 하나님께서 해가 지기 직전 "에레브" 때부터 안식일을 지키도록 지시함으로 안식일을 예비할 뿐 아니라 안식일을 범하지 않도록 하신 것이다. 레 23:32의 "9일 저녁부터"라는 표현은 지 금의 8일 밤부터가 아니라, 10일의 대속죄일이 시작 되기 직전인 "9일 에레브 때 부터"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에레브"의 의미만 알게 되면 레 23:32을 해석하 는 데 아무 문제도 없게 된다.


3. 신약에서 하루의 시작 시간


1) 헬라어 "옵시아스"와 "눅스( )"의 의미


신약에서 "옵시아스"는 모두 15번 사용되었다. 우리말로는 "저녁, 저물매, 저 물 때, 저물어 해질 때" 등으로 번역되었다. "옵시아스"는 구약의 "에레브"와 동 일한 시간 영역이다. 요 20:19의 "저녁 때"는 해가 지기 전 오후 시간이지 밤이 아니다. 요 20:19 의 "안식 후 첫날 저녁 때"는 지금의 토요일 저녁이 아니라 일요일 저녁(오후) 을 가리킨다.


(1) "옵시아스"가 사용된 예


마 27:57의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막 15:42-43의 "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위의 두 기사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확인된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 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가기를 요청하였는데 이 때를 마태는 "저물었을 때"(옵시아스)라고 했다. 예수께서 금요일 오후 3시에 유월절 어린양으로 그리 고 저녁 제물로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요셉이 온 때는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이 때를 "저녁" 혹은 "저 물었을 때"라고 하였다. 눅 23:50~56에 보면 요셉은 안식일 직전에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가…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저녁, 저물었을 때(옵시아스)"는 주께서 운명 하신 오후 3시부터 해가 져서 다음 날이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시간이다.


(2) "옵시아스"의 또 다른 용례


마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 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 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막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 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 겠다 하고." 막 4: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 시니."


위의 성경절들은 해지기 전 시간들임을 말한다. 마 20:8의 저물매는 "옵시아 스"가 사용되었고, 하루가 저물기 시작하자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 품삯을 지불했 다. 제11시(지금의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은 마 20:12에서 한 시간 만 일하였다. 이 날의 일이 제12시(지금의 오후 6시)에 끝났음을 증거한다. 막 11:11에는 주께서 성전을 둘러보시고 나 온 때가 해지기 전 오후 시간들임을 알 수 있다(시대의 소망 3권 15). 마 16:2는 오후 늦은 황혼의 시간이다. 밤에는 하늘의 붉은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막 4:35은 시대의 소망 2권 59~61쪽을 보면 해가 지기 전 아직 밝은 초저녁 때 즉 황혼의 시간임 을 알 수 있다.


(3) 하루의 시작은 일몰부터


마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 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막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위의 기록은 동일한 사건의 기록이다. 이 사건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귀신 들린 자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한 후의 사건이다(눅 4:31~40). 여기에서 같은 시간을 "저 물매"(마 8:16), "저물어 해질 때에"(막 1:32), "해질 적에"(눅 4:40)라고 표현하였다. 그러 면 마 8:16과 막 1:32에 나온 "저물매, 저물어(옵시아스)"는 어떤 시간을 가리키는가? 이것 은 막 1:32의 "해질 때"와 눅 4:40의 "해질 적"의 시간을 알면 된다. 이 두 가지 표현은 헬라어로 "헬리오스 뒤노"이다. 여기서 "헬리오스"는 태양을, "뒤노"는 "가라 앉다, 빠지다, 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헬리오스 뒤노"는 문자 그대로 " 해질 때" 혹은 "해질 적"이다. 이것은 낮과 밤의 분기점을 말한다. 이 때는 하루의 마지막을 나타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옵시아스"가 날과 날의 분기점을 나타내는 시간으로 사용될 때는 새 날을 시작하는 하루의 첫 시간이 아니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엘렌 화잇의 글에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백성들은 랍비들을 두려워하여 안식일에는 감 히 치료를 받기 위하여 나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기가 무섭게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가정에서, 가게에서, 시장에서, 동네 주민들이 예수께서 쉬고 계시는 보잘 것 없는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시대의 소망 1권, 236. 1994년 개정판).


(4) 저녁과 밤의 구분


마 14:15, 23, 2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 으니 무리를 보 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먹게 하소서,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 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 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 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마 14:13~32과 막 6:34~52과 요 6:1~21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분명한 시간적 차이들이 나타나 있다. 첫번째는 제자들이 예수께 무리들을 마을에 보내어 저녁을 사먹게 하자고 건의한 때인데, 이 때는 "저녁이 되"(마 14:15)었을 때였다. 두번째는 오병이어 사건 후 예수께서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이 때는 "저물" 때(마 14:23)였다. 세번째는 예수께서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 고투하고 있을 때 물 위로 걸어오신 때로, 이 때는 "밤 사경"(마 14:25)이었다. 이 사건에서 제자들이 식사를 위해 건의할 때를 나타내는 "저녁"(마 14:15) 과 예수께서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신 때를 나타내는 "저물매"(마 14:23)는 헬라어로 "옵 시아스"가 사용되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신 때를 나타내는 "밤"은 헬라어로 "눅스"이다. 그러므로 "저녁, 저물 때"는 해지기 전의 하루의 마지막 시간들을 나타내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5) 저녁과 밤에 대한 구분의 예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막 14:17 "저물매 그 열 둘을 데리시고 와서."


여기서 "저물 때"(마 26:20)는 헬라어 "옵시아스"이다. 또한 최후의 만찬이 있은 목요일 밤에 일어난 사건 중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날 것과 (마 26:31)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에(마 26:34) 대한 예언이 있다. 주께서 이 모든 일이 "오늘 밤"(마 26:31, 34)에 있을 것으로 예언하였다. 여기 에서 "밤"은 헬라어로 "눅스"이다. 이 예언들을 마 26:20~35절과 평행 구절인 다른 복음서들(막 14:17~31; 눅 22:14~38; 요 13:1 ~38)과 대조해 보면 예수께서 제자 들과 감람산으로 떠나시기 전(마 26:30) 계속해서 유월절 만찬을 먹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동일한 시간을 나타내지 않기 때문에 "옵시 아스"와 "눅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그 시간들이 서로 다른 시간들임을 증명해 주는 것 이다. 구약의 "에레브"와 "라옐라", 신약의 "옵시아스"와 "눅스"가 사용된 예들을 볼 때 해지기 전과 해질 때를 나타내는 저녁과 해진 후를 나타내 는 밤을 매우 정확하게 구별하여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요한복음 20장 19절의 "저녁 때"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 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요 20:1) 하셨다. 요 20:19의 "저녁 때"는 어떤 시간들을 나타내고 있 는가? 제자들이 문을 닫자마자 즉시 예수께서 들어오셨는지 아니면 얼마간의 시 간이 지난 후에 들어오셨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요한복음 20장 19절을 공동번 역과 현대인의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공동번역>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 아 걸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기를’하고 인사하셨다."<현대인의 성경> "그 날 저녁 곧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무서워 문들 을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서 '다들 잘 있 었느냐' 하셨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볼 때는 제자들이 문을 닫은 시간과 예수께서 나타나신 시간 사이에 간격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두 번역은 문을 닫은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있을 때 이미 나머지 열한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닫고 다락방에 모여 있었다. 엠마오에 도착한 두 제자가 축사하신 후에 떡을 떼 어 주실 때 예수신 줄 알았으나 이미 예수님은 사라지신 다음이었다. 두 제자는 그시로 일 어나 예수께서 부활하신 기쁜 소식을 다른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예 루살렘으로 돌아가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예수의 살아나심을 전한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다락방의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신 다(눅 24:13~36). 엘렌 화잇은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으며 그들이 들어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한 분이 저희와 함께 들어가셨다"(시대의 소망 3권, 354)고 하였다. 눅 24장과 요 20:19을 비교하여 볼 때 제자들이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은 시간과 예수님이 다락방에 들어가신 시간은 동시 사건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요 20:19에서 제자들이 문을 닫은 "저녁 때"는 해진 후의 밤이 아 니라 해지기 전의 오후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다락방에 나타 나신 때는 해가 지고 난 후 밤이었다. 그러므로 "저녁 때"로 번역된 헬라어 "옵시아스"는 해진 후 밤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해지기 전 오후 시간들을 가리키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일몰설


하루의 시작을 일출설로 믿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마 28:1의 "안식일이 다하 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라는 구절을 제시한다. 그 이유는 "안식일이 다하 여 가고 안식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은 문자 그대로 안식일이 끝마쳐 가고 첫날이 되기 전 의 미명(날이 밝기 전 새벽)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면 그들은 하루의 시작이 해뜨기 전의 미명 다음에 오는 시간, 즉 해뜬 후부터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막 16:2, 9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해돋은 때"(막16:2),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라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1)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시간


마 28:1~6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 리아가 무덤을 보 려고 왔더니…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 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막 16:2~6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 니 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눅 24:1~6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여기 계시지 않고 살 아나셨느니라." 요 20:1~9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여기에서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마 28:1)라는 한글 개역 성경의 표현을 볼 때 하루가 미명(새벽)이 지나고 해가 뜬 후부터 시 작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면 마 28:1 이하의 사건은 분명히 첫째 날 이 아니라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 즉 첫날이 되려는(되기 전) 미명(새벽)에 일어 난 것이 된다. 성경은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즉 주일 중 첫째 날에 부활하셨 다고 말한다. 만약 마 28:1을 일출설 근거로 삼게 되면 예수님은 첫날이 되려는 (되기 전) 미명에 부활하신 것이 되어, 즉 안식일에 부활하신 것이 된다. 이러한 주장은 결 정적인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되는 마 28:1의 표현은 어떤 의미인가?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때에 대하여 마가, 누가, 요한은 "안식후 첫날"이라고 말한 반면에 마태는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로 기록했다. 우리말 표현으로 볼 때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는 안식일이 끝나려는 때, 즉 아직도 안식일이 계속되고 있고 아직 첫날이 시작되지 않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사복음서가 서로 맞지 않아 모순이 된다. 마 28:1의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에 대한 헬라어는 "옵세 데 사바톤"이다. 여 기에서 "옵세데"는 일반적인 시간 지시사로서 "이제 ~후에"라는 뜻이다. 그리고 "사바톤"은 "안식일"이다. 이를 정확히 해석하면 "이제 안식일이 (완전히) 지난 후에"이 다. 그러므로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안식일이 지나고"로 번역했고, 현대인의 성경은 "안식 일 다음 날"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원문 "옵세 데 샤바톤"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을 가리키 기 때문에 다른 세 복음서와 정확히 일치된다. 우리말 성경에서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서 문제가 된 "되려는"이라 는 단어가 헬라어 본문에는 없다. "되려는"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전치사에 "에이 스"로 그 뜻이 "~에로", "~로 향하여" 가는 것을 뜻한다. 미명은 헬라어로 “에피포스 코"인데 "날이 새다, 날이 밝아 오다, 빛이 비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새번역 은 "주간 첫날 동틀 무렵"으로, 공동 번역은"(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으로 각각 번역했다. 이상에서 볼 때 마 28:1의 한글 개역 성경은 번역이 잘못된 것이며, 이 사건은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 새벽에, 다시 말하면 해 뜨기 전 날이 새려고 할 때에 일어난 것임 을 알 수 있다. 이 때에 관하여 누가는 "새벽"으로, 요한은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라 하여 예수님의 부활과 여인들이 무덤에 간 사건이 모두 해 뜨기 전에 일어난 사건임을 밝히 고 있다.


마 28:1과 막 16:2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장면이 아니고 여인들이 무덤에 간 시간들과 관련된 성경절들이다. 이 때는 예수께서 이미 부활하시고 난 후로 무 덤에 계시지 않으셨다. 마 28:1의 "미명", 막 16:2의 "해돋은 때", 눅 24:1의 "새벽", "요 20:1"의 "어두울 때"는 모두 동일한 시간을 가리키는데, 이 시간 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시간이 아니라 여인들이 무덤에 온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전에 있었다.


막 16:2에는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간 때가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라고 했 다. 우리말 표현으로 볼 때 이 때는 다른 세 복음서의 시간과 다르게 느껴진다. "해 돋은 때"에 대한 헬라어는 "아나테일란토스 투 헬리우"이다. 여기서 "돋은" 에 해당되는 단어는 "아나텔로"로 그 뜻은 "나오다, 떠오르다"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해석은 "해 돋은 때"이기 보다는 "해 돋는(떠오르는) 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새 번역은 "해 돋을 때"로 번역했다.


그러면 "해 돋을 때"는 언제쯤인가? 이것을 알기 위해 "매우 일찌기"라는 헬 라어를 살펴 보아야 한다. "매우 일찌기"는 헬라어로 "리안 프로이"인데 "프로 이"는 "프로"에서 파생한 것으로 "전"(前) 시간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대 인 어법상 보통 6시 이전의 "아직 어두울 때"와 똑 같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해 돋은 때"는 당연히 해뜨기 전 아직 어두울 때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렇 게 되면 사복음서에 기록된 시간들은 모두 일치하게 된다. 막 16:2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시간에 관한 것이 아니요, 여인들이 무덤에 간 시간이며, 예수께서 여인들이 오기 전 이미 부활하셨다. 여기에 대하여 엘렌 화잇은 "동이 트기 바로 직 전 가장 어두운 시간"에 부활하셨다고 하였다(시대의 소망 합본, 617). (목양자, 1994년. 7, 8월호. "일몰설에 관한 고찰", 13~30쪽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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