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고린도후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전에 보냈던 다른 서신(고린도전서)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은 그 서신에서 어떤 문제로 인하여 고린도 교인들을 크게 책망했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 서신이 그들을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였는데,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회개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를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에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죄와 관련하여 두 종류의 근심에 관해 말한다. 하나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근심이요, 또 하나는 사망을 이루는 근심이다. 또한 이 두 종류의 회개가 일반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도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참된 회개와 거짓 회개"이다. 이 주제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려 한다.
1.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
2. 참된 회개의 행위와 그 결과는 무엇인가?
3. 거짓되고 위선적인 회개는 어떤 것인가?
4. 거짓되고 위선적인 회개를 어떻게 식별하는가?
지금은 우리 신앙고백자들이 신앙을 주제로 하는 여러 가지 훈련의 본질과 특성의 진위를 철저히 가려야 할 때이다. 그렇게 해야 교회에 거짓되고 무익한 신앙고백자들이 들끓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오늘날 왜 그처럼 많은 위선적인 신앙이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위선적인 신앙이 야기시키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경건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성경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는 전혀 경건치 못함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같이 미혹되고 있는 것인가?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스스로 회개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신앙의 토대가 되는 교훈에 대한 분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특히 참된 회개와 거짓된 회개를 올바로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I. 참된 회개란 무엇인가?
참된 회개를 하면, 죄의 본질에 대한 견해를 달리 하게 되며, 그에 따라서 죄를 향한 감정의 변화도 일으킨다. 감정은 사고(思考)의 소산이다. 죄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게 되고, 또 이러한 견해의 변화에 부응하여 죄에 대한 올바른 감정을 갖게 될 때 진정으로 참다운 회개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올바른 견해이다. 이 때 가지게 되는 견해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갖고 계시는 견해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근심,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과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을 때만 그 심령의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쳐 오를 수 있다.
1. 죄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1) 죄의 본질에 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참으로 회개한 자가 가지는 죄에 대한 견해는 회개하지 않은 자와는 아주 다르다. 진정 회개한 자에게 있어서 죄는 호감이 가고 매혹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커녕,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즉 자신이 회개하기 전에 그러한 것을 바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 물론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도 죄가 자신을 망하게 하리라는 것, 곧 하나님께서 죄로 인하여 자기들을 벌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죄는 본래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사랑하며 죄를 맛본다. 그들은 죄로 인한 결과가 행복하게 끝날 수만 있다면, 결코 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그는 자기의 죄악된 행동을 철저히 증오한다. 그는 회개하기 전의 일들을 회고하며 이렇게 외친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나는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사람이다."
(2) 죄의 특성에 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왜 끔찍한 징벌로 죄를 다스리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죄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에, 왜 하나님께서 죄를 영원한 징벌을 받아 마땅한 것으로 여기시고, 그러한 견해 안에서 죄를 보시는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깨달을 때에만 그들은 죄를 달리 보게 되며, 그리스도인과 동일한 관점에서 죄를 대하게 된다. 이렇게 변화될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감정의 변화를 갖게 된다. 많은 죄인들이 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있으며, 죄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 견해를 따르지 않는다. 마귀들과 지옥의 악한 영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죄에 대한 견해의 변화는 참 회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항상 회개에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견해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우리 마음은 결코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회개 없는 견해의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견해의 변화가 없는 참 회개는 있을 수 없다.
(3) 죄의 성향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죄인은 죄가 영원한 죽음을 받을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고도 이 점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변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견해가 변화되지 않고서 참으로 회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는 죄가 죄의 성향 안에서 영과 육, 그리고 현세와 영원 세계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 및 모든 사람들에게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우주의 아름답고 복된 모든 만물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죄가 자기 자신 및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성향이 있다는 것과 보편적인 절제만이 유일한 치유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마귀도 그렇게 알고 있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죄인들이 있을 것이다.
(4) 죄의 응보에 관한 견해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회개라는 말에는 앞에서 제시된 견해들의 변화가 함축되어 있다. 이 말은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의 변화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견해들의 변화가 포함된다. 그것이 생명과 관계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부주의한 죄인에게는 죄의 응보에 대한 올바른 견해가 결여되어 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죄가 영원한 죽음을 받아 마땅한 것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그것을 믿는다면, 부주의한 죄인으로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죄는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미혹되어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각성하고 뉘우친 죄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치 않는 것처럼 이 사실도 의심치 않는다. 그는 죄가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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