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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과 찬양의 역사

현대 찬양의 종류


(Ⅰ) 찬송가

찬송은 예배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예배의 참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은혜의 표현을 위한 수단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는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찬송` 이라 하였고, 키이츠(Keats)는 찬송을 `영혼의 언어(Language of the soul)`라고 정의했다.


찬송을 통하여 하나님은 기쁨과 영광을 거두시고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것들을 베풀어주신다. 즐거움과 만족,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킴, 우리의 믿음을 두텁게, 영적 세계를 넓고 깊게 해 주고 또한 불신자에게 하나님을 믿게 해 주는 하나님을 믿도록 믿음을 준다는 것이다.


1970년대 한국 개신교는 교파나 교회에 따라 `합동찬송가`, `새찬송가`, `개편 찬송가`를 각기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 교계는 그 통일작업을 위해 1974년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찬송가 통일작업을 위한 연구를 시작하여 1983년 한국찬송가공회에서 찬송가를 편찬하였는데 이른바 `공회찬송가`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558곡은 찬송을 모아 놓은 책으로 찬송가에서 `찬양`의 삶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있다.


`찬양` 이라는 언어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일차적으로는 회중 모두를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알도록 이끌어 주고 이차적으로는 보다 깊은 영적 사색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로 주는 찬송으로 회중에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결단을 촉구함에 있다.


예배에 사용되는 찬송은 예배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감각을 얻게 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일과 베푸실 일에 대하여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박명섭목사는 "교회력과 예배찬송"이란 글에서 예배찬송이라 함은 기독교의 `예배 중 형식적인 예배(Formal Worship)인 주일 예배 때 불려지는 찬송을 뜻하며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예배찬송은 예배의 대상인 성삼위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2)노랫말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찬양하는 교의적 내용이 있어야하며 시적 흐름이 있는 문학적 가치가 높은 것이어야 한다.

(3)예배찬송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찬송이기 때문에 영성(靈性)과 경건성이 있어야 한다.

(4)예배찬송은 음악적인 차원이 높고 예술적 가치가 높아야 한다.


2)경배와 찬양

"경배와 찬양"은 요즘 청년, 대학부들이 선호하는 찬양의 한 형태를 지칭한다. 본격적인 "경배와 찬양"이라는 모임 이름으로 시작된 찬양모임은 1987년 2월12일 온누리교회 가건물 안에서 5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당시 영국에 유학 중 영국에서 일어나는 `경배와 찬양 운동`을 한국교회에 접목해야겠다는 사역의 필요성을 느낀 하용인선교사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불을 붙이게 된 것이다. 처음 모임에는 `대한생명 노래선교단`, `두란노서원 연주팀`, `할렐루야 선교 축구팀`, `온누리교회 청넌부` 등이 참여하여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격주로 갖게된 이 모임은 그 해 4월부터는 매주 목요일마다 모이게 되었다. 마침 그 해 7월에 온누리교회가 새 성전에 입당하면서 가진 `목요훼스티발`을 기점으로 참석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으며 비로소 "경배와 찬양"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하용인 선교사는 경배와 찬양을 이렇게 정의한다.

"경배와 찬양은 성령을 체험하고 변화된 이들이 그 구원의 뜨거운 감격을 주님께 올려 드리고 여러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경배와 찬양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된 것은 크게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고, 작게는 1987년 이전에 앞서 찬양의 붐을 자연스레 조성한 찬양의 선두 주자들이 사역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찬양활동을 시작한 정신노래선교단, 1970년대는 기타 보컬그룹 `늘 찬송하면서`, 국내 최장수 찬양선교단인 `늘노래선교단`, `굿라이프음악선교단`등 기타반주의 중창이나 보컬그룹이 탄생되어 저마다 활발한 사역을 펼쳐나갔다. 1973년부터 이미 찬양과 경배모임을 이룬 예수전도단은 "내게 강 같은 평화"등 부르기 쉬운 가스펠을 보급하여 전국교회학교에 번져 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경배와 찬양`이 확산된 또 하나의 이유는 두란노서원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빛과 소금`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가 기름을 붓듯 `경배와 찬양`의 불길이 한국강산에 타오르게 하였다.

경배와 찬양의 특징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우선, 경배와 찬양의 가사가 모두 상향적이라는 것 그리고 음악은 현대 세속음악과 같이 한다는 것이다. (고고, 슬로우 고고, 슬로우, 왈츠 등)

다른 하나는 성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가사가 많다는 것이다.(시40편, 등)


그런데 갑자기 불어닥친 이 `경배와 찬양`의 바람을 놓고서 적지 않은 염려와 걱정도 일어났다.

몇 가지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다음과 같다.


1) 기성교인의 거부감

대부분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의 시간이 짧지 않다. 금새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찬송가면 됐지 또 무슨 찬양이 더 필요해"하며 경배와 찬양 운동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갖는 계층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도 젊은이들이 몰리는 경향이다.


2) 용어의 개념의 혼란

낙금의 찬양의 움직임을 놓고 `경배와 찬양`, `찬양과 경배`, `찬양`, `찬양집회`등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매우 속상한 일이다. 국어는 국어이고, 산수는 산수이다. 분명한 명칭의 정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바람직한 찬양생활을 위해서도 긴급하다.

저마다 목소리 큰 사람들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면 참으로 우스운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목회자들 중에는 찬양의 장르를 구분할 때 아예 찬송가가 아닌 것은 무조건 `복음성가`라고 우기는 경우가 있게된 것은 용어의 개념정리가 안되어서 생겨난 문제점이 분명하다.


3) 곡 선택, 프로그램 구성, 악기사용의 문제들

일반적으로 찬양모임은 그 자체가 순전한 예배로서 구약의 성막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지성소에 거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단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찬양인도자 혹은 찬양팀장이 예배학에 대한 곡와 적절한 곡 선택의 지혜 그리고 계속 끊이지 않는 악기사용의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다.


찬양모임은 쑈가 아니기에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만 가지고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찬양은 외형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하나님 인식의 상태`가 중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고백과 감사, 저절로 우러나는 하나님 자랑의 마음을 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술을 열어 노래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신다.

하나님 인식 속에 사는 사람이 피아노를 칠 때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하나님 인식 속에 사는 사람이 드럼을 칠 때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 의식 속에 찬양을 인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공동체를 받으신다.

하나님 인식, 하나님 의식, 이것이 경배와 찬양의 출발이며 종착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부흥가, 복음 찬송

부흥가를 부르면 찬양자의 마음이 소생되는 경험을 한다. 실제적으로 표현한다면 마음에 깊은 감동이 일어 심령이 벌렁벌렁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마음에 기쁨이 솟구치기도 한다. 어떨 때는 한없는 감사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흘리기도 한다.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살아나고 심령의 회복이 일어난 증거들이다.


부흥가(Revival Hymns)는 복음성가라는 커다란 장르 안에서 따로 분리되어 진다. 가사에 의해 분리할 수 있음을 지난 시간에 밝혔는데, 위에 있는 표를 참조하면 금새 한눈에 정리될 것이다.

복음성가와 부흥가의 구분은 대상에 의해 결정난다. 즉, 집회 참여자의 심령부흥을 향하고 있을 때는 부흥가, 집회참여자 중 불신자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면 복음성가이다.


한국 복음성가의 예로 `예수 믿으세요`가 전형적인 복음성가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복음성가는 순수한 복음 전도를 목적으로한 복음성가보다 신자들의 심령부흥을 위한 부흥가가 더 많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등)


부흥가는 복음찬송으로도 불리워지는데 가사의 대부분이 "하나님 앞에서의 나 자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치 명절에 부모님 앞에서 자신을 질책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부흥가의 예배시 배치는 설교 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고백하고, 시인하고, 헌신을 하도록 부흥가를 선곡한다.


이를테면 마리아와 같은 헌신을 요구하는 설교를 들었다면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세상 살아 갈 동안 찬송하게 하소서", 혹은 351장 "날 대속 하신 예수께 내 생명 모두 드리니 늘 진실하게 하소서 내 구주 예수여" 얼마나 좋습니까?


또는 찬송가에 없는 부흥가는 "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나의 모든 행실을 주여 기억 마시고 바른 길로인도 하소서!" 등등이 있다.

예배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만난 증거가 말씀으로 감동으로 가슴 떨리는 역사가임해야 한다.


(4) 복음성가

현대 복음성가의 직접적인 근원은 미국의 부흥운동에 기인한다. 복음성가의 원천은 영국 찬송가의 아버지, 복음성가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왓츠(Isac Watts, 1674 ~ 1748), 주관적 찬송가의 아버지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의 찬송사역으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870년 복음전도운동에서 나타난 복음성가의 사용은 4가지 갈래로 나뉜다.

첫째, 투르지(Eden Tourjee, 1834~1890)의 "찬양예배" (Praise Services) 둘째, YMCA 연차총회와 School Union)에 참석한 대규모 군중의 열성적인 노래 부르기(Hearty Singing) 셋째, 미국과 세계지역에서 필립스(Philip Phillips, 1834~1895)에 의하여 인도된 주일학교 총회와 부흥집회의 음악예배(Services of Song) 넷째, 시카고에 있던 무디의 초기 집회와 관련된 블리스(Philip P. Bliss, 1838~1876)의 영향이 곧 그것이다.

복음성가의 확산은 누가 뭐래도 무디와 생키(Ira D. Sankey 1840~1908)에 의한 도시 복음전도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또한 `복음성가`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74년 블리스의 작은 모음곡집인 복음성가(Gospel Song)로 연유된다.


블리스는 1869년 여름에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생키를 만났다. 그가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무디가 설교하는 집회에서 찬양을 인도했다.

1874년 블리스는 무디의 권유로 유명한 부흥사 윗틀(Whittle)이 인도하는 집회의 찬양 인도자로서 사역하였고 이 때 "하나님의 질리 등대(276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235장)" 등의 많은 복음성가곡을 작사 작곡하였다.


생키와 블리스의 만남은 복음성가를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디가 자신이 사역하고 있던 시카고교회에서 생키를 음악사역자로 초빙하여 공동사역을 하면서부터 이일은 이루어졌다.

1875년 미국으로 돌아온 생키는 블리스가 쓴 `복음성가`와 자신이 쓴 `성가와 독창` (Sacred Songs and Solos, 1873)을 묶어서 출판하기를 제안하여 `복음성가와 성가` (Gospel Hymlns and Sacred Songs, 1875)를 출판하기에 이르렀고 복음성가집의 출판으로 본격적인 미국의 복음성가의 부흥을 일으켰다.


이렇게 생키와 무디에 의해 복음성가는 꽃피워졌고 오늘날까지 그 곡들이 불리워지며 교회음악의 여러 부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하나님의 진리 등대, 양 아흔 아홉 마리는, 돌아와 돌아와 등)

19세기 말에 현대 복음성가를 계승하는 현대적 복음성가가 피터슨(Jhon W.Peterson)이나 게이더(Willian J. Gaither)에 의하여 작곡되었는데 이들의 노래 역시 직설적이고 단순한 가사로 구성되어있고 일반대중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르기 쉬운 대중적인 곡조로 되어 있다.


* 교회복음성가에 대한 목회자로서의 바램

1.정말 좋은 복음성가를 창작하라.

복음주의에 태동된 복음성가는 전도와 심령 부흥이 그 목적이다. 이 목적을 벗어나는 복음성가의 작곡이 복음성가에 대한 혼란과 개념에 혼돈을 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복음성가는 본연의 작곡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 불신자들의 심령을 단번에 녹일 수 있는 그런 곡을 작사, 작곡해야 한다. 챨스 웨슬리의 명곡 `예수님 찬양` 처럼 말이다.


2. 일부러 곡을 쓰려하지 말고 자신이 받은 영감을 글로 곡으로 표현하라.

설교조의 작사, 작곡은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 설교는 목회자의 고유 권한이다. 작사가 자신이 이 글을 통하여 은혜를 끼쳐야겠다는 발상이 이 문제의 근원적인 발생원인이다. 은혜의 주체는 언제나 하나님이시다.


(5) CCM

CCM의 태동의 배경을 먼저 살펴봐야 CCM의 존재이유와 그 목적을 인지할 수 있기에 CCM의 탄생 배경과 영향을 기술한다.

1960년대 말, 미국의 젊은이들은 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항으로 불타 올랐다. 그들은 세계 제 2차 대전 직후에 태어난 세대로서 전후 세대로 일컬어졌다.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급속한 사회변동과 혼란의 시기로 견주어지고 있다. 월남전에 휘말린 미국, 전쟁을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학생운동, 급속히 일어난 히피족들... 당시의 젊은이들은 망해가는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교회는, 젊은이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교회에 들어서면 성찬식 떡과 포도주 냄새가 나며 습기찬 양탄자와 곰팡이 낀 지하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남자가 부르기엔 너무나 높은 음역의 곡조, 요즘 사람들에겐 너무나 고풍스런 언어로 된 찬송가가 불리워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 주간동안 그 시간만 신사숙녀가 되어 정장차림으로 나타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교회는 진리를 찾아 헤메이는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더구나 당대를 휩쓸고 있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비틀즈(Beatles), 밥딜런(Bob Dylan)의 록큰 롤은 그들의 불안정하고 반항적인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평화를 맛보기 위해 그들은 대중음악의 스타들을 우상으로 섬겼고 화학물질인 마약에서 평안을 누리려 했다. 급기야 이방신들을 숭배하고 프리섹스를 부르짖으며 부모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타락현상 속에서도 기독교의 참다운 가르침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혁명이란 기성세대를 파괴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갱생에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전에 이스라엘백성들이 로마박해를 피해 살던 카타콤과 지하교회처럼 `지하교회` 가 등장했다. 그 열매로 젊은이들이 대중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 태동된 음악이 CCM이다.


1969년 그 유명한 웨스트 팜 비치 록 페스티발에 4만명의 젊은이들이 운집했다. 이를 대항하는 집회로 아더 블레싯은 특별히 조직된 연주 팀을 이끌고 웨스트 팜 비치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 집회에서 약 3,000명의 젊은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60년대 말부터 영적 부흥이 다시 불타 올랐다.


한국의 대중음악으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CCM도 마땅히 이 역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국내에서의 CCM의 발전은 기독교방송의 프로그램 `가스펠 아워`의 역


할이 크다.

상업우선주의의 가치과정 속에서 CCM의 순수한 정신 즉, 1960년대에 미국에서 CCM이 태동될 때의 복음정신 즉, 반항의 세대와 예수 운동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CCM의 출생은 교회를 떠나가던 젊은이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CCM도 대중음악과 타락한 이 세상 문화에 젖어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메시지로 그들 앞에 제시되고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또한 한국의 CCM은 음악적인 것 보다 원천적으로 컨템퍼러리한 정신, 성육신한 사건의 현대적인 이해와 실천에 달려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래꾼들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고 마땅히 해야 한다. 음악은 현대적이라도 이 땅을 그리스도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가사로 불신자들의 심령을 살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디 이 일을 통하여 더 많은 청소년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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