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에 관한 3학설

1. 비종말론 (Non-Eschatology)


근대에 와서 종말론에 대해 크게 나누면 비종말론과 종말론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유명한 비종말론자들은 리츌(Albrecht Ritschl)과 그의 학파에 속한 제자들이다. 그의 신학의 주제는 도덕적 가치였다. 그의 사상에 시 종일관 영향을 준 사상운동은 독일의 계몽주의와 19C의 진화론이다.


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역사적으로 지작할 수없다는 의미에서 배격하며, 그가 때때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할 때는 그의 신성이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고 그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부합된다는 의미에 서 언급된다. 그는 삼위일체의 2위론이나 동정녀 탄생을 거부하며 죄는 아 담의 타락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리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본다.


그의 교회론은 "어떤 기관, 즉 그 교권에 의해 창건되고 합법화되며 허가 된 제사장직과 법적으로 수락해야 하는 신조등으로 되어진 기구가 아니라" "사랑으로 고무된 행동을 통한 인류의 조직체"요, "우리 이웃에 대한 우주 적 사랑으로 촉진된 행동을 통한 인류의도덕적 통일체"며 "사랑의 동기로 말미암은 호혜적, 공동적 행동을 위한 인류의 협동체"로 보고 있다.

도덕적 사회구현이라는 그의 하나님의 나라사상, 즉 이 종말론은 19C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은 하르낙의 [기독교란 무엇인가]란 책에 잘 나타나 있다. 래드에 의하면 하르낙은 " ... 예수로 부터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들간의 형제애와 각기 무한한 영혼의 가치와 사랑의 윤리적 교훈 순수 예언 신앙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고 있다" 또는 그는 그 나라가 하늘에서 땅으로 임하는 천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에게 임하여 그의 영혼 속으로 들어와서 그것을 붙잡음으로 오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그 나라를 영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2 . 철저적 종말론 (Consistent Eschatology)


J.Weiss는 자기의 장인이요 선생인 리츌의 자유주의적 왕국해석을 포기하고 예수께서 선포한 왕국은 미래적임을 강조하였다. 슈바이처는 바이스에게 철저한 종말론을 적용하지 않았지만 박형용은 철저하게 미래적이고 종말론적임을 그의 종말론은 언급한다.

바이스가 예수가 왕국관이 미래적인 것으로 본 것은 그의 왕국관이 미래적인 유대인의 선지적 묵시문학적 왕국관에 그 배경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종말론의 대표자인 알버트 슈바이처는 바이스이 견해를 일반화시키고 심화시켰다. 바이스는 예수님의 모든 행위가 종말론적인 사상에 결정되어 행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예수의 생각과 교훈만을 종말론적으로 행해졌다 고 보며 슈바이처는 "철저한 종말론"이란 용어를 자기에게만 적용한다.

우리는 [예수의 생애연구사]에서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 다.: 예수는 유대 묵시문학적 종말론에 사로잡혀 임박한 종말을 믿었다.


이 종말은 자기 당대 사람들에게 임하며 자기는 이 종말을 가지고 올 메시야이며 세상의 종말과 함께 자신이 인자로 강림할 것을 믿었다. 그래서 마10;16 - 23에서 제자를 파송할 때 예루살렘을 다 돌기 전에 인자가 올 것을 인식했다. 강림전에 핍박이 일어 날 것이고 마지막 때 까지 참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일러준다(마 10:22). 그러므로 이 동리에서 저 동리로 피해 야 한다(10:23).


그러나 예수가 일어나리라고 예언했던 핍박은 일어나지 않았고 제자들은 오히려 만족감을 가지고 돌아왔다(막 6:30). 그는 백성들로 부터 숨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제자들은 그에게서 신의 나라와 인자의 계시를 기대했으나 허사였기 때문이다. ...그 후 예수는 심판을 수행할 때가 지금 온 것으로 알고 고라신과 벰새라, 가버나움을 심판하고(마 11:20 - 24). 얼마 후엔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만찬으로 신비의 종말론적 성례전을 베푼다.


베드로의 고백과 변화산에서 신의 음성을 들은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신비는 고난없이 그 나라가 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고난을 향해서 진행한다. 그는 오리라는 그 환란이 자기에게 집중되어(마 10:23) 많은 사람을 섬기며 그들을 위한 속죄제물로 생각했다.

이런 고난이 자기에게도 와야한다는 사실은 엘리야인 세례 요한의 죽음에서 이해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메시야됨을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아 죽었다.

슈바이처는 1961년 영문번역판에서 이렇게 예수의 행위를 비꼰다. "그는 자기가 오실 인자임을 자인하고 세계사의 수레바퀴를 움켜잡고 모든 보편사를 끝내려는 최후의 혁명적인 노력을 쏟았다. 그 수레바퀴는 멈추기를 거절하므로 그는 자신을 그 바퀴위에 던졌다. 그 바퀴는 멈추기는 커녕 돌면서 그를 으깨었다.


자신을 인류의 영적지도자로 생각하고 자기의 목적에 맞게 역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한 측량할 수 없이 위대한 이 사람의 갈갈이 찢어진 육체가 그 역사의 바퀴위에 여전히 걸려있다. 이것이 그의 승리요 그의 통치이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윤리를 제자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위해 준 것이 아니라 자기의 종말론에 맞추어 인자의 재림 때까지만 유효하고, 또 준비를 위해 주어진 임시윤리로 본 것이다.


슈바이처는 에수 연구사를 끝내고 바울연구를 할 때 "사도바울의 사상세계도 역시 전적으로 종말론에 뿌리박고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회고록에서 고백한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예수는 교훈이 유대 사상세계의 범주를 넘어 가지 않으며 당대의 묵시문학적 종말론을 반영하드시 바울도 예수와 함께 종말론적 세계관과 종말론적 기대를 공유했으며 또 복음서의 종말론적 개념이 이 사도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 각했다.


슈바이처는 바울의 종말론에 대하여 "예수, 바울 그리고 바룩과 에스라의 묵시록의 저자들은 전통적 미래의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바울의 종말론은 두가지 사실 즉 첫째 선지자들의 종말론과 다니엘의 인자종말론을 종합한 바룩과 에스라의 종말과 같으며, 또 하나는 메시야는 이미 한 사람으로 나타나 죽고 부활했다는, 유대인에게는 전적으로 없던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했다.


이 말은 바울도 예수처럼 유대의 묵시문학적 종말론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이며 더우기 임박한 종말론을 가졌다고 했다.:"바울의 첫 서신부터 마지막 서신까지 바울 사상은 예수의 심판과 메시야 영광의 즉각적인 도래의 기대에 시종일관 지배되고 있다." 그는 바울의 종말론의 미래적 임박성을 지적하기 위해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3 . 실현된 종말론 ( Realized Eschatology)


C.H.Dodd는 The Parables of the Kingdom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으로 실현된 종말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C.H.Dodd는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지상 사역에 의해서 이미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마태복은 12:28과 누가복음 11:28의 s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다") 와 마가복음 1:14 - 15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도착을 의미한다고 했다.


Dodd는 복음서에서 미래적 재림을 나타내는 모든 성귀들은 철저하게 실현된 종말론으로 해석한다. 심지어 가라지 비유(마 13:24 - 30)와 그물 비유(마 13:47 - 50) 조차도 그렇게 재해석한다.

만약 미래적인 요소가 있다면 초대교회가 최후적인 것 즉 그의 기적적 사업과 죽음, 부활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올리우심을 이미 경험하였고 또 마지막 일인 성령도 받았으므로 이런 일련의 신적 사건들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재림으로 종국점에 달해야 하나 주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지 아니했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불가분리의 경험의 일치가 깨어지기 시작하였고 초대교회는 재림의 지연이라고 하는 미래적 종말론을 만들게 되었다 라고 한다.


Dodd에 의하면 예수께는 자신의 죽음, 유대인들의 재난, 자신의 부활과 이로인한 하나님의 뜻의 확립을 미래로 보고 파루시아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으나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뜻의 확립을 일부는 부활에, 일부는 다시 오심에 기대를 가짐으로 초대교회내에서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 즉, 묵시문학적 종말론으로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Dodd는 바울의 종말론도 역시 히브리예언서와 유대 묵시문학에서 발달하여 대망했던 초자연적 메시야 왕국이 그리스도의 선교와 죽음과 부활에서 실현되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주장하였다. Dodd는 바울의 종말론에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바울의 초기설교와 그의 초기 서신들에 미래적이고 묵시문학적 초대교회의 요소들이 나타나 있다고 본다.


갈라디아서 1:4의 을 유대주의의 두시대 (이 시대와 오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사실 그는 "바울은 에녹서, 바룩의 묵시록 그리고 에스라의 묵시록(제 2 에스드라서) 특히 마지막 책과 같은 유대문서들에 나타난 종말론적 신조들로 시작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4 . 콘첼만의 지연된 종말론


콘첼마은 누가의 종말론이전에 왕국의 임박성에 관한 원 개념이 있었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림의 니연이라는 사상에 근거하여 누가는 자기 나름대로 종말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와 초대교회는 임박한 종말론을 기대하였고 이 기대에 의해 초대교회의 삶은 미래지향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시대 이후 기대했던 재림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지연됨으로 누가는 재림의 지연으로 야기된 신앙적 위기에 직면하여 그 문제를 신학적으로 해석해 줌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연된 종말론을 구상하게 된 것으로 콘첼만은 주장한다.


그래서 콘첼만은 누가가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한 동기는 기대했던 재림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종말이 곧 오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로 지연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3가지 사실을 제시함을 그의 책에서 알 수 있다.


첫째 콘챌만은 재림의 지연사상에 의해 종말론 대신에 구속사로 대치하여 3시대 즉 이스라엘과 율법과 선지자들의 시대 미래 구원을 미리 맛보게 하던 예수시대 교회와 성령의 시대라고도 하며 마지막 세대이기도한 예수와 재림 사이의 긴 시대로 나눈다. 그의 이런 입장에서 보면 재림

자체는 구원사의 과정 내에 있는 한 단계가 아니라 구원사의 끝이며 창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둘째 그는 누가가 지연된 종말론을 작성하기 위해 종말론적 태도의 변화가 누가에게 있다는 것이다. 는 마가나 마태에서는 종말론적이며 우주 해체의 서곡인데 반해, 누가는 지속적이거나 를 좋아하거나 사도 행전에서는 현재적이고 비종말론적으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 누가에서는 제자들의 직무가 종말론적인 회개로 사람을 부르는 것이 나니라 복음으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세째로 그는 누가가 세례요한을 종말론적인 선지자의 요소들을 제거해 버리고 모든 선지자 중의 하나요 종말론적인 인물이 아닌 선자자들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예수 앞에 놓는다는 것이다.


네째로 누가는 예수의 초대교회의 종말론을 재구성하면서 임박한 종말론에 관한 내용을 마가와 마태의 병행구절들과 비교해 보면 제거해 버리거나 변경하였다는 것이다.


콘첼만의 문제성을 지적한다.


첫째 예수의 사상에도 수난과 재림사이의 중간시기가 내포되어 있으며, 둘째 초대교회가 재림의 지연때문에 신앙적 동요가 있었다는 흔적이 없으며, 세째 누가에도 임박한 종말을 강조하는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누가복음 10:9; 18:1 - 8). 오히려 현재적 종말론을 지지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교회 의 신앙을 위협했기 때문에 누가는 종말을 먼 미래로 미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누가는 예수의 두가지 종말론 즉 here but mot yet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사상을 그의 독자들에게 알려준 것이지 어떤 외부적 위협 때문에 위기관리를 위해 순수 편집적 목적으로 미래 종말론을 구성한 것은 아니다. 누가는 예수의 설교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성령을 통해 이해하고 기록한 것이다.

19th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정기학술대회 개최 공지

Nyskc Symposium '21 개최 Main Subject: “Spirituality of Nyskc Movement" Nyskc Learned Society는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입니다. 회복의 신학연구학회 주최로 열리는 제19차 Nyskc Symposium (정기학술대회)가 5월24-27일까지 미국 뉴욕을 중심해 열리게 됩니다. 이번 학술회는 Co

회복의 신학연구 학회 개론

*회복의 신학연구학회는 언제 설립되었습니까? Nyskc World Mission 대표회장 최고센 목사에 의해서 지난 2003년 뉴욕에서 Nyskc Learned Society(회복의 신학연구학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Gardena, California 대흥장로교회(권영국 목사)에서 Pastoral Forum을 시작으로 그 이듬해인 2004년

무엇을 가지고 나아갈까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께 나아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dk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6:6-7) 들어가는 말 본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