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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고난을 따르자

(이사야 53:4,5 마가복음 8:34-38)


우리는 오늘 고난 주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난 주일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성전 뜰에 들어가 거기의 환전상과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그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포도원의 악한 소작인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을 다시 예고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삼일째에 예수님은 마리아로부터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으로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향한 행진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이제 이틀 후면 죽음의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그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왜 고난을 당하셔야만 했습니까? 구약 이사야 53장을 보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예언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53:4, 5절에서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으나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음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옴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지으셨던 에덴 동산에서 아담은 평화롭게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동산 중앙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결국은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깨어지고,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깨어져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아름다움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4장의 가인의 형제살해 사건, 6장의 홍수와 노아의 방주사건, 11장의 바벨탑 사건은 모두 인간들의 죄악의 관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불쌍히 여기셔서 내리신 결단이 바로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이 바로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우주 만물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만이 아닌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첫째 아담으로부터 전해오는 죄악 때문입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악의 값은 너무나 커서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옴으로 우리는 아직도 죄악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겪으셨는데, 문제는 우리가,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따르기보다는, 아직도 첫째 아담의 후예로서 죄악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새천년의 첫 번째 고난주간에 예수님은 여전히 고통가운데 계십니다. 우리가 첫째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탐욕과 교만함으로 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세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되어 아직도 불신앙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 아니면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면서도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는 교만한 사람들 때문에 창조의 질서는 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생명복제와 유전자 조작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하나님만의 생명창조의 영역을 사람들의 명예욕과 물욕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인간복제까지 꿈꾸고 있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 듯 합니다.


둘째로는 인간과 인간 간에 서로 사랑하지 못하며 여전히 갈등과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물질은 풍요로와졌지만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져서 국내외적으로 그 갈등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지금도 수 많은 사람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의 우리 동포들은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는데 남한에서는 음식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걱정이며, 사람들은 살을 어떻게 뺄 것인지 고민하는 형편입니다.


셋째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어 이 땅은 여전히 가시덤불을 내어 물, 공기, 흙이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하게 오염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물들어가는 물질문명은 겉으로는 편리한 세상이 된 것 같지만 사실은 지구 온난화, 오존층 파괴, 생태계의 파괴로 지구가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지으신 3000만종에 달하는 생물종들이 인간이 만든 온갖 화학물질과 열대림의 파괴 등으로 일년에 수십만 종이 멸종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멸종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은 로마서 8:22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한다."고 하신 것은 바로 위에서 말한 세가지 죄악의 현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먼저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오늘 신약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도 십자가를 걸고, 방에도 걸어 둡니다. 또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 십자가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궁극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여기에 살을 붙여서 고백적으로 말하면 십자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기에 조금 더 살을 붙여서 마음의 결단을 포함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다시 사셨기 때문에 나도 그와 같이 죽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머리나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7:21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오늘 본문 36절에 "온 천하를 얻고도"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자기를 부인하기는커녕 "온 천하"를 얻으려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 아닙니까? 주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무한한 탐욕을 통찰하시고서 경고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아닌게 아니라 자기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온 천하를 얻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 모든 것이 부질 없는 일이며 정말로 목숨을 구하려면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라고 하시면서 몸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한가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의 고난의 원인이 인간의 죄악인데 그 인간의 죄악은 또한 모든 피조물의 고통을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고난과 피조물의 고통은 그 원인이 모두 첫 아담의 죄악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피조물의 아픔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희생을 통하여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와 창조보전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평화통일과 환경보전의 선교적 책임을 부여 받은 새천년의 한국교회는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절제와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피조물이 신음하며, 북한 동포들이 굶주리는 현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물질의 소비를 줄이며 형제와 나누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오늘 말씀에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고 하셨으니 믿음으로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올해의 고난주간의 마지막 날은 공교롭게도 지구의 날과 겹쳐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동굴에 안치된 그 날이 바로 지구의 날입니다. 오늘날 지구는 동굴의 깜깜한 그 절망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환경오염이 심각해서 절망적이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을. 우리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구를 살리고, 우리의 생명을 살리고 새하늘 새땅을 이룰 것입니다.


새천년의 첫해의 고난주간에 특별한 결단의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 첫 번째는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는 것이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밑에 있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절제와 나눔을 실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는 길이며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셋째는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 영원한 생명을 찾는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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