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 꿈, 약점, 습관, 상처 그리고 Nyskcian이 가진 열등감까지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라.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께 항복하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이다. Nyskcian은 양보하고 항복하는 것보다는 빼앗고 정복해서라도 성공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님과 상관없이 우리의 의지와 집요한 자만심, 성공을 위한 개인적인 야망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임을 깨달아야 한다
Nyskcian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기 원한다면 바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과 자비에 반응하는 항복을 통해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게 될 것을 확신한다.
본론
지는 것이 이기는 것
현대전에서 이기려면, 얼마나 많은 첨단 무기와 정보로 무장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것을 모른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나라마다 군인들을 첨단 무기와 장비로 무장시키는 일에 군비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영적전쟁에서는 전혀 다르다.
영적전쟁에서는 이기려면, '무장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영적전쟁에서 말하는 무장도 있다
엡6: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whole armour of God, that ye may be able to stand against the wiles of the devil.)
전신갑주를 입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엡6:14-17“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Stand therefore, having your loins girt about with truth, and having on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And your feet shod with the preparation of the gospel of peace;Above all, taking the shield of faith, wherewith ye shall be able to quench all the fiery darts of the wicked. And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고 하셨다
이와 같은 영적 무장은 세상에서 말하는 무장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실제는 손에 든 것도 없고 방탄복을 입은 것도 없다 당연히 손에 칼이나 총을 들지도 않았으며 군화를 신은 것도 없다
그렇다면 실제적 현상으로 보면 완전무장 해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전쟁인 신앙생활에서 처참하고 무력하게 패배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너무 많은 것으로 치장, 무장, 가장, 위장, 포장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들이 사고 있는 사회구조 속에서는 성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며, 약해져서도 안 되며, 항복해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항복이라는 말은 세상에서는 약함이 무능을 뜻하고 전쟁에서는 항복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항복이라는 말을 굴욕적으로 싫어한다.
사단은 우리의 굴욕적인 항복의 본능을 통해 호소하면서 결코 항복하지 말라고 하면서 더욱 강하게 완전하게 무장하라고 다 그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무장된 Nyskcian을 싫어한다.
완전무장 하는 것 그것은 상식이지만 하나님의 식은 무장해제 되어 항복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은혜의 절정은 '하나님 앞에 약함을 말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강함은, 하나님 앞에서 약함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강력히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항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하나님 앞에 항복은 승리의 서곡이며, 마귀 격퇴의 전주곡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40년 동안 가르치신 공부는 오직 하나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며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는 '무장된 자아'때문이었다.
무장된 자아가 항복될 때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 Nyskcian의 삶과 신앙생활은 싸움인데 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전인격적인 항복뿐이다. 자아도, 성격도, 소유도, 기질도, 체질도, 항복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강한 자 속에서는 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구체적이고 친밀하신 간섭을 원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려고 하지만 우리가 항복하지 못한 자아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은 차단 내지는 지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A.W.토저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직도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으며 아직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스스로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을 상대로 명령하고 있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간섭하려고 한다." 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중무장함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장 해제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누구든지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단의 욕구와 노력이 잠재되어 있다. 즉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고 하는 자아가 숨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무소유 앞에 불안해하고 무지 앞에 초조해 하고 무능 앞에 두려워하게 된다
어쩌면 스스로 만든 바벨탑과 같은 것과 위장된 평안을 맛보려 하고 그 속에 숨어 안주하려 하면서 아무 것도 없는 자신 앞에서는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
그것이 하나님보다 나의 무장됨을 더 신뢰하는 증거인 것이다
하나님은 약할 때 강함 주시고, 가난할 때 부요케 하시며, 항복할 때 행복을 주신다.
항복은 포기(giving up orrenouncement)나 단념(abandonment)이 아니고 하나님을 영으로 만난 자들에게 저절로 나타나는 열매의 단면이다.
허버트는 '큰 배는 깊은 바다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큰 믿음, 큰 축복은, 큰 항복의 은혜에서 부터 출발 되어 진다.
우리는 항복이 되고 나서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할 때만이 우리는 은혜의 영향권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될 것이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왜 '신을 벗으라' 하셨을까
깊이 판 샘의 물이 맑고 시원하듯이 깊이 판 광산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광석이 나오듯이 기쁨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항복으로 얻는 것이며 큰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은 깊이 깨어짐과 빠른 항복을 통하여 경험되어지는 것이다.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보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듯이 날마다 죽음을 방불한 항복을 모르는 자는, 은혜의 실재를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항복할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항복한 자를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오시는 시간은 우리가 항복하는 시간과 비례(proportion)한다는 것을 개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항복한 자와 함께 동행하시며 간섭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항복을 얻어내기 위한 절대 절명의 순간과 한계상황으로 몰아가기도 하신다
인생의 상처가 영광이 되듯, 성도의 항복은 축복된 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사람이 어디를 가느냐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즉 무엇을 하느냐 보다 누구와 동행하고 있느냐가 인생의 승패가 달려있다
하나님은 항복한 자와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시고 있다
하나님 앞에 신을 벗고 맨발이 된다는 것은 분명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세상에서 맨발과 맨몸으로 산다고 하는 것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산다고 하는 것, 믿음만으로 산다고 하는 것, 불가능을 기도로 해결 한다고 하는 것, 포기하며 산다고 하는 것, 손해 보며 산다고 하는 것, 빼앗기며 산다고 하는 것, 억울하게 산다고 하는 것, 원수 갚지 않고 산다고 하는 것, 악인의 형통을 보기만 해야 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무모하고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Nyskcian에게 맨발이 되라 하심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이 있는 이유와 목적은, 대체로 두 가지라 생각된다.
하나는, 우리의 신발을 벗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 때문이다
어쩌면 몇 켤레의 신발로 준비되고 무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무장으로 인하여 늘 자신만만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는 짐이 되었고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신을 신으면 안 된다. 양말도 벗어야만, 고난도 연단도 중단될 수 있고 성숙으로 진입이 가능해 진다.
또 하나의 고난의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리더십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맨발이 될 때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우리는 누가 뭐라 해도 왕 같은 제사장이며, 세상속의 신령한 Coach들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이 밖에 나가려고 할 때, 맨발로는 절대 못나가게 하고 먼저 신발부터 챙겨주는 이유는 아이들이 맨발로 나가면 그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일들을 책임질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연약하시지도 않으며, 무능하시지도 않으시다.
하나님이 모세와 우리에게 맨발이 되라고 하심은,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내가 너를 책임져 줄 것이다’ '발이 부릍지 않게 해줄 것이다'‘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증거이다
어쩌면 그동안 인생 삶이 힘겨웠던 이유는 항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동안 형통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님 앞에 신을 벗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항복할 수 없기 때문이고 복음을 누리지 못했던 이유도 항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찬양을 하였어도, 갈등과 갈증의 포로로 사는 것이다
끝없는 영적 갈등과 육신의 쓴 뿌리는 무장된 자아, 항복되지 못한 자아의 산물이다.
항복은 순종으로 표현될 때 아름답다.
순종은 제사보다 낫다고 했다.
백번의 기도보다 중요한 것은, 단 한번이라도 순종하고 항복하는 것이다.
순종 없는 예배는,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타성에 빠지게 만들 뿐아다.
그것은 낳지 않는 알을 품고 있는 자고새와 같은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곧 항복의 모습이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맨발로 서는 것이며 무장 해제(demili-tarization)이다
Nyskcian들은 무장이 해제된 사람들이다
또한 무장을 해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며 결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항복과 순종이 어디 쉬운 일인가
항복은, 영적전쟁 가운데 가장 치열한 전투 중에 하나이다.
우리의 수십 년 학습되고 세뇌된 자아와 사단의 세력들이 그냥 순순히 놔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항복과 맨발의 은혜로 무장되어야만 한다.
은혜의 무장으로만이 우리는 물질, 쾌락, 안주, 게으름, 패배주의, 인본주의에서 항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Nyskc Conference에 참가한 Nyskcian들이 순종 안하려 할 때 이렇게 말한다
자네들 맞고 할래. 그냥 시키는 대로 할래...’
하나님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물으신다
“맞고 순종하려느냐 아니면 그냥 순종하려느냐”
얼른 항복하고 순종함이 축복이라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깊은 항복 속에 깊은 샘이 솟아 오르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신령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항복은 약한 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고백이며 신뢰의 표현이다.
항복은 단념이나 체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항복은 약할 때 강함 주신다는 믿음의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일 뿐이다.
하나님을 이기려 하는 자는, 일생을 진 자로 살아야 하지만 하나님께 항복한 자는 평생을 이긴 자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진 자 그는 진정 강한 자요, 위대한 인생인 것처럼 Nyskcian의 삶이 이렇게 되어야 할 줄 믿는다.
1. 항복한다는 것의 의미
1) 자기중심적인 본성과 싸우는 치열한 전쟁이다.
○ 변화해야 할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
○ 내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채우는 것.
○ 삶의 최대 관심사(돈, 명예, 건강....)까지도 하나님보다 우선될
수 없다.
롬 6: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2) 하나님이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예, 주님"이라고 순종하는 것
눅 5:5“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And Simon answering said unto him, Master, we have toiled all the night, and have taken nothing: nevertheless at thy word I will let down the net.)
3) 하나님의 목적을 믿고 이끄심대로 신뢰하며 따라가는 것
○ 아브라함, 한나, 요셉과 마리아
4) 하나님께 드린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잘 나타남.
○ 다른 사람들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우리의 권리만을 주장하지
않는다.
2. 항복을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
1) 두려움
○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 항복할 수 없지만 사랑이 그
모든 두려움을 없앰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록 우리를 쉽게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생자를 내어주어 죽이시
기까지 하면서 사랑하셨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But God commendeth his love toward us, in that, while we were yet sinners, Christ died for us.)
2) 교만
○ 우리는 단순히 피조물임에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간섭하려고
한다.
○ 인간의 한계에 직면하면 초조해하고 분노하며 시기하고 자기연
민에 빠짐.
○ 우리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면 결국 사탄과 같이 되고 만다.
○ 겸손히 인간일 뿐인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복종이 필요 한다
3. 항복의 축복
1)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욥 22;21“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Acquaint now thyself with him, and be at peace: thereby good shall come unto thee.)
2) 자유케 됩니다.
롬 6:17-18“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But God be thanked, that ye were the servants of sin, but ye have obeyed from the heart that form of doctrine which was delivered you. Being then made free from sin, ye became the servants of righteousness.)
3)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 여호수아는 인생에서 가장 큰 전쟁을 앞두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의 계획을 모두 맡겼다. 그의 항복이 여리고 에서 승리를
가능케 했다.
이것이 항복할 때 더 강해진다는 역설이다.
4)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됩니다.
○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하신 것은 그녀의 재능이나 아
름다움이나 부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히 삶을 맡긴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눅1:38“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And Mary said, Behold the handmaid of the Lord;)
결론
모든 사람은 결국 어떤 것에나, 누구에게나 항복하게 된다.
하나님외의 다른 것을 향한 항복은 좌절, 실망, 자기파괴를 낳을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모두를 드리는 것이다.
이것이 곧 예배의 사람 Nyskcian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들의 표시이다
예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처럼 무릎을 꿇고 굴복하는 것이며 드리는 것이며 바치는 것이며 희생의 재물이 되는 것이다
매순간, 날마다, 평생 동안 나를 쳐 복종하는 항복의 삶을 통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될 것이다
"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큰 혼돈에 항복하게 될 것이다"(goshen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