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5)

4.예배의 변화


또한 예배의 목표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면 예배의 화석화(ossification of worship)이다. 대부분 예배의 회복과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예배의 습관적인 내용에 대한 경직화 때문이다.


예배의 경직화는 예배의 지루함을 야기 시키며, 예배의 역동성(dynamic)을 상실하게 만든다. 역동성이 상실된 예배는 지루하게 만들고, 예배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들어 화석이 되게 만든다.


화석이 된 공룡보다도 부지런히 겨울 먹이를 준비하기 위하여 일하는 개미에 생명이 있고, 역동적이다.

그러므로 화석화된 것을 통해서는 그 어떤 생명의 역사를 기대할 수가 없다.


생명의 역사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화석화된 예배는 지루한 예배가 되어질 수밖에 없다.

“지루한 예배는 죄악”이다.

왜냐하면 지루한 예배는 교인들을 쫓아 보내고 교회를 침체의 늪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진정한 예배회복은 교회를 부흥케 하는데 그 속에는 살아있는 예배가 있고, 역동적인 예배가 있음을 보게된다.


예배가 경직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배 인도자들이나 성령의 역사하심에 깊이 의뢰하지 않기 때문에 예배는 고착화되어진다고 본다


예배의 일련의 모든 순서와 진행과 결과까지도 성령의 역사 하심과 인도하심에 민감한 예배가 되어야 한다.

예배가 예배가 되게 하는 이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역사에 외면하는 것은 예배의 경직화의 가장 커다란 이유가 되어진다.

또한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도록,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 앞에 순종을 가르쳐야 한다

자신을 드려야 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도록 하여야 한다

내가 드리려 하지말고 그분이 오셔서 드리도록 인도함을 받게 하는 것이다


또 예배가 경직되는 이유는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앞서 역사적인 고찰에서 살펴 본대로 초대교회 이래로 기독교 예배는 “말씀의 예전”과 “성만찬 예전”을 골격으로 해왔다.

그러한 골격을 바탕으로 예배는 예배 신학적으로 찬양과 경배 기도와 간구, 헌신과 봉헌, 말씀이 육신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파송이라는 예배의 중심 요소들을 가진다.


이러한 예배의 골격과 예배 신학적인 면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성령의 원하시는 바이다.

생명의 세계는 얼마나 다이내믹한 변화를 전제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아무런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예배는 근본적인 생명의 세계가 가지는 특징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배회복(nyskc)는 과거로 돌아가는 근본주의적 사고가 아니다

그때 그 정신 그때 그 사상 그때 그 신앙으로 회복을 말하면서 동시에 진정한 하나님의 뜻으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배회복(nyskc)를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성만찬을 집례 할 때 기본적 구조를 깨거나 혹은 바꾸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은 본질이다

성만찬 제정사, 성령초대의 기도, 그리스도에 대한 회상(anamnesis), 성만찬 기도, 그리고 성만찬에의 참여 등은 그대로 둘지라도 진행은 변화를 가져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마찬가지로 예배의 진행과 표현 방법의 변화를 시도해 볼 수 있겠고, 예배당의 조명, 배치, 분위기, 예배 음악에 사용되는 악기, 예배 순서지 등, 개 교회의 상황과 목회자의 목회관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성과 변화를 추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배 순서를 바꾸거나 예배에서 사용되는 어떤 악기를 바꾸는 것으로 예배가 새로워지고 좋은 예배가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변화를 가져보자는 뜻일 뿐이다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자들의 예배 자세가 바뀌어 질 때, 예배 인도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질 때 살아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배자의 거듭난 새로운 모습 자세 영적인 상태가 진정한 변화라고 하는 말이다


앞서 “예배의 중심”에 대해 기술하면서도 언급하였지만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자가 근본적으로 가져야 할 자세이다.

그 무엇보다도 예배자들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의 최고의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심을 깨닫고 마치 영적 전쟁을 치르는 전사와 같이 온 마음으로 이 일에 쏟아야 할 것이다.


한 생명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고, 그분의 임재를 느끼며,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죄의 결박들과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그의 새롭게 하시며 위로하시는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고 돌아가느냐 빈손으로 되돌아가느냐가 판가름나는 영적 전쟁이라는 관념을 가질 때, 예배 위원들과 예배 준비자들은 이러한 긴박성과 절박성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예배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가르쳐주시는데, “네 마음을 다하고 (with all your heart),, 목숨을 다하고 (with all your soul), 뜻을 다하고 (with all your mind), 힘을 다하여 (with all your strength)"라고 가르쳐 주신다 (막 12:30).


여기에서 주님은 마음 전부, 목숨 전부, 뜻 전부, 힘 전부를 요구하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존재이다.

최고의 정성과 최고의 노력을 요구하신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이러한 전존재를 드리는 자세가 경주되어 그분을 섬기는 자세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순서, 순서에 예배자들이 이러한 자세를 갖도록 함은 예배 회복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이다.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

(창 4:19-21)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 유발3106Yuwbal/Jubal = "stream" 1) the son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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