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의 뒷 이야기
어느 사모의 일주일은 사실 제 아내의 이야기입니다.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내게 시집을 와서 30여 년을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교회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못난 목사를 만나 너무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키 162 센치에 54키로 이든 체중이 비만증에 걸릴 정도로 뚱뚱해 지고 말았습니다. 나보다 6살이 적어 58살인데도 누가 보면 60이 넘고 70이 거반 다 된 줄 알 정도로 늙어 보입니다. 머리는 이미 오래 전에 온통 백발이 되어 염색을 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나이 많은 할머니 꼴이 되고 말았고 머리 한 가운데에 탈모증이 생겨 가발을 쓰고 다녀야 합니다.
여기 기록한 사모의 일주일 생활은 제 아내가 25년도 더 넘게 했던 생활들입니다. 아내의 주일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날이 아닙니다. 식모가 되고, 유모가 되고, 심방하는 전도자가 되는 날입니다. 지치고 힘들고 쓸어져 버릴 듯 격무에 시달리는 하루입니다. 그래도 아내는 이렇게 25년을 넘게 교회를 섬겨 왔습니다.
구약에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을 20세 이상 되고 50세가 되지 아니한 건강한 남자들로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50세가 넘으면 은퇴를 시켜 편하게 남은 여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사장들의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이 아니라 극심한 노동을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노동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일이라고 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 아내는 그런 제사장 직분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이제 나이가 50이 넘었으니 인식을 하게 해 주시고 편히 남은 여생을 살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건강이 나빠 걱정이 태산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내를 무척 많이 괴롭혔습니다.
우선 아내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목회 상의 무슨 충고나 설교 또 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말을 할 때에는 당신이 무엇을 아는 가라는 식으로 윽박지르며 무시하기 일수였고 그래도 계속 말을 하면 당신이 목사 하지 그래 하면서 억지를 썼습니다. 더욱이 나는 성격이 급하고 판단력이 미숙할 뿐 아니라 혈기가 많아서 아내에게 혈기를 많이 부려씁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야 할 사람을 가장 부담 없이 학대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아내는 무척 괴로워하고 슬퍼했으며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했습니다.
또한 목회 30여 년 동안 나는 얼마나 좌절을 많이 했던지 조그마한 어려움도 견디지를 못하고 목사 그만하기를 시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도전을 했습니다. 목사를 그만 두면 하나님에게 벌을 받을 것이고 벌을 받는 당신을 그대로 볼 수 없으니 이혼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 부부는 30년 결혼 생활에 50번도 더 구두 이혼을 했을 것입니다. 아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내가 이혼을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나의 목회 좌절과 낙심과 신경질과 아내의 인격을 깔아뭉개는 것을 견디다 못한 아내의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삽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아이들을 버릴 수도 없어 우리 부부가 헤어질 수가 없는 이유만이 아닙니다.
함께 사는 이유, 그것은 나는 아내를 아내는 나를 너무 깊이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내게 우리 집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입니다. 나와 우리 자식들에게 있어서 아내의 의미는 한 여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과 우리 아이들의 인생을 저주받지 않고 바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구름과 불기둥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 위해 보내 주신 동방박사들의 별이요, 마리아에게 보내신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아내는 나와 아이들과 교회를 위해 수없이 금식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금식 기도를 하면서도 왜 이렇게 팔자가 사나워 생 배를 골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교회 어려울 때, 새로 시작할 때, 내게 당할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아이들의 공부를 위해서, 결혼을 위해서, 자기 몸의 병 때문에 등등 금식 기도할 이유는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40일 금식, 20일 금식, 일주일, 삼일 금식을 밥먹듯이 했습니다. 금식을 할 때마다 아내의 몸은 자꾸 불어났습니다. 몸이 불어나면서 저혈압이 오더니 지금은 고혈압이 오고 지금은 골다공증과 머리의 혈관이 터지는 뇌경색이 왔습니다.
아내는 한번도 백화점 옷을 사 입어 본 일이 없습니다. 돈도 없거니와 하나님 앞에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죄책감으로 그런 곳을 평생 드나들지 않았습니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의 단골 손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죄송스러워 아파트의 지하실에 헌 옷을 모아 둔 상자를 뒤져 입을 만한 옷들을 주어다가 낡은 재봉틀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 입히고 다닙니다. 아내만 그렇게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아내가 주어 온 옷을 입고 우리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도 아내가 주어 온 옷을 입고 다닙니다. 우리 손녀는 그렇게 주어 온 옷들 때문에 수 십 벌의 예쁜 옷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내는 시장을 주로 밤에 갑니다. 장사하는 이들이 상품 가치가 없어 버린 것들을 주어 오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주어다 김치도 담그고 다른 반찬도 합니다. 구리 시장을 다니기도 하고 경동 시장을 가기도 하며 청량리 시장이나 가까운 동네 시장을 가기도 합니다. 아침에 들어오는 신문에 붙여 오는 광고지를 유심히 보고 500원 짜리 되지 고기를 사려 다닙니다.
아내는 자기 입에 들어가는 맛있는 음식을 절대 먹지 않습니다. 나나 우리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아에 그 반찬에 손을 대기도 싫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살면서 아내가 무엇을 먹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아직도 모릅니다.
내가 10여 년 전에 당뇨가 생기자 아내는 크게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성격상 낙심만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닙니다. 당뇨에 대한 정보를 여기 저기서 수도 없이 수집했습니다. 그래서 당뇨에 좋다는 호박을 시골에서 10통도 넘게 사 와 썰고 삶고 말리고 정제를 해서 5년이 넘게 나를 먹였습니다. 소 사골을 먹으면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소 사골을 버린 곳은 없었고 결코 그것을 사기에는 우리들의 형편과 처지와 마음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수개월을 고심하다가 결국 한가지 방법을 찾았습니다. 되지 뼈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돼지 뼈는 3,000어치만 사면 도저히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줍니다. 그것을 사서 삶아 나를 먹이기 위해 아내는 마장동 시장을 갑니다. 그리고 허리가 휘어지고 다리가 휘청거리도록 그것을 사 와 삶고 또 삶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먹입니다. 거의 10년이 다 되도록. 나는 그 뼛국에 질리고 질렸지만 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안 먹으면 또 이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동 시장을 가서 내 건강에 좋다는 여러 가지 한약 제를 사 와 재탕 삼탕을 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물 마시듯 마시게 합니다. 이런 아내의 지극 정성으로 지금까지 나는 아무런 합병이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며 삽니다.
우리 부부는 여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해서 이 문제로 여러 번 다투기도 했습니다. 여행을 가자고 하면 아내는 천국에 가면 얼마든지 좋은 것을 많이 구경할텐데 없는 돈을 써 가며 고생을 사서하는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국은 고사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습니다.
결혼을 하고 25년이 되었을 때 총회에서 목사 장로 기도회를 제주도에서 한 일이 있었습니다. 비용이 워낙 적게 드는 혜택이 많은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로서는 혜택이 많아지고 마음에 과 지출이 되는 경비가 필요했습니다. 나는 아내를 이런 말 저런 말로 설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회를 우리 부부 신혼 여행으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결혼 25년 만에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고향 친구 목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수년간 저축해 모아 놓은 돈으로 함께 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우선 돈이 들지 않는지라 무척 좋아했습니다. 더욱이 고향의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은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습니까? 마치 어릴 적 고행의 소풍 가는 기분이 들어 흥분하고 좋아하며 김포를 출발했습니다. 아마 이것이 아내의 두 번째 비행기 타기일 것입니다.
여기 저기 관광을 다니면서 아내는 정말 흠뻑 즐거워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진주와 보석을 파는 가게에 들렸습니다. 가이드가 그곳으로 우리들을 데려 간 것입니다. 갖가지 진귀한 보물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사모들에게 이것저것을 사 주면서 목에 걸어 보기도 하고 손에 끼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곳에서 싼 물건을 사 두었다가 아이들 결혼할 때 세팅을 해 주면 이익이 된다고 했습니다. 나도 장래를 위해 한 두 가지 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그 가게밖에 나가 서성거리며 그 쇼핑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는 한가지도 그럴듯한 장신구가 없습니다.
아내는 누구에게나 나의 그 많고 많은 약점들과 허물을 이야기 한 일이 없습니다. 심지어 돌아가신 장모님이나 동생까지도 나의 못된 이야기들을 하지 안았습니다. 그래서 장모님은 돌아 가시면서도 나 김 서방을 하나님의 천사쯤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제도 나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목사로 생각해 줍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도 아내의 입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아내에게 유일 한 취미가 한가지 있습니다. 시장을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것입니다. 아이 쇼핑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반사적인 욕구 충족 수단인 것 같습니다.
아내의 몸에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겪어 던 온갖 삶의 흔적들이 많습니다. 세 번씩이나 유사 장티푸스에 걸려 빠진 머리칼이 다시 무성해지지 않고, 심방을 가다가 다리가 엎질러져 인대가 늘어나고 뼈가 조금 상했는데 그것 때문에 몇 년씩이나 고통을 당했으며, 겨울에 기도원에서 얼음판에 미끄러져 부러진 팔목은 지금도 그 모양 세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두 번에 걸친 배수술 자국들은 지금도 그 흔적이 뚜렷하고, 마취도 할 겨를도 없이 받아야 했던 식도 수술은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흔적들이 주님을 위한 영광의 흔적들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 까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지금 내 옆에서 쌔근거리며 잠을 자고 있습니다. 밤 10시만 되면 세상일이 어찌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깊이 잠이 들어 버립니다. 나는 글을 쓰다가 엉금엉금 기어 아내 곁에 누웠습니다. 아무리 깜깜해도 나는 아내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꼽 아래로 10센티가 넘게 길게 내려 간 칼 자극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의 마음도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나는 내 아내에 한한 한 도사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한 평생을 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 주고 아껴 주며 눈물 없는 울음으로 나의 괴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보람과 기쁨을 배가 되게 했습니다. 그런 아내의 살찌고 뜨거운 손을 살며시 잡아 봅니다. 아내는 잠을 자면서도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응답을 해 줍니다.
만일 내게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진즉 목사를 그만 두고 무슨 짓을 하며 살았을지 모를 일이고 목사를 한다고 해도 건강이 나빠져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 모를 일이며 합병증으로 다리를 절단했을지, 눈이 멀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습니다. 만일 아내가 없었다면 우리 삶의 희망이요 보람이며 못난 내 인생의 방패막이가 되어 못났어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하는 우리 아이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내는 약 40일 전부터 하루에 1,000칼로리의 음식을 먹고 3시간 정도 걷기 운동을 합니다. 놀랍게도 그 사이 5키로 정도의 체중 감소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다이어트입니다. 그것만 빠져도 날씬해 저서 주어 왔어도 입을 수 없었던 몇 가지 예쁜 옷들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것들을 입고 이리 저리 돌면서 마냥 기뻐합니다.
지금 나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지난날들의 고생과 괴로움이 나이가 먹어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이 나이에 모두 다 하나님께서 되돌려 주시는 보상이 되어 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멸시를 하며 이런 말 저런 말로 우습게 여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도 나를 부러워합니다. 이 모든 행복과 감사는 아내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입니다. 이 나이에 내가 이혼을 당할까 보아서 아내에게 아첨하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김창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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