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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모님의 일주일(4)

주 일

아 침

아침부터 괜히 마음이 바쁘다. 교회에 가져 갈 여러 가지 물건들을 챙겼다. 육개장 거리들과 쌀과 김치와 아이들에게 줄 과자들이다. 그것들을 아침 일찍 챙겨 8시전에 교회로 가시는 목사님의 차에 실어 놓아야 한다.

나도 오늘은 일찍 교회를 갔다. 점심 때문이다. 점심을 하기 위해 석유 버너에 불을 지펴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쉽지 않다. 진즉 가스 버너로 바꾸고 싶지만 교회를 시작할 때 목사님과 함께 청계천의 중앙 시장에 가 석유 버너 두 개와 큰 들통들과 그릇들을 직접 사 왔는데 이 물건들이 아직도 새 것이나 다름이 없어 버리기도 아깝고 무엇보다도 화력이 강해 음식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 오늘까지 쓰고 있지만 공기를 통 안에 압축하고 불을 붙이는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 흠이다.


점심 준비

이 버너에 불을 붙이는 일을 지난번에는 전도사가 맡아 잘해 주었다. 그런데 새로 온 전도사는 전혀 이 일에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한 두 번 내가 교육을 했지만 잘하지도 못하고 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 집사들도 불을 붙인다고 하지만 아파트 살림에 별로 쓰는 일이 없는 생소한 물건이 여서 전도사와 서투르기는 매 한가지다.

천상 내가 이 일을 모두 해야 했다. 그럴 줄 알고 오늘 일찍 교회에 와 버너에 불을 뭍이고 물을 올려놓았다. 썰어 온 고기를 넣고 다른 재료들을 넣는다. 이런 점심 준비는 60명이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분량을 해야 좀 넉넉하다. 두 개의 버너가 경쟁하듯 힘차게 파란 불길을 맹렬히 품어 낸다. 기분이 아주 좋다. 맛있게 많이 끓여 배가 부르도록 먹일 생각이다.


예배 안내

그렇게 점심 준비를 하면서 예배 시간이 되자 나는 안내를 해야 했다. 오늘도 바로 옆에 있는 친된 교회의 사모가 나와 함께 나란히 서서 안내를 하면서 싸늘한 시선을 보낸다. 가장 교회인 그 교회의 목사님은 나이가 30이 조금 넘었다. 우리가 이곳에 오지 바로 두 주일 전에 입당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당도 작았지만 그래도 예배를 드린 첫 주일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도들이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 오자 성도들이 모두 우리 교회로 와 버려 자기 교회가 성장하는데 큰 지장을 받게 되었다고 여간 속이 상해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좌우간 그런 관계로 우리들은 정말 껄끄러운 사이가 되어 성도들을 안내하는 사모들이 되어 버렸다.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예배 시간에 아이들 돌보기

11시 예배 시간이 거의 되자 성도들이 밀려 왔다. 이제 어느 정도 체념을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김 집사 내외가 몹시 기다려진다.

예배가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제부터 또 다시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교회는 아파트 한 가운데 상가 이층에 있어서 젊은 엄마 성도들이 많다. 그리고 그 엄마들이 교회를 올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7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부모를 따라 온 1-3살 사이의 아이들이 무려 20명 정도가 된다. 이 아이들은 예배를 드리려 오는 것이 아니다. 모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나들이를 한 것이다. 상가 이층 전체가 저희들 놀이터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놀다가도 몇 번 씩이나 제 부모들이 있는 곳에 잘 있는지를 확인한다. 성전 뒤편에 유아 실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그곳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3살짜리들이 큰 문제다. 그 아이들을 모두 돌보아야 한다. 우는 아이 달래기, 엄마 찾아 들락날락하는 아이 내 보내기, 오줌 싸고 대변보는 아이들 뒤치다꺼리하기, 정신이 없다. 이건 숫제 난장판이고 전쟁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 온 젊은 엄마들은 제 아이들을 챙기지 않는다. 아마도 유치원에라도 데려 온 줄 아는 모양이다. 내가 아이들을 돌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열심히 예배를 드린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아이들 때문에 목사님의 설교를 잘 듣지 못할까 바 조바심을 내며 아이들 부모들의 예배를 방해하지 못하게 아이들과 일전을 벌린다. 정말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제 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고 한 대의 매도 맞지 않았으니 남아 있는 것은 고집 밖에 없다. 그 아이들에게 과자를 주며 장난감을 주며 별별 짓을 다 하다 보면 내 입은 바짝 마르고 단내가 난다. 그리고 그 정신 없는 예배가 끝이 난다.


점심 먹기

목사님이 육개장 광고를 하신다. 성도들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소문난 육개장을 먹고 가겠다는 것이다. 다행이 그런 우리 성도들의 귀여운 행동이 나를 즐겁게 해고 피로를 풀어 준다. 우---하니 여러 여 집사들이 몰려나온다. 그리고 밥과 국과 김치와 다른 한 두 가지 반찬을 곁들여 잔치를 벌린다. 여기 저기서 땀을 흘리며 후후 불며 쩝쩝거리며 먹어대는 모양은 정말 감격적이 아닐 수 없다. 점심 후에 설거지는 여 집사들이 해 준다. 음식이 많이 남았다. 배불리 먹는 것은 좋으나 꼭 먹어야 할 사람들이 많이 빠져 서운했다.

"사모님! 육개장 만드는 방법도 가르쳐 주세요" 하면서 칭찬 칭찬이 널렸다. 나는 사는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그런 우리 성도들이 전혀 남과 같지를 않다. 모두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은 김 집사 부부가 빠졌다. 그들도 이 육개장을 무척 좋아했는데.


심방

식사를 마치고 대충 설거지를 한 후에 나는 목사님과 함께 심방을 가야 했다. 우선 지난 월요일에 전도를 하다가 만난 권사의 따님을 찾아가야 헸고 지난 주일에 등록한 두 가장을 오늘 약속대로 심방을 해야 했다. 그래도 이런 심장은 정말 보람되고 신이 난다. 세 식구가 된 두 가정은 정말 좋은 성도들인 것 같다. 선친 때부터 신앙 생활을 잘해 오신 장로의 자녀들이요 집사의 자녀들이었다. 심방을 간 우리들을 깍듯이 대해 주었으며 목사님의 설교와 내 육개장을 칭찬해 주었다. 목사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교회를 잘 도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권사 따님은 집에 없었다. 다시 시간을 약속하기로 하고 집에 돌아 왔다. 새로 등록한 두 가정을 심방하고 나서야 떠난 김 집사에 대한 괴로움이 많이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간 사람 대신 다른 두 가정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심방을 마치고 집에 와 잠깐 쉬고 있는데 전도사가 왔다. 전도사의 점심은 교회에서 해결한다고 해도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였다. 이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식구들이 먹는 밥상에 밥 한 그릇 더 올리면 되는 일이지만 말이 그렇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전도사의 식사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경험했다.


전도사 저녁 식사

한 때는 내가 주일에 지나치게 수고를 한다면서 재직회에서 결정해 돌아가며 전도사의 식사를 맡은 일이 있었는데 두 달이 가지 못하고 모두 손을 들어 버렸다. 성도들도 주일에 피곤한데 손님을 대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전도사의 저녁 대접은 내 차지가 되었다.


저녁 예배

저녁을 먹고 해가 넘어 가자 저녁 예배를 드리려 교회를 갔다. 저녁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들은 현저히 적다. 그러나 정말 신앙 생활을 잘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대 부분이다. 그런데 설교를 간단히 하고 철야 기도회 식으로 기타를 치고 북을 치며 노래 부르기를 하니 점점 더 많이 출석을 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찬송 부르기 예배를 드린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모두 목사님이 알아하시는 일이 아닌가?

나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한가지 집착되는 생각이 있다. 저녁 예배가 끝나면 재정부의 회계 집사가 낮에 봉헌된 헌금에 대한 보고서를 목사님께 가져오는데 그게 궁금한 것이다. 그것은 내일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이 있어야 하고 수 백만 원의 선교 비를 송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도 우리 성도들은 80% 정도밖에 출석하지 않았었다. 마치 교회 안 와도 될 구실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회 오는 것을 상대화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 같다.


새로운 걱정

써야 할 돈이 모자라면 재정부에서 책임을 지고 메워 주면 좋겠는데 아직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까지 성장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모자란 돈은 목사님이 책임을 지셨는데 남에게 돈 이야기를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모자란 돈을 매꾸어야 하는 일이 미일 비제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헌금에 대하여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언제나 돈 걱정하지 않고 교회를 섬길 수 있을까? 교회에서 받는 얼마 되지 않는 사례비를 이제까지 제대로 받아 본 일이 거의 없다. 오늘 헌금을 보니 내일 또 누구에게 돈 이야기를 해야 할 모양이다. 마음이 무겁다. 이런 생각이 모두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이 알아하시겠지-----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 것은 죄인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오늘 심방한 두 가정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마음 흡족하다.

내일 새벽까지는 죽은 것처럼 잠을 자야지--------

칭찬의 위력

저자 소개 제리 D. 트웬티어 - 저자는 사립, 공립하교 일반 직장 등에서 환경 훈련 경험을 20년이나 하였다. 또한 작가, 상담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교육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40권 이상의 저 있으며 현재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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