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모님의 일주일(3)

금요일

이래서는 안되지 하고 나와 목사님은 몸을 떨쳐 일어났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라고 이미 마음과 몸이 떠난 사람들에게 매여 할 일을 못하면 되겠는가 싶어 아침을 먹고 구역장들 구역 공부를 시키려 10시에 교회를 나갔다. 구역장들이 모였다. 그러나 김 집사의 자리는 비여 있다. 20명이 넘는 구역 인도자들이 다 모여 있는데 어떻게 오지 않는 김 집사의 자리만 그렇게 커 보이는지 모르겠다. 구역 공부를 시키신 후 목사님은 구역장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희가 김 집사 집에 몇 번 심방을 했는데 우리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니 김 집사와 가까이 지내시던 집사 님들이 구역 예배 끝난 후 다시 한번 가셔서 권면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집사가

"그러잖아도 저와 심 집사와 최 집사가 오후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분들이 거기에 간다는 말에 고맙기도 했지만 그들도 김 집사의 말에 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나는 두 구역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전도를 더 할까 하였으나 힘이 없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이 되어 집에 왔다. 목사님은 김 집사 구역을 인도하시려 가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으셨다. 김 집사 때문에 구역 식구들은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목사님이 늦게 오셨다. 김 집사의 8구역에서 오래 머무르시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노라 늦었다고 하셨다. 다행이 구역 식구들의 움직임은 별로 염려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공부하라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11시부터 내일 새벽 5시까지 금요 철야 기도회가 있기 때문에 초저녁에 좀 자야 되기 때문이다. 1시간이나 잠을 잤을까? 자는 둥 마는 둥 이리 저리 물먹은 솜같이 처진 몸을 뒤채기며 비몽사몽간을 헤맬 때 요란한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은 후 교회에 나갔다. 깜깜한 성전에 불을 켜고 목사님은 강단에 올라 기도를 시작하고 나는 맨 뒤 의자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도 어느 틈에 김 집사네가 온갖 표정을 하고 내 머리에 와 자리를 잡고 내 가슴에 와 자리를 잡는다. 그 모습 그 생각을 떨어버리려고 교회밖에 나가 서성거려도 소용이 없다. 사람의 정이라는 게 이렇게 끔찍한 것일까? 그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올 대는 그렇지 않았는데 갈 때에는 기어코 우리 심장을 찢어 놓고 우리들의 삶은 여지없이 요동시켜 버렸다. 목회 15년 동안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데도 매양 같은 병앓이를 하고 같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는가 싶다.


시간이 되자 성도들이 한 두명 씩 모이더니 늘 모이는 숫자인 30여명이 모였다. 목사님은 지난 금요일에 이어 빌립보서를 강해 하신다. 빌립보서는 "성도의 기쁨의 생활"이 대 주제다. 그러나 목사님의 강해에는 힘이 없다. 듣는 나는 목사님이 강해 도중에 김 집사의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이 조마조마해 빨리 강해가 끝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오늘 따라 왜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시는지 "목사님, 그만 하세요"하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울컥 울컥 치민다. 기도회를 나온 성도들은 한 두 사람 조는 사람도 있고----

찬송 부르는 시간이 되었다. 주로 복음 찬송을 부르는데 기타를 치는 신 집사가 나와 인도를 했다. 그리고 다른 집사가 드럼을 쳤다. 피아노와 기타와 드럼이 한데 어울려 내는 소리는 듣기에 정말 좋았다. 처음에는 이런 악기 소리에 주변 아파트 사람들이 거세게 항의를 했지만 교회에 방음을 하고 난 후에는 좀 낳아졌다. 찬송과 복음 찬송을 40분-1시간 정도 부르고 나면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해지고 새로운 힘이 생겼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우울하고 울적한 마음을 찬송을 힘있게 불러 다소 풀 수가 있었다.

찬송이 끝나면 기도 시간이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돌아가면서 기도하고 그룹을 지어 기도하는 3시간 이상의 기도 시간이다. 찬송을 많이 불러서인지 기도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통성으로 기도하는 시간에 소리 소리를 지르며 기도를 했다. 우리 목사님을 위해 소리질러 기도를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김 집사를 위해 기도하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기도는 끝이 없다.

기도를 하면서 마음껏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울면서 기도를 하면 옆에 있는 성도들이 모두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김 집사 때문에 마음이 아파 기도를 해도 다른 성도들은 전혀 그런 네 속마음을 알 턱이 없다. 성도들의 터부니 없는 추측이 싫어 속으로 통분해 하면서 기도를 하자니 정말 가슴이 벅차 피눈물이 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니 그만 잊자고 해도 잊어지지를 않는다. 이런 일이 또 다른 성도들에게 있을까 바 한 사람도 교회를 떠나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한다. 그렇게 기도하는 동안 언간 새벽 5시가 되었다. 목사님이 강단에서 일어 나 마무리 기도를 했다. 그리고 철야 기도회가 끝이 났다. 성도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목사님과 나는 아직 집으로 갈 수가 없다. 철야를 나오지 못한 성도들 기운데 누가 새벽에 나와 기도할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6시가 되어서야 우리 부부는 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깊고 깊은 새벽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토요일

나는 아이들 학교 가는 것 때문에 7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한없이 머리가 무겁다. 가만히 서 있기도 힘이 든다. 특별히 어제 밤에 감당할 수 없는 애통으로 너무 힘을 쏟아 기도를 해서인지 오늘은 더 정신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할 일이 많다. 아이들을 대충 챙겨 학교를 보내고 일주일 동안 밀린 빨래를 하는 동안에도 목사님은 깊은 잠에서 깨나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주무시게는 할 수 없다.

우선 꽃꽂이를 하기 위해 꽃을 사는데 목사님의 수고를 빌려야 한다. 내가 차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교회 청소를 해야 하며 내일 먹을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꽃꽂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꽃꽂이를 꽂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맡기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꽃꽂이를 하겠다는 집사에게 한 동안 꽃꽂이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너무 값비싼 꽃을 사 와 작품을 만든답시고 그 아까운 꽃을 태반이나 버리면서 낭비를 했다. 나는 버린 꽃들을 주어 집에 가져 와 꽂아 놓고 제발 교회 살림을 좀 아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 그 집사가 몇 번 꽃꽂이를 하다가 그만 두자 다시 내가 그 일을 맡았다.

목사님에게 꽃꽂이 시장을 다녀오자고 했더니 오늘 목사님의 모임이 있어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별 일이 아니면 내일 주일 준비로 모임에 빠지면 안되겠느냐고 했으나 그럴 수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이다.

나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한마디했다.

"어제 저녁 기도회의 설교가 왜 그리 잔소리가 많았어요"

금세 얼굴 색깔이 변한 목사님이

"무슨 소리하는 거야"

"빌립보서는 성도의 기쁨이라고 하는데 하나도 기쁜 내용은 없더라 뭐"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왜 설교 가지고 시비를 하는 거야 다음부터는 당신이 하라고---"

우리 부부는 토요일이 부부 싸움을 많이 하는 편이다. 목사님도 주일 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고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더욱이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많은데 처음부터 전혀 목사님이 협조를 하지 아니하니 나는 속이 뒤틀렸던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이 버스를 타고 터미널 꽃꽂이 상가에 가 꽃을 사 와야 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즐겁고 감사가 넘쳐야 하는데 오늘은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힘들고 부담스럽다.

꽃을 사 가지고 교회에 와 꽃꽂이를 하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어 버렸다. 이제 교회 청소를 해야 하는데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같이 청소할 사람을 기다렸다. 오늘 성전의 청소 당번은 하필 8구역인데 구역장이 그 모양이니 구역 식구들이 오늘 자기들의 청소 당번인지나 알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오면 좋지만 안 와도 청소는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청소를 시작했다. 무거운 의자들을 이리 밀고 저리 밀면서 한참 땀을 흘리고 있는데 안집사가 청소를 하려 나왔다. 정말 반가웠다. 평소에도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더니 역시 고마운 사람이다. 둘이서 교회 청소를 모두 마쳤을 때는 6시가 넘었다. 안 집사를 집에 보내고 나머지 잔무를 정리하고 집에 오니 7시가 되었다.

그래도 염려가 되어 혹시나 하고 국수를 끓이는 들통과 석유 버너를 점검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름이 없다. 이런 일들은 전도사님이 좀 챙겨 주었으면 좋겠는데 학생들과 어울려 무엇을 하는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다가 언제 돌아가는지 가 버려 이런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석유통을 들고 주유소에 가 석유를 사 놓고 집에 오니 정말 죽을 지경이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 먹이고 나도 밥을 앞에 두고 기도를 했지만 입이 깔깔해 잘 넘어 가지를 않는다. 몸이 말할 수 없이 나른해서 그저 눕고만 싶다.


그러나 할 일이 또 남아 있다. 이제 내일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다른 때 같으면 점심 준비래야 별 것이 없지만 내일 점심은 좀 신경을 써야 한다.

평소에 매 주일 점심을 먹는 식구가 30-40명이 정도가 되는데 주로 성가 대원들이 먹지만 일부러 점심을 먹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떤 때는 50명 넘게 점심을 먹는 날이 있다. 평소에는 국수 공장에서 싼값으로 사 온 손칼국수를 멸치 국물에 삶아 김치를 얻어 주면 그렇게 맛있게 잘 먹을 수가 없다. 좀 좋은 것으로 많이 먹을 수 있었으면 오직 좋겠는가 마는 교회 형편이 그렇지를 못해서 주일마다 국수를 먹이는 내 마음이 영 편치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그것을 너무 잘 먹어 주어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다.

지난 주일에 송 집사가 점심 국수를 먹으면서

"요즘 우리 사모님의 육개장을 통 구경할 수 없더라. 사모님! 육개장 좀 먹여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거기 있던 모든 성도들이 특히 성가대의 청년들이 이구 동성으로

"그래요. 그래요. 사모님 육개장 먹고 싶어요"하는 것이 아닌가? 특별히 잘 만든 육개장도 아니건만 이것저것 낳고 고기 몇 점 더 넣어 국물이 깊이 울어 나도록 오랫동안 끓인 육개장을 우리 성도들은 최고의 별미로 알아하다. 그 육개장을 먹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 주일에 끓여 줄 테니 기대하십시오"라고 했다. 거기 있던 모든 성도들은

"와----"하고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는지 모른다.

내일은 그 육개장을 끓여야 한다. 저녁을 대강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시장을 갔다. 필요한 몇 가지 재료들을 사 가지고 오는데 무게가 천근 만근이다. 그걸 집에 가져 와 조리할 수 있도록 다듬고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갔다. 일을 다 마치고 나니 11시가 넘어 버렸다. 이제는 정말 잠을 자야 한다. 내일은 더 큰 일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가?


목사님은 내일 주일인데 설교 준비는 하지 않고 어디를 가셨는지 전화도 없다가 밤 8시나 되어서야 오셔서 설교 준비를 한다고 서재에 들어 가 꼼짝은 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침에 목사님의 설교에 대하여 이렇궁 저렇궁 말한 말들이 약간은 후회되었지만 설교에 은혜가 안되어 교회를 떠난다는 김 집사의 말 때문인지 내일 목사님의 설교가 무척 신경이 쓰인다.

우리 목사님은 노래할 때의 음성은 좋은데 설교할 때의 음성은 메마르고 거세며 고음이 많아 듣기에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걸 본인이 이미 알고 있으니 좀 소리 지르는 것을 자제하면서 음성 조절을 했으면 좋겠는데 영 그렇지를 못하다. 특히 사람들의 죄 짓는 일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일들을 말씀할 때는 그러잖아도 그런 말 듣기가 부담되는데 듣는 사람 생각은 하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니 정말 은혜를 받기커녕 시험에 들겠다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앉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이야기하면 목사님은 알았다 하고 그냥 넘어 가던지 아니면 자꾸 거듭되는 내 말에 짜증을 내신다. 어느 누가 나 보다 더 목사님의 설교에 염려를 많이 하는 사람이 있다고----- 참으로 안타깝다.

많은 성도들이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고 우리 교회에 등록을 했다. 그러나 요즘 더 목사님의 설교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다. 기미 집사 때문에 이런 노이로제에 걸린 것인가? 설교 준비하시는 목사님의 신경을 건드릴세라 나도 아이들도 걸음걸이조차 조심조심해야 했다.

이제 내일 주일을 위해 준비할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았다. 하나님께 드릴 헌금을 챙기는 일이다. 우리들은 이제까지 세 종류의 헌금은 빠지지 않고 드렸다. 그 한가지는 11조요 감사 헌금이다. 그리고 세 번째 헌금은 우리 아이들을 하나님께 받혔다는 의미의 아이들을 위한 서원 헌금이다. 이 헌금은 우리들이 드리는 11조와 같은 금액의 헌금이지만 매 주일 빠지지 않고 드리는 헌금이다. 이 헌금을 드리게 된 것은 레27:2-8의 말씀에서 은혜를 받았기 대문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소원하는 부모들은 누구든지 이 예물을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일 입으실 옷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먼저 들었다. 그 설교 준비가 언제 끝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기다릴 수가 없다. 너무 피곤하고 힘들기도 하고------.

칭찬의 위력

저자 소개 제리 D. 트웬티어 - 저자는 사립, 공립하교 일반 직장 등에서 환경 훈련 경험을 20년이나 하였다. 또한 작가, 상담원,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텍사스 공과대학에서 교육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40권 이상의 저 있으며 현재 주요 기관들을 위해서 인간 관계 훈련. 자기 훈련 등의 강사로 일하고 있다. 목 차 제1부 더 나은 삶을 위하여몇 칼

온 가족이 드려야 하는 가정 예배

“가정예배는 복의 근원입니다” ? 제임스 W. 알렉산더(1804-1859) 청교도들은 가정을 작은 교회로, 아버지를 그 교회의 목사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기 가족을 감독하며 목양하는 것은 아버지의 의무였다. 사실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인 가정에 가정 예배가 절실이 필요한 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 예배에 대한 개념은 우리들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가정 예배론

가정예배와 영성형성 개인예배와 가정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는 공동예배와 통합하는 한 유익한 길은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를 공동예배의 구조를 따라 조직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본 장은 독자들에게 가정예배의 면모를 소개하고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 모범적인 예전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