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Chief priest, High priest)
성막과 제사의 일을 담당했던 레위 지파와 제사장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고 제사에 관한 제반 사항을 지휘했던 제사장직의 최고위자이다.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히브리어는 대부분 '학코헨 학가돌'(hakkohen haggadol; 위대한 제사장)과 '학코헨 함마쉬아흐'(hakkohen hammashiach;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가 쓰였고 어떤 곳(왕하 25:18; 대하 19:11; 렘 52:24)에서는 '코헨 하로쉬'(kohen haro'sh; the chief priest)가 쓰였는데, 개역성경은 모두 대제사장으로 번역했다. 신약에서는 '아르키에류스'(archiereus; 단수)와 '아르키에레이스'(archiereis; 복수)가 쓰였는데, 단수로 쓰일 때는 현직 대제사장(신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 가야바로서, 그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제사장으로 있었던 인물이다)을 가리키거나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을 가리킨다(가야바- 마 26:57; 요 18:13; 안나스- 눅 3:2; 요 18:24; 행 4:6; 아나니아-행 23:2; 24:1). 복수로 '대제사장들'이라고 쓰일 경우는 공회를 구성하는 대제사장 가문들, 저명한 대제사장의 문중들과 함께 다스리는 대제사장들과 과거의 대제사장들을 포함한다(행 4:6). 여기에 성전을 관리하던 책임자들과 경비 대장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반대하는 종교적 권위를 지닌 집단으로서 언급되며, 개인적으로는 언급되지 않고 공회의 다른 관원들(눅 23:13; 24:20)과 서기관들(마 2:4; 20:18; 21:15)과 서기관들 및 장로들(마 16:21; 27:41; 막 8:31; 11:27; 14:43, 53; 눅 9:22)과 장로들(마 21:23; 26:3)과 함께 등장한다.
대제사장은 아론으로부터 엘르아살로 계승되었으며(민 20:23-29; 27:18-23), 그 이후부터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장자에게만 계승된 종신직이었다(민 25:10-13).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그 성격이 변하기 시작해 나중에는 헤롯 및 로마 정부에 의해 임의대로 임명되기도 했다.
대제사장의 임무와 규례
대제사장은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속한 일에 세움을 받은 자(히 5:1)로서 일차적으로 매일 소제를 드리는 일과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레 16:2, 11, 14, 34; 히 9:7; 10:3).
특별히 일 년에 한 번(7월 10일)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속죄일'(Yom kiphur; 욤 키푸르)은 대제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날 가운데 하나였다(레 16장; 히 9:7; 10:3).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고 단독으로 속죄소에 들어가서 자신과 권속(참고 - 가족)들을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는데 그러기에 앞서 대제사장은 번제단에 있는 숯을 향로에 가득 담고, 지성소 안에 들어간 준비된 향료를 분향하여 법궤 위 속죄소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였다(레 16:11-13). 대제사장은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물인 수송아지의 피를 먼저 속죄소 동편(입구편)에 손가락으로 그 피를 뿌리고, 또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렸다(레 16:14). 첫 번째 피를 뿌린 것은 지성소를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 일곱 번 뿌린 것은 대제사장 자신의 속죄를 위해 뿌린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죄를 위한 두 번째 제사에는 두 마리의 염소가 드려졌다(레 16:6-10). 제비를 뽑아 그 중 한 염소는 잡아서 세 번째로 지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수송아지처럼 속죄소 위와 아래에 뿌렸으며, 다른 한 염소는 대제사장이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전가한 후 광야로 내보냈는데(레 16:21-22), 이를 '아사셀 염소'라고 불렀다. 이때 비로소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 입었던 세마포를 벗고 나와서 자신과 백성을 위하여 번제를 올렸다(레 16:23-24). 대속죄일에는 특이하게도 위엄스런 본래의 대제사장 복장이 아니라 단순한 세마포 옷을 입고 이 예식을 거행했는데, 이는 죄에 대한 겸손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온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음.)
속죄일(Day of Atonement)
일 년에 한 번 하나님께 대제사장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는 날로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티쉬리 월-태양력으로 9-10월경) 10일을 말한다(레 16:30, 33-34; 23:27).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속죄 제물을 위한 숫염소 둘과 번제를 위한 숫양 하나를 취하고 대제사장 자신과 그의 가족을 위한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와 번제를 드릴 숫양을 취하여 취하여 회막에 나아갔다(레 16:3, 5-6). 대제사장은 그와 그의 가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드렸는데(레 16:6), 수송아지 피를 지성소 속죄소 동편에 손가락으로 뿌리고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려 속죄하였다(레 16:14). 그리고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려 백성의 죄를 대속하였다(레 16:15-16). 하나님은 바로 속죄소에서 모든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해 나온 대제사장을 만나 주셨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는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위해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려 피흘려 죽으실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히 7:26; 9:12; 10:10).
한편 속죄 제물로 쓰인 두 마리 염소 중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광야로 보내어 백성의 죄를 속죄하였는데(레 16:10) 이것은 백성의 죄를 진 밖으로 내보냄을 교훈하는 강력한 시각 교재였다. 광야로 내보낸 속죄 염소에 대해 신약성경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속죄 염소를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생각하고 있다. 속죄 염소가 백성들의 죄를 지고 광야로 나가 죽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의 죄 때문에 예루살렘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번제단에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뿌려 번제단을 정하게 하였고(레 16:18-19) 속죄 제물로 드려진 동물의 가죽과 고기, 배설물 등은 진 밖에서 불태워졌다(레 16:23-27). 속죄일은 큰 안식일로 지켜졌다(레 16:31). 이스라엘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아무 일도 해서는 안되었고 금식하며 회개하는 날로 지켜야 했다(레 16:29).
속죄일에 대제사장의 개인적인 준비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과 고의를 입고 세마포 띠를 허리에 두르고 머리에는 세마포로 된 관을 썼다(레 16:4). 이 날 대제사장이 입는 것은 모두 세마포로 만든 것으로 평소보다 덜 화려하고 수수한 복장이었다.
대제사장의 고유한 복장은 아름다운 색상의 옷감에 화려한 자수,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것이었지만(출 28장), 속죄일에 입는 복장은 마치 노예가 입는 것과 같았다. 속죄일에 입는 대제사장의 옷은 왕 중 왕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종의 모습을 보여 준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속죄일
속죄일에 관한 내용은 히브리서 특히 히브리서 9장에 나온다. 히브리서 기자는 속죄일에 행하는 의식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말하고 있다. 최초의 성 금요일은 인간의 죄가 단번에 영원히 제거되는 최종적인 속죄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일에 이루고자 하였던 속죄를 완전히 성취하셨던 것이다(히 9:12).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 이후에는 모든 성도들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20).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
히브리서는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있는 유사점을 '이와 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히 5:5). 우선 신분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되는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영광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히 5:4-5). 히브리서 기자는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와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는 두 개의 시편으로 입증한다. 또한 성품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히 5:2) 같이, 예수님께서도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시다(히 4:15). 왜냐하면 대제사장이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는 것'(히 5:2)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육체로 계실 때에 …심한 통곡과 눈물'(히 5:7)을 가지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
대제사장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다.
1. 죄(罪)의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렸지만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레 16:11; 히 5:3).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로서 연약에 싸여 있기 때문이었다(히 5:1-2).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히 4:15) 자기 자신을 위해 속죄할 필요가 없으셨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히 7:26).
2. 대제사장의 반복적인 제사의 문제이다.
이것은 두 가지 면으로 설명된다. 우선 대제사장의 제사의 반복은 대제사장의 수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의 숫자는 아론 이후로 많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죽음으로 인하여 항상 그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히 7:23).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한 제사장이시다(히 6:20; 7:21). 예수님은 영원히 계심으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한다(히 7:24). 또한 대제사장의 반복은 대속죄일의 시효와 관련이 있다. 대제사장은 매년 다른 것의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야만 했다(히 9:25). 그러나 예수님의 제사는 자기를 단번에 드린 단회적인 것이며(히 9:26; 히 10:10), 이 때문에 '영원한 제사'(히 10:12)라고 부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의 종말론적인 성격과 영원한 성격이 결합된다(히 1:2).
3. 대제사장의 반차 문제이다.
대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만(히 5:4)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다(히 5:6, 10; 6:20).
히브리서 기자는 6-7장에 걸쳐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임을 집요하게 입증한 후, 어떻게 멜기세덱이 아론보다 더 큰 대제사장인지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히 7:1-3). 둘째, 아론(또는 레위)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멜기세덱과의 관계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예물을 드렸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했는데(창 14:18-20; 히 7:4-10), 낮은 자가 예물을 드리고 높은 자가 축복을 하는 법이다. 셋째, 멜기세덱의 시간적인 우선성 때문이다. 멜기세덱은 레위(또는 아론)보다 훨씬 먼저 활동했다(히 7:5, 10). 넷째, 대제사장의 조건 때문이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예수님은 맹세로 되었다(히 7:11-28). 아론의 반차에서 나오는 대제사장들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율법'(히 7:16상)을 따르지만 멜기세덱의 반차에서 나오신 그리스도는 '무궁한 생명의 능력'(히 7:16하)을 따르신다. 한마디로 말해서 전자는 율법의 계명으로 된 대제사장이요 후자는 맹세의 말씀으로 된 대제사장이다(히 7:28).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온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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