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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Theology, Theologia)이란 말은 어원적으로 보면 Theos(θεό󰐠)와 logia(λόγια)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에 관한 논술, 이야기(God-talk)를 말한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이었으며 이후 희랍 철학자들이 사용한 신학이라는 개념은 신들에 관한 서사시 내지는 설화들과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뜻하였다.


어거스틴은 신학을 “신성에 관한 이론 내지 연설”(de divinitate ratio sive sermo)이라고 정의하여 신론 특히 삼위일체에 관한 것을 의미하였다. 중세기에 이르러 신학은 교의학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어 창조론, 신론, 인간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등을 모두 다루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기독교에 관한 진리의 전반을 다룬다. 13세기 이후 대학에 법학이나 의학 등 다른 학과가 설립되면서 신학은 하나의 다른 학과로서 존속하게 되었고 기독교의 진리 전체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루터는 신학을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그의 말씀으로 얻어진 그리스도에 관한 인식”이라고 하였다. 개신교 정통신학자의 하나인 요한 게하르트(1582-1637)는 신학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며 인간이 참된 신앙과 경건한 생활가운데 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지음을 받는 이론”(doctrina ex vervo Dei extracta, qua homines in fide vera et vita pia erudiuntur ad vitam aeternam)이라고 정의하였다. 신학이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기독교 진리전반에 대한 학문으로 발전되어 교의학, 오늘날의 조직신학이 된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은 인간과 그의 세계와의 관계 속에 있다. 인간 및 그 세계와 관계없는 하나님에 대해 성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러므로 신학은 인간및 그의 세계와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에 관하여 연구 할 수밖에 없다. 신학이 하나님과 인간을 그 주제로 하게되면 신-인학(The-anthropology)이 되며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세계를 그 주제로 하면 신-인-세계학(The-anthropo-kosmology)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 그의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금 변한다. 또한 신학은 인간의 제한된 언어와 논리와 사고방식을 사용한다. 그리고 세계의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은 모두 다르다. 이와 같이 인간과 세계의 다양성과 신학을 연구하는 인간의 제한성 때문에 다양한 신학의 형성은 불가피하다.


종교개혁자들의 정통주의 신학이나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 칼빈의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 바르트의 말씀과 계시의 신학,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 60년대 이후 남미에서의 해방신학 그리고 한국에서의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새벽기도의 신학, 이중표목사의 별세의 신학, 배경식교수의 기다림의 신학 등은 시대와 상황이 만들어낸 성경해석에 대한 신학적 물음들이다.


신학의 주제를 신과 인간 그리고 세계로 삼는 것은 타당한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비추어 볼 때에도 가능해 지며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영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도 포함되어야 한다(골 1:20). 신학은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 장로교와 제 신학들

장로교회의 신학(prebyterian theology)은 개혁신학(reformed theology)을 말한다. 개혁신학은 종교개혁의 핵심 주장인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요약된다.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믿음으로’라고 강조한 구원관은 ‘행위는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얻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선행을 하는 것이란 말이다.

신앙에서 ‘이신칭의’를 강조하는 루터교신학과 구원의 확신과 성화를 강조하는개혁신학은 균형있는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신학적 입장이기도 하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의지가 협력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행하시는 일’이란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믿음이었다.

이는 천주교가 구원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와 협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주장에 반대하는 것이다.

또 장로교신학은 성경 외의 다른 것을 진리의 원천과 규범으로 삼는 것을 배격하였으며 오직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개혁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의 주권 및 영광에 큰 관심을 갖는 신학으로서 그 정립된다.


감리교 신학의 고유한 특징은 성경 전통과 이성이라는 영국국교회의 신앙지침을 공유하면서 체험을 신학의 지침으로 수용한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유산에서 나왔다.

웨슬리는 기독교를 ‘성경적 체험적 참 종교’라고 규정했다.

감리교 신학은 한국 문화와 심성에 뿌리를 내리는 기독교 영성을 지향하며 한국 교회를 위한 건설적 실천적 신학을 수립하는 데 힘써왔다. 웨슬리는 본질적인 감리교를 원죄, 칭의, 성결로 요약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했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죄인이 의롭다 여김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적 전통 중 하나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근본주의에 떨어지지 않으며 진보신학과 에큐메니칼 연대를 추구해왔다는 점이다.

감리교회는 신학적으로 교리적 정통성보다는 성서적인 구원의 삶과 바른 실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신학은 체험적 실천적 차원에 집중됐다. 웨슬리의 신학전통은 기독교의 참 종교성을 실천적인 신학에서 찾는다. 따라서 전통적인 감리교 신학의 강조점은 ‘바른 체험’ ‘정통 체험’이다.

감리교 신학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성결교회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교훈에 신앙적 토대를 두고 있다는 면에서는 개신교 복음주의에 속한 다른 교회와 입장을 같이한다.

또 16세기 종교개혁 신학에 뿌리를 두고 18세기 존 웨슬리의 성경 해석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면에서 칼뱅의 입장을 따르는 개혁파 교회보다 감리교와 입장을 같이 한다.


성결교회는 복음주의 흐름 가운데 경건주의 복음주의에 속한다.

왜냐하면 성결교회는 바른 교리보다 바른 삶과 체험적 신앙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결교회신학은 웨슬리 신학을 근간으로 하여 성결운동의 신앙 개조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성결운동, 특히 만국성결교회는 성결교회 신학의 가장 직접적인 근원이 된다. 특히 성결교회가 성결운동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중복음이다. 따라서 웨슬리 신학과 사중복음은 성결교 신학의 두 축을 이룬다.


성결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사중복음으로 믿고 그것을 힘 있게 전하기 위해 창립됐다.

사중복음은 성결교회라는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4개의 기둥과 같고 그 기둥이 서 있는 토대는 웨슬리 정신과 전통이다. 즉 성결교회 신학의 정체성과 근원은 개신교 복음주의, 웨슬리 신학, 그리고 사중복음으로 요약될 수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란 19세기 유럽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발생한 특정 시대의 신학사조 이름이다. 자유주의 신학이 지닌 핵심적 특징은 성경의 문자 무오설을 용납하지 않고 비평적 성경연구방법을 필수적인 것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또 현대 과학사상과 대립하는 보수적 전통 신학을 비판하고 진화론 등 자연과학 사상을 수용한다. 또 인간 본성과 역사의 발전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이며 초월대신에 내재 원리를 더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신학, 혹은 인간 중심적 윤리적 기독교 해석, 문화적 개신교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녔다든지 정통 신학과 다른 진보적 신학이론을 말한다고 해서 그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실존주의신학, 민중신학, 종교문화신학, 여성신학을 자유주의 신학의 범주에 넣는 것은 오류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 연구의 방법론에 획기적 발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적 비판 정신을 가지고 신성불가침이라는 신성의 보자기에 싸인 종교적 권위들의 허구성을 비판함으로써 종교적 권위라는 우상에서 기독인들을 해방시켰다. 또 교리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려는 열정에 불을 붙였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 안에서 사랑과 도덕적 행위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완성시켜 가는 윤리적 왕국으로 보았다.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리츨(A. Ritschl)과 하르낙(A. v. Harnack)이다.

이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던 월등한 윤리의 교사로 보았다.

이들은 십자가의 사건과 죄의 용서 심지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도 제자들 자신들의 신앙이었다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결국 이들의 신앙고백이지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을 참 종교의 표시로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성실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였다.


성경비판은 성경의 권위와 그 참된 신적 영감을 파괴하는 역기능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연과학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앙적 증언들을 미신이나 신화로 경솔하게 처리하며 인간과 역사에 대한 낙관주의에 빠져 하나님의 초월성을 내재성을 바꾸어버린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한국 교회에는 개혁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오해가 존재한다. 개혁신학을 종교개혁신학과 일치시키는 경향, 개혁신학의 전통을 옛 정통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과 일치시키는 오해이다.

개혁교회 신학의 두 거장은 칼뱅과 카알 바르트이다. 바르트는 오랫동안 자유주의 신학 사조에 휩쓸려 보이지 않던 종교개혁자들이 발견한 복음의 내용을 20세기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표현했고 세계 신학계를 뒤흔들며 등장한 신학자이다.


그를 통해 루터와 칼뱅 등 종교개혁의 신학은 다시 재조명되었으며 그를 통해 신학이 갖는 편협성과 오류는 크게 수정되고 발전됐다.

바르트는 성서를 인간의 거룩한 종교적 체험을 기록한 문서라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서관을 근본적으로 배격하고 성서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했다.

신정통주의 신학의 특징은 성서 중심의 신학, 삼위일체 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론이 존재하는 신학, 하나님 주권의 신학이다. 이런 면에서 바르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정통주의 신학은 20세기의 대표적인 개혁신학이며 복음적인 신학이다.


3. 신학의 근거와 규범

신학의 근거와 규범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경험, 자기의식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신학의 근거와 규범이 될 수 없다. 신앙의 모든 활동은 성경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그 타당성도 성경에 비추어 검토되어야 한다.

그 것이 참으로 기독교적인지 아닌지는 성경을 기본으로 제정된 “신앙의 규준”(regula fidei)에 의해 해석되어 져야 한다. 신앙의 규준은 성경과 사도적 전승 그리고 교회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터는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안에 참된 신학과 하나님 인식이 있다”(In Christo crucifixo est vera theologia et cognitio Dei)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기계시인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 신학의 궁극적인 근거요 규범이다.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인하여 형성되고 성립된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난 당하신 하나님, 이 고난을 통하여 인간이 당해야 할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며 인간과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하나님은 그의 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신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신학의 근거와 규범이다. 교회와 신학은 이 근거와 규범을 따라야 한다.


4. 신앙과 이성, 계시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관한 개인적인 응답에 의해 생겨난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주이시며 성령을 통해 구속주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믿고 믿기 위해서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역사이다. 신앙(fiducia)과 앎(notitia)의 문제를 대표적으로 다루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신앙 우위설: 캔터베리의 대주교 안젤름(Anselm 1033-1109)은 신앙의 우위성을 인정하였다. 그의 신앙은 “이해를 구하는 믿음”이다.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그의 말은 매우 유명한 말이다.


안젤름은 먼저 신앙으로 신앙의 교리들을 받아들이고 이성으로 그것들을 변호하려 하였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모든 교의와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신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을 내세운다. “하나님은 인간이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다.


완전한 논리적 연역으로 볼 때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하나님이 안계시다면 우리는 존재하는 더 큰 것을 생각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그분에 대한 개념의 필연적인 논리의 연역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 이론을 받아들이는데 이는 인격적인 결단과 신뢰에서 얻어진 것 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서 생겨나는 아래로 부터의 신앙이다.


초대교회는 희랍철학과 기독교신앙을 조화시키려고 하는 "포괄적인 신앙"(inklusive fides)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확산되고 조직화 됨에 따라 신앙의 개념이 신뢰보다는 지식(notitia)과 동의(assensus)로 바뀌어 졌다.


이를 "배타적인 신앙"(exclusive fides)이라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터툴리안이다. 그의 신앙 명제 “나는 불합리하기에 믿는다”(Credo, quia absurdum)라는 말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2) 상호 보충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는 이성과 신앙, 철학과 종교의 통합을 통해 중세 스콜라철학을 완성하였다. 신앙과 이성이 각자 자기 영역을 지키는 한 양자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적인 차원에 속하며 기독교 신앙을 가능케 하는 계시는 보다 높은 초자연적인(the supernatural) 차원으로부터 온다고 보았다. 계시는 인간의 이성을 보충하고 완전케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학문이라고 전제하고 산술, 기하학은 이성의 통찰을 통해 가능하며 신학은 상위학문으로서 하나님과 성현에게서 온 지식에서 출발한다고 보았다. 음악은 산술학자가 알려주는 원칙을 믿는 것처럼 신학에서는 하나님이 계시한 원칙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중세의 신앙은 이처럼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내용에 대한 지식과 지적인 승인으로 이해되어 신앙과 이성은 조화된 것으로 보았다. 정통주의 시대에는 신앙의 세 가지 요소인 앎(notitia)과 동의(assensus) 신뢰(fiducia)를 모두 중시 여겼으나 신앙의 지식인 앎에 비중을 두었다. 신앙은 무엇을 믿는지 알고 믿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인격적인 신앙행위가 경시되기도 하였다.


3) 종교개혁자들은 인격적인 신뢰의 신앙을 새롭게 주장하여 신뢰와 신앙은 이들에게서 동의어로 쓰였다. 루터의 대요리문답, 아우구스부르크의 신앙고백에 나오는 산 신앙(fide viva)은 이를 말해 준다. 믿음과 행위가 구원을 준다는 가톨릭신학을 산 믿음은 좋은 행위를 가져온다는 것으로 변화 시켰다. 이것을 수학적인 도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가톨릭: 구원 = 믿음(belief) + 행위 개신교: 구원 = 산 믿음(living faith)믿음은 지적인 의미를 갖는 belief와 행위에 가까운 faith가 있다.

두 가지 모두 지적인 것을 전제로 한다. 산 믿음이란 행위를 포함하는 믿음이다. 이는 마치 율법과 복음의 관계와도 같다.

율법 속에는 복음이 포함되어 있으며 복음 속에는 율법이 들어 있다. 복음은 새로운 율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즐겨 사용하신 “...라고 너희는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Ήκούσατε ὅτι έρρέθη, έγω δὲ λἐγω ὑμίν)에서 이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가톨릭 신앙은 제사장 적인 것이요 개신교 신앙은 예언자적이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 통일적인 것과 다원적인 것, 구심적인 것과 원심적인 것, 미사주의와 설교주의, 사제주의와 예언자의 종교 등으로서 역사적 변천에 따라 기독교의 이중구조를 갖게 하였다.

경건운동은 이러한 정통주의의 객관적인 신앙을 극복하면서 나타난 경건한 삶을 강조하는 신앙 개혁운동이었다.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 in ecclesia) 운동을 전개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영향력을 주었다.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 이후 기독교 사상가들은 역사성과 과학적 객관성의 이름으로 기독교의 교리와 제도 그리고 전통을 비판하였다.

이는 교회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인간 이성의 밝은 빛에 비추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의 불합리한 요소를 제거하려는 사상운동이었다.


이성에 의해 비판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다. 이것은 인간 이해에 대한 새로운 태도인 휴머니즘(humanism)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인간은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유스럽게 자연과 모든 지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생을 인간의 이성으로 지배해 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고전에 대한 언어학적 연구와 비판의 자유 및 학문의 연구는 전통적 교회의 교리와 의식에 커다란 도전이 되기도 하였다.


이 운동의 근본정신은 인간의 사후에나 얻을 수 있다는 하늘나라를 지상에 건설하자는 데 있다. 이 시대는 분명 이성의 시대로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것들을 부정하려든 시대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러한 사상적인 영향 하에 살아가고 있다.


쉴라이에어마허(Schleiermacher)는 “기독교는 교리나 규범, 인간적인 행동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마음속에 각성된 내적인 절대 의존의 감정”을 강조함으로서 관념적인 신학을 주장한다. 경건주의가 낳은 주관주의적인 신앙이다.

헤겔(Hegel)을 대표로 하는 신-프로테스탄티즘(New-Protestantism)에서는 신앙과 정신적 사고를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철학과 신학은 신을 찾는 같은 학문이며 이성과 신앙은 동일한 정신적 사유로 간주되었다. 오늘날 유럽의 사변주의적인 신학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러한 철학-신학적인 사고에 반기를 든 사람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키엘케고르(Kierkegaard)이다. 신앙과 사고는 보충적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것임을 지적하면서 신학과 철학의 종합을 반대하였다.

세계 제1차 대전이후 칼 바르트(Karl Barth)를 중심으로 시작된 변증법적 신학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그 출발점을 두는 배타적인 신학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입장을 같이하는 신학자들은 브룬너(E. Brunner), 고가르텐(F. Gogarten), 불트만(R. Bultmann) 등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학은 시대적인 삶의 정황이라는 신앙을 체계화시키면서 나온 학문적인 작업이다. 신앙은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이고 우리의 앎이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요청된다.

신앙은 우리가 믿는 근본적인 구원의 내용이면서도 행위이어야 임은 삶과 신앙을 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신앙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사랑과 감사에서 나오는 경외심을 전제로 하여 우리의 이성과 사고와 전 인격이 수반될 때 온전한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앙과 이성 그리고 계시는 신학적인 작업을 하는 한 긴밀한 연관성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계시의 신앙에서 시작되는 신학적 작업에 이성이라는 인간의 합리성이 신학적인 내용을 체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올바른 것인가 라는 물음은 성경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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