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의 종교적 배경

신구약 중간 시대의 세계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의 집성체였다. 여러 갈래의 강들이 모여 지중해로 흘러가듯이 로마의 피정복 민족들은 저마다의 문화를 로마에 제공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의 정치적인 지배 아래서의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결합은 기독교 탄생을 위한 독특한 문화적인 배경을 산출하였다. 당시 세계는 유대교와 헬레니즘과 로마 제국주의 등 세 가지의 큰 문화 형태가 지배하고 있었다. 유대교는 기독교의 뿌리를 마련해 주었고, 헬레니즘은 기독교가 성장한 지적인 토양이었으며, 로마 제국주의는 기독교가 잘 성장하도록 도와주었다. 반대로 이들은 기독교의 무서운 적이기도 했다. 유대교는 기독교를 유해한 이단으로 보았으며, 헬라인들은 기독교를 어리석은 종교로 보았고, 로마인들은 실용성 없는 나약한 종교로 생각했다. 이러한 기독교의 문화적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교이다.


1. 유대교


1)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의 기본 요소


가. 유일신 신앙

헬라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 하였고, 세계와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와 삶을 판단하려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뜻을 알리셨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모든 일을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포로 시대 이후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전 3세기부터 성경을 낭독할 때에 "야훼"라는 이름을 읽지 못하게 하고 "아도나이(주님)"란 말로 대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는 "야훼"를 "큐리오스"(주님)로 번역하였으며, 아람어로 번역할 때에는(탈굼) "야훼"를 "메므라"(말씀)로 번역하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 중에 하나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따라서 대제사장은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얼버무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였다. 일부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세키나"(구름)나, 그의 "독사"(영광)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이나 음성을 통해서 자신의 택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삼았으며(잠 1:7),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항상 가르쳤다(신 6:4-9).



나. 민족주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장자"라고 부르셨다(출 4:22-23).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에만 머무르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두 개의 유명한 학파가 있었다. 하나는 샴마이 학파로서 율법의 모든 주제를 엄격하며 좁은 의미로 해석하며 가르쳤다. 샴마이는 헤롯 대왕 시절에 살았던 인물로 이교도들과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겼다. 그의 학파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민으로 생각하고 다른 모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극도의 민족주의 정신을 함양시켰다. 또 다른 학파는 힐렐 학파인데 힐렐은 바벨론 태생으로 이교도의 나라에서 살았다. 그는 뒤늦게 예루살렘에 왔는데 그의 정신에는 다소 이교도적인 요소들이 담겨져 있기도 했으며, 일반 율법사들에 비해 다소 온건한 입장을 지녔다. 그는 이방인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짓기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풍습을 따른 것뿐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메시야 시대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교도들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려면 유대교로 귀화해야 하며,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힐렐에 따르면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12달 동안만 고통을 받다가 그 후에는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허락된 여러 이유들로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을 하였다(당시에는 아내가 음식을 태웠다는 이유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었다). 힐렐은 사도행전 시대의 유명한 율법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의 할아버지였다.



다. 율 법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연결해 주는 것은 율법, 즉 "토라"라고 생각했다. 토라는 "율법"보다 더 광범위한 용어로서 종교적 가르침, 계시 그리고 교훈까지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주어진 모든 계시를 말한다. 이 토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 전체 율법의 핵심적 부분인 십계명

나) 일반적으로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 오경

다) 구약 전체-그들은 구약 전체를 거룩한 율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중에서도 모세 오경을 가장 중요시하였으며, 이 책은 장차 있을 세계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라) 구전 율법-이스라엘은 율법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용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러한 노력이 신약에서 "조상(장로)들의 유전"(막 7:3-그들은 '미쉬나'를 이렇게 불렀다)이라고 부르는 구전 율법을 발전시키게 하였다. 이 구전 율법은 율법을 보호하는 "울타리"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노동"을 구전 율법에서 39가지로 규정해 주고 있다. 이 구전 율법의 목적은 주어진 율법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전 율법이 모세 때에 율법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율법의 권위를 기록된 율법보다도 더 높이려는 사람도 있다.



* 참고: 구전의 발생과 발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기로 결심한 자"(스 7:10)였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느 8:8). 그리하여 에스라의 뒤를 이은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을 통해 특별한 관습, 의식, 교훈 등을 연관시켰으며, 이것은 뒤에 랍비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 미드라쉬

랍비들은 문서화된 율법을 해석하고 응용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생활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규례들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을 "다라쉬"(해석)라고 불렀으며, "미드라쉬"(주석)는 성문화된 본문에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였다. 이 미드라쉬에는 두 부분이 있었다.


- 할라카

"할라카"(걷는다)는 시민법과 종교법에 관한 규례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율법을 따라 걸어갈 것인가(할라크)를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할라카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해석한 일종의 주석으로서 유대교의 구전, 즉 성문화되지 아니한 율법이었다.


- 학가다

"학가다"(말하다)는 율법과 관계없는 랍비 문학이다. 이는 구약의 설화를 발전시킨 것으로서 많은 전설과 민속문화들로 되어있다. 미드라쉬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는 랍비들의 관심사였으며, 그 이후로는 그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 미쉬나

랍비들은 구전과 함께 성문화된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 연구 과정, 즉 구전과 성문화된 율법을 반복하는 것을 "솨나"(암송)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불렀다. 미쉬나란 "그 이전 세기들 동안에 랍비들이 토론하고 결정한 것들을 조직적, 즉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일종의 법전"이다. 미쉬나는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 요하난 벤 자카이와 얌미나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후 2세기 초에 랍비 아키바는 할라카를 보다 치밀한 형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그의 제자인 랍비 메이어가 다시 세밀하게 정리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200 직후에 사망한 랍비 유다(족장)가 미쉬나의 마지막 교정본을 만들었다. 미쉬나는 주로 그의 업적의 결과였다. 현재 미쉬나는 주제에 따라 여섯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야는 많은 소책자(전체적으로 63개)로 구성되었다. 그 연대는 대략 200-230년으로 추정한다. 미쉬나는 구약 성경 다음으로 가는 유대 문학의 기본 작품이며 탈무드의 기초가 되었다.


* 탈무드

"탈무드"(배움)는 미쉬나로 구성된 편집물, 혹은 전통적인 율법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에 유대교의 학파들에게 제기된 토론과 전통들("게마라"="완성")이 추가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할 때에는 바벨론 탈무드를 말하며 이는 그 내용에 있어서 팔레스틴 탈무드보다 더 충실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형태로 되기 위해서는 500년까지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러한 율법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이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비록 메시야 시대에 새 율법이 주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겐 이 율법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2) 유대교의 분파들


가.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바리새파는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 뜻이 "분리자"란 말답게 대다수의 정치 종교적인 태도에서 분리되었다. 이들은 의식상 부정을 가져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엄격하게 피했다. 제사의 정결 문제나 음식 먹는 법, 안식일 계명 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하였다. 다니엘은 하시딤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들은 항상 소집단이었으며, 헤롯왕 시대에는 6,000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바리새파는 율법의 용감한 수호자로서 헬레니즘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에 다른 많는 보조적인 명령들이 추가되었는데, 이러한 원칙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었다(안식일 조항만도 39개나 되었다).


또한 이들은 기록된 토라, 즉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구전 토라, 즉 미쉬나(2세기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함)도 똑같은 권위를 부여했다. 바리새파 안에는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샴마이 학파와 좀 더 부드럽게 해석하는 힐렐 학파가 있었다. 따라서 복음서 가운데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한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눅 11:46) 율법사들은 샴마이 추종자로 보인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에 국민 생활의 재건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힐렐 학파의 요하난 벤 자카이였다.



나. 사두개파(자연주의자)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 8:17) 이라고 한다. 바리새인들이 중류 계층인 반면 사두개인들은 부유한 귀족층과 예루살렘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진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이들은 동료들에게도 이방인을 대하듯 무례히 행하며 자신들의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기록된 토라의 권위를 인정했으나 구전 율법의 권위는 인정치 않았다. 바리새파에게 율법이 신앙의 중심이라면 사두개파에게는 율법이 신앙의 왜곡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헬라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부활, 천사, 마귀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으며, 성공과 역경은 인간 행동의 결과라고 믿었다.


다. 엣센파(금욕주의자)

이 말은 "호시오스"(거룩한)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그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고, 독신을 강조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녀를 갖기 위해 결혼을 허락했으나 대부분 양자를 데려다가 키웠다. 생활은 손씻는 결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다.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바리새파보다 더 엄격했다. 세례 요한의 생활과 그의 세례 의식 등이 엣센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47년 쿰란의 사해 사본이 발견된 이후 기독교의 고향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쿰란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엣센파의 회원이 되려면 3년 동안의 견습기를 거쳐야 하며, 서약을 한 다음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졌다.


1) 제사장

2) 레위인들

3) 이스라엘의 자녀들

4) 문의 개종자들(온전 개종자인 의의 개종자와 구별된)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에서 엣센파는 네 개의 파로 분열되었으며,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셀롯당"(열심당)이다. 엣센파의 신학은 약간씩 다르나 다음의 네 가지를 믿었다.


1) 유일신(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선의 근원이라고 믿음)신앙

2) 열렬한 율법 연구와 은유적 해석 방법

3) 엄격한 안식일 준수

4) 육체 부활



라. 열심당

"열심당"을 "시카리이"(자객들)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옷 속에 단검을 숨겨 가지고 다니다가 불만의 대상들을 불시에 찌르고 군중 속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마 27:38)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옆에 달린 강도가 "열심당원"이었다고 말한다. 또 (막 15:7)에 나오는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으며, 순교를 당하면서도 가이사를 "주"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악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해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대로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며 로마에 대항하는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마. 헤롯당

헤롯당에 대해서는 신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 분파라기 보다는 헤롯 가문 특히 헤롯 안디바의 친구들이요 지지자들이었다. 4세기의 교부인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이 헤롯을 메시야로 간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바. 서기관들

서기관들은 율법 연구의 전문가들로서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율법을 연구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교육하였고, 율법을 배운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에서 율법의 치리를 맡은 재판관으로 활약하였다.



사. 산헤드린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 및 정치 단체였던 산헤드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산헤드린은 "대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헤롯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후에는 로마의 감독을 받으면서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통치 기능을 담당했다. 구성원은 71인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두개파나 바리새인에 속해 있었다. 산헤드린의 의장은 항상 대제사장이었으며(마 26:57, 행 5:17, 24:1),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지위는 성전의 군관이었다(눅 22:4,52, 행 4:1). 이론적으로 예루살렘 산헤드린(공회)은 모든 유대인들의 영적, 정치적, 법적인 문제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하급 법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듣고 법률적인 결정을 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범한 죄나 신성모독 죄 등에 대해 판단을 하였고, 거짓 선지자를 판별하는 역할도 감당했다. 고소 당한 사람들을 취급하는 진행의 법칙은 공정성을 유지했으며, 가능한 한 고소 당한 사람의 죄를 면해 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재판할 때는 그들의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3) 유대교의 예배 활동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고, 율법을 인도하는 길과 안내자로 주셨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신 일에 대해 감사하였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종교였다. 그러면 이 율법은 예배 생활에 대하여 무어라고 지시하고 있는가 ?



가. 성전 예배

성전은 솔로몬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의 삶과 사상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이 성전은 헤롯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성전 안에서 무수한 희생이 드려졌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것으로 알려진 지성소에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정결케 한 대제사장만이 정해진 예복을 입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방인들은 단지 "이방인의 뜰"로 불리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렸다. 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는 제사장이 모두 순수한 동기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드려야 했다. 그리고 이 희생 제사에는 기도와 고백이 동반되었으며, 잘못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그것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했다. 일년에 한번 있는 대속죄일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일년간의 죄를 속하고 화해하기 위해 주신 규례이며, 이 예식은 대제사장이 집례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절기룰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고 회상시키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오순절을 지키게 하셨으며, 광야 생활과 민족의 형성을 회상시켜 주시기 위해 장막절을 지키게 하셨다(물론 이 절기들은 농경적인 의미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뿐 아니라 에피파네스 4세로부터 주전 165년에 성전을 회복하고 청결케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전절을 지켰으며(하누카-빚의 절기), 하만에 대한 에스더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지켰다. 신년 축제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회상시켜 주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심판하시는 날이었다. 이스라엘을 이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비로 대해주시도록 기도하였다. 속죄일은 금식과 죄의 고백과 희생 제사가 드려졌다. 이러한 신년 축제일과 속죄일은 모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용서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시작되었다.



나. 회당 활동

포로 이후 율법의 중요성 및 연구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회당이 생겼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모든 마을에 회당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 회당에서 기도와 예배와 율법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다. 예배는 기도와 율법 낭독과 설교로 이루어졌으며, 집회는 안식일과 주중 다른 두 날에 모였다. 회당 예배는 성전 예배와는 달리 제사장이 참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평신도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회당은 유대인들을 종교적이고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경건한 유대인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냈다. 그들은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며, 출타하였다가 귀가하거나 손을 닦고 음식을 먹을 때, 또는 출생과 할례, 약혼, 결혼, 질병, 죽음, 장례와 같은 때에도 이에 수반되는 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죄악된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고,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등을 돌리는 금욕주의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표시로서 할례를 받았으며 이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혼합된 옷감으로 된 옷을 입지 않았으며, 겉 옷 단에는 옷술을 달았고, 집 문기둥에는 메주자(성구가 기록된 양피지를 담은 용기)를 달았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율법을 준수할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준수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였다. 이 날에는 노동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금지되었으며, 특별한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축제의 분위기로 지냈다. 그들은 인간의 시체를 만지는 일이나, 문둥병자들이나 부정한 짐승들과의 접촉과 같이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일들은 자신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했을 때에는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했다. 그들은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법이 준수되었고, 짐승들을 도살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피는 식용이 금지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한 일로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이방에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에 사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알아야 했고 이를 위해 율법을 연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무지한 자는 깊은 신앙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땅에 속한 백성"이나, "율법이 없는 열등한 종족들"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4) 디아스포라의 유대교


가. 헬라주의적 세계 안에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

신약 성경 시대의 유대 백성들은 매우 넓은 지역에 분산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로마 제국 150개 이상의 도시에 회당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몇 세기 동안 많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살았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그 지역의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나. 70인역 성경

주전 3-2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상들의 거룩한 책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알기 원했다. 이로 말미암아 70인경이 제작되게 되었는데, 한 유대인이 약 170년경에 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애굽 관리인 아리스테아스가 그 형제인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 책을 기록하게 된 배경이 나타난다. 애굽 왕은 히브리 율법의 번역을 원했다. 그리하여 자기 신하인 아리스테아스를 예루살렘으로 파견하여 뛰어난 학자들을 데려오게 하였다. 그는 72인의 학자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돌아왔으며 파로스 섬에서 72일간 번역 작업을 한 끝에 마침내 헬라어 역본을 만들게 되었다. 이 책은 학자들의 숫자를 따라 70인경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전설은 3세기 중엽 애굽왕 프톨레미 2세 치하 때에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을 위해 율법책이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율법책이 번역된 후에 예언서와 성문서가 번역되었고, 그 후에 외경들도 번역되었다. 70인경은 신약 성경 시대 이전과 그 동안의 유대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나아가서 그것은 초대 교회의 성경이었으며, 또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성경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유대와 헬라 세계에 선포하는 기독교 선교의 주요한 도구가 되었다.


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37-38년경 팔레스타인의 제사장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그는 바리새파를 최고의 종파로 생각하였으며 이에 가입하였다. 그는 66-70년의 유대 전쟁 기간 동안 로마로부터 돌아온 후 갈릴리에서 유대 저항 운동을 지도하였다. 그는 체포된 제사증들을 구하기 위해 로마로 갔으며, 갈릴리에서는 군대 사령관으로서 투쟁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베스파시안에게 끌려갔으며, 로마에 협조한 후에 다시 풀려나게 되었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서 베스파시안의 가문 이름인 "플라비우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는 유대 전쟁의 마지막 비극적인 장면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부여받았으며, 말년에 글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66-70년의 로마와 유대 사이의 전쟁을 그린 "유대 전쟁사"와, 93년경에 출판된 "유대 백성들의 옛 풍습"과, 자신에 대한 비난에 답변하는 "삶"과,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한 온갖 억측과 모함에 대하여 답변하기 위해 쓴 "아피온 반박문"이 있다. 그는 이러한 책들을 민족과 유대교, 그리고 자신을 위한 변증과 선전을 위해 기록하였다. 따라서 많은 사실들이 과장되고 편집되었으나 그의 작품들은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라. 알렉산드라의 필로

필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을 대표하는 로마 사절로 선출된(39년) 부유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할 때에 풍유적으로 해석함으로서 "풍유적인 해석법"의 기초를 열었다. 그는 풍유적인 해석 방법을 통하여 모세의 율법 속에 헬라인들의 지혜가 예기되어 있음을 보이려고 하였다. 또한 그는 구약의 신앙의 위인들의 전기를 통하여 도덕적 가치들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유대인들이 헬라 문화 속에서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필로의 영향으로 클레멘트와 오리겐에 의해 주도된 기독교인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성경의 신비적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은 중세 교회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5) 정경, 외경, 위경, 묵시문학



가. 정경(Canon)

* 헬라어 '칸나'('갈대, 또는 '줄기')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자', '재는 막대

기', '측량 기구'라는 의 미로 사용됨.

* A .D. 4세기 중엽에는 '거룩한 기록물'인 성경을 정경으로 불렀으며, 후에 이 단어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신구약 66권(구약 39, 신약 27)의 명칭이 되었다.

* 정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으로 표준적인 권위를 가지며, 또한 인류의 신앙과 생활(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에 대한 규범서를 말한다.

* 39권의 구약 성경 외에도 많은 책들이 B.C 200년-A.D.100년경 사이에 기록되어 널리 보급되었는 데, 이 책을 '외경(Apocrypha)'과 '위경depigrapha)'이라고 부른다.



나. 외경(Apocrypha)

* '외경(Apocrypha)'이라는 말은 '감추어진'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이 원래 '찬양하는' 이라는 형용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일반 대중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성문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후에 이 말은 '그 정통성이 의문시 되 는 책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 외경은 개별적으로는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훌륭한 교훈적인 내용들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나, 구약 39권과 같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은 아니며, 따라서 공 예배에서 사용되지 못하는 문서들을 말한다.

* 그러나 카톨릭에서는 이러한 '외경'들 중에서 12권을 선택하여 이것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제2의 정경'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나 카톨릭은 제 1, 2 에스드라 서와 므낫세의 기도문은 '제2의 정경'에서 제외시켰다.


* 외경의 목록

1-2) 제 1, 2 에스드라서

3) 토빗서

4) 유닛서

5) 다니엘서의 증보판

6) 에스더서의 증보판

7) 므낫세의 기도문

8) 예레미야의 편지

9) 바룩서

10) 벤시락(시락의 아들)의 지혜서

11) 솔로몬의 지혜서

12) 제 1, 제2 마카베오서



다. 위경(Pseudepigrapha)

* 위경은 익명의 저자가 마치 그 책을 에녹이나 바룩과 같이 유명한 고대의 인물들이 기록한 것처럼 거짓으로 꾸미고 있는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 위경은 구약이나 외경에서 제외된 제 3의 책들을 가리키며, 이들은 정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중간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특히 신약 성경의 유대교 배경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 위경의 내용

1) 메시야-메시야 왕국의 도래-메시야 시대에 나타날 징조들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주관하는 메시야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이 때에는 여러 가지 우주적인 징조들이 수반될 것이며, 이방 압제자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2) 죄의 기원

3) 천사들과 귀신들

4) 우상 숭배자들의 멸망

5) 성경을 연구하여 지혜를 얻을 것을 권면.

6)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스올의 역할, 죽은 후의 사람의 본질 등)


* 위경의 책들

1) 에녹서

2) 희년의 책

3) 열 두 족장의 유언서

4) 제3, 제4 마카베오서

5) 아리스테아스가 필로크라테스에게 보내는 편지

6) 바룩의 글

7) 솔로몬의 시편

8) 여 선지의 예언서

9) 모세의 승천기



라. 묵시문학

신, 구약 중간기에 유행했던 또 하나의 장르는 묵시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계시(Revelation), 또는 '묵시?Apocalypse)라는 말은 '감취었던 것이 드러난 것(unveiling)을 의미한다. 이것은 마치 연극을 시작할 때에 막이 올려지면 그 뒤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과 같다. '묵시'란 말은 주전 2세기-주후 1세기 사이에 씌여진 유대 종교 서적들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책들을 '묵시문서' 또는 단순히 '묵시'라고 불렀다. 이러한 묵시문학 속에는 강력한 이방민족들 사이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이 느껴야 했던 민족적인 위기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에는 소수 민족으로 당해야하는 핍박과 착취에 대한 내용이 크게 고조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헌에는 그들을 현재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영원한 나라를 세울 메시야에 대한 희망이 강조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묵시 사상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재에는 악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난을 받으며 도무지 개선될 것같이 보이지 않지만,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천재지변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실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악을 제거하실 것이며,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묵시 문헌은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고 이방 민족들의 통치를 받을 때마다 항상 주어졌으며, 이러한 사상은 계속되는 이방 세력 밑에서 고난을 당하는 유대인들에게 적절한 피난처를 제공해 주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 바로 이러한 묵시 문헌의 예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책들을 통해서 이방 민족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는 자신의 백성이나 교회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주셨다. 다니엘서나 요한 계시록은 일시적으로 성도들과 교회가 악한 세력들에 의해 고난을 받지만, 결국에는 메시야를 통해 악한 세력들이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악의 세력이 멸망하고 영원한 평화의 세계가 임할 것이라는 소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묵시 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는 다양한 상징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있는 다니엘이나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서 계시를 전해 주셨다. 다니엘이나 계시록에는 행동과 직접적인 말씀 뿐 아니라, 극적인 형태나 여러 가지 상징과 그림들을 통해서 전달된 계시들로 가득 차 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은 그림이나 드라마,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그림이나 드라마, 또는 영상을 통한 상징들은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데 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나 계시록에서 바로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해 주셨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다니엘이나 계시록의 언어는 현대인들에게 더 익숙한 언어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형상과 상징들을 통해 표현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때에 계시록을 보다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를 대적하는 세력들을 짐승이나 뿔 등과 같은 상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짐승들은 그 당시 통치자들을 상징하고 있다. 요한이 이러한 상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박해로 인해 그 당시의 통치자들의 멸망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초기의 계시록 독자들은 계시록에서 사용된 어휘나 상징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계시록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저자는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에 대하여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독자가 아닌 그 이후의 세대에 태어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이 책에 사용된 상징에 익숙하지 못하여 계시록을 대할 때에 당황할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과 분명한 차이들이 있다. 묵시 문학은 주로 저자들의 이름을 숨기고 과거의 유명한 사람들(에녹이나 에스라와 같은)이 이름을 빌려서 기록하였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묵시 문학은 사변적인데 관심이 있으며, 세상의 종말의 때와 징조, 그리고 최후에 대해서 밝히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호기심을 채워주기보다는, 당시의 대 박해 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되었다. 다니엘이나 요한은 메시야께서 오셔서 이 세상을 바로 잡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다니엘이나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헌들과는 달리 사변적인 관심이 없으며, 오히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거나 듣고, 이 예언에 순종해야 윤리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헌과 동일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 헬레니즘


1) 희랍과 로마의 신들

- 각 영역을 주관하는 신이 있음(제우스, 포세이돈, 아프로디테 등)

- 인간과 비슷한 특성을 지님.



2) 민속 신앙과 운명 사상

- 점술과 점성술, 그리고 운명 사상, 밀의 종교들



3) 통속 철학


가. 플라톤 주의(이데아 사상)


나. 영지주의


가) 사 상

요한 1서는 영지주의(영어 'Gnosticism'은 "지식"을 가리키는 헬라어( )로부터 유래하였다)로 알려진 위험스러운 이단을 저지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영지주의는 세상의 근원, 죄, 구원의 길에 대하여 합리적인 근거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 세상은 무엇인가?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상의 창조는 빛의 세계인 신의 세계에서 한 조각이 하층 세계로 떨어져 나와 물질과 결합하여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 세상은 신의 작품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떨어진 악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악한 물질과 더불어 역사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으로부터 점차로 멀어지는 일련의 "아이온( )" 또는 "파생신들"(emanations)을 창조하셨다. 각 이이온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다.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아이온은 하나님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그에게 적대적이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아이온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혼은 무엇인가 ? 영혼은 세상의 존재가 아니며 신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므로 영혼은 세상을 벗어나서 신의 세계로 복귀해야 한다(예) 도마 행전의 진주송-이집트에 진주를 찾으러 왔다가 사명을 잃은 왕자 이야기). 영지주의자들은 파생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인간의 몸에 들어갔고, 그들이 인간의 몸 안에 갇히게 되었다고 가르쳤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 영들은 그들의 사로잡힌 상태에 대하여 무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만일 영들이 이 지식을 깨닫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영은 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하고, 바른 판단이나 비밀의 지식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만 한다. 참으로 지적인 영만이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주는 신의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금욕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은 세상을 체념하고 올바른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에 도움을 준다.


구원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원자는 우주의 파수병들에게 걸리지 않고 이러한 소식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일을 한다. 그는 예수님처럼 인간이 되지도 않았고,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신적인 존재일 분이다. 그는 단지 구원의 소식을 우주의 보초 몰래 인간들에게 전할 뿐이다. 영지주의는 역사적인 일이나 종말에 이루어질 일을 다루지 않고 언제나 보편적인 진리 문제를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