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차르녹 신학의 하나님 전능과 주권에 대한 이해

연구주제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칼빈주의>의 개념의 생성과 성장 -

16세기 후반 하이델베르그를 중심으로"


이한상 교수


청교도들과 개혁파 스콜라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의지적 속성에 관한 교리라는 테마의 하부 카테고리에서 하나님의 뜻(신적 의지, the voluntas Dei)의 외부적 표출을 다루었다. 이와 관련하여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1602)와 스티븐 차르녹(Stephen Charnock 1628-1680)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은 중요한 테마였는데, 구속사를 통해 주로 계시된 하나님의 의지를 바르게 이해하는데 이 주제가 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이라는 테마는 창조, 섭리, 그리고 예정 교리의 전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유용하기도 했음은 물론이다. 하나님의 지성(intellect)이라는 영역에서 그러했듯이 전능하심과 주권이라는 두 속성 이해에 있어서도 신적 의지와 신적 지성의 관계는 여전히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한다.


우선적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질(essence)과 단순성의 교리(the doctrine of divine simplicity)에 기초해서 하나님의 의지(will)와 능력(power)은 사실상 동일시되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중세신학과 종교개혁신학 및 청교도와 개혁파 정통신학에 있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신학적 공리(axiom)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지의 삼위일체 내부지향적 측면(ad intra)이 그분의 성품에 따라 스스로 의지함의 범위 내에 속해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형식적 구분(formal distinction)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지는 “모든 현실태(all actuality)”의 근원인 반면에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가능태(all possibility)”의 근원이며 그 형이상학적 포괄 범위가 더 넓은 개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이러한 이중적 양상은 그분의 능력과 주권 및 소위 절대능력(absolute power)과 제정된 능력(ordained power)의 상호 연관성에 관해 본 논문에서 다루게될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본 논문의 연구대상이 될 퍼킨스와 차르녹은 모두 초기 및 후기 정통주의 신학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전능성에 대한 심화된 연구를 내놓았는데, 물론 이는 중세 후기사상과 종교개혁신학의 지적 유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두 신학자 모두 오컴주의적인 중세 후기 신학에서 종종 보이는 과도한 사변성 및 논리에 대한 집착은 피하고 있다는 점이 서론에서 우선 지적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이 두 신학자가 피조된 질서 내에서의 “적절한” 수준의 임의성과 하나님 스스로의 제한과 작정과 계획하심의 기초하에 진행된 “총체적인 언약적” 구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자유와 초월과 주권을 어떻게 수호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보게 될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시도는 중세시대 및 종교개혁기를 거쳐 청교도와 정통주의 시대에 이르도록 정통교리를 수호했던 모든 신학자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우리는 이 언약적 구조가 초기 정통주의 및 전성기 정통주의의 맥락하에서 퍼킨스와 차르녹의 하나님의 전능성과 주권교리의 틀 내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나아갔는지를 살필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의 구분에 관한 중세신학의 여파로서의 이 언약구도적 공통적인 관심사가 유지되었는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상 형성에 있어서 영향을 미치며 관통하고 있는 중세 스콜라신학의 도구적 틀로서의 토미즘과 스코티즘 및 유명론이 서로 얽혀있는 변증법적 구도가 함께 언급될 것이다.


I. 퍼킨스의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대한 이해


퍼킨스 신학의 구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있어서 세 번째 카테고리에 해당된다. 이는 신적 지성 및 의지(첫번째와 두 번째 카테고리)와 더불어 외부적으로 발산되는(ad extra) 속성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는 영원하신 계획(counsel)과 작정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대표작인 『황금 사슬』에서 퍼킨스는 하나님의 전능을 “모든 일을 가장 능력있게 수행하시도록 하는 그것”으로 정의한다. 물론 이에 대한 중세 스콜라신학의 전형적인 사고를 통해 여기서의 “모든 일(every work)”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추론해 볼 수 있다. 즉, 이는 전능 개념을 초자연적(구원론적이고 구속사적인) 및 자연적(창조 및 섭리) 신학을 모두 포함하는 영역에 있어서의 “외부적 발산의 측면으로의 하나님의 자유”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퍼킨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분의 성품에 합당하지 않거나 모순된 일들에 있어서의 “가능한”(상상할 수는 있지만 넌센스적인) 무능력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관점은 퍼킨스가 하나님의 능력의 절대적인 측면과 실제적인(actual) 측면을 결합해서 개념을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와는 상반되게 퍼킨스는 하나님의 전능 개념을 “절대적”인 것과 “실제적인(actual)”것으로 오히려 구분하기도(결합하기 보다는) 한다. 즉, 절대 능력은 “그가 행하거나 행할 일보다 더 행할 수 있는 능력”이며, 실제적 능력은 “그가 자유로이 의지(will)해서 모든 일들이 발생하도록 그 원인이 되시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스코투스주의와 중세후기 유명론의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에 관한 이해의 흔적이 여기서도 엿보인다. 예를 들면 퍼킨스는 대표작 중 하나인『A Reformed Catholike』에서 중세 카톨릭주의가 이 두 능력의 구분에 대한 오해를 일으킴으로써 유해한 미사 교리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한다. 칼빈도 하나님의 절대 능력 개념을 노골적으로 거절하지는 않고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점은 칼빈과 칼빈의 후예들의 연속성 여부 파악의 견지에서 조사될 필요가 있기도 하다. 어쨌든 퍼킨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종류의 능력이 하나님의 단순성(divine simplicity) 교리에 기초해서 볼 때는 하나님 안에서 구별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물론 여기서 퍼킨스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학적 분류에 따라 하나님의 의지에 비해서 지식(intellect)에 우선성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필연적으로 그의 전능성이 의미하게 되는 “작용적(operative)” 측면을 고려할 때의 하나님의 의지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는 그가 전능성을 성부 하나님이 성자 및 성령과 교통하는 공통된 특질(property)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의 범위 안에서 존재하는 신적 전능성의 삼위일체적 기초를 보게 된다. 한편 하나님의 다른 여러 속성들에 관한 논의에서 그러한 것처럼 퍼킨스는 전능함으로부터 경건적, 구원론적, 그리고 언약 신학적 측면으로 다양한 교리적 적용점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무엇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신적 작정을 실행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성육신교리를 포함하는 기독론적 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성서의 모든 계시가 성취될 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필수적 토대로 여겨져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퍼킨스의 논의가 그의 신학체계에 따라 하나님의 외부적 사역의 전 영역을 다루는 섭리 교리에 대한 가르침과 오버랩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는 실천적 측면에서의 신자의 다양한 의무와 하나님의 섭리적 주권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위로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전능함에 대한 논의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한다. 한편 퍼킨스가 내리는 섭리에 대한 정의는 모든 피조물을 향해 “하나님이 돌보시고 관심을 가지시는 가장 자유롭고 강력한 행동”이다. 이것은 퍼킨스 신학의 구조에서 볼 때 하나님의 주권은 반드시 그의 창조와 섭리와 예정의 신적 계획(decree)에 따라 “신적 의지”의 실행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퍼킨스에게 있어 하나님의 주권, 지배(rule) 혹은 통치는 섭리의 두 번째 영역(지식이 우선 첫 번째 영역이 됨)으로서 “모든 것들을 명하고 선한 목적을 향해 인도하시는 것”이다. 선과 악은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대상이 된다; 하나님은 선에 대한 직접적 운용과는 별도로 “작용적 허용(operative permission)”과 악을 삼가도록 이끄는 두 측면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일반 섭리와 특별 섭리의 구별은 섭리의 실행적 측면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주권의 유형구분에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퍼킨스에게 있어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의 실제적(제정된) 능력에 의한 신적계획(decree)의 실행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킨스는 그분의 주권을 드러내는 이 실제적 능력을 하나님의 의지의 교리에 비추어 절대적 능력과 사실상 동일시한다. 아울러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가운데 있는 절대적 의지(선하신 뜻 안에 놓인)와 율법과 복음을 통해 주어지고 있는 계시된 혹은 나타난(signified) 뜻에 대한 개념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이는 또 다른 차원에서 퍼킨스가 하나님의 계시된 뜻의 “절대성” 혹은 주권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하나님의 외부적 사역을 통해 알려지는 그의 주권은 사변적 결정론이나 단순 인과론적 구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월적인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의 표출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퍼킨스는 하나님의 능력과 관련된 그분의 주권의 기독론적이고 삼위일체론적인 측면을 아울러 강조한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분의 절대적 능력인데, 이를 통해 그는 율법이 우리의 양심을 구속하도록 만들며 또한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결정하도록 이끄신다. 이것이 삼위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 운영(administration)은 성자에게 맡겨진다.”


요약해 본다면, 하나님의 전능과 주권에 관한 퍼킨스의 논의의 강점은 그가 하나님의 뜻의 영원적 측면과 시간적 측면 및 이의 구원론적 기초 위에서의 실제적 실행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설명하고 있는 점이라고 보여진다. 퍼킨스는 중세 이후 전통적으로 구분해서 인식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이해 안에 내재되어 있던 통합적 측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면서도 개혁주의 전통 하에 확고히 머물고 있다고 판단된다.


II. Charnock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이해


차르녹의 작품들은 주석적 작업과 논리적 혹은 교리적 관심사를 연결시키는데 있어서 “명확하고 세밀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전능을 다루는데서도 이러한 특징은 더욱 잘 드러난다. 그는 우선 욥기 26:14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욥의 견해와 빌닷의 그것을 대조하면서 두가지 교리적 의미를 이끌어낸다.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은 그 본질과 성격에 있어서 무한하고 불가해하다는 것이고, 둘째로 그분의 능력은 창조와 섭리와 구속의 사역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차르녹이 성경 본문 자체를 다루는 것과 이에 근거해서 교리적 논점을 도출하는 양상은 당대의 전체 신학적 장르를 대표하여 전형화시킬만한 청교도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의 설교적 강론의 전형임을 먼저 밝혀둔다.


A. 하나님의 절대 능력과 제정된 능력(Potentia Absoluta/Ordinata Dei)


차르녹은 자신이 설정한 첫 번째 논점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특징을 두가지 방향으로 전개한다. 첫째, 차르녹은 하나님의 능력은 성경 본문의 어원학적 기초에 따를 때 실제로 “행동할 능력”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신적 권위 혹은 주권과 구별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정의상의 문제는 potentia라는 용어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에 근거한 신적 본질과 능력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성을 갖는다. 차르녹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분의 본질의 상상할 수 없는 탁월함과 활동”인 동시에 “외부로 발산되는 효능적인 신적 본질(the divine essence efficacious ad extra)”이라고 본다. 따라서 차르녹에 따르면 신적 실체(divine substance)의 정체는 그 본질상 가장 단순한 존재인 동시에 피조물과 관련해서 그들을 향한 외부적 작용 속에서 능력을 배출하시는(emanation) 분이다. 아울러 순수한 영적 성품을 지니신 가장 위대하고 순수한 존재인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지닌 속성들의 최대의 일치성과 최대의 능력을 모두 소유할 수 있다. 물론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로 이러한 신적 능력의 이중적 측면을 고려한 관점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즉, 피조물을 향한 측면(즉, ad extra)에서 볼 때의 실제적으로 발생 가능한 모든 가능성을 아우르는 측면으로서의 potentiality가 곧 하나님의 전능이라고 이해될 여지를 허락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차르녹이 하나님의 전능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ad extra라는 어구를 직접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앞으로 다룰 논의들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이는 하나님의 속성 교리를 논하는데 있어서 차르녹에게는 사변적인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는 시초적인 혹은 또 하나의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발산될 대상과 외부적 활동의 범위와 관련되어 그것의 적절한 의미를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그분의 본질적인 전능성과는 무관한 이러한 외부적 능력의 측면에 있어서의 사실상의 “제한적” 요소들은 하나님의 의지(the voluntas Dei)와 관련되어 하나님의 능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라고 하겠다. 아울러 차르녹은 이 전능함이 제일원인으로서의 하나님과 2차적 원인들로서의 피조물들간의 무한한 간격에도 불구하고 피조물들에게 능력을 양도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러한 능력은 하나님의 무로부터의 “즉시적 창조”사역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이는 물질을 상용해서 중개적으로 피조물을 만드는 “모든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피조물”이 행하는 2차적 창조 사역과 대비된다.


둘째, 차르녹은 하나님의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이라는 개념을 심도있게 탐구한다. 그에게 있어 이 두 용어의 구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작업이다. 차르녹이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절대능력은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지 않으실 것이더라도 그 행함 자체는 가능한(possible) 능력이다. 제정된 능력은 하나님이 행하실 것을 계획한(decreed) 능력인데 다시 말하면 이는 그 일을 실행할 것을 정하거나(ordained) 임명한(appointed) 일에 근거한 것이다. 이 두 능력은 별도의 능력이 아니며 다만 하나의 동일한 능력(one and the same power)이다. 하나님의 제정된 능력은 절대능력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스스로 의지할 수 있는(could will) 모든 것을 행할 능력이 없다면 그분은 자신이 의지하는(will) 모든 것을 실행할 능력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구분을 시도하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의지가 실행되도록 이끄시는 신적인작정(decree)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적 작정은 그분의 지혜와 의지의 기초 위에서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의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비록 하나님 안에서는 신적 행동을 야기시키는 능력과 그 행동 자체에 간격이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능력은 제정된 능력보다 더 큰 “행동의 원리”(the principle of action)로서 실제 존재한다. 의지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절대능력은 그 범위(scope)에 있어서 실제적 의지함(actual willing)보다 넓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작정하시는 의지(decretal will)은 신적 지혜를 포함한 다른 여러 속성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의 정체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영혼의 심리학의 경우에서처럼 신적 지성과 의지의 관계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이러한 태도는 차르녹이 절대능력에 대한 중세 후기의 스코투스 학파적 관점을 긍정적으로 수용한 사실을 아울러 드러낸다. 즉, 피조된 세계와 질서로부터의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 및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eternal decree)의 “절대성”을 동시에 보호하고자 노력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보듯이 신적 능력의 토대를 고려하는데 있어서 토미스트적 요소들과의 적절한 균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분의 모든 행동의 감독자이다. 그분의 의지는 명령하고, 그의 지혜는 안내하며, 그의 능력은 결과를 낳는다(effect). ... 하나님의 의지는 범사의 뿌리이고, 지혜는 원고(copy)이며 능력은 조성자(framer)이다.” 이러한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potentia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논의, 즉 내재적인(intrinsic) 혹은 본질적인 측면과 외부적으로 작용하는(externally operative) 측면에 있어서의 절대능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유사한 답변을 가져다 준다.


아울러 우리는 차르녹의 이해구도에 있어서 그가 신적 지식과 신적 의지의 두 영역에 있어서의 일체의 불일치를 허락하지 않으려는 확연한 규칙을 자신의 논의에서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차르녹과 개혁파 정통신학자들에 따르면 (비록 진술 자체에 있어서의 논리적 혹은 문자적 측면으로 외형상의 불일치가 있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전능성에 있어서의 “자유”는 오직 그분과 피조세계에 대한 관계를 고려한 “영원한 작정”의 기초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중세후기신학적 의미에서의 “급진적(radical)”인 신적 자유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 것인데, 결국 신적 능력과 지식 사이의 간격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정통신학의 신론체계를 수호하기 위한 근간으로서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의 중요성이 재차 명백하게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속성의 교리를 다루는데 있어서 피조세계와 관련한 외부적 측면(the ad extra dimension)을 강조한 청교도 신학의 전반적 흐름도 사실상 이러한 경향을 고무시킨 작업의 일환이라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위의 논의를 전제할 때, 17세기 개혁파 진영에 절대능력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재부상한 구체적인 역사적 및 신학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리차드 멀러가 Petrus Van Mastricht(1630-1706)의 주장을 재인용한 분석에 의하면 당대의 다양한 신학사조 가운데에 세 부류의 잘못된 사상들이 횡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의 본질의 제한을 주장하면서 모순된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무능력하다고 주장한 소시니안주의, 둘째는 절대능력을 모순된 일을 포함한 무제한적인 능력으로서 문자 그대로 이해한 Weigelian 열광주의자들, 셋째는 이미 피조된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불편부당함(indifference)"이라는 사고에 근거해서 유명론자 혹은 오컴주의적인 수준조차 뛰어넘는 극단적인 하나님의 자유를 주장한 데카르트주의자들이 그들이었다. 특히 데카르트주의자들이 하나님과 피조물의 적절한 관계를 고려해야 할 뉘앙스는 전혀 없이 하나님의 “불가능성(impossibility)”을 논했다는 점은 그 ‘교묘함’ 때문에 개혁파 진영의 주요 공격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차르녹의 논증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절대능력의 대상은 가능한 모든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은 모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 자신의 성질에 양립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특질에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어서도 안된다. ...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선택하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창조된 이후에 세상을 없애실 능력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 이후에 그것이 없어진다면, 세상은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없어졌다는 것도 영원히 진실인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 진실이었던 것이 거짓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세상이 창조된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그것을 작정하신 것도 영원히 진실이며, 하나님이 그것을 작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그 자체의 성질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절대능력을 정의하는 영역에 있어서 모든 일의 “가능성”이라는 의미는 결코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를 침범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시간적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이라는 것은 오직 스콜라신학 전통에 따라 신적 단순성에 근거한 순수 현실태(pure act)로 이해되는 하나님이 스스로 내린 영원한 작정의 토대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 혹은 변화시키는 힘(potency, 즉 하나님 스스로의 불변성과 대비되는)의 대상으로서 피조세계를 고려하는 견지에서만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혁파 스콜라주의와 청교도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전능개념의 절대성을 수호하고자 노력했는데 이는 그 능력의 자의성(arbitrariness)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와 의지와 의로움이라는 속성들을 통해 신적 능력을 바르게 설명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오직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의 자유(divine freedom)의 의미가 모든 다른 신적 속성들과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제대로 변호될 수 있기 때문이다.


B. 섭리, 창조, 그리고 구속에 있어서의 “제정된” 능력(ordained power)


그러므로 셋째로 우리는 절대능력에 대한 위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나님의 제정된 능력에 대한 차르녹의 설명을 살펴보아야 한다. 차르녹에게 있어서 제정된 능력 개념은 하나님의 의지적 행동이 ad extra적으로 나타날 가능한(possible) 혹은 행해질만한(factabile) 대상으로서의 피조물과 관련된 전능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죄와 악의 문제 및 “가장 자유로운 작인(agent)”으로 이해되는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하심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준다.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의 구분 속에 후자적 의미에서 각 피조물에게 합당한 최선을 이루시는 그분의 지혜와 작정된 의도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섭리적이고 도덕적인 측면 또한 함축되어 보존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차르녹의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논증의 두 번째 방향, 즉 하나님의 제정(ordination)의 범위를 설정해 줄 영원한 작정에 근거한 섭리와 구속 사역에서 드러나는 능력에 대해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혁파 정통주의와 청교도 신학자들에게 있어 제정된 능력(potentia ordinata Dei)라는 용어는 본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피조질서들의 관계로부터 추출된 은혜 언약 및 구속언약과 창조언약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이 언약 이론의 배경 또한 중세 후기에 나타난 언약에 관한 논의의 여파와 전혀 무관한 것은 결코 아니다. 차르녹 역시 언약사상의 테두리 내에서 섭리적이고 구속사적인 맥락을 고려하면서 제정된 능력을 논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서 차르녹은 우선 모든 피조세계에 대한 통치는 하나님의 “지성(understanding)과 의지와 능력”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임을 재차 확인한다. 차르녹이 섭리 사역에 있어서 신적 지성 혹은 신적 능력 가운데 어느 한편에 우위를 두지는 않았지만, 능력은 지성보다는 의지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이는 제정된 능력이 하나님의 “전능한 의지(omnipotent will)의 끊임없는 유효적 작용(efficacy)”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그러하다. 차르녹이 섭리 교리 이해에 있어서 이와 같이 신적 의지의 지성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언급하는 것은, 섭리가 응당 하나님의 주권과 서로 얽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고 하겠다. 이는 이 점에 있어서도 차르녹이 스코투스와 유명론자들의 주의주의적 경향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난다. 차르녹은 이어서 섭리 속에서 나타난 제정된 능력에 대해 논하는데, 특히 “자연적” 통치를 설명할 때 보존(preservation)에 있어서의 “유지하시는 능력(sustaining power)"과 모든 피조물의 움직임에 있어서 “함께 일하시는 능력(co-working power)으로서의 신적 능력의 작용을 다루고 있다:


자연(nature)이 어떤 일을 행하든 하나님은 자연 속에서 일하신다; 자연은 수단이고 하나님은 자연을 붙들어주시고(supporter) 지도하시며(director) 움직이신다(mover); ... 그 일들은 주관적이고 효과를 낳는 측면으로는 이차적 원인들(second causes)인 우리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애초부터 동시발생적인(concurrent) 것이다.


차르녹은 특히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능력을 “연속적 창조(continual creation)”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일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이 2차적 원인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신적인 “강력한 동시작용(concurrence)"이라는 것이다. 물론 피조세계내의 인과구조와 자연법은 하나님의 통상적(ordinaria)능력의 작용 속에서 비통상적(extraordinaria) 개입의 능력의 경우만을 제외하고 제정된 능력의 범위내에서 함께 적용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결국 차르녹도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 구분을 통상적/비통상적 능력의 구분과 더불어 특히 섭리 사역과 관련되어서는 결합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차르녹의 실례를 통해 파악한 개혁파 정통주의 및 청교도 신학은 하나님의 의지의 주권성의 기초 위에서 창조 및 섭리와 관련한 하나님의 제정된 능력에 대한 논의를 할 때만이, 인과 구조와 소위 신적 “concurrence”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립하는 하나님의 절대능력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파 진영과는 대조적으로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지성”의 기초 위에서 그분이 가장 좋은 것(summum bonum)을 주시는 것으로 창조사역을 이해했다. 물론 여기서 알미니우스가 토마스주의적 입장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절대능력의 존재를 거부하며 오직 제정된 능력 개념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도 차르녹과 개혁파 정통주의 혹은 청교도 신학의 창조와 섭리 교리에 대한 이해가 알미니우스적 입장에 반대하여 비록 신학이론 형성의 토대로서 토미스트적인 인프라구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코투스주의 내지는 중세후기의 주의주의(voluntarism)에 대한 긍정적 수용을 그 특징으로 내보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나아가서 이러한 차이는 개혁파와 알미니안 진영의 하나님의 “자유”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불일치와도 관련성을 갖는다: 영혼의 기질(psychological faculties)과 지성(그 범위에서 의지보다 넓은)과 의지의 변증법적 설명 구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차이가 그 불일치를 낳는 것이기도 하다. 즉, 차르녹과 개혁파 정통주의 진영은 신적 자유와 주권이 반드시 피조 질서 내의 임의성(contingency)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또한 스코투스와 중세후기 어거스틴주의적인 사상의 영향이라고도 하겠다.


한편 차르녹에게 있어서는 구속 사역 또한 하나님의 제정된 그러나 무한한 능력이 그분의 무한한 지혜와 더불어 나타난 영역이다. 그는 여기서 삼위일체적이며 경건과 관련된 강조점들을 광범위한 주석적 토대 위에 두드러지게 언급하고 있다. 기독론적 측면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능력, 즉 성육신에 있어 신인성의 결합 및 구속사역과 그리스도의 중보자직에 대한 논의, 그리고 택자 개개인에게 그 구속사역이 적용되는 일에 대한 논의도 차르녹의 중생 및 성화 교리와 맞물려 예리하게 설명되고 있다. 특히 신자에게 최초의 은혜의 주입이 이루어진 이후 그를 보존하는 은혜로서 성화가 진행되는 삶을 가능케 하는 은혜를 작용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자안의 “계속되는 중생(a continued regeneration)”이라는 개념과 함께 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 청교도 신학의 주제인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고 있기도 하다.


III.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차르녹의 이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작정(decree)에 있어서 “절대성(absoluteness)”의 의미와 구속 언약(pactum salutis)


하나님의 의지의 실행과 유사한 맥락에서 청교도 신학자들과 개혁파 스콜라주의는 하나님의 전능의 지배 혹은 권위(potestas, rule or authority)로서의 측면을 탐구했다. 여기서도 우리는 전통적인 절대능력과 제정된 능력의 개념이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기초적 틀의 범위 내에서 합쳐지고 있는 혹은 수렴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선 시편 103:19(“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에 근거해서 차르녹은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삼중적 주권(자연적 통치, 은혜의 통치, 영광의 통치)을 이끌어낸다.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권의 토대는 하나님과 피조세계 사이의 자연과 은총을 아우르는 모든 차원의 언약적 관계의 양상에 놓여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은 진공 속에서 운행되는 형이상학적 혹은 사변적 교리가 아니라, 그 주권의 기초가 되는 그분의 시간 속에서의 일하심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 혹은 의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실질적인 교리라는 것이다. 아울러 청교도 신학자와 개혁파 정통주의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놓여있는 언약적 측면을 신인협력적이거나 세미펠라기안적인 방식으로 다루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이는 바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중간지식(scientia media) 개념을 사용하거나 하나님의 2차원인들과의 함께 일하심(divine concurrence)이라는 개념을 잘못 사용하는 일을 통해 드러났던 면이기도 하다.


차르녹의 하나님의 주권 교리의 특징을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우선 작정의 실행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하나님의 전능함이 “물리적” 능력이라면 주권은 그분의 피조세계와의 관련성에 있어서의 “도덕적 능력” 혹은 합법성을 담보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동시에 이 주권의 절대성은 그 자체의 성격상 셀 수없는 수많은 가능한 대안을 가정할 수 있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절대성은 다른 여러 신적 속성들―지혜, 의로움, 선하심 등―에 합치하여 발현되는 그의 계획된 단 하나의 작정상의 의지(the ordained decretal will)로 인해 통제된다. 즉, 제정된 능력 개념은 바로 이 하나님의 주권의 실행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차르녹은 자유로운 작인(free agents)으로서의 인간과 그 영혼의 창조 및 모든 피조세계를 이차적 원인들로 삼으시는 일이 결코 신적 주권의 진정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차르녹이 하나님의 주권의 “제정된” 측면으로서의 성격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 “절대성”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영혼과 마음조차도 토미스트적인 인과론적 구조의 범위 내에 해당되어 머물면서 결코 그 예외적 범주가 될 수 없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이 신자이든 유기될 자이든 그 구조 안에서 인간의 책임성과 신적 통제라는 양 측면은 명백히 유지되고 공존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차르녹은 예정론, 기독론, 칭의론, 성화론, 은혜의 교리 등과 관련하여 알미니안주의적 구원론의 논의 구조를 비판하며 하나님의 주권 교리를 강한 개혁주의적 논조로 탁월히 옹호했는데, 이는 특히 구속사역과 관련된 신적 주권을 변호하는데 있어서 그 논의의 삼위일체론적 구조가 구속언약 및 그리스도의 중보자론과 맞물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과 직접 연결된다. 이러한 영원 속에서의 구속 언약론은 퍼킨스의 세대에는 아직 널리 퍼지지 못했던 것이지만, 그것은 삼위일체와 기독론적 토대의 변형을 꾀했던 여러 합리주의적 견해들에 맞서 하나님의 주권 교리라는 영역으로 일체적으로 수렴되는 언약신학적 및 기독론적 통합성의 토대 위에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를 균형적으로 이해하고 수호하고자 했던 차르녹과 전성기 정통주의신학자들의 노력임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하나님의 주권은 자연과 은총과 영광의 세 영역에서 모두 드러나지만, 우리는 차르녹이 특히 기독론적, 언약적, 삼위일체적 토대 위에 전개되는 초자연적 은총과 관련된 측면(구속사역의 성취와 그 적용)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동시에 반영하는 작업을 통해 신적 주권의 “절대적” 성격을 강조하고 있음을 보았다. 아울러 그는 신인협력적인 신론 이해에 반대하면서, 독력적인(monergistic) 신론 이해를 위한 삼위일체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데 있어서의 구속언약의 역할은 오직 영원과 역사 속에서 모두 존재하고 행동하는 “성서적”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IV. 정리 및 결론: 하나님의 전능 및 주권과 신자의 책임의 “역설적” 공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관한 차르녹과 퍼킨스의 이해, 즉 보다 넓은 맥락에서는 청교도신학과 개혁파 정통주의의 이에 대한 관점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저변에 깃들어있는 중세 스콜라신학의 흔적을 다시 검토해보아야 한다. 즉, 우리가 이차문헌을 통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스코투스적인 관점은 특별히 별도로 존재하는 “문자 그대로의” 절대능력을 거부하는 동시에 절대능력과 상대능력의 구별은 인정하면서도 한걸음 더 나아간 “언약” 개념을 강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컴주의자들은 신적 제정의 범위를 뛰어넘는 절대능력의 극단적 수준설정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피조질서와 관련되어 하나님 스스로 설정한 언약이라는 측면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켜 절대능력 개념의 성격에 수반되기 쉬운 자의성(arbitrariness)을 제한하고자 애썼다. 결국 양진영의 결과적 측면에서는 사실상 커다란 차이가 없는 듯 보인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했고, 양 입장 모두 하나님의 전능을 단일하며 통합적이고 피조세계와 관련하여 창조, 섭리, 구속 사역 속에서 발휘되는 “작용적”인 능력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대체로 개혁파 정통 신학자들은 스코투스주의와 오컴주의 사이에서 절충적 입장을 취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토미스트적 인과구조와 함께 그 도구적 개념들인 “contingency”와 “divine concurrence”를 활용해서 스코투스적인 주의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주의적인 신학적 담론을 이끌어냈다. 이는 하나님 내에서의 지성의 우선성에 대한 강조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주의주의적 접근에 대해 편견없이 그것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17세기 신학의 큰 범주내에서 개혁파 정통주의자이자 청교도 신학자인 차르녹과 퍼킨스는 초월적인 하나님과 피조질서 간의 관계에 있어 급격한 분리나 신적 자유를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양자간의 관련성을 설정하는 것을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외부적(ad extra) 실행작용을 통해서 주어지는 계시된 뜻(the revealed will)의 테두리 내에서만 그분의 비밀스런 뜻(hidden will)을 감지하고자 했다.


아울러 이러한 신적 능력 개념의 구분은 하나님의 의지 교리에 대한 핵심적 지적 유산이 신론의 핵심으로서 그 연속선상에서 후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보았다. “스콜라적인” 틀에 있어서의 연속성은 중세신학으로부터 개혁파 정통주의와 청교도의 그것으로 이어지고 있으되, 특히 영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퍼킨스와 차르녹을 통해 초기 청교도 혹은 초기 정통주의로부터 후기 청교도 혹은 전성기 정통주의로 그 흐름이 이어졌다고 하겠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과 주권에 대한 가르침에서의 이러한 연속성은 석의적 토대 위에 놓인 정통신론의 근간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서 나온 것이었다 ― 하나님의 본질이 단순한 오직 하나의 그것(a simple one)이기에 그분의 의지 혹은 뜻은 불변토록 “단일한(single)” 것이라는 성경적 명제가 그것이다. 구원론적 관심사에 중점을 둔 하나님의 이 의지교리는 영원과 시간의 측면이라는 신적의지의 이중적 측면에 있어서의 합당한 균형과 긴장을 유지해냈다.


차르녹의 시대에는 초기 정통주의 시대에서 전성기 정통주의 시대로의 이동 가운데 퍼킨스의 시대의 논적들인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 진영 외에도 소시니안과 합리주의자 등 더욱 다양한 논적들이 출현했다. 따라서 차르녹의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교리 형성에 있어서 퍼킨스의 그것에 비해 그 구조적 및 내용적 상세화가 더욱 이루어졌지만, 교리 설명의 핵심에 있어서는 양자 모두 창조, 섭리, 예정과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이 피조세계와 관련하여 행하시는 능력과 주권에 중점을 두었다는 공통성을 가졌음을 우리는 발견했다. 그리고 전능 개념에 대한 중세후기적 이해들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상에서 절충적 혹은 중도적으로 “하나로서 수렴되는” 하나님의 전능함과 그분의 주권적 뜻의 절대성을 토미스트적 인과론의 틀의 배제없이 효과적으로 변호하고자 했다. 한편 전성기 정통주의에 더욱 활성화된 구속언약 개념의 발전을 통해 차르녹은 하나님의 전능과 절대주권을 더욱 충분히 강조할 수 있었고, 이는 기독론적 및 언약 신학적 측면을 강화시킴으로써 삼위일체신학의 틀을 더욱 견고히 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결국 이미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차르녹과 퍼킨스의 사상은 전통적인 스콜라 신학의 개념 구분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개혁파” 스콜라주의와 청교도적 경건을 정통주의기 개혁파 신학의 역사적 및 신학적 맥락 하에서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연속선 상에서의 변천은 발전인 것이지 결코 후퇴는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다시 풀어서 설명한다면, 정통신학에 있어 하나님의 “전능”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는 오직 특히 피조세계와 교통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ad extra적 일하심의 측면과 관련된 삼위일체적 신학 체계와 결합된 하나님의 단순성 교리의 온전한 변호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더욱 견고한 추구작업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성기 정통주의 혹은 영국 청교도 신학의 절정기의 통상적인 신학적 주장의 형식적 틀인 설교적 강론의 사중구조(fourfold structure, 주해-교리-논쟁-실천)상의 마지막에 위치시킨 “실천적” 부분(practical part)과 관련되어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서 강조한 면들을 보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즉, 차르녹의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에 관한 모든 논의는 궁극적 차원에서 볼 때 “교리 혹은 가르침”와 “경건”의 일치로서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theologia nostra”인 동시에 “theologia ectypa”인)이라는 주제의 견지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이자 참된 종교(true religion)이기 위한 전제이자 필연적 결론으로 요청되어야 하는 신앙과 순종(faith and obedience)의 연결구조는 순례자로서의 신자의 전 생애의 국면에서 항상 요구되는 칭의와 성화의 당연한 산출물로서의 실천적 경건의 밑바탕이 된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의 절대성에 관한 교리가 결코 경건의 성장에 있어서 인간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은 주권자 하나님과의 연약적 연합(covenantal union)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온전한 삶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교리라고 하겠다.


이한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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