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명칭

1.하나님의 영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데 물질과 정신으 모든 영역에서활동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주를 창조하셨고 보존하시고 있다.


"하나님의 손" (눅11:20) 곧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계에서 활동하신다. 즉 죄인으로 하여금 개종케 하며 신자들을 거룩하게 만드시며 신자들을 보존하여 주신다.


(1) 성령은 절대적인 의미에 있어서 신이신가?

다음과 같은 사실은 성령의 신성을 입증한다. 그는 신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영원하시며 무소 부재하시며 전능하심 전지하시다 (히9:14,시139:7-9,눅1:35,롬8:11). 성령은 돌릴 수 있다. (창1:2,욥33:4,요3:5-8,롬8:11)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협조하는 위치에 있다. (고전 12:4-6,고후13:14,마28:19,계1:4).


(2) 성령은 인격이신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영향력에 불과한가?

성령은 때로비인격적으로 즉 가득차게 하는 숨결이라든가, 기름붓는데 사용되는 기름이라든가,열과 빛을 발산하는 불이라든가, 또는 물이라든가, 모든 사람이 같이 나누어가질 수 있는 선물이라는 말과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단순히 그의작용의 여러 면을 기술해 주는데 불과하다. 성령을 인격으로 기술되어 있는 점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인격의 속성을 갖고 있다.

즉 마음 (롬8:27)뜻(고전 12:11),감정(엡4:30) 등을 갖고 계시다. 그리고 그의 행위는 인격적 행위이다. 즉 그는 계시하신다 (벧후1:21). 그는 가르치신다. (요14:26). 그는증언하신다.(갈4:6).그는 중재하신다(롬8:26).그는 말씀하신다 (계2:7) 그는 성명령하신다(행16:6-7).그는 증거하신다(요15;26).그는 근심하실 수도 있다.(엡4:30) 성령은 속을 수 있다. (행5:3).


성령은 훼방을 받을 수 있다(마12:3132).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의 인격성을 보여주고 있다.(마3:16). 그리고 이 사실은 성령 자체와 성령의 은사를 구별지어 주기도 한다.(고전12:11).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인격성을 부인하는데 그 까닭은 성령은 몸,혹은 모양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과 육체는 엄연히 구별해야 한다. 인격이란 지, 정, 의, 의 삼요소로 구성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육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구성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육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어떤 형체가 없다고 그 실제성마저 부인할 수 없다. 바람은 어떤 일정한 형체를갖고 있지는 않으나 실제로 존재한다. (요3:8)


성부와 성자의 개념을 구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성령의 분명한 개념을 구상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로, 성경을 통해서 볼 것 같으면 성령의 작용은 눈에 안보이고 은밀하고 내적이다.


둘째로, 성령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지도 않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그는 언제나 다른 도의 배후에 숨어 계시며 또 우리들의 마음속 깊음 곳에 계신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사람들의 주의력을 끌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주의력을 끌게 한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요16:13).


(3)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된 인격이신가?

물론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시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사상이나 의지나 행위면에서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성령은 하나님과 하나이면서 어떻게 하나님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인격이 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삼위 일체의 교리의 신비성에 속하는 것이다.



2. 성 령


성령을 가리켜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그 성령이 거룩하신 분의 영이기 때 문에그렇고 또한 성령의 주된 일은 성화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즉 우리들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 것과우리들 속에 있는 어떤 것이다. 첫째,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리고 다음으로 그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 속에 사신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전해 주신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본성을 개조하기 위아여 오셨으며 그는 온갖 악의 경향성에 도전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3. 보 혜 사


성령에 부여된 이와 같은 명칭은 요한 복음 14장으로부터 17장꺄지에 기록되어있다. 위에 열거한 몇 장의 성경을 배경으로 연구하면 이 성령의 은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마지막 식사를 저들의 스승과 같이 들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저들의 마음은 슬픔 속에잠겨 있었다. 그리고 저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께서 떠나 버리시면누구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인가? 누구가 우리를 가르쳐 주며 또 인도해 줄 것인가? 우리들이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칠 때에 누구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인가? 어떻게 우리들은 이 무서운 세상을 능히 대적할 수 있을까?


제자들이 이와 같은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을 때에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으로 저들의 마음을 안심시켰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게 있게 하시리니." (요14:16).


보혜사는 말은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이다) 다음과 같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지니고 있다. 어떤 일에 있어서나 특히 형사상의 소송 사건에 있어서 어떤사람을 돕게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을 뜻한다.


고대 법정에는 변호인으로 자기의 친구 중에 가장 유력한 사람을 하나 또는 그이상 세우는 것이 보통 관습처럼 되어있었다.

그런데 이런 변호인을 헬라어로는"파라클레테스"(Paracletes)" 또 라틴어로는 "애드버커터스 (Advocatus)"라고불렀다.

이들이 친구를 위하여 변호한 것은 보수를 받기위해 서가 아니라 친구를 위하는 사랑에서였다.


곧 공정하고 바른 재판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변호를 하기 위하여 친히 법정에 출도하여 변호했던 것이다. 저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 것에 관해서 친구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를 대신하여 변호도 하고 행동도 하여 마치 친구의 소송 사건을 자기의 소송 사건 처럼 생각하고 어려운 재판을 하는데 있어서 친구의 펀이 되어 주었다.


예수께서 이 땅 위에 계실 때에 그는 그의 제자들과 이와 같은 관게를 맺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에 저들은 자연히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가 없는 동안에 저들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고 가르쳐 줄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저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예수께서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신 까닭은자기는 제자들에게 볼 수 있는 존재로 있었지만 이 보혜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다른" 이란 말은 성령과 예수를 구별지어 주고 있다. 그러나 성령을 예수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았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신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영적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리스도의 계승자인 동시에 또한 그의 임재하심 자체라고 할 수 있다.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을 지속시킬 수 있다.


"저들 속에 그리스도를 거하게 사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에 저들은 사도 바울과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내 안에 사신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전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그리스도의 본질이요, 그리스도의 감정이요,그리스도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성령께서는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남겨주신 모범을 따르게 한다. 만일 그리스도가 없다면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마음 속에 어떤 역사도 할 수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을 제거해 버리는 일은 마치 사진관에서 원판에 찍으려는 사진의 주인공을 제거해 버리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백성의 대변자와 조력자로서의 존재를 상실하고 만다는 뜻이 아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우리들을 위하여 대언자의 직책을 수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다(요1서2:1). 하늘 나라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를 옹호하고 계시다.


그리고 동시에 지상에서 역사하고 계신 성령께서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승리를 통하여 이 땅위에 있는 교회의 원수들을 잠잠케 하신다." 예수께서 하늘나라에 계신 대언자라면 성령은 지상에 계시는 대언자라고 할 수 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성령의 수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내신다. 예수께서 육신을 갖고 있을 때에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으셨다. 그러나 승천하신 이후에 그는 성령을 통하여 어느 곳에든지 계신다. 이 땅위에 계실 동안에 그는 사람들의 밖에 계셨다.


그러나 승천하신 이후 그는 인간의 영혼의 깊숙한 곳에 계시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지상에서 남아 있다면 그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유일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가신 성령을 보내 주셨음으로 우리들은 성령을 힘입어 살아가야 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이 볼 수 있게 유형적 존재로 우리들과 함께 계시다면 그와 우리와의 관계는 대리석을 조각하는 예술가와 그의 모뎀과의 관계와 같은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지상에 남아 있다면 그는 다만 과학적 연구의 연장된 관찰의 대상이되었을 것이며 우리들의 외부에 있을 것이다. 즉 외형의 목소리이며 외형상의인생이며 외형상의 모형에 불과하기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는 혼 중의 혼이요, 영 중의 영이요. 우리들의 이성의 진리요 우리들의 마음의 사랑이요 우리들의 의지의 욕망으로서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살수있게 되었다."


만일 성령의 역사가 성자의 사업을 전달해 주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떠나시고성령을 보내 주시는데 무슨 유익함이 있을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렇다 성령께선 전해 주시는 것은 지상의 그리스도가 아니다. 천상의 그리스도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원한 능력을 다시 부여받게 되었고 하늘 나라의 영광으로 다시 옷입게 되었다. 고돈 (A.J.Gordon) 박사는 다음과 같은 말은 하고있다.


"부자 친척이 돌아감으로써 상속자가 된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우리들은 매우 가난하다. 그런데 나는 상속자가 되었다. 만일너희들이 내가 상속받으려 떠나는 것을 기꺼히 받아 드리기만 하면 나는 바다건너 멀리 가서 상속을 받으리라. 내가 여기 머물러 있음으로 너희들이 소유할수 있는 것의 천배도 더 되는 재물을 너희들에게 보내주리라."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은 그의 가난한 시대와 (고후8:9) 비천한 때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 은혜의 풍족함을 얻게 되었다 (엡1:7). 보좌에 앉게 됨으로서 그는 영광의 풍성을 누리게 되었다. (엡3:16).


승천하신후에 그는 성령을 보내어 그가 상속받은 재물을 전해주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승천하심으로 그는 주실 것을 더 많이 갖게 되었고 교회는 더 많은 것을 받게되엇다 (요16:1214:12). "생명의 물줄기의 근원이 높은데 있으면 있을 수록그 생명의 물줄기는 더욱 힘차게 흐르게 될 것이다."보혜사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것보다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완성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전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완성되지 못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기독교의 교리는 완전히 전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요16:1213 속에 예수님의 적절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형이 오시면 말하지 않고 오직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말미암아 더욱 큰진리가 부여 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위대한 능력이 부여되었다.



4. 그리스도의 영 (롬8:9)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광 성령의 본질적인 구별은 없다. 오직 한분의성부와 성자가 있는 것과 같이 오직 한 분의 성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한분이시지만 그분의 여러가지 역사를 나타내는 명칭을 많은 것이다.


그러면 성령을 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르는가?


(1) 왜 그러냐 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요14:26). 왜 그러냐 하면 그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보내질 영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영적생활의 원리이다. 이 원리에 의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에 탄생될 수 있다.


(2) 성령의 이와 같은 새로운 생명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주어졌고 또한 유지된다(요1:12134:107:38). 그리스도는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시다(마3:11).


(3) 이 시대에 있어서 성령의 특수한 사명은 그리스도를 영하롭게 하는것이기 때문에 성령을 가르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한다(요16:14). 성령은 특수한 역사는 이 세상에 살다가 죽었으나 부활하여 승천하신 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위하여 하신 일을 그들 속에 생생하게 실현시키신다.


(4) 성령에 의하여 영광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신자들의 마음 속에 내주하신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들하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좀 더 생생하게 들어 내기 위하여오셨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 어디든지안 계신 곳이 없게 즉 무소 부재하게 하시며 신자의 마음 속에 내주하게 하신다 (마18:20).


그리스도와 성령은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신자들의 마음 속에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같이 거하신다고 말할 수 있다. (갈2:20,롬8:910). 그리고 신자들도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거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감사하게도 그리스도의 생명이신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의 생명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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