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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라는 복수대명사로 삼위일체를 증거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난해하고, 회피하고 싶은 주제가 바로 ‘삼위일체’다.

셋이면서 동시에 하나인 것은 무엇인가.

수수께끼 같은 이런 질문은 사실 기독교 역사가 처음부터 간직한 신비였다.


많은 사람은 삼위일체를 단지 사변적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성서에는 직접적으로 ‘삼위일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 본질 혹은 실체 등의 존재론적 개념을 통해서 하나님이 한 분이시면서 세 직능을 가지신 분으로 본다.그러나 혹시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한계를 넘어서는 개념은 아닌가. 그리스 철학이 언급하는 영혼이나 정신을 복음보다 더욱 강조하는 것은 성서적이지 않다.


교회와 신학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패라는 좌절을 맛본다. 논리나 이성으로 결코 풀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성경에서만 가르쳐 주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독특한 계시 진리’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환원운동은 삼위일체를 성경을 토대로 펼친다.


삼위일체가 드러내는 진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먼저 삼위일체 교리가 언급된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교리적 정의를 살펴보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단일한 신성에 삼위가 계시니 곧 본질 권능 영원성이 동일하신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부는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나시지 아니 했으며, 나오시지 않으시며, 성자는 아버지에게서 영원히 나시었고, 성령은 성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


즉 삼위가 계시며, 삼위의 신성이 동일하며, 삼위는 서로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런 고백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해명될 수 없다. ‘꼭짓점이 네 개인 삼각형’을 그리고 정의해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삼위일체는 신비이며 성경을 통해서 증명해 믿을 수밖에 없다.

삼위일체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있다. 그것은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성서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삼위일체에 반대하는 이론들을 어떻게 규정했고, 또한 올바른 해결책을 내렸는가. 이는 그리스도의교회가 건강한 삼위일체를 펼치기 위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지점이다.

먼저, 그리스도의교회는 양태론(modalism)을 주의해야 한다. 양태론자들은 하나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의 다른 양태로 각각 나타나셨다고 주장한다. 아들과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신성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된다.

두 번째는 군주론(monarchism)이다. 아버지인 하나님 한 분 아래에 아들 예수와 성령이 종속돼 있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아리우스 사상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삼신론을 주의해야 한다. 삼신론자들은 세 분의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는다. 이들은 세 분의 위격이 서로 다른 세 분의 본질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각각 신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다신론적 사고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자신의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교리로 받아들이는가. 왜 삼위일체를 기독교 믿음과 신학을 위한 참다운 고백이라 부르는가. 또한 오늘날 다른 언어로 혹시 이를 표현할 수 없을까.


성경은 아버지 하나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이 한 분이며 또한 서로 구분되는 분임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성경은 삼위일체를 분명히 증거한다. 한 분 하나님 안에 세 인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창 1:26, 3:22 등)라는 복수대명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창조사역에 주역을 담당하셨고, 신약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때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마 3:13~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선 대속의 사역이 완성됐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 성령이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 이후 성령이 구원사역을 계속 이어가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각위가 한 분 하나님이심은 성부가 하나님이심(고전 8:6, 갈 1:1), 성자가 하나님이심(행 20:28), 그리고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통해 알 수 있다.

삼위일체는 5세기까지 교리로 형성된 후(칼케돈 공의회) 잊혀졌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서야 재조명된 신학적 주제였다. 삼위일체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구분되는 중요한 ‘하나님 이해’이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는 이론 신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신학의 본질과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세 분의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해 베푸시는 사랑을 드러내며, 세 분이 각각 다른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 믿음의 정수(精髓)다.

그리스도의교회는 이와 같은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건전하게 고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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