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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김교철목사

Nyskcian의 삶을 살아라(출 20:1-6)


예배자의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자녀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삶이며 이땅에서 승리하는 삶입니다



1. 하나님만 섬기는 삶

지난 주, 우리는 십계명을 주신 배경을 살펴보고,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은 십계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적 만남 가운데 주신 명령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십계명은 “너희가 나와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이라면, 이렇게 살아라”라고 하는 삶의 규칙을 하나님이 직접 교회 공동체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방법대로 살면 삶이 행복해 지고, 이 방법대로 살지 않으면 삶의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로 주신 명령이 “하나님만 섬겨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는 삶”이란,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계명인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기독교의 여러 전통들 가운데서는 십계명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계명을 하나로 보는 전통도 있습니다.

물론 제 일 계명과 이 계명을 하나로 보아도 그 의미는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지만, 성경이 구분해 놓은 바에 따라 오늘은 제 이 계명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해 집중해 보기를 원합니다.


2.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계명을 주신 배경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억압 가운데서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을 왜 해방시켜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이스라엘의 선한 행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언약에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기억하시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던 것입니다(출 6:5).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백성을 삼고자 함에 있었습니다(출 3:18).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백성이 된다!” 이 말은 곧 구원 받은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만이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서 말하는 의인이란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산 사람을 말합니다.

곧 예배자로서의 삶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강퍅한 마음의 바로는 하나님의 열 가지 재앙을 맛보고서야 마침내 그 마음이 무너집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겨라.”(출 12:31) 드디어 이스라엘은 해방이 되었고,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는 데에서(출 12:40) 비롯됩니다. 애굽에서의 오랜 세월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참되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 지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노예 상태에서 해방으로, 억압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그들은 살아가는 법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살아가는 법 곧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3. 살아가는 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 살아가는 법이란 쉬운 말로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지, 그리고 세상과는 어떤 관계 맺고 살아가야 하는 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인생 문제에 해답이 있습니다. 여기에 참 행복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두 분류로 나누면 일에서 사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맺는 법이고, 오에서 십 계명은 사람과 사람, 인간과 세상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을 지키면, 가정이 행복해 지고,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성장하게 됩니다.

십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고, 공동체가 친목 단체로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말틴 루터는 대요리문답에서 말하길, “십계명을 온전히 아는 사람은 성경 전체를 아는 것이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실로 십계명의 말씀이 성경 전체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 이 계명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데, 제 이 계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말씀하시는 계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 일 계명이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고, 참 하나님만을 섬겨라”는 메시지였다면, 제 이 계명,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은 참 하나님을 알고, 참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이제 “참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자세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가, 우상 숭배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의 존재 목적,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로 우리가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목적입니다.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는 인간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 분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Worshipful God”이고, 인간은 “worshiper”입니다.


그런데 십계명 제 이 계명이 명령하는 바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너를 위해”가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만든 우상은 결국 누구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우상 숭배를 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만족을 위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인간 안으로 들어오는 공허함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육적인 만족을 누려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정신적으로나, 영적인 빈 공간에 무언가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잘못 채우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품 안에서만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 이외에서 누리는 자기만족은 일시적인 위로요, 해로운 중독이 될 뿐입니다.


이 시대는 세 가지의 우상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Sports, Sex, Screen이 그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습니다만, 한 가지만 예를 든다면, 영국은 불과 200년 전에 기독교가 차지하고 있던 영국 국민의 영적인 장소에 지금은 축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축구에 미친 나라가 어디 영국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축구가 있고,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등산이 있고,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일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그것은 자기만족일 뿐입니다.

여기에 대해 유일한 치료약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5. 예배자의 삶

마지막으로 그러면, 참된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자의 삶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예배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십계명은 서언으로 시작하는데, “나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참 하나님이다!” “내가 너를 구원한 전능한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난 뒤 열 가지의 계명을 주십니다.


예배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죄악에서 살았습니다.

어둠에서 살았습니다.

세상의 포로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날 구원하셨음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죄인의 신분을 벗게 됩니다. 어둠에서 빛을 보게 됩니다.

포로 된 삶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배는 날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으로 우리는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배란 구원하신 하나님을 축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축하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축구에 열광할 것이 아니고 영화나 사람에 열광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께 축하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찬양으로, 몸으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길입니다.

내가 가진 재물을 수단으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길입니다.

나의 열매 맺는 성품, 나의 영적 성숙으로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길입니다.


세 번째로, 예배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맺었던 언약을 갱신하는 일입니다.

내가 오늘 하루 또는 지난 한 주 동안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살았는지를 되돌아보며, 그 관계에서 벗어났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관계가 뒤틀리고, 관계를 맺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죽어가던 영혼이 온전함으로 회복되고, 치유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의 삶을 날마다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혼탁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명한 목표를 주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자칫하면 세상의 헛된 우상에 자신의 공허감과 자기만족을 채워가는 잘못된 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으로 가는 분명하고도, 유일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기를 오늘도 기대하고 계십니다.

시온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날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예배자의 삶이 되길 원하며 이것이 Nyskcian의 삶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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