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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적 예배의 이해(5)

복음적 예배의 이해(5)


11. 예배의식과 예배요소

예배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개신교 정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예배에 사용되고 있는 형식을 본다면 예배에의 부름, 성경봉독, 교독문, 봉헌에의 초대, 성귀들의 활용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도는 어느 시대에서나 인간이 하나님께 도달하는 중요한 방법이였다. 그 기도를 내용에 따라 분류해 보면, 경배, 감사, 고백, 간구, 중재의 기도로 나뉜다. 형태에라 분류하는 공중기도로서 축문이 있으며, 설교전의 기도, 년도, 화살기도, 창화의 단구 등이 있다. 또한 예배 순서의 위치에 따른 분류로서는 기원, 목회기도, 봉헌기도, 고정된 기도, 강복선언 등이 있다. 유형에 따라 분류한 공중기도로서는 고정된 기도, 자발적인 기도 등이 있다. 이러한 공중기도는 회중의 참여, 기도의 길이 등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음악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요소 였다. 음악은 예배하는 이의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되며 특히 교회음악은 복음주의적 신앙을 전달하고 발전시키며 표현하는 매개물이여야 한다. 악기 사용과 성가대 운용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적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설교는 하나님과 말씀을 듣는 사람 사이의 개인적 만남을 가져다 주는 것이므로 “말씀의 성례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곧 교제이며 예배이다. 설교는 가장 높은 단계의 영적인 예배이다. 설교에 의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과 의식 속에 직접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설교자를 통해서 그는 인간이 그 영혼의 가장 높은 속성에 도달하도록 자극하고 요구하신다. 따라서 설교는 성숙한 예배에 필수불가결한 요건이 된다. 기타 예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침묵, 헌금, 상징적 행위 등이 있다.


12. 예배 의식과 예배순서

전체의 예배 순서를 통해서 요구되는 내용들은 분류자가 분류하는 방법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 윌라드 스페리는 그 내용으로서 찬양, 회개와 용서의 확신, 감사, 간구, 중보의 기도, 교도, 성령의 감화, 헌신, 축복등을 지시한다. 알버트 팔머는 공동의 종교적 요구, 영적인 기쁨을 얻고자 함, 깊은 통찰력의 탐구, 믿음과 견해를 새롭게 함, 위로를 갈망함, 고백과 면죄를 원함, 하나님과 자신의 일의 헌신 또는 재헌신 하려는 충동 등으로 분류한다. 이러한 분류들을 기초로 현재의 우리의 목적에 필요한 목록을 작성해 보면 하나님의 바람 : 숭배, 그의 존재하심을 느낌/ 고백 : 겸손, 참회, 통회함, 회개/ 용서 : 구원, 해방, 깨끗케 함, 용서의 확신/ 감사와 찬양/ 기쁨 : 위로, 고양됨, 환희/ 친교 : 공동 또는 연합체임을 느낌/ 교훈 : 설명, 통찰/ 헌신 : 희생, 제물/ 사명 : 윤리적 요구, 영감,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예배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특질은 통일성, 교체, 균형, 단순성, 이동, 절정 등이다. 예배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심되는 문제는 어떻게 복음적인 예배를 만들며, 그것을 유지하는 가에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 예배를 위하여 교육해야 하며 목회자는 복음주의적 책임을져야 한다.


Ⅲ. 결 론


13. 복음주의 기독교의 예배와 미래

오늘날 예배의 위기를 말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고전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무턱대고 고전적인 형식을 선택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현대의 예배복고 운동은 상실되어간 에배의 기본정신을 회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지 개신교 예배를 중세주의로 되돌려 놓는 것이 아니님을 알아야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주의적 예배를 만들고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해볼 수 있다. 제단 및 제단과 관련있는 것들을 제거하는 일, 주의 만찬에서 미신적인 개념을 분리시키는 일, 예배에 사용되는 시각적 사징들의 수를 줄이는 일, 중세신학을 표현하는 어휘를 제거하는 일, 적합한 예배 장소를 확보하는 일, 복음주의적 예배 순서를 구성하는 일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예배의 갱신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추진하고 이끌고 나갈 지도자가 필요하며 그 지도자는 필히 복음주의적 이어야한다.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는 복음주의 기독교는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이 충성”이라는 성서의 권위있는 가르침에 의지하여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하며 그 내용이 변치않는 기독교와 그 예배의 확립에 중대한 사명이 있음을 자각해야한다.


비평적 소감

일리온 존스 박사의 예배학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이 책이 주는 귀한 메시지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영향력있게 다가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논지의 출발은 이 시대의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그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다. 그의 표현대로 복음주의 예배가 적절히 이해되거나 또는 이해되었다손 치더라도 적절히 현장화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복음주의 예배의 역사적 배경을 기술하였고 복음주의 예배의 내용이 어떻게 발전되어 나왔는지를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고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매우 동감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기독교 복음주의 예배의 정수의 필요함은 그 어느때보다 커졌다. 지루한 예배, 식상한 예배에 대한 대안으로 요즘 소위 ‘열린예배’라는 형식의 예배가 유행을 타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배는 모두 닫힌 예배였다는 웅변을 담고 있다면 큰일이다. 어째튼 현금의 예배가 교회 구성원들의 예배에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열린예배’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예배의 부재에 대한 답을 그의 특징적인 복음주의 예배라는 것으로 부터 풀어내고 있다.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복음을 담고 있는 예배를 살려야한다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 저자는 복음주의 예배를 구성하는 요소를 제시하였고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주의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또한 통일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존스 박사의 복음주의는 어떻게 비칠 것인가? 신약성서에서 보여지는 예배을 닮아가자는 그의 목소리는 옳다. 그러나 저마다 복음주의라고 외치고 있는 현금의 서로 다른 자칭 복음주의 노선에 그가 말하는 복음주의 예배에 대한 모형은 정교하지 못함이 아닐까?


▶ 대 안

존스 박사가 복음주의 예배를 이야기하는 것에는 일률적인 적용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다. 그도 예배 복구운동의 위험함을 지적한 바 있다. 즉 복음주의적 내용이 예배를 감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복음주의가 예배를 감싼다는 내용은 내용은 두루뭉실한 표현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받아들여지는 예배 모범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어린세대, 혹은 젊은 세대의 절대적 인원감소율보다 교인들로서의 그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는 비율이 더 높다는 데 예배 갱신의 필요함이 있는 것이다. 다양한, 다이나믹한 예배를 구성해 제시해주는 책임을 단순히 복음주의 예배를 구성해보자는 목소리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열린예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전의 예배가 닫혀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존스박사가 이야기하고자하는 복음주의는 반드시 사수되어야한다. 형식은 다양하게 갖게 내용은 사수해야함이 대단히 어려운 일임을 확인하는 순서를 갖는 것도 사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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