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복음주의 예배의 발전과정
7. 복음주의 예배의식의 본질
복음주의적 예배란 신약성경에서 발견된 복음과 똑같이 합치되는 예배를 의미한다. 물론 개혁단체들 몇몇은 복음주의 예배는 세밀한 순서에 이르기까지 신약성경과 분명히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복음주의적 예배가 신약성경과 똑같은 형식의 예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음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목적과 특서에 조화되는 예배로서 이해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목적과 특성의 현시는 예수의 탄생에서 시작되어 기독교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며, 성령의 모습으로 늘 힘이 되어주심을 확실히 믿을 때 완성되었다. 즉 복음주의적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총체적인 가르침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적 예배가 갖추어야하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보아야한다.
그것의 첫번째는 성숙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또한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교훈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분명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예배이어야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예배의 목적은 그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동반한다. 힘있는 예배는 그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심정을 늘 예배하는 분위기로 이끄는 것이다. 복음적 예배는 개인적인 예배드림을 요구한다.
공동체의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 속에서는 예배드리는 각 개인과 하나님의 만남의 사건이 들어있다. 각 개인과 하나님과 만남의 사건이 들어있지 않는 예배는 지양되어야한다. 복음적 예배란 신령한 예배이다. 복음적 예배는 복음을 증거하는 예배이고 윤리적인 예배이다.
개인과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인 동시에 이 예배는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복음적 예배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고, 예배할 때 온 생각과 마음을 다 드리도록 하며, 도덕적인 면에서의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한다.
8. 예배의식과 주의 만찬(해석)
복음적 예배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중 하나는 예배 가운데 존재하는 주의 만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느 한 곳에 지정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그분을사물의 본질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어떤 사물에 있는 것으로 지정하는 일은 마술과 같은 종류의 생각이다.
성물에 있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반물질적인 것이라고 할 때, 이런 생각도 이교사상에 빠져들 위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 개념을 그대로 두어야하는가? 왜 인격적이고 영적인 임재로서의 한 분인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을 에배에서 하나로 통일시키지 못하는가? 만일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 대한 진실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며 그는 믿는 자가 성령의 영감에 의해 그의 실재를 인식하고, 믿음으로 그의 은총을 받아들일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인격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임재한다. 이 말은 결코 에배의 신비적 요소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인간의 정신, 생명, 우주, 기도, 하나님과 인간의 신비한 영적 관계,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 그리스도의 죽음, 이 모든 것들이 다 신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영적’이라고 말할 경우 성만찬의 모든 신비와 성스러운 것에 대한 경외의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만찬을 반물질적인 방법이 아닌 영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생각보다 급진적인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9. 예배의식과 주의 만찬(평가)
올바르게 집례된 주의 만찬의식은 그것이 상징하는 바 중요한 의미를 더욱 뜻깊은 것이 되게 한다. 주의 만찬의식은 객관적인 교훈인 동시에 극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의 만찬의식은 예수께서 믿는 이들에게 하신 일을 인상적인 방법으로입증한다.
하나님은 성만찬 의식을 통해 믿는 이들을 격려하고, 어떤 일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하며, 쯔빙글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 주신다. 성만찬 자체를 모든 공도예배의 목적이며 종결로 만드는 것, 예배를 집전하는 사람의 모든 능력과 힘을 성만찬 의식에만 중점을 두는 것, 사람들의 관심을 성만찬의 형식에만 집중시켜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단지 예배의식을 이룩하는 데 있었던 것처럼 만드는 일을 그리스도의 근본 목적과 어긋나는 일이다.
올바른 성만찬의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 자신이 이미 반대하고 폐지시켰던 율법적, 의식적, 희생적 형식을 대신할 새로운 형식이 만들어져야 한다. 성만찬 의식의 절차는 그리스도와 신약시대 교회와 가티 간단해야 한다. 성만찬 의식이 기독교 예배의 목적이나 기타 요소를 밀어 내거나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만찬 의식이 복음 자체의 내용인 것처럼 취급해서도 안 된다. 마치 기독교 교회의 기본적인 기능이 성만찬을 행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지키도록 설득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기독교 교회가 성만찬의 본래적 의미와 목적, 이를 처음 만드신 이의 정신에 맞게 행하려면 기독교 예식을 지키기 위한 중대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 자체를 그 본질에 있어서 철저하게 복음주의적이도록 지킬 수 있는 것이다.
10. 예배의식과 상징
상징은 내용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징을 통해 내용에 접근할 수 있다. 예배 가운데 보여지는 많은 상징이 예배자의 마음자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예배자는 여러 상징들을 통해 예배자의 심정을 구체화 한다. 성단소 배치의 분석을 통해 예배자의 심정을 표현하는 내용을 알아볼수 있다.
설교단 중심의 배치 원칙은 예배하는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데 그 중요성이 강조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교회의 앞면에는 약간 높은 단이 있고 그 위에는 성경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성찬대는 설교단 바로 앞 회중들과 같은 높이에 놓는다. 교회 앞면의 단은 어느 한쪽 또는 양쪽에 계단을 두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러 배치 방법은 분명히 어떤 근본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맨 중앙에 성경이 펼쳐 놓아져 있는 설교단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의 중심이며 원천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예배의 교훈적 요소가 가장 중요하고 선포된 말씀과 기록된 말씀은 하나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성찬대 중심의 배치는 흔히 “분리된 성단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배치는 설교와 말씀을 성례전에 부수되는 것으로 본다.
교회 내부를 두 부분으로 구분하고, 예배 또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성단소와 예배가 하나로 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이 사실들을 고려해 볼때 우리는 성찬대 중심으로 배치된 성단소가 복음주의적 상징을 지키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기타 예전에 사용되는 상징들로서 감각적인 상징들이 있으며 상징적인 행위, 내면적 상징들, 제의 등이 있다. 복음주의적 기독교 정신의 본질을 고려하여 예배에서 상징을 사용하려면 예배를 계획하기 전부터 예배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일단 방향을 정한 후에는 예배하는 이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한 방법과 물건들을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