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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준 교수(백석대학 구약학)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교리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전통은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특정한 기독교 교리들, 교회의 신앙고백문서에 반영되고 있는 특정한 기독교 교리들을 강하게 붙잡는 전통을 말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다음의 5가지 것들에 대한 독특한 이해와 깊이 있는 이해를 갖는 사람들이다. (1) 성경, (2) 은혜, (3) 창조-타락-구원-완성, (4) 언약, (5) 일반은총. 1. 창조-타락-구원-완성 (골 1:15-20)

창조-타락-구원-완성은 개혁주의가 성경과 그 메시지를 정리하고 이해하며 또한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방편이다. 즉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세상이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셨고 지금도 구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최종적인 구원은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날에 완성된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포괄적 신학 체계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네 가지 초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믿는다.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로 선하게 창조된 ‘피조 세계’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로 유지되고 다스려지는 세계다. 이 세상 어느 곳도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날 영역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의 보호자이며 관리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성’(聖)과 ‘속’(俗)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합당치 않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사람뿐만 아니라 창조세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대한 일원론적 신학체계를 갖는다는 의미다. 이것은 우리가 우주적 그리스도인, 세계적 그리스도인, 지구촌 그리스도인들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개혁주의 신학은 선한 창조의 ‘타락’(Fall)을 말한다.

첫 인류와 그의 후손은 창조주께 도전함으로써 죽음의 길을 자초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를 오염시켰다. 다시 말해 개혁주의 신학은 죄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는 말이다.

첫 인류는 그들의 자발적 죄로 인하여 샬롬(shalom)의 파괴범이 되었다.

그 후로 죄가 있는 곳마다 창조세계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샬롬은 파괴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샬롬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세상의 온갖 종류의 죄들에 대해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히 12:4).

교회는 겸허한 심정으로 개인적 죄들, 공동체의 죄들, 구조적 죄들, 제도적 죄들, 사회와 국가의 죄들에 대해 예언자적 경고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깊은 성찰과 함께 소위 종교적 죄들을 넘어서서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 성차별주의와 같은 반(反)-창조신학적 죄들을 배척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독선과 자기의(自己義)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가 죄로 인해 오염되고 부패되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며 지금도 그러하신다. 부패하고 오염된 인간이 깨어진 샬롬을 회복할 수는 없다.

샬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만이 다시금 깨어진 샬롬을 회복하실 수 있다. 어떻게 회복하셨단 말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저지른 죄의 값인 죽음을 또 다른 죽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대신 갚으신 것이다.

구속(救贖)이란 본디 ‘값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창조세계)이라. 이전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들이 되었다”(고후 5:17)는 바울 사도의 말의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 예수 그리스도가 세우신 하나님의 나라, 죄를 미워하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려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위에 하나님의 통치 방식인 “공법(公法)이 강물과 같이, 정의(正義)가 시냇물 같이 흐르도록"(암 5:24) 정의와 공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로, 개혁주의 신학은 ‘구원의 완성’을 믿는다.

우리는 역사가 돌발적인 사건들이나 우연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역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경영(經綸, oikosnomos)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하신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은 하나님의 피조물 전체에 해당하다.

구원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 구원을 완성시키시는 분도 동일한 하나님이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모순과 부정, 어두움의 그림자와 악의 세력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승리를 확신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반드시 모든 것을 극복할 것이며, 하나님의 정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영광스럽게 도래할 것을 앙망(仰望)하고 소망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정의와 공의로 다스려지는 사회, 고아의 눈에서 눈물이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과부의 울부짖음이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희망과 용기, 영감과 감동을 우리가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불어넣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특별히 창조 교리 가운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라는 성경 가르침은 현대적 적실성이 강하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니라.” (창 1:26-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내용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대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26절) 서로 사랑하는 교제 속에 살라는 명령을 행할 때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칼빈이 그의『기독교 강요』서두에서 말하는 대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게 될수록 자신에 대하여 더 알게 되며, 그들 자신에 대하여 더 알게 될수록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했다는 가르침은 낙태, 성, 결혼, 학대, 사형, 전쟁, 인종, 그리고 불구자 등을 포함하여 교회가 취하는 윤리적 입장 모두에 깊은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형상에 의한 인류의 창조 교리보다 교회의 윤리적 진술에 깊은 관련성을 가진 성경 교리는 별로 없다. 우리는 “신묘막측하게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시 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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