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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스크 컨퍼런스 토론토(2006.7.4)

나이스크운동의 5대 특징과 교회사적 의의

허호익 목사(대전신대 교수, www.theologia.pe.kr)



1. 나이스크운동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공동체 회복 운동이다.


미국 교회의 경우 매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은 전체 등록교인의 20% 정도라고 한다. 한국의 교회는 미국교회 보다는 수치가 높지만 그래도 30-40%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기독교의 위기를 주장하고 교회의 개혁을 외치면 많은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교인이 늘어나는 것이 기독교의 모든 위기의 근원인 것이다.


그나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예배하거나 특별히 절기나 자신의 편의에 따라 예배하는 교회에서는 실제적으로 신앙이 생기고 신앙이 자라 뿌리 내리고 신앙의 삶을 살게 하는 일이 쉽지 않다.


새 신자 전도도 중요하지만 등록교인의 예배 참석률을 높이는 것이 보다 시급한 과제인 것이다. 지금 등록된 교인 100% 전원이 예배에 참석만 하여도 교회의 영적 영향력은 3-5배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기존 교인들을 철저한 예배자로 진정한 예배자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신자들이 들어 와도 기존의 형식적인 기독교인을 모방하는 습관적인 교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앙이 살고 교회가 살고 교회의 영적 영향력을 강화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교인들이 철저한 예배자로 거듭나야하고 교회가 진정한 예배 공동체를 회복하여야 한다. 신령과 진정으로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예배의 회복이야 말로 기독교 신앙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운동인 것이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2. 나이스크운동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 회복운동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 하지만 실제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사랑을 찾기가 쉽지 않다. 교인들간의 갈등과 반목도 심하며, 목회자와 교인 사이에도 사랑은 고사하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며 대립 속에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이민 교회의 경우 교회 안에서의 이러한 분란으로 인해 교인과 목회자들이 모두 상처를 입고 마침내 교인들이 이합집산하고 교회가 분열되고 일이 허다하다.


세상 욕심을 다 버리고 교회성장이라는 새로운 욕심에 가득 차 있거나 이기적인 동기로 교회를 섬기고 교인을 도구로 삼는 목회자와 교회를 사랑하지도 않고 목회자를 사랑하지도 않고 교인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출석하고 교회를 비방하고 목회자나 교인을 욕하는 교인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교회가 교회답기를 바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사랑 없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없고 사랑의 띠로 하나 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가 본을 보여주신 진실한 사랑을 회복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먼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거짓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실제적이고 진실한 사랑의 본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 사랑의 본을 통해 교인들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명실상부한 형제 자매의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여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아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3. 나이스크운동은 청소년들을 훈련하여 교회의 차세대를 준비하는 운동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어서 교회도 고령화되고 있다. 교인 중에서 노인의 비중이 점차 높아 갈수록 교회는 침체할 수 밖에 없고 교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이 시대의 모든 교회가 겪는 심각한 위기이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인적 물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젊은 세대들에게 신앙을 전승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나마 부모들의 강권에 못 이겨 겨우 나오는 소수의 젊은이들이지만 이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영적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이들을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을 양육하여 그들이 진정한 예배자로서 교회를 계승하고 교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확보하여야 한다.


우선적으로 젊은이들을 모아 3박4일의 집중적인 공동체 훈련을 통해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주일성수, 새벽기도, 성경일기, 개인전도, 십일조 생활을 일평생 한결같이 실천하도록 지역교회가 연합하여 반복훈련 하고 이들을 개교회에 파송하여 진정한 예배자로서 개교회의 예배 회복의 부싯돌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




4. 나이스크 운동은 교회가 생명력 있게 성장하도록 교회를 살리는 운동이다.



기독교의 성장 둔화와 침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세계사의 유래 없이 급성장한 한국교회도 최근 침체의 늪에서 해어나지 못하고 있는 구체적 통계가 우리를 경악케 한다.


그동안의 교회성장론은 나름대로 공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교회의 외적 물량적 성장에 치중하여 교회성장의 내적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성장 잠재력을 잠식하여 성장의 거품이 꺼져가는 추세인 것으로 여겨진다.


많은 교회가 이러한 성장 모델을 추종하다가 그나마 성장 잠재력만 고갈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는 적지 않은 교회가 성장보다도 교회의 생존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돌입하였다.


내적 생명력을 상실한 껍데기뿐인 쭉정이는 땅에 떨어져 썩어도 자라지 못한다. 내적 생명력이 있는 알곡만이 땅에 떨어져 자라고 열매 맺는 것이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에 휩쓸려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가지만 생명이 있는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생명력 있는 교회만이 이 위기의 시대에 거슬러 가면 성장을 일구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장은 멈추었거나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교회가 새로운 생존과 성장의 동력과 잠재력과 인프라를 공동으로 구축하고 확보하여 교회의 진정한 생명력을 되살려서 모든 교회가 더불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교회 살리기 운동을 함께 전개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행 9:31)








5. 나이스크운동은 모든 교회가 함께 나아가는 교회의 연대와 일치 운동이다.




교회는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로 출발하였다. 온 땅에 흩어져 있는 사도적 전승을 물려받은 모든 보편 교회가 하나의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세의 카톨릭교회가 이 전통을 무시하고 교권적 제도하에 획일적인 교회체제를 확립하여 개인의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영적 역동성을 가로 막았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일어나 개교인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목회적 역량을 극대화 하고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장점으로 인해 개신교회가 크게 성장하였으나 종교개혁 50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개혁교회의 장점인 자율성과 독자성이 오히려 약점으로 드러나 개교회주의와 교파주의라는 교회이기주의의 폐단이 극심하여 새로운 개혁이 요청되고 있다.


물론 WCC나 ICCC 같은 교회연합운동이 있지만 이는 주류교회의 지도자들의 선교 정책수립과 협력을 위한 연대이며 지역 뿔뿌리 교회의 연대와 일치를 일구어 내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면 개인의 목회 역량이 특출한 목회자들에 의해 대형교회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이들의 물량공세와 공세적인 선교전략으로 인해 주변 군소교회들의 교인들을 흡수 이동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점차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시대의 목회와 교회성장전략이 제로섬 게임의 경쟁체제로 돌입한 것은 교회사의 비극인 사태에 대한 개신교의 대안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 땅의 모든 교회가 하나의 거룩한 교회임을 자각하고 교파와 지역을 초월하여 함께 협력하여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모색하고 선교를 위하 연대하는 새로운 교회운동이 절실하며 나이스크운동는 이러한 교회사적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풀뿌리 교회들의 연대와 일치를 구축하는 교회 운동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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