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환목사(새벽집회 운영전략)

특별새벽집회를 피하지 말라!


사람이 살아가면서 잘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고 피할 수 없는 일들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라는 것이 어렵지만 참으로 좋은 것이라는 것을 목회자가 먼저 이해를 하고 교인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실 새벽기도를 해보면 어려운 것은 확실한데 그 안에 진주와 보화가 감추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이 새벽기도를 잘 이끌어 가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여러분과 함께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군대에 다녀오신 분은 아시겠지만, 군대에 가면 서로 순번을 정해 밤새 2시간 동안 보초를 섭니다. 보통 군인들의 취침시간이 10시에서 6시 사이인데, 이 8시간 동안 자신이 보초를 서야할 2시간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간 선택이 관건입니다. 고참들이 우선권을 갖는데, 그들이 선택하는 시간대가 딱 두 개입니다. 하나는 밤 10시부터 12시까지, 다른 하나는 새벽 4시부터 6시까지입니다. 군대에서는 이 시간대를 ‘골든타임’이라 부릅니다. 왜 골든타임 인고 하니, 보초를 서고 잠을 몰아서 한꺼번에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중간에 깨지 않고 6시간 동안 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나머지 시간들을 후임병들이 나누어 보초를 섭니다. 밤 12시부터 2시까지 서고, 2시부터 4시까지 서고, 4시부터 보초서는 사람도 4시에 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옷 입는 준비 시간이 걸리니 3시 반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듯 조금 잤다 싶으면 보초를 서야하는 시간이 되니 잠을 충분히 못 자고 계속 일어났다 깨어났다 반복합니다. 그래서 결국 수면시간은 양쪽이 반 토막이 나서 매우 피곤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고참은 특별 혜택을 누리는 시간인 4-6시를 선택합니다. 군인들이 어쩌다 누리게 되는 특별한 혜택인 골든타임 4시~6시는 바로 우리 성도들, 영적 군사들의 골든타임입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골든타임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골든타임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회를 포기해야 하겠습니까?

목회자가 새벽기도를 두려워하며 피하면 안 됩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교인들에게 쉽게 이해시킵니다. 그래서 처음에 새벽기도는 내일은 나오지 말고, 오늘만 나오라고 접근합니다. 사실 내일 일은 자고 일어나봐야 아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만 나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즐겁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간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 새벽기도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인상 쓰고 나오고 세수도 안하고 나오고 이러면 안 됩니다. 새벽기도 나올 때 화장도 제일 잘 하고, 머리도 잘 빗고 단정하게 다듬고 나와야 합니다. 억지로 나온 듯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로 안 됩니다.


다함께 참여하는 새벽기도를 만들어라


우리 교회 새벽집회에는 여성 성도들이나 특별한 직분을 맡고 있는 분들뿐 아니라 직장인이나 남성 성도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벽기도에 혼자 사는 분이 나와서 자꾸 울고 또 은사 받은 분들만 그 시간을 장악하게 되면 보통 성도들은 새벽집회에 참석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젊은 사람이 피하고 지성인들이 피하고 학생들이 피하고 남자 성도들이 피하기 때문에 새벽기도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은 아예 목회자가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 할머니나 혼자 사는 분, 은사 받은 분들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야 새벽기도가 살지, 그렇지 않으면 몇 사람만 하지 다른 사람이 참여를 안 하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전체를 살리려면 이렇게 그 주변에 있는 어떤 장애 요소를 하나하나 찾아내어서 제거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대로 돌들을 하나하나 뽑아내면서 나아갈 때 좋은 옥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벽집회를 통해 교회성장의 균형을 이루라


우리교회의 경우 80년에 25명으로 새벽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참석인원이 늘면서 81년 9월에는 50명, 즉 배로 증가하고 또 그 다음에 배로 증가하다가 개척 9년 만에 참석 인원이 상당히 증가한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벽집회에 얼마나 참석하는지 숫자에 초점을 맞춰 복음 이외의 것에 너무 집중하면 좋지 않으니까 몇 년 동안 적당하게 했습니다. 한 5~6년은 20,000명 넘게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1997년에 참석인원이 20,000명 도달했는데, 거기에 와서 수용인원이 또 안 되고, 새벽이고 해서 자꾸 늘어날 수도 없고 해서 머물러 있다가 요 근래에는 5만 명 이상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힘을 주어서 양적인 면에도 균형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새벽집회 출석이 늘어나면서 교회 출석, 교회 안전, 교회 영적 성장이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집회가 프로그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지역이든지 접근을 하면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특별새벽집회에 참여해서 은혜를 받은 필리핀의 부츠콘테(Butch L. Conde) 목사님은 마닐라에 있는 생명의 떡(Bread of Life) 교회를 1만 명이 넘게 모이는 교회로 부흥시키기도 했습니다. 명일동에서 울렸던 작은 종소리가 계속 울려 퍼져서 한국교회를 깨우고 나아가 세계 교회를 깨우는 축복의 집회가 된 것입니다.


교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간층을 공략하라


제가 처음 새벽집회를 시작했던 1980년에는 특별한 새벽집회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재적 교인들의 10%만 참석하도록 새벽집회 운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다르게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이 더욱 많이 참여를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한 것입니다. 헌금이나 봉사 같은 경우도 예배를 참석하는 교우들에게 율법적인 면으로 자꾸 강요하고 얽어매는 것보다는 신약의 교회같이 참 자유와 기쁨으로 참여하게 유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런 일에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벽집회를 할 때 교인들을 참여시키기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굉장한 은사집회라고 하면 사실 얼마 안 모입니다. 유명한 강사를 초빙해도 생각만큼 많이 오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특별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으면 성도들이 남의 이야기라 생각해 몇 명 안 모이는데 평범한 성경공부식으로 순리적으로 이끌어 가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다 같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새벽기도가 생동감이 없거나 은사집회화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모든 일은 다이아몬드와 같이 위도 적고, 아래로 적고, 폭넓고 두터운 중간층에 맞춰서 운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너무 뜨겁기만 한 은사도 너무 냉랭하기만 한 이성도 지양해야 합니다. 한 나라가 잘 살기위해서는 중산층이 두터워야 합니다. 중산층을 얼마나 많이 양산해내느냐 하는 것이 선진국 진입의 관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메시지도 중간층, 운영도 중간층을 타겟으로 설정합니다. 새벽예배 역시 중간층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설교를 하고 운영 계획을 맞추어 나가고 있습니다.

새벽집회 설교도 교재를 만들어 새벽예배에 소외되기 쉬운 청년층이나 남성층을 공략합니다. 새벽집회를 처음 접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메시지 내용이나 기도 내용을 잘 믿는 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에 맞추어서 운영을 하는 것입니다. 새벽집회 교재를 제가 준비하는데 보통은 한 달 전부터 책을 보며 준비합니다. 교재 하루 분을 만들 때에도 5~7시간을 들여가며 하나 만드는데 온 정성을 다 쏟습니다. 이것도 진행하다보면, 하나의 논문과 같아서 작품을 끝까지 균형을 잡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벌써 23년을 하다 보니 주제 선택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준비하면서 책을 많이 보니까 저 스스로 발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소에 책을 많이 보기 쉽지 않으니 이렇게 하나의 계기가 주어졌을 때에 피할 수 없는 해산의 수고를 스스로 감내함으로써 거두는 열매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새벽기도의 찬송도 ‘내 기도하는 한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와 같이 즐겁고 힘이 되고 기쁜 것을 선택해야지 ‘내 주를 가까이’나 ‘울어도 못 하네’를 부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은 아주 즐거운 시간이요, 희망찬 시간으로 찬송부터 본문까지 모든 선택을 낮 예배보다 더 밝은 주제로 이끌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새벽 시간을 극복하라


그리고 새벽기도를 마치고 다시 집에 들어가 잠들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새벽기도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새벽기도가 날 정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다시 자지 마십시오. 잠들지 말고 뛰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말할 수 없는 건강이 주어지게 됩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그럽니다. “얘야, 편히 잠들지어다. 새벽기도 나왔으니까 얼마나 피곤하냐.”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5시간만 자도 몸에 아무 무리가 없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평소에 조금 일찍 자야 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려고 마음먹으신 분은 일찍 자는 습관이 몸에 배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기독교 문화는 저녁에 일찍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속문화가 발달할수록 밤에는 안자고 다른 일에 몰두하고 한창 일해야 할 낮에 잡니다. 우리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처음으로 새벽기도를 1, 2, 3, 4부로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5부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출석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예배 횟수를 늘리자 다른 교회도 이것을 참고하여 많이 따라오게 되었고 더불어 한국교회의 새벽기도 전체 인원이 몇 배로 늘어났습니다. 지금까지 새벽기도가 단순하게 Q.T식으로 진행하거나 혹은 잠깐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으로 끝났다면 우리교회는 성가대의 참여와 평신도들의 참여, 성경공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인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새벽집회의 시간도 시골이든 도시든 너무 한 타임에 모으지 말고 4시, 5시, 6시, 7시처럼 다양하게 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4시에 나오기 힘드니까 학교에 가기 전에 잠깐 들려서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정 참석하기 어려우면 화면으로 다시 방영을 해서 어느 상황에서나 가능하도록 합니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맞게, 환경에 맞게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개발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했을 때 새벽기도가 안 되는 지역이 있다는 얘기를 저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디서든 새벽기도는 가능합니다. 우리가 새벽으로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새벽집회를 개발해 그 열매를 거두라


새벽기도에 참석한 성도들은 은혜를 받아 마음이 부드러워 집니다. 설교를 해보면 조금만 우스운 이야기를 해도 마구 웃는데 새벽에 은혜를 안 받는 성도는 목사가 웃어도 교인이 안 웃어요. 웃기려고 발버둥을 쳐도 안 웃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은혜를 받으면 그 마음이 어린 아이와 같이 부드러워집니다. 교회도 부드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과 같이 옥토 같은 교회를 만드는 길은 역시 새벽기도이지 않느냐 라고 생각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새벽기도에 주어지는 은혜의 효과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위해서, 또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여러분들이 새벽기도를 피하지 말고, 아예 정면 도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곽선희 목사님은 “새벽기도 40년을 한 번도 결석을 안했다.” 그런 말씀을 자신 있게 합니다. 방지일 목사님은 따님이 돌아가셔도 새벽기도는 했다고 하십니다. 새벽기도를 양보할 수 없고 물러설 수도 없고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길이라 생각하시고, 잘 개발하시고 개척하셔서 그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위 내용들은 김삼환 목사의 새벽기도 컨퍼런스 강의 및 각종 외부강의 내용들을 취합해서 정리한 것이다. -편집부



Key Point

1. 새벽집회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인식해라.

2. 장애요소를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제거하라.

3. 새벽집회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여 전 성도들의 참여를 유도하라.

4. 설교 교재를 성심성의껏 준비해 심도 있는 성경공부를 통한 교인 양육의 기회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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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