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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의 관계(상호연관성)

1. 구약과 신약의 관계(상호연관성)

-현대 신학자 하르낙, 트뢸취, 볼트만 등은 구약과 신약사이에 아무런 연속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은 구약과 신약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칼빈은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이 그림자와 실상의 간계를 지니며 율법은 복음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롭고 진실한 하나님의 언약의 질서”로 이해한다.

바울이 로마서 10장 4절에서 “그리스도가 율법의 종말이요 완성” 이라고 하면서 신약과 구약은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연속성의 핵심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향하여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행위이다. 즉 구속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 이 양 세계에서 각기 모습을 다르게 나타낸 것 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세계를 창조하시고 신약에서는 세계를 새롭게 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약의 그리스도는 신의 최종의 말씀이므로 구약은 신약에 동등히 계열되지 않고 종속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그의 그림자만이 발견되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그리스도 자신이 아니라 그의 그림자만이 발견된다. 즉 양 언약서의 상응관계에서 본질적인 것은 종교적인 개념적인 것에 있지 않고 구속사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구약과 신약은 동등시나 동일시 되거나 연속성이 지나쳐 신약이 단지 구약의 반복이 되는 것처럼 이해되어서는 안되고, 구약을 넘어서 구약의 약속의 실상인 그리스도 사건을 증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한다. 왜냐하면 구약의 메시야 예언은 그리스도 사건을 통해서 전적으로 지양되었고, 구약에서 단지 음영과 선형상으로만 예언되었던 메시야는 실상인 그리스도의 사건에 의해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2.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

구약은 신의 율법과 계명, 그리고 그 율법과 계명을 지키거나 또는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고, 신약은 복음과 신의 약속, 그리고 복음과 약속을 믿거나 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과 명령이고, 인간이 율법을 이행하기 위해서 어디에서 힘을 얻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복음서이다.

복음은 은총에 관해 가르쳐줌으로써 육신을 지배할 율법과 계명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율법 가운데에서도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이 율법 아래서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키게 하는 약속과 은총들이 있다.

복음에서 가장 특별하고 중요한 가르침이 죄의 용서를 통한 그리스도로부터의 은총과 평화의 선포이듯이 죄를 보면 선을 촉진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할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자신을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으로 흠이 없는자가 죄인중의 괴수가 된다는 이야기 이지요. 그 말은 그리스도의 "의"는 율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율법을 순종하고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와는 다르다는 의미가 될 수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계명은 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죄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모든 율법은 도저히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을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자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곧 율법이라는 것은 이제 구원의 대상과 길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것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수 없으며 율법이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믿음이 온후로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가 율법아래에서 나시고 이땅위에 오셨다가 율법의 저주로 돌아가심으로 그리스도가 곧 율법이 되셨으며 율법을 완전케 하신것이지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자마다 저주아래에 있는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처음부터 율법은 구원을 목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율법은 구원을 목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죄를 깨닫게 할 목적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는 것의 의미는 곧 율법이 구원에 완전치 못함을 의미합니다. 완전치 못하였기 때문에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하신것이었지요. 그렇다고 폐하러 오신것도 아닙니다. 이제 예수님이 곧 율법인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21을 올려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외에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니라"


"율법"은 바로 모세오경을 말하는 것이며 "선지자"는 선지서를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선지서는 모두 준비적이고 예언적인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것을 성취시키려 오신 분이며 완성케 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사랑"입니다.

기존의 율법을 과감히 재해석하여 그 내면적인 중요한 점은 "사랑"임을 강조하심으로써 전혀 다른 율법관을 말씀하시고 계시며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율법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율법이란 구원을 받기위한 형식도 아니요, 순종시키기 위한 남용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핑계를 위한 변명도 아니요.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 될 수도 없으며 율법이란 자발적인 믿음에서 출발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이라는 것이지요.

율법의 외적인 명령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그 내용이 갖는 깊은 의도에 따라 형식에 만족치 않고 그 내면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삶의 모든 태도와 관념속에서 행하여지는 삶의 전반적인 자세를 가르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복의 개념에서도 보여준것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며 자신을 부셔버리는 마음자세를 역설하시며 율법 또한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지킴과 순종이 아닌 내면적이고 자발적인 사랑의 내용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ㅇ로마서 3:20-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ㅇ로마서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ㅇ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ㅇ로마서 10:5-13

ㅇ갈라디아서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3. 성령

1. 창조사역......

태초에 하나님은 수면에 운행한 (본래의 의미는 새가 알을 품은 것 같이 물을 품었다는 뜻) 그의 영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생명력의 수여자이었으며 계속적인 창조자였습니다(시104;30 특별히 사람에게 생기를 주는 자이었습니다 (창6;3 욥27;3 33;4) 하나님의 말씀(성자)과 더불어 하늘을 창조했지요(시33;6)

2. 봉사를 위하여 개인에게 능력을 부여함.........

이 구약의 성령은 특별한 봉사나 직분을 위해 다양하게 개인을 격려하고 무장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성령은 성막의 제조를 위하여 브살렐과 같은 기능공에게 능력을 부여한 적이 있습니다. (출31;3 35;31) 여호수아에게 지혜라는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삼손에게는 육체적인 능력을 부여했지요. 여러 왕들에게도 능력을 주었습니다.

여러 선지자에게도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그들을 성령으로 감동시켰습니다. 이 영은 모세와 장로에게도 임했으며(민11;17.25-26) 요셉에게도 임하여 꿈의 해몽을 도왔습니다.

마리아에게도 임하여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구약의 성령임함은 하나님의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어진 경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어떤 능력을 부여해주시는 것이지요.

신약, 특히 예수님 십자가이후의 성령은 개인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없이 몸안에 임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라고 언급을 한 것이지요.

3. 창조의 회복사역............

이것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며 심판과 회복에 대한 약속이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에 의해 정결케 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사4;4)

백성들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준다는 (겔11;19 18;31)장래의 예언등이 이에 포함되지요. 이 말씀들은 예수님의 다른 보혜사를 예언하고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보혜사가 바로 성령과 같은 본질임을 의미합니다.

4. 메시야에 대한 사역.

이 영은 메시야에게 기름을 부어주고 그위에 머물러 있기도 하며 자신의 권능으로 메시야를 충만케도 하지요.

결국 이 사역은 곧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영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 자신의 존재이며 자신의 권능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성령은 하나님의 능력을 위한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 신약의 성령은 주님의 은혜속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능력이었지요.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었지요. 그 댓가가 바로 예수님 자신의 피였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태초부터 성령이 존재하심과 성부와 성자도 구원의 사역을 하신다 했습니다.

그 획기적인 변화시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골고다 십자가와 오순절의 마가의 다락방이었던 것입니다.


ㅇ요한복음 14:16,2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ㅇ로마서 8:11

(예수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ㅇ고전 12:3-11



5. 구속사의 개념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상실하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 얽매어 있는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하나님 스스로 인간구속의 중보자가 되셨다. 인간은 자체가 죄악이기 때문에 죄없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셔서 인간의 구속을 성취해야만했다. 즉 이러한 구속사건은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으로 하나님의 구속섭리가 예수의 구체적인 사건으로 표면된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구속사는 계시하는 하나님의 현실과 만남의 역사이고, 이러한 구속사의 계기들 속에서 인간의 역사속에서 구원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비밀의 동력이 중시된다.

구속사는 창조-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건-종말론적 완성이라는 세가지 단계의 전진적 과정을 가진다. 이 구속사의 시작은 중심인 그리스도 사건을 향해 수렴하며, 이 중심으로부터 새창조라는 최후의 목적을 향해 확산한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에서나 기독교인 개인에 있어 그리스도 예수는 중심이 되는 것이다.


-구속사와 세속사의 관계

구속사의 개념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신의 선택이다. 이 선택은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이성적 근거를 지니지 않는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총의 선택인 것이다. 이선택이라는 것은 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신의 계획’으로 소급된다. 그러나 구속사는 세속사의 틀속에서 세속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구속사의 전체흐름은 죄를 떠나서는 이해가 불가능하나, 목적은 만인의 구원이고, 죄는 계속적으로 구속사에 저항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불신앙 가운데서 소수를 선택하시므로써 구원의 계획을 수행하고, 역사속에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목적을 실현시키는 두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즉 “전 일류가 그 목표이며, 소수의 선택은 이 목표의 수단” 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속사적 관점

구속사의 중심점은 “단 한 번의” 유일회적 성격을 지닌 그리스도 사건이다. 구속사의 전과정은 중심점인 그리스도와 관계하면서 과거,미래,현재라는 시간적 단계를 가진다. 과거적 단계는 “그리스도 사건을 위한 시간속에서의 준비” 과정이라면 미래적 단계는 “이미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 사건이 종말론적 미래에서 완성되는 종말의 시기”로서 이해된다.

즉 구약은 과거적 단계로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준비 과정이고, 종말론적 미래는 이미 획득한 구속을 성취하는 완성의 시기이고, 교회의 시기는 현재의 단계로서 과거와 미래를 중심점인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서 연결하는 긴장구조를 가진다.

즉 이 “구속사적 관점”에서 구약의 계시증언과 신약의 계시증언 사이에 있는 구조적인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고, 신약의 증언은 ‘때의 충족’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계시사건은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종교의 완성이요,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종교의 심판이요, 지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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