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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세속화(secularization)의 현상

무너져 버린 유럽교회를 중심으로



Introduction

1.유럽은 Non Christian들의 무대이다

2.초자연적인 역사를 상실한 유럽교회

3.복음이 지나간 유럽대륙

4.종교적 형식화된 유럽교회

5.세속화된 유럽교회

6.사랑이 식어버린 유럽교회

7.체험이 없는 유럽 교회

8.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유럽교회

9.교회건물만 있고 교인이 없는 유럽교회

10.유럽 교회의 쇠퇴

11.주5일근무제와 교회쇠퇴

Conclusion




서론

교회가 세속화되어가는 원인을 말하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모스서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첫째는 교회가 복음의 핵심인 예배가 상실하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지 않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선포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과 공동체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교회는 이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선포한 예수만을 선포했다.

즉 예수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르침, 선포 그리고 치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셨지만 교회와 신학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그것을 가리키는 그의 손가락만 바라보았다.


교회의 세속화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방해하고 위협하는 인간적 영웅주의(또는 자기 의) 그리고 종교적 이기주의(또는 맘몬주의(Mommom))가 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하나님의 적대자들이다. 그 원인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애용하고 하나님의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을 교회의 겉치장과 물신 숭배로 채우며 마침내 자기 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적대자들이 된다.

우리는 교회 성장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패배주의이다.

교회가 제도와 조직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예언자의 소리(이사야 1;10-17, 아모스 6:21-24, 미가서 6:6-8)를 들어야 한다


교회는 결코 진리의 소유자도 영원한 존재도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소멸될 존재이다.

하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경외하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는데 전파하는데 아주 중요한 영적인 기관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의 정체성은 '광야 교회' 또는 언제나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천막 교회'라야 한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복음 6:33).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이지 마지막 과제이다


1.유럽은 Non Christian들의 무대이다

유럽교회의 무너짐은 어느 날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서히 그리고 조금 조금 천천히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작되었는데 불과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그루터기가 남았을까 하는 정도로 무너져버렸다

“나는 결혼할 때 교회를 찾을 것이며 죽어 장례가 치루어질 때 교회에 오게 되겠죠 이유는 나는 Christian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나 자신을 위하여 한 가지 종교를 가져야 할 것인데 조상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기독교를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죠”라고 Newsweek와의 영국의 한 젊은 여성과의 인터뷰내용이다


유럽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길게 늘어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신자가 아니라 바로 관광객이거나 홈레스들이 밥 한 끼를 얻고자 하는 구제의 줄서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도 떠나고 신자도 떠나는 유럽은 Non Christian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영국인 7% 독일인 6%만이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특히 젊은 층서 신앙에 무관심이 계속되고 있으며 교회에 어린아이와 청년들이가 사라진게 너무나 오래 되었다고 말한다


교회는 단지 결혼식과 장례식을 위한 식장으로 남아 있거나 골동품과 같은 시대적 박물관을 연상케 할 뿐 더 이상의 하나님의 기적이나 말씀의 권위나 성도들의 기도의 모습이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은 사람이 없으며 성수 주일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앞에 Complete Offering을 드린다는 것은 시대적 착오요 교회를 살찌우는 자본주의적 발상이요 세금이라고 몰아세우면서 그러나 사회적 구제차원에서의 Donation은 계속되고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숫자는 불과 한 자리수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2006년에 들어와 영국에서는 노방전도를 한다든지 특정 종교를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벌금을 내도록 법을 만들어 시행 중에 있다


유럽의 복음부흥시대에 신축한 교회와 그 장엄하고 거룩한 예배는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는 과거의 추억으로만 간직할 정도로 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이 존속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동물인 양과 개를 복제하고 이제 사람의 장기를 줄기세포로 만들겠다고 장담하며 사람도 복제의 기술이 열렸다고 말하는 과학과 인터넷의 웹사이트에 무한한 가상공간을 건설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한 세계에서 유럽교회가 얼마나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되고 있다


2.초자연적인 역사를 상실한 유럽교회

그러나 무엇보다 더 미국이나 유럽이나 이미 복음이 들어갔던 유럽교회들 뿐 아니라 세계교회들에게 나타나는 세속화의 현상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상실한데 기인한다

기독교적 신앙의 토대와 힘은 초자연적 원천에 의존해야 하며 현실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초자연적 세상에 확고하게 토대를 두고 있는 신앙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적 힘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직 이 초자연적 세계만이 자연적 세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현대 철학과 자연과학의 영향으로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 나라의 초월성을 상실했으며, 이러한 초자연적 요소의 상실은 교회의 세속화를 촉진시켰다. 물론 합리주의(rationalism)에 기초한 자연 과학의 발달은 인간에게 새로운 문명의 혜택은 주었지만 인간 이성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미신으로 제거하려는 과학적 맹신주의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사물에 대한 초자연적인 숙고와 의미를 추구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상과의 화해를 통해서 변질되었고, 기독교는 역사주의와 종교적 상대주의에 빠졌으며, 신학은 세상적 문화의 척도를 기독교의 진리를 해석하는 척도로 받아 들였다.


성경의 초자연적 진리는 주로 자연과학적 세계관의 영향 아래서 숙고되었다. "옛 의미의 초자연적인 것이 폐지되었다. 하나님의 섭리를 세상의 자연적 질서로 인식하고 그것에 제한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적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의심을 가지고 관찰되어지는 낯선 것이 되었다

종교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종교적 발전이 하나님의 창조적 섭리를 대신하고, 종교적 천재성이 예언자들이 말한 성령을 대신하고, 자연법칙이 기적을 대신한다." 특히 실존주의적(existentialism) 성경 해석은 성경 안에 있는 모든 기적을 제거해 버렸고, 현대 유럽 신학은 기적의 신학적 의미만을 추구했다.

성경의 초자연적 요소는 그들에게 "성인이 된 시대"의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화적 또는 종교적 세계관의 산물일 뿐이다. 또한 현대 신학은 세속화된 문화의 척도들로 기독교적 신앙과 삶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해석하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척도에 상응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설명되었다. 따라서 신적 동인은 인간적인 것을 위하여, 절대적인 것의 동인은 상대적인 것을 위하여, 초자연적인 것의 동인은 단순히 자연적인 것을 위하여 제거되었다." 라가츠에 의하면 이러한 신학적 작업은 "사상의 타락"과 "현대 문화에 대한 기독교의 항복"이다.

유럽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초자연적 진리의 상실을 통하여 철저히 세속화되었다.

초자연적 요소를 회복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가 진심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유럽의 교회나 미국의 교회가 기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프로이드와 융의 심리학이 신유의 은사를, 경영과 경제의 논리가 성령의 역사를 대신한다. 왜 우리는 성령의 은사 대신에 심리학과 경영학을 더 신뢰하는가?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때문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을 살아 계신 창조주로 고백하는 한 성서에 나타난 초자연적 요소들을 부인할 수 없다.


3.복음이 지나간 유럽대륙

이와 같은 유럽교회와 마찬가지로 이미 복음이 들어갔던 나라들이 점점 복음의 사역인 선교를 감당하고 교회세우는 일에 최전선에 서서 나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북미주도 점점 교회들이 대형화가 되어가는 것과 비례하며 예배가 무너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사건들이 각 교단별로 심각한 상태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유럽교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 유럽의 성직자들이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예배 참석자들의 통계로 판단하건대 유럽은 기독교가 한물 간 대륙이다. 중남미·아프리카·중국과 러시아의 교회들이 신자들로 만원을 이루는데 비해 시골 교회에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건축물에 속하는 유럽 교회들은 관광객이나 끌어들이면 다행이다.

심지어 영국에 조지 캐리 캔터베리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한 세대 후 영국 성공회는 소멸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영국인들에게는 이제 성경의 말씀인 계시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십자가는 나이키社의 로고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다른 상징들보다 매력이 약한 듯하다고 말하면서 기독교는 팝 음악이나 소비문화 우상들의 적수가 못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영국 런던의 시내버스에 부착된 광고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하나님의 손이 등장했는데 그 손에는 맥더랄드 햄버거가 쥐어져 있었다.

한신대 조직신학 류장현 교수는 교회의 세속화라는 논문을 통해서 교회의 부정적인 현상들이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하면서 목사의 권위와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교회는 이미 영적, 정신적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자녀보다 더 세속적인 타락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했다

독일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30세 미만 시민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아보라고 묻자 “성직자”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한 자리 수였다

독일에 한 유명한 성직자는 설교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하나님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선언했다.


4.종교적 형식화된 유럽교회

유럽 기성종교의 쇠퇴는 1세기에 걸쳐 속도를 더해 왔다. 아직도 많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가장 근본적으로 뒤흔든 양대 사건으로 지목하는 1차대전의 엄청난 인명피해와 파시즘의 악몽이 있기 전부터 교회 예배 참석은 여자들과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최근 들어 유럽인들은 종교가 성적인 위선의 도피처이자 아일랜드로부터 발칸에 이르는 종족간 적대행위의 배후세력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신앙을 존중하는 풍토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세속주의가 사실상 절정을 이룬 것은 1980년대였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토리노 소재 신흥종교 연구센터에 의하면 유럽인의 90%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20% 늘어난 것이다. 많은 유럽인들의 일부는 휴가 때 순례여행을 떠나거나 기도원 같은 곳을 찾는다. 그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으나 종교서적은 탐독한다. 프랑스인들은 97년의 베스트셀러인 2권짜리 세계 종교 백과사전을 탐독하고 있으며, 아일랜드와 독일에서는 켈트족의 신앙에 관한 서적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특히 유럽의 청년들은 여러 종교의 다양한 요소를 결합시킨 독특한 신앙을 만들어내고 있고. 스페인의 순례도시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기념품 상점들은 십자가와 더불어 힌두교의 향과 커트 코베인의 티셔츠 등을 함께 판다. 더블린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서적 상점인 베리타스는 ‘영혼의 치킨 수프’(가제·Chicken Soup for the Soul) 같은 자기 계발 안내서의 판매로 가장 많은 이익을 올린다. 영국의 사회학자 그레이스 데이비는 1세기 전까지 기독교권의 중심을 이뤘던 유럽이 현재 “신앙은 있는 것 같으나 소속은 없는 시대를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5.세속화된 유럽교회

어느 세대에나 걸맞은 우상의 신을 갖게 마련이다.

오늘날 유럽의 종교는 사회적·경제적 생활을 반영한다. 개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유럽인들은 교회에 안 나가는 것 말고도 노동조합이나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적어도 종교의 몇 가지 목적을 복지국가가 대신하고 있다. 2차대전 후 수백만 명이 자선혜택을 받고 자신의 정체성 및 공동체 의식을 찾기 위해 교회를 찾았으나 이제는 정부의 관료들이 그것을 충족시킨다. 런던대학의 마틴은 “세속화된 기독교 윤리를 국가에서 찾은 사람들은 교회를 찾아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유럽은 한 가지 더 큰 변화를 겪었다. 회교도 수가 6백만 명에 달하고 상당수가 아시아 종교를 신봉하는 유럽은 더이상 ‘기독교권’이 아니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좌·우익의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기독교가 유럽의 도덕적 근간이라는 생각도 무너졌다. 새로운 정신적 대안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그저 일종의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믿지 않으며 주위에 그런 친구도 없다며 “그러나 너무 안된 일이다. 믿으면 분명히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내 할머니를 보면 안다”고 말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어쩌면 환상지같은 것이다. 스페인·이탈리아·아일랜드에서는 국민 대부분이 세례 교인이고, 유럽에서는 장례식도 95%가 종교의식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그저 해묵은 유산이며 전통일 뿐이다. 더블린市의 백화점 아동용품 코너에 가면 각종 교회 행사 때 입는 옷들로 장식되어 있고 팔려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에베를 위함이 아니라 단지 “부모들의 관심은 어느 집 아이가 제일 멋있게 보이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6.사랑이 식어버린 유럽교회

에베소 교회처럼 "첫 사랑"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형식적 신앙생활과 성장과 성숙이 정지된 화석화된 신앙생활을 한다. 하나님 체험이 없는 목회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성장이나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이 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집회나 책들에 의존하며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하나님 체험이 없는 교회는 성장할 수 없으며 세속화될 수밖에 없다. 참된 교회의 성장과 신앙생활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인도하는데 있다. 하나님 체험을 부정하는 것은 현재 성령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령 망각증"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초자연적 요소를 부인하며 하나님 체험이 없을 때에 교인들의 영적 생활은 황폐해지고,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세속화된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적 재능을 선호하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 나라의 권력을 추구하며 하나님이 아니라 물신을 숭배한다. 그리고 교회는 자신의 이런 추악한 세상적 모습을 감추기 위하여 위선자가 된다.

세속화된 교회는 그 자신이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예언자적 사명을 담당할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와 England, Italy. Germany. France. Switzerland, Sweden. Denmark.처럼 일련의 섹스 스캔들 이후 엄청난 상처를 입었다. 그것은 지금가지 믿고 있었던 성직자들에 관하여 배신감을 느낌으로서 그들의 입술로 선포하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애굽의 왕 바로처럼 가소롭게 여기며 비롱하고 조롱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한편 Catholic priest는 지난 몇 년 동안 발생한 강간사건의 공범으로 드러나 현재 공판 대기 중이고, 또 다른 신부는 자신의 교구에서 아동 성추행 사실이 밝혀지자 자살했다. 아들을 둔 부모의 소망이 그가 성장해 신부가 되는 것이던 시절을 기억할 만큼 이미 나이든 세대는 크나큰 배신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의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며 기적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즉 신앙에는 관심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에는 24:12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And because iniquity shall abound, the love of many shall wax cold.)하셨다


프랑스는 국교가 없다 따라서 교권에 절대반대이며 교회는 경멸의 대상이며 세력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행위를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기도란 혼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1999년 12월 31일 밤으로 예정된 밀레니엄 돔 개장식 때 기도시간은 90초의 기도를 허용하는데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측과 여러 달 동안 옥신각신했다. 사회학자 데이비는 영국인들에게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은 최근의 조사 결과를 지적하면서 응답자 대부분은 믿는다고 대답했지만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좌지우지하는 하나님을 믿느냐’는 다음 질문에는 대부분 ‘아니다. 보통 하나님만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교회에 출석하는 유럽인들마저 종종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닌 문화 때문이다.

나다 다니치(26)의 부모는 옛 유고에서 영국 요크셔로 이민온 뒤 딸에 대해 세르비아 정교 전통을 지키도록 키웠다. 그녀는 아직은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는 편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가족과 전통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니치는 요크셔의 아름다운 들판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자신으로 하여금 교회가 아닌 자연에서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종교는 단순히 헌금을 내거나 특정 지역을 숭배하거나 십자가에 입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영혼에 감동을 주고 자신의 삶을 감싸야 한다”고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했다.


7.체험이 없는 유럽 교회

기독교 신앙은 교리와 신조에 대한 지적인 승인이 아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체험의 종교이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체험에 기초한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오순절 날에 성령 체험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태동되었고, 예수의 제자들은 바로 그 날에 부활하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체험했다(사도행전 2장). 바울의 신학은 그의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체험을 전제하지 않고는 올바로 이해될 수 없다(사도행전 9:1-7).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 속에서 삼중적으로 체험한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다.

구약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체험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라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체험한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증언과 그것을 나를 위한 구원의 사건으로 확증한 성령 체험에 대한 증언이다. 따라서 하나님 체험이 없이는 신앙을 바르게 가져가는데 는 한계가 있다(히브리서 4:12).


하나님 체험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전도와 선교의 열정과 확신이 없는 미지근한 신앙 생활을 하며 결국 교회는 세속화된다.

그래서 교회가 하나님 체험을 무시하거나 잘못된 하나님 체험에 빠져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 곧 성령의 교통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다(출애굽기 3:6, 누가복음 20:37-38). 살아 계신 하나님은 또한 현실적인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무관하신 하나님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고통과 질고를 짊어지신 현실적인 하나님이다(출애굽기 3:7, 이사야 53:4-6).

출애굽기 3장 14절에 의하면 야훼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그것은 독일어로 표현하면 "Ich bin da"이다. 여기서 독일어로 da라는 말은 장소적 의미와 시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Ich bin da는 '나는 그 때, 그 곳에 있다'이며 현실적인 하나님을 의미한다.

고통과 질고를 짊어지고 사는 삶의 자리 또는 우리가 슬플 때,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병들었을 때, 실패했을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현실적인 하나님이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는 이 야훼 하나님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로 해석했다. 현실적인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정의와 구원의 하나님이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열매 맺는 땅 즉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해방의 하나님이며(출애굽기 3:8-9), 또한 슬픔, 절망, 질병,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원의 하나님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는 십계명의 제1계명은 바로 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이다(출애굽기 20:1-6, 비교, 호세아 13:4).

하나님을 삶 속에서 체험해야 한다.


8.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유럽교회

북유럽에서는 교회가 약간은 우체국처럼 변한 듯하다.

정부 기관처럼 필요에 의해 찾기는 하지만 마음이 내켜 찾고 싶지는 않은 곳이란 말이다. 독일은 신·구교도를 가리지 않고 세례 받은 사람으로 교회에 등록이 돼 있으면 소득세액의 9%를 교회세로 내야 한다. 또 학교 교실에는 십자가상이 걸려 있고, 성직자들이 방송심의 위원회에 참가하며 교회가 TV 광고를 할 때는 무료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독일인은 12%에 불과하다.

독일 청년들에게 그들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이 무엇이냐고 묻자 교회는 그린피스·경찰·법원·국제사면위원회에 뒤이어 5위를 차지했다. 루터교회의 국교 지위가 박탈될 예정인 스웨덴에서는 루터교를 믿는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절반에 못미쳤다. 그러나 오랜 습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스웨덴 국민의 85%는 여전히 루터교회 신자로 등록돼 있으며 꼬박꼬박 교회세를 내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 사람들은 예배당을 일상생활의 평화와 재충전을 위한 공간으로 이용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주는 구원이 바로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종전 후 지속돼 온 복지국가 제도가 위협받고 있고, 갈수록 유동성이 증대되는 사회에서 가족과 이웃이라는 해묵은 안전그물마저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줄 사람이 필요해 교회를 찾는 경우가 잦다 유럽 종교의 이 같은 이상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영국의 감리교 대표들은 얼마전 연례 회의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신도로 받아들일지 여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성령 충만이라는 영적인 삶 때문이 아니라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회를 구경만 하는 관광객을 바라보는 목사가 느끼는 모독은 바로 교회와 신앙 간의 균열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이며 성령을 체험하는 장소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이 그저 기분풀이로 잠깐 지나가는 곳이 되었다고 개탄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Nyskc Movement는 너무나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9.교회건물만 있고 교인이 없는 유럽교회

알토나 교회: 주일예배 없음”

1993년 9월 29일. 재적교인이 4천명이었던 독일의 한 교회가 마지막 남은 교인 20명으로 문을 닫았다. 오늘날 유럽에는 천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예배당에 주일예배 참석자가 고작 몇십명 되는 경우가 즐비하다.

“그나마 참석자들이 노인들이어서 유럽의 목사는 장례식 설교에는 세계적인 대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의 통계에 따르면 유럽과 북미 교회에서 1년에 2,765,100명의 예배 출석자들이 크리스천이기를 포기했다. 평균적으로 매일 7,600명의 사람들이, 매주 5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영국에서는 60%의 인구가 영국 국교회에 의해 세례를 받았으나 겨우 6%만이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일 년에 세 차례(부활절, 성탄절, 성례식 주일) 교회에 가는 사람들은 그래도 신앙적 양심이 살아있는 교인으로 분류된다.


교회의 신용도 많이 떨어졌다. 리더스다이제스트·유럽트러스트브랜드가 지난해 18개국 상대로 조사한 결과 유럽인중 5분의 1은 교회를 경멸하며 경찰과 언론을 더 신임하고, 특히 영국·스페인·독일·벨기에·체코공화국에서는 국민의 절반이 “교회가 믿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0년 영국에서 폭행을 당한 성직자는 영국성공회 전체 성직자수의 12%인 약 1,300명이었고, 하루 평균 10곳의 교회당이 공격을 당하거나 파손을 입었다. 교회에서의 결혼이나 세례의식은 많이 줄어들었고 런던의 정통적인 교회들이 술집으로, 슈퍼마켓으로, 또는 누드를 그리는 화실로 팔려가는 경우까지 있다.


과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유럽의 기독교는 이제 어렴풋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교회가 사라지는 대신 도시폭력, 이혼율과 자살율의 급증, 혼전 동거, 시험 결혼, 낙태, 마약, 성 범죄 등 온갖 사회악이 범람하고 있는 유럽에 기독교적 전통은 있으나 성경적 삶은 사라지고 있다.


10.유럽 교회의 쇠퇴

어째서 유럽 교회가 이런 상황에까지 오게 되었는가?

성경권위를 부정하고 과학문명에 의존하면서부터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신학이 죽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진화론, 고등비평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 이성과 첨단 과학문명에 의존하게 되었다. 설교에서는 십자가와 복음이 사라지고 천국과 지옥이 선포되지 않았다.

또한 삶이 편해지는 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랑으로 삼으려 하니 세속이 발달하고 영적인 것에 갈급하니 그 기쁨을 얻기 위하여 세속향락이 만연되면서부터이다


성직자의 영적·도덕적 권위도 무너졌다. 독일 교회 지도자들은 나치집권을 합법화해주고 지지해 준 데 이어 최근 혼전 동거자들의 동거예식을 자연스럽게 거행해주며 동성연애자들까지 교회에서 결혼주례를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신학자 칼 더들리(Karl Dudly)는 “중산층이 되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교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 유럽교회 쇠퇴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너무 살기 좋고 너무 편해지면서 교인들은 점점 세속과 향락에 빠져들었다.


유럽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 국가를 선언했던 스웨덴에서는 오늘날 “성을 자유화하자. 한달에 하루를 ‘성 자유의 날(free sex day)’로 제정 선포하고, 그날만은 남편도 아내도 부부의 규제된 성생활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1)기독교의 국교화도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불교나 유교가 정부 권력의 비호를 받았을 때 도리어 타락하였던 것처럼 유럽에서도 성직자들이 정부와 결탁하여 영적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박해 같은 ‘교회의 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2)종교세도 한 몫을 했다.

소득세의 8~9%에 해당하는 종교세는 탈퇴하는 신자들을 줄이고 비행청소년들의 신앙심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독일의 경우 매년 가톨릭측은 1백만 마르크, 개신교측은 3백만 마르크를 지출하고 있다.

상당한 금액의 종교세는 오히려 교회나 목회자를 현실에 안주하게 하는 동시에 하루 평균 800명가량이나 종교세를 내기 싫어 교회를 떠나는 신자들을 낳고 있다.


영국 CCC 대표 톰 탈벗(Tom Talbert) 간사는 “영국은 개교회 중심이다 보니 전도를 하지 않고 교인들이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교인들의 열정 없는 자세를 지적했다. 또 “독일에서 교회가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독교 국가를 자처하며, 그렇기 때문에 후진국에서 오는 선교사들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신앙의 교만이 상황을 더욱 더 악화시키고 있다



11.주5일근무제와 교회쇠퇴

연중 휴가가 많은 것은 교회의 공동화 현상을 만드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유럽의 교육공무원이나 은행원, 회사원의 경우 금요일 오후부터 쉬므로 주말은 항상 연휴다. 주말휴가와 체육행사 등 많은 유혹거리들이 교인들을 정신없이 불러내고 처음에는 토요일 당일치기로 놀러가던 것이 점점 1박2일로 늘어나면서 주일은 공휴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일 예배를 6월 10일~9월 20일까지 쉽니다. 예배를 드리고 싶은 분은 다음 주소의 교회에서 드리십시오.라는 광고만이 교회 정문에 덩그러니 붙어있는 곳도 많다.


유명한 피서지, 휴양지 근처에 있는 교회의 예배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2부, 3부 예배는 고사하고 주일 오전 10시에 교회 가서 한 시간 이상 예배를 드리는 것이 시간적인 낭비가 되었다.

공휴일이 많아지면서 독일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한 고속도로 교회(Autobahn Kirche)가 생겨났고 첼트 미션(Zelt Mission)을 만들어 목사들이 교인을 따라 교회당을 이동시키기도 했다. 해변가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는 첼트 미션은 당시 기발한 아이디어로 인기를 모았지만 결국 주일예배의 중요성을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호진 목사는 “주5일근무제가 유럽 교회 쇠퇴의 근본적 이유는 아니지만 주5일근무제로 대폭 늘어난 공휴일은 교인들의 주일성수와 유럽교회 존재기반 자체를 흔들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결론

예배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전쟁에서 죽게 되고 이어 다윗이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법궤는 곧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출애굽기 25:22“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법궤 위 속죄소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만나주시며 그곳에서 모든 일을 명하리라 하셨다

법궤는 지성소에 있으며 성막에서 가장 중심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막은 하나님의 집이었고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니 성막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곧 예배였던 것이다

성막(Tabernacle)에 예배가 없다면 하나님이 없는 천막(tent)에 불과 한 것이었으니 성막이라는 천막보다는 법궤 곧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의 말씀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을 말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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