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교육은 실체와 그림자와 같다 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다
교회교육을 생각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생각하는 것이다. '가르치라'는 것은 교회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주님의 명령이다. 선교적 명령을 낳는 일에 비유된다면 양육의 명령은 태어난 생명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기르는 일이다.
이 양육의 명령을 들여다보면 크게 둘로 생각되는데 하나는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지켜줌(observe)'이다. 완전한 양육의 개념으로 주님은 명령하셨고 교회교육의 문제해결의 출발은 '가르침'과 '지켜줌'이 균형을 이루어 나아갈 때 가능하다.
이제껏 '가르침' 위주의 교육이 공교육(Formal Education)이었다.
교회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머리를 향한 교육이었다면 '지켜줌'은 가슴과 손과 발을 향한 교육이다. 주님의 교육철학은 이 둘의 완벽한 조화에 있었다.
교회교육의 창시자는 당연히 하나님이시며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의 철학은 예수님의 세계관이다.
먼저는 교사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근본을 확립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에 관한 예수님의 세계관은 기독교 교육의 목적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숭배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참된 예배자요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다. (요8:31)그 이유는 교회가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비밀을 배워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교육 원리는 "종교 활동 전문가의 양성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보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판단하고 하나님의 방식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의 양육"(F.E.Gabelein, The Pattern of God's Truth) 이다.
예수님은 교육은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행함의 가르침이었다.
예수님은 위대한 교사의 자질을 축적하는데 30년을 보내고 나누고 베푸는데 3년을 더 필요로 하였다. 이것은 교육의 실제화를 위해 교사로서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희생과 투지가 필연적으로 따라야 하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에드윈 리안(Edwin H. Rian)은 이런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 교육이론은 그 가르침이 세계관이자 인생관이지 단순한 교리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점을 자세히 풀어 설명해 주는 노력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기독교는 모든 삶의 영역을 포함한다. 지식의 모든 영역, 삶의 모든 측면과 이 우주의 모든 사실들을 기독교 안에서 그 올바른 위치와 그 올바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세상 전부를 남김없이 포함하는 진리 체계이다.
또한 지켜줌은 간섭을 의미하지 않는다. 말씀이 그의 삶의 고백이 되도록 섬겨주는 일이다. 이 섬김의 근본이 주님께서 보이신 사랑이다. '사랑'을 선행의 하나로 보는 관점들은 많으나 사랑 그 자체를 모든 선행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은 예수의 특이한 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독교를 무수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살아남게 한 힘이었으며 또한 기독교인들이 행하였던 다른 모든 형태의 사랑들에 대한 원동력이었다.
이러한 사랑들은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었으며 예수의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요, 또한 예수에 대한 전인격적인 신뢰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또한 신앙의 차원에 속한 것이기도 하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거듭나도록 노력하였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계명으로써 요구하고 있는데 이때 예수가 요구하는 사랑이란 예수 자신이 제자들에게 베풀어 준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가 자신들에게 '보여준' 사랑을 이번에는 자신들이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그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 주었듯이 소극적으로 어떤 마음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름으로써만 확보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교육에 있어서 '지킴'의 교육이다.
교회교육과 성경교육의 진정한 목적이 "예수꾼"을 길러 내는데 있다면 지금 우리는 그 일을 시작해야 한다.
참된 양육을 위해 주님이 명령하신 '가르침'과 '지킴'을 균형있게 실천하는 것이다.
교회교육연구소가 회복의신학연구학회 안에 세워졌고 이를 총괄하는 Nyskc World Mission이 뒤에 받치고 있다 교회교육에 있어서 지금까지 해 왔던 전례에서 벗어나 진정 교회교육의 몾적은 무엇인가라는 의제에 여러 가지 답을 놓고 접근하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교육연구소의 방향과 목적은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예배자로 세우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배로 헌신된 교사가 있어야 하며 예수님의 교육원리로써 세계관을 가진 교사가 필요하며 생명을 사랑하며 영혼사랑에 열정에 포로된 교회가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서 지도자의 본질을 “그러므로 감독은…가르치기를 잘하며” (딤전 3:2)라고 함으로써 지도자는 교육하는 일이 그의 본질이라 말하였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20)고 말씀하심으로 교회 지도자의 본질로서의 교사교육을 제시하셨다. 곧 교회 교사는 무엇보다도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에 교사에게 주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사명을 가진 교사들로 이루어진 교회학교 안에 주일학교는 소명감으로 불타는 심령을 가진 교사, 성경말씀에 대하여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교사, 아동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교사들을 확보함으로써 내실 있고, 부흥하는 주일학교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하는 교회교육 교사들에게는 인생에서의 큰 보상일 뿐 아니라 그 사역이 주는 놀라운 체험, 그리고 삶들을 사랑함으로써 받게 되는 더 큰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만약 교회가 교육하기를 중단하거나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교회로 존재하기를 그치는 것이다. 교회교육이 지금까지 교회에 미친 영향이 참으로 놀랍고 다양하였고 부흥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교회교육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있었다면 예배에 관한 부분이었다
또래집단으로 분리되고 부모들과 나뉘어서 진행되는 주일예배와 학교가 처음에는 호흥되어 많은 교인들로부터 사랑받았지만 그 후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돌봐줌”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건에 훈련이라든지 혹은 성경공부들이 약화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온전한 사람"이다. 그것은 가르치는 것과 함께 "지켜줌"이 있게 하는 것이다. 지켜줌은 예수님의 교육원리로써의 세계관의 확립을 반드시 전제로 한다. 동시에 우리는 다시 더 멀리 바라보는 교회교육의 일들을 지금 병행해 나가야 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