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skc Family Conf.IN'12 인사말

인 사 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라는 말이 나오면 떠오르는 말씀이 있는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지니라”라는 말씀에 이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성경전체에서 이처럼 예배에 대해서 완전하게 정의를 보여주신 말씀이 없을 만큼 아주 귀한 성경구절이면서 예수님께서 직접말씀해 주신 것이니 이보다 더확실하고 명확한 예배에 대한 정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수가성에 가셨다고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에게 예배에 대한 이와같은 말씀을 하셨더니 그 여인이 이렇게 드려지는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대상이 바로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며 바로 여기 네 앞에 있는 네가 그노라 하는(요4:26) 말씀에 물 길러 왔던 것을 잊어버릴 만큼에 큰 감격과 감동에 충만하여 그 즉시 동네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4:29)하며 예수님을 전파한 내용에 이어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우물가로 달려오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처럼 요한복음 4장은 예배에 관한 성경전체에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예배회복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신약의 요한복음 4장을 비롯하여 구약의 아모스9장11-15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을 계획하고 시작한지 벌써 19년이 되었고 컨퍼런스만 해도 북미주의 미국과 카나다 그리고 유럽과 일본까지 무려 21번에 걸처 열었습니다

그 외에 회복의 신학연구학회(Nyskc Learned Society)의 목회자 포럼을 비롯하여 세미나 그리고 심포지움 그리고 교회학교 교육연구소(NICES)의 콜로키움까지 더하면 예배회복을 위한 활동이 왕성 하였다고 자평하며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로 인함이었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예배회복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관심이 없는 분이 어디있겠습니까

신앙생활 그러면 곧 예배드림이라는 등식이 만들어질 만큼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에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진정한 회복이며 축복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범사가 잘되려면 영혼이 잘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예배 곧 주님을 만나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고 치유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문제 뿐 아니라 앞날에 모든 과정에도 형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에 가장 문제 중에 하나라면 죄에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인한 죄를 짓지만 않았다면 우리의 문제로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을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죄로 인한 문제는 육신에 문제로부터 영혼에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생전반부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누누이 말씀하시고 있고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게 주신 많은 것들 중에 무엇보다도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또 열심히 하고 애쓰고 힘써도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참으로 비참할 수 밖에 없어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자수성가하였는데 어느날 생각해 보니 이대로 죽는다면 내가 지금까지 말씀대로 지키고 살면서 이처럼 부자가 되고 넉넉하게 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며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을 봅니다

육신이 아무리 건강하고 모든 일들이 생각대로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사망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곧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은 영생이요 구원이라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인생에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주시고 만나주시기만하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여인에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너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며 그로 말미암아 영혼에 목마름 곧 인생에 기갈로 나타났으며 이 고통에서 회복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해결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예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찾아오셔서 만나주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모스 9장11-15절의 말씀을 보더라도 이미 무너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결국 성전과 그 제단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것을 다윗 때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며 세워졌던 천막처럼 다시 세울 것을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을 보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고 있느냐 였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한분만을 섬기며 나가면 나라가 살아나고 가정들이 안정이 되었으나 우상을 섬기고 이방이들의 신들을 섬기면 나라는 일순간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백성들이나 나라는 이처럼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느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달리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켜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천막이 무너진 시대는 암울하고 미래가 없는 시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천막을 일으키라는 것은 성전의 회복이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단 중심의 제사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Nyskc Theme은 바로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며 그 말씀들을 중심으로 예배회복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Nyskc Family Conference 가 열릴 때마다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예배가 신앙생활에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으면 존재할 수 없는 없는 존재로서 당연한 것이며 또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경배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인 생활과 신앙생활의 표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자신에게 있어 어떤 분으로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는 그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으며 과연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예배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창조주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은혜로 살아가는 피조물들임을 예배 가운데에서 입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오직 섬겨야 할 우리를 사랑으로 만드신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크고 작은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예배의 가장 중요한 방식이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을 뿐아니라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은 의무이며 축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4-25)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난 즉시 그들이 크게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곧 만남인 예배의 상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예배로 교제하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고 타락하자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숨어버리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물론 저들이 죄를 짓지 전에 것을 예배로 이해하기는 쉬운 것이 아니지만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서 경배하고 찬양하고 함께 동행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서 생명도 교제도 다 상실해 버렸고 심지어는 에덴에서 쫓겨나고 땅은 저주를 받았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 뒤에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그들의 신앙도 그들이 드리는 예배에 의하여 판단되었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 지라”(창4:4-5).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그들의 존재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지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 어떤 판단을 받고 있었는가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이 땅을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를 주신 것도 노아와 그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와 온 땅을 심판하신 하나님께 예배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요셉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살았고 그 예배 속에서 믿음을 따라서 험악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았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재물에 풍성함으로 그 땅을 중심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모세시대에 율법을 따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더욱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막과 성전에서 공적인 예배를 함께 드리지 않는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회중에서 제외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백성은 택한 선민이 아니였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고 나서 그 사건은 즉시 선명한 복음의 선포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는 진리를 외치는 설교자를 갖게 되었고 그 진리가 외쳐지는 곳에는 예배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온갖 위협과 대적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위대한 능력을 예배를 통해 공급받았다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없는 성경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처럼 예배가 없는 곳에는 교회도 없고 신앙고백도 없으며 선교도 없습니다. 선교지를 가보면 하나님의 예배한다든가 혹은 경배하는 모양은 없고 십자가도 없는 듯 있다면 구호단체와 거의 흡사한 모습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배회복운동(Nyskc Movement))에 동참을 위한 여행을 하면서 예배중심의 선교를 해보자고 선교사님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선교지에서 보면 예배가 실종된 오직 구원만 외치고 있습니다 신앙에서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지만 그러나 예배는 구원받은 백성에서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과 함께 예배는 신앙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을 강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한국이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공적인 예배의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갔던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같은 나라는 예배가 없어진지 참 오래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배당은 유적지가 되어 관광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였고 아파트 콘도로 리모델링을 하고 있습니다

예배를 소홀이 한다면 우리라고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설교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의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마치 행동으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지 않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경배하여야 하는 위치에 있는 존재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배에 드리고 참석해야 할 시간에 Nyskcian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곳이 어디든지 그 자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있지 않아도 될 자리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지정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우리들이 있지 않다면 그곳은 비워져 있을 것이고 다윗의 천막은 무너진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들이 문둥병처럼 번져 가는 배교에 가까운 예배에 대한 경박하고 의무감 없는 태도들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그분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점점 사라져 가고 유명한 강사의 얼굴과 가수 텔렌트 스포츠 선수등 이런 사람들이 온다는 집회는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세상에서도 무슨 직업을 가졌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전무가가 되고 프로라는 말을 들으며 달인이라는 말도 하는데 신앙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찌된 것이 세상과 비슷한 모습으로 세속화되고 예배조차도 경건성은 무시된 체 자기들 편한 대로 마음대로 디자인하여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인 것처럼 행하는 일들을 교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등록한 교인들이 많으면 무엇합니까 그 등록교인에 수의 비해서 예배에 참석하는 수는 아주 적은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새벽기도회나 혹은 금요철야기도회 그리고 전통적으로 수요예배를 드렸던 모든 부분들을 보면 현저하게 참석률이 적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천여 명의 등록교인이 되어 있는 교회의 주일예배를 보면 아삼 백명만이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회에 참석률은 현격하게 떨어져 아주 큰 메가 처치인데도 기도회의 참석률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러한 세태를 거의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 여유가 있고 안정되면 교회에 나가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유가 있게 되면 그때에 예배를 잘 드리겠노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원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만세전에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피조물 중에서도 사람을 통해서 예배를 받으시려고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체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며 찬양하며 영광돌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이 될 수 있게 된 것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새길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예배드릴 수 있게 된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예배함에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기까지 하여야 합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기며 나갈 수 있는 신앙생활에 힘쓰지 아니하면 심각한 불신앙이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도 세속에 빠지거나 세상에 물들수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아주 장못된 신앙이며 그것은 비성경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 한분만을 바라보지 않고 이미 그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에서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은혜가 떨어지면 예배에 참석을 안한다고 하지만 은혜보다는 하나님은 삶에 있어 가장 우선으로 두지 않게 될 때 예배에 관심이 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앙에는 몇 가지 의무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는 죄를 저질르지 않게 하소서 한 것처럼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영적으로 코마상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도는 신앙의 의무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애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이라고도 하셨고 하늘에서 내린 만나라고도 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되어 오셨으니 성경은 삶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양식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애독하고 묵상하고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배우고 그분에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생사회복이 다 성경 안에 있기 때문이요 지식에 근본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귀하고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에 우리의 영혼의 양식임을 믿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렇게 기도와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백성이요 하나님은 이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은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을 전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 듣고 믿은 말씀들을 상대방에게 전하며 예수님을 믿을 것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멋진일입니까

네가 체험하고 경험한 신앙을 이웃들에게 전하며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산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예배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성도의 열매이자 구원받은 자의 의무이면서 축복입니다


네 번째는 성수주일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을 율법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모여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이 구원의 백성으로서 감사입니다

구약에서는 “내가 거기서 만나리라”.(출29:41-46)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친히 만나주시는 곳을 지정하여 주신 곳이 성막입니다


신약에서는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함께 하리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관점을 우리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기만 하면 그곳에 임재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내 이름이 있는 곳으로 모이면 내가 임재 하시겠다며 성령의 교통하심을 강조하셨습니다(마18장)

하나님의 택한 선민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과 교통하며 예배하는 것이 의무이자 축복입니다


다섯 번째는 일조전납입니다

십일조라는 말 만들어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구약의 세금법을 왜 적용하는가 하는 물음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의 세법이라든가 혹은 신약에 성전세라고 말하는 이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 법에 저촉을 받아 드리는 것이 돼서는 안됩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에 감사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감사 우리를 이 땅에 존재케 해 주신 것에 감사로 드리는 것이 헌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짓고 난 다음 양심은 병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양심 안에는 감사가 있었고 기쁨이 있었고 경배가 있었고 찬양이 있어지만 죄에 빠진 죄인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점점 사라지게 되었고 배음망덕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노예가 되어 사는 동안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게 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회복을 위하여 게명과 율법을 주시게 되었고 삐뚤어지고 어긋난 백성들을 돌이키게 하며 깨닫게 하기 위한 몽학선생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법이기 전에 이미 있었던 섬김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때 완전함 법으로 만들어 지키도록 하게 한 것이니 의무가 된 것입니다 만약 이와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불순종이 되었고 죄로 처벌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것을 하나님 것을 구별시키시므로서 그것은 행하지 않는 백성을 도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십니까 그것이 복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약속 언약에 백성임이 증거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 안에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바로 예배라고 하는 것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예배 안에는 기도와 말씀 전도와 성수주일 일조전납이 들어있어 이것들을 찬양하며 나가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구체적 방법이 있음을 말해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종합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면 그 다음에 그 은혜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너희 마음을 감동시키면 그때 기도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연민의 정이 솟아나면 그때 전도하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주 단순하게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너희는 예배하라, 너희는 기도하라, 너희는 전도하라 너희는 모이기를 힘쓰라 너희는 십일조하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의 상태와는 관계없이 그것은 의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겠노라고 고백하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따르는 마땅한 의무를 다하며 살겠다고 하는 고백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그리고 자신을 향하여 공적으로 선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와 축복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서 행하여야 할 당연한 의무에 대해서도 서명한 것입니다. 그것을 실천하기로 서약한 것입니다.

따라서 은혜가 떨어지면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는 사실상 배교에 가까운 생각입니다.


가장 성경적인 교회의 모델을 지녔다고 믿어지는 초대시대의 교회나 청교도 시대 성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늘 깊이 가슴에 새긴 단어는 바로 “의무”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자신의 마음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지, 하나님 앞에 받은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의무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였습니다.

먼저 그 의무를 행하며 자신의 마음도 그 의무를 따라오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만약에 마음이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의무를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배교적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형식이 무너지면 내용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마저도 없어져 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율법적인 의무감만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할 마음도 없고 더 나아가서 예배의 의무마저 포기한 것은 그보다 더 나쁜 배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예배회복을 부르짖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너졌기 때문이고 또 무너짐을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신앙을 율법적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또 행위적 신앙 형싲거 신앙이며 위선적 신앙이니 하나님께서 가장 야단치시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뱍성이 하나님을 배워나가는 과정에는 또 유익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신앙생활하고 예배드리는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교육은 아주 좋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몽학선생이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시대로부터 공적인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영혼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잠자는 영혼을 깨우며, 죽은 자와 다름없는 영혼들을 살아나게 하고, 죄로 말미암아 어두움 가운데 있는 영혼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 바로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느끼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의심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믿음을 바로 심어 나갈 수 있도록 결단하게 하며, 세상에서 부와 성공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소망으로 삼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는 위대한 힘이 바로 예배 가운데에서 부어졌습니다.


이 시대의 불신앙의 풍조를 본받지 마십시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대해서 아무리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것 같은 자들의 너그러움일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기뻐해도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그것은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될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하여 예배에 참여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 할수록 심각한 영적인 손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은 생기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나아가서는 진리를 향한 갈망과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분이 무엇인지도 잊게 될 것입니다.

박약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Nyskcian들이 할 신앙의 자세가 아니며 그것은 스스로 죄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기를 자처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신령한 은혜의 세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신령하고 충만한 은혜의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께 가까이 나간다는 자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단지 예배에 참석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예배가 참된 예배 곧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할 교회의 부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별도로 다루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요지는 이것입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예배드림의 참석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가장 영적인 신앙의 의무에 대하여 방만한 것이며 그렇게 예배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서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 대하여 떠난 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실제적인 삶속에서 이미 신앙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몸이 예배의 장소에서 이탈되기 전에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일들이 먼저 있게 마련입니다.


이번 Nyskc Family Conference IN'12에서 바로 이런 문제들을 배우고 훈련하고 익히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진정 예배를 어떻게 드리시기를 원하시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교적으로 많은 예배가 행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유무로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의미나 뜻도 없이 그저 교회당만 다녀가는 행위는 성전마당만 밞고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것을 헛된 예배자 거짓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성령으로 교제가 되어야 하며 예배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면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은 헛된 예배에서 한없는 허기짐을 느끼고 거짓된 신앙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헛된 예배에서 대단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행해지는 헛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단호한 태도를 보며 참된 예배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유행하던 헛된 예배에 대하여 단호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15:8,9)


Nyskc Family Conference IN'12에 참여한 Nyskcian들이여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경외심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차가운 형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대신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영이시고 인격이십니다.

우리의 예배가 단지 차가운 형식 속에서 우리 자신의 종교적인 요구나 만족시키기 위하여 행해지는 것인지 혹은 진심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갈망하는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하나님은 모두 알고 계십니다.

만약에 우리의 예배가 단지 우리 자신의 종교적인 요구나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이 그 속에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배일수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종교적인 보상심리가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하던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차가운 거절감 이상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일날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몸은 주일이 되면 어김없이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주간동안 하나님 없이 살아왔던 생활들을 예배하는 한 순간의 형식을 통하여 보상해보려는 심리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만남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예배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떠나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없이 차가운 예배의 형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기만이며 신성모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은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2-13)


우리들이 이번 컨퍼러스에서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여야 하겠습니까

혹 예배에 대해서 형식적이고 습관적이셨습니까 아니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진 예배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주님과의 교제나 교통이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분이 찾아주시는 예배가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예배에 대한 생각이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생각이 고쳐지기 전에는 예배에 대한 태도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여러분들이 참여하는 예배에 쏟아질 복은 없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사건이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식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이 찾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하여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며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뉘우칩니다. 그렇게 드리는 예배 속에서 부어지는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진리를 붙들고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거룩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굳어졌던 마음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감동하는 것도 바로 이 예배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말미암는 감격이 있고 그러한 감격하는 인간들이 있을 때 하나님이 감동받으십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감격적인 예배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한 그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물결이 아무리 성난 파도와 같고 죄악의 탁류가 홍수와 같을지라도 그는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능력의 원천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영원에 잇대어 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의 만남을 통하여 참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원동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또한 예배를 사랑하는 W세대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는 Nyskcian들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교회가 살고 나라와 가정이 산다는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신앙생활은 곧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다 라고 말하며 나가는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모인 것은 바로 예배회복을 이루려는 갈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며 기뻐하시는 산제사를 드리는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짧은 3박 4일간이지만 예배회복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되며 교회를 세워가는 사명자로서 세워짐이 나의 일생에 기쁨인 것을 믿고자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이번 컨퍼런스에 흐르게 되며 우리의 모인 장소마다 성령에 충만함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직 예수를 부르며 미 전지역에서 모인 예배를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회를 마치고자 합니다

시간 시간마다 훈련이 계속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향하신 뜻인 줄을 믿고 감당하며 인내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Nyskcian들이 될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문안하며 인사드립니다





July 2. 2010




G-Rep.: Rev. Goshen Choi,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