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에 대한 이해
A.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이며 교제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지엄한 분이 아니라
친근한 아버지이시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친근히 아버지께 나아가 그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고통, 슬픔, 번뇌, 기쁨 등 모든 것을
창조자이시며 완전한 인격체이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 형편을 헤아리신다.
또한 기도하는 이를 통해 그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기도는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한다.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대화하고 사귐을 같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이다.
B. 성도들간의 사랑의 교제를 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동일한 기도제목을 갖고 동일한 장소에 모인 성도들은 서로가 한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고
부모형제와 같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된다.
기도는 성도들간의 진실한 사랑을 맺어주는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C. 기도는 거듭난 자의 호흡이다.
육신이 코로 숨을 쉬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같이 거듭난 영혼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호흡운동이며 호흡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인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영혼 역시 죽은 영혼이다.
2. 기도의 마음가짐
A. 확신을 가지고 할 것.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 1:6-8)"
이 말씀은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 진다는 사실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확실한 약속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잘 알고 계시므로 우리는 응답되어 진다는 확신을 갖고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간구라면 반드시 이루어주실 것이다.
기도에는 오직 한가지 마음, 응답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B. 겸손한 마음으로 할 것.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시10:17)"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이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겸손한 마음은 곧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도이다.
겸손한 심령, 통회하는 심령으로 간구할 때
감사하는 마음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는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고 하였다.
이제까지 인도해주심과 만가지 은사와 축복 받은 사실을 아는 것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것을 구하기 이전에 항상 감사가 앞서야 한다.
C. 하나님께 완전히 맡길 것.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62:8)"
하나님과의 진정한 영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있는 그대의 모습을
꾸밈없이 맡기고 의지해야 한다.
또한 마음속에 있는 일을 그대로 하나님께 고하며, 마음을 쏟는 일이다.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못한다면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품속에 자신을 던지고 간구한다면 더욱 확신을 얻을 수 있다.
D. 낙심하지 말 것.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
기도에 있어서 낙심은 금물이다.
낙심하는 마음가짐은 기도하는 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
기도의 결과는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을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오래 참음으로 기도하고 기도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중단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E. 하나님 뜻대로 할 것.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과 의논하는 것이 기도이며,
의논한다는 것은 하나남의 뜻을 묻는 것이다.
기도는 결코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응답만을 간구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상호 의사교통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중에 기도해야할 것이다.
3.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하자
A. 일정한 시간을 정하라.
각자의 하루 계획이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를 시작하기 전인 아침 시간이 좋다고 말한다.
시간이 없다고 핑계대지 말고,
시간이 길든지 짧든지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B. 일정한 장소를 마련하라.
은밀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서 주위가 산만하지 않는 중에 기도하는 것이 좋다. 만일 그러한 장소가 허락되지 않을 때는 정신을 집중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C. 기도하는 시간에 쫓기듯이 서둘러서는 안된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대로 충만해야 한다.
다음 시간의 할 일을 생각한다면 기도는 산만해지고 말 것이다.
D. 목표를 정하고 기도하라.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일정한 목표가 없으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영혼에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데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 기도의 목록을 만들어 기도의 내용과 응답된 것을 기록하라.
계획적이고 능률적인 기도생활을 위해서
기도 수첩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 기도란 무엇일까요? *
누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모범을 보며, 우리는 기도를
경배(Worship), 간구(Petition), 중보기도(Intercession)
의 세가지 형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나누고 싶은 것은
기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모습인 경배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나에 대한 그분의 극진한 사랑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내 영이 알게 될 때,
영혼 깊은데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어떤 일을 하신 분이신가를 알게 될 때
이 고통스런 세상 삶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안식과 평화를 선언받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말씀드리므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지요.
몇 년 전에 저는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긴 연단의 시간들에 지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에서의 성공, 사랑, 아름답고 부드러운 옷, 진찬, 명예, 교회생활 등도
아무런 감동을 주지를 못하며 더 이상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할지
기진맥진해졌습니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서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가게 되나
그것만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그러다가 우연히 마이크로 포로네시아의 한 섬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간단한 장비를 차고 바닷속을 들여다 보는 스노쿨링을 하게 되었지요.
저는 그곳에서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께서, 남태평양 한가운데를 유유히 유영하는 각종 열대어들의 몸에 디자인하신 무늬들을 보았습니다.
아아~
누가 저 짙푸른 파랑 바탕에
진보라와 노랑을 저토록 조화롭게 풀어 놓을 수 있을까?
디자이너인 제겐 그러한 색감을 창조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차라리 아무 말을 못하고 "오오오!!!!!" 라고 끙끙댈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만유에 충만하신 위대하신 창조주를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따라 살면 안심'이라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그곳까지 여행비를 챙겨 보내준 지체들을 통해 부득부득(^^) 강권하여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저를 향한 배려깊은 사랑도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나즈막한 뒷동산에 갖가지 색으로 채색한
단풍나무들의 어우러짐 속에서도 저는 하나님이 지나가심을 보았습니다.
어제는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만,
저는 저의 몸을 한군데 한군데 점검해 나가면서
저의 오장육부를 심묘막측하게 지으신 하나님의 지혜를 향하여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검사 시간 내내 감사와 경배를 드렸습니다.
감히 받을 수 없는 자인 우리들에게 베푸시는
매일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연스러운 경배의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누는 영적 교제, 친말감, 대화
이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고 교제를 나누는 그분이 신이시므로
우리의 기도는 경배라는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비하신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매일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주가 지으신 오늘 하루내내 그분의 자녀인 우리가 그분을 경배함으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노래를 부르게 하려함이라'는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중보기도의 은사를 개발하는 방법*
피터 와그너 박사의 기도동역자이자
세계적인 중보사역자인 신디 제이콥스가
어느 자매의 집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신디는 그녀가 기도하는 지하실을 내려가봤습니다.
거기서 종이상자가 놓여있는 작은 깔판을 발견했습니다.
신디는 "저기 있는 저 깔판은 뭐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자매는 "예. 제가 기도하는 곳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신디는 깔판 위에 무릎을 꿇고 사진으로 가득한 종이상자를 집어들었습니다. "이것들은 다 뭐예요?"
"기도해 주는 사람들의 사진들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알고 지내세요?"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들이지요.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제게 가져왔답니다."하며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제 되었다"라고 하실 때까지 기도한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나씩 사진을 넘기는 신디의 가슴에 감동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진 위에 눈물로 얼룩진 자국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에게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줄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까?
한번 체크 해보세요^^
1. 나는 매일 1시간 이상을 기도드리는 일에 투자하고 있다 1 2 3 4 5
2.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습관화 되어있다 1 2 3 4 5
3. 나는 남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시간을 보낼 때 즐겁고 기쁘다 1 2 3 4 5
4. 누가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면 최소한 일주일 이상 매일
기도해준다 1 2 3 4 5
5. 다른분들로부터 종종 중보기도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1 2 3 4 5
6. 갑자기 기도제목이 생각나서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1 2 3 4 5
7.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때면 그 상황에 맞는 성경말씀이
떠오른다 1 2 3 4 5
8. TV나 신문, 이웃과의 대화 등을 통해 중보기도 제목을 얻곤
한다 1 2 3 4 5
9. 기도해 준 사람들 대부분이 나에게 분명한 기도 응답을 얻었다고 말한다 1 2 3 4 5
10. 중보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 자주 나에게 꿈이나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1 2 3 4 5
*뜨거운 기도의 불꽃 - 평양 대부흥*
오늘 저는 1907년 평양 대부흥에 관한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 글이 그 때 일어났던 부흥의 모든 것을 전해주지는 않지만,
그러나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부흥을 갈망하는 우리가
오늘 날도 동일하게 배워야 할 점들인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배운 것은 우리에게 가난한 마음, 마음을 찢는 회개,
교단과 교파을 초월한 연합합심기도,
그리고 생명의 말씀의 역사만이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가슴에 1907년 평양에서 불 붙었던
그 뜨거운 기도의 불꽃이 뜨겁게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이 글은 당시에 중국선교사로 와 있던 캐나다 선교사 스티븐 고포드가
우연히 조선을 방문하여 1907년 대부흥을 목격하고 기록을 남긴 것을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저는 수 년전 "왕의 아이들"(현재의 글로벌 틴)이라는
청소년 신앙잡지를 통해서 이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함께 부흥 콘서트를 위해 일하는 분들과 나누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글을 번역, 편집하시고 사용토록 허락해주신
글로벌 틴의 권 지현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선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것에 관하여 쓰고자 한다.
한국의 신자들이 이루어놓은 일과 그들의 희생을 생각할 때 나는 내가 주를
위해 얼마나 한 일이 없는가를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
중국의 신자들도 이 이야기를 하면 통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당신도 조선에서 일어난 복음의 승리에 대한 이 이야기를 공정하게 듣는다면 틀림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난한 마음이 될 것이다.
조선의 부흥은 1906년 9월 서울에서 열린 한 선교사 회합에서 태동되었다.
사실 조선은 1903년부터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전도의 열매가
훨씬 많은 편이어서 선교사들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고, 그 이상의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온 하워드 박사가 그 모임에서 당시 인도 카시아 힐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부흥운동에 대해 말했을 때
선교사들의 눈이 열렸고 마음이 가난해지게 되었다. 그 주에서도 특히 평양에 거주하는 장로교와 감리교 소속 20여명의 선교사들은 조선에서도 카시아 힐에 임한 축복이 임할 때까지 정오에 모여 같이 기도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렇게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기도회가 한 달이 지나도록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자 한 사람은 너무 많은 시간을 기도에 소모하고 있으니
연합기도회를 중단하고 각자 집에서 기도하자고 제안했지만 대다수는
이 기도회를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인도에서 허락하신 것을 평양에서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기로 작정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 기도하기로 했으며 원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더 기도하도록 했다.
4개월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했고, 기도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
그 결과로 그들은 장로교, 감리교를 잊어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릎으로 되어진 참된 교회연합이었으며 하나님을 지극히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1907년 정월, 드디어 4개월 간의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주간이 되었다.
선교사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 주간에 있는 평양중앙장로교회의 부흥집회에 놀랍게 축복하실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저녁 집회에는 1,0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인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저는 아간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1년 전 내 친구가 임종하면서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그 미망인의 돈 100불을 가로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순간 장애물이 걷혀졌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인식되었다.
곧이어 죄의 자각이 모든 신자들을 휩쓸었다.
그날 저녁 예배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수십 명이 울면서 그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마치 지옥의 뚜껑을 열어놓은 것 같았다.
이 집회를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회개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 기간에 있었던 회개의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다.
거의 완전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던 한 집사는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드디어는 교회 구제기금을 훔친 것을 자백했다.
모든 사람들은 놀라면서 그를 용서하고 다시 평안을 되찾기를 바랬지만 그는 더 큰 불안에 떨었고 결국 자기가 지금도 도적질을 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한 여인은 며칠간을 지옥의 고뇌를 통과하는 것 같았다가 어느 저녁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간음의 죄를 고백했다. 그 모임을 인도하던 선교사는 너무나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이 거기에 있었으므로 그녀를 조선의 법대로 죽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남편은 눈물로 걸어나와서 범죄한 그의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용서했다. 이러한 놀라운 사건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교회는 사람들로 들끓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기 위해 교회에 왔다가 두려움 중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한 도둑 두목은 호기심으로 왔다가 죄를 깨닫고 자기를 감옥에 넣어 달라고
간청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은 그를 고소하는 사람도 없고 증거도 없으므로
체포할 수 없다고 맞섰고 그는 결국 풀려났다.
이 부흥의 때에 평양을 맡고 있던 일본 관리가 있었다. 그는 서구의 불가지론에 물들어 신자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모르는 어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이 이상한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그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도 결국 주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되었다.
참으로 기도하기 위해 보낸 몇 달의 대가는 충분한 것이었다.
성령이 오셨을 때에 선교사 모두가 반년 동안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반나절에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흥의 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하여 조선 전역에 넘쳤고 시간이 지나가도 계속되었다. 1910년 10월 어느 한주의 평양 교회 통계를 보면 그 주에만 4,000명이 세례를 받았고, 수천 명이 새로 교회에 등록했다. 1916년 동해안을 방문하고 온 한 선교사는 어느 마을에서 저녁예배를 드린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한 교회에 2,500명이 모이고 다른 교회에 500명이
모였는데 그 마을의 전체 인구수가 3,000명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자 시골 곳곳에도 많은 교회가 생겨났고
심지어는 선교사나 전도자가 방문한 적도 없는 곳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는 고향으로 성경을 가지고 돌아가 그것을 이웃에게 계속하여 읽어주었고 결국 그 마을에서 50명이 넘는 사람이 믿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교회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시작이 물세례라고 추측하고는
각자 집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모여 교회를 설립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기뻐하셨을 것이다.
구주의 공로를 알리려고 하는 불타는 열망이 오순절 교회의 특징이었다.
조선 교회도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만주에 있는 한 선교사가 부흥운동에 관한 진상을 알고 싶어 두 전도사를 평양에 파송했다. 그들이 돌아 왔을 때 그는 선교사들이 거리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도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신자마다 거리의 전도자였습니다."
상인들은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항상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집을 팔아 신자가 없는 곳으로 가기도 했다. 한 학생은 매일 적어도 6명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9개월이 끝날 무렵 그는 3,000명에게 전도했다. 8-9세 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학교를 파하면 거리에 나와서 지나가는 행인의 옷소매를 잡고는 구주 예수께 순종 하도록 눈물로
간청했고 그것에 마음이 찔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오게 되었다.
신자들은 도서지방까지 전도한 후에 곧바로 국외를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1907년 9월 장로교 총회에서는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보내도록 결정하고 두 사람을 선정하였다. 한국 교인들은 뜨거운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으며 또한 그것을 값없이 나누었다.
조선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였다.
선교사들도 한국 교인들이 기도에서는 그들을 능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밤의 절반을 기도로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는 보통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새벽 훨씬 전에 그들은 기도를 위해 일어난다.
한 선교사가 어느 지방에 갔을 때 새벽에 기도집회가 있음을 듣고 참석을 위해 5시에 나가보니 세 사람이 무릎 꿇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도회는 그가 오기 전에 끝났던 것이다. 몇몇 사람은 출석하기 위하여 산을 넘었다고 했다.
조선 교회의 새벽기도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907년 9월 길선주 장로가 평양중앙교회의 목사가 된 후에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4시 30분에 모여서 기도할 것을 제안했는데
다음날 새벽 2시부터 400명의 신자가 밖에서 기도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매일 700명이 모여 기도회를 하고 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하워드 박사로부터 카시아 힐에 임했던 성령에 대해 듣는 바로 그 장소에 간계에서 온 한 조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 교회로 돌아가 신자들에게 성령만이 주 예수의 복음사역을 완성할 수 있는데 그 성령님은
하나님이 다른 은사처럼 값없이 주시는 것임을 가르쳤다.
그들은 그때부터 6개월 동안이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5시에
교회에 모여 부흥을 주실 성령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왔다고 한다.
풍성한 너그러움, 이것이 초대 교회의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조선의 신자들 역시 풍성했다.
어떤 곳에서 한 선교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너무 많이 내놓기 때문에
그는 감히 돈에 대해서 말을 못한다고 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바쳤다.
남자들은 시계를 끌렀고, 부인들은 패물을 내놓았다.
다른 이들은 땅문서를 바쳤다.
그들은 가진 모든 것을 내 놓았고, 더 바칠 것이 없어서 울었다.
교회 헌당식에 참석한 한 신자는 교회에 아직 50불의 부채가 있음을 듣고
자기가 다음 주에 50불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선교사는 그가 매우 가난한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류했지만 그는 다음 주일 50불을 가지고 왔다. 몇 주간 후 그 선교사는 그 지역을 시찰하는 중에 그의 밭에 가보니 노인은
쟁기를 잡고 아들은 쟁기를 끌고 있었다. 선교사는 놀라서 소를 어떻게 했냐고 묻자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불신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하여 소를 팔았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대교회를 인도했던 바로 그 성령의 인도를 조선교회가 받고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그들의 열심이다.
조선교회가 그렇게 강한 이유중의 하나는 성경공부에 있다.
신자들은 누구나 성경을 배웠다.
한 해에 1400여 회의 사경회가 열리며 9만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는 가정예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출교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가정에서도 성경에 열심이었다.
사업에 따라 여행하는 신자는 성경을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나 숙소에서
펼쳐 읽었다. 한국의 목사, 전도사, 집사들은 일본사람들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면 그들은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여러 번 성경을 통독하고 나오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성경을 없앨 것을 대비해서 성경을 한 권씩 통째로 암송하기도 했다. 한 선교사는 어느 마을에서 25명에게 세례를 베푸는데 첫 번 지원자에게 성경구절을 암송할 수 있는가 하고 묻자 "예" 하고 시작했는데
선교사는 그가 100절을 외웠을 때 중단시켰다. 하지만 다음 사람들은 자신이 세례를 받지 못할까 두려워 중단된 그 부분부터 이어서 암송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25명 모두 100절 이상씩 암송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초대 교회 때 성도들은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을 즐거워 했다. 똑같은 정신이 조선교회의 특징이다.
질투의 악마가 일본인들을 자극하여 조선 교회를 괴롭히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선천 지방의 신자들이 데라우치 총독을 살해하고자 음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씌워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몇몇 신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하였다. 일본인들이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잔인하게 고문 하는지에 대해서는 익명이 나있다. 그들은 신자를 엄지 손가락만으로
매달았고 뜨거운 다리미로 살을 태웠다. 어떤 사람은 일곱 번이나 졸도를 했으나 그들은 믿음을 지켰고 결국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신앙을 고백하다가 친족들에게 집과 가정을 빼앗긴 사람도 법에
호소하지 않고 온유하게 모욕과 핍박을 참았으며 모든 친족이 회개하고
돌이킬때 까지 그리스도를 전했다.
어떤 신자는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그의 고향에 갔다가
그의 친척들에게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그는 실낱 같은 목숨이 붙어있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성경을 나누어주며 구주에 대해 전했고 삼년 후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를 죽이려고 했던 그 불신지역에 11개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
성령은 1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조선에서도 우리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
이 동양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했던 일은
안일한 우리 기독교회에 큰 도전이 된다.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힘이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
그들은 이 거룩한 일을 위해 모든 겸손으로 자신을 주 예수께 드렸고
하나님의 충만은 바로 그들을 통로로 하여 넘쳐 흘렀다.
하나님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큰 구원을 주시는 분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받을
저주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성경을 보십시오.
기도에 대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에 관한 예화, 기도하라는 교훈,
기도에 관한 약속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펴서 조금만 읽어 내려가 보세요.
그러면 벌써
'그때에 사람 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성경을 다 읽은 후 덮으려고 하면 바로 그 전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간구 소리가 우리의 귀에 들립니다.
기도에 관한 예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다니엘,
온 마음 을 다해 자기의 하나님을 불렀던 다윗, 갈멜산에서 기도하던 엘리야, 감옥에 갇혀서도 찬양하며 기도했던 바울과 실라 등 수도 없습니다.
또 기도하라는 명령은 얼마나 많이 나와 있는지 아십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기도에 관한 약속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은 과연 무엇일까요?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는 사실 아닐까요?
하나님이 그의 말씀 속에서 특히 강조하고 계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이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분명히
실천하기 원하시는 것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렇게 강조하신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기도에 관해 그렇게 강조하신 것은,
기도가 우리에게 그만큼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에게는 기도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 걸까요?
기도는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해야할 만큼
그렇게 많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아무 것도 부족한 게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가난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주께서 그 긍휼하심을 따라
여러분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 보여주시기를 빕니다!
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그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영혼입니다.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어린 신자가 혀짤배기 소리로 더듬거리며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한 처지를 말씀 드리는 것도 기도요,
악한 세력과 싸우는 성도가 하나님께 외치는 고함 소리도 기도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가는 성도가 주님께 드리는 진혼곡도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요, 성도의 군호요,
성도의 위로요, 성도의 힘이며, 성도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의 얼굴 을 구할 것이요,
그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 것입니다.
올해는 거룩하고 겸손하며 열심 있고 오래 참는 자녀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십시오.
그리스도와 좀더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연회장 안에 자주 들어갈 수 있는 자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축복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주인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더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