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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a to ethos(습관을 좇아)

눅 22.39


예수님께서 한 가지 귀중한 습관이 계셨다

그 습관은 시간과 때에 상관없이 틈만 나시면 감람원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완전한 습관이었다


'습관'에 해당하는 희랍어 'ethos'는 두 가지 의미를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그 중 하나가 한 개인이 익숙해 있는 삶의 패턴(habit)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한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반복되는 과정 중에 보편화된 행동양식(custom)이다. 즉 이 단어는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으로 구별되어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신약성서에서 전자의 경우로 쓰인 예는 누가복음 22장 39절과 히브리서 10장 25절뿐이다. 따라서 누가복음 22장 39절 본문은 예수님의 습관에 관한 한 유일한 언급을 하고 있는 구절이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체포 전날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보여주는 도입부분이다. 인류 구원을 향한 긴 여정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는 그 전날 밤. 자신의 사명을 고사하고픈 유혹을 느낄 정도로 혼돈스러운 이 시간에 예수는 의연히 '습관을 좇아' 감람산 행을 감행하신다.


예수님이 감람산에 올라 행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돌을 던져도 닿을 만한 가까운 거리에 제자들을 두고 기도를 당부한다(눅 22.40-41). 그리고 자신도 기도한다.

누가의 예수님에게 있어 산은 기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장소이다.

예수님는 자신의 제자들을 택하기 전에도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눅 6.12). 또한 변모사건(눅 9.28-36)에서도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갔다." 마가가 산행의 목적을 기록하지 않은 것과 달리(막 9.2-8)

누가는 예수님이 산에 올라간 목적을 기도하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예루살렘에서도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감람산에서 지내신 것으로 보도된다(눅 21.37). 누가는 예수님의 수세시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눅 3.21)라는 장면을 부가하여,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예수가 기도하는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몰려드는 환자들과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예수는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 일을 중시했다(눅 5.16). 한 제자는 예수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눅 11.2-4).


기도란 무엇인가?

이는 어떤 일의 진행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하나님임을 인정하고 일체의 주권을 그분께 전적으로 양도하는 다짐의 표현이다. 그러한 기도의 원형을 우리는 예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제자들마저 무심히 잠들어버린 외로운 감람산 자락에서 예수는 오로지 앞으로의 모든 일들의 주권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다. 이것을 위해 예수는 산에 올랐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습관이었다.


습관은 의지를 뛰어넘어선 행동이다.

부지불식중 자신의 행동에 착색되어 삶의 색조와 인생의 방향을 상당부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나 가치는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습관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좋은 습관의 한 표본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고 기꺼이 따르되 그 권한이 철저히 자신을 보내신 자에게 귀속되기를 열망하는 자세를 습관으로 가졌던 것이다.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은 습관이 가지는 지대한 영향력과 그 중요성을 구체적으로 말해준다.세상적인 bygus을 빌려 예수님을 말한다면 2천년 전 30세 남짓했을 나이로 이 세상의 생을 마감한 이가, 현재 2천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성서의 주인공이며, 세계적으로 14억에 육박하는 추종자를 갖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히 'effective people'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리 중에 우리에게 남겨준 본은 무엇이겠는가

새벽기도가 아니겠는가

밤을 세우시며 기도하신 철야기도가 아니시겠는가

40여일 금식하시며 기도하셨던 모습을 성령에 인도하심으로 본다면 금식기도 많큼 공중에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없다 라는 결론에 이른다

주님은 기도하는 분이셨고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으니 제자들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하여야 하겠습니까 물었을 때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며 가르켜 주시지 않았는가


Nyskcian들이여

새벽에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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