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복음주의의 흐름
복음주의는 획일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신학적 신념이요 운동이다. 복음주의는 만화경, 모자익, 또는 우산으로 표현될 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머어피(Cullen Murphy)는 복음주의 신앙을 12개 기둥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천막으로 비유했으며, 웨버(Robert Webber)는 복음주의 내에 14개 소그룹을, 그리고 데이턴과 존스턴이 편집한 [미국 복음주의의 다양성]은 복음주의 내에 12개 신학전통을 포함하고 있다. 맥그라스에 따르면, 이러한 다양성은 복음주의 신념들에 대한 강조의 차이, 그들에 대한 정확한 해석문제 그리고 기타 강조점 첨가문제로 일어난다.
현대 복음주의의 유형은 학자들에 따라 3, 4, 혹은 6개로 분류된다. 가브리엘 패커는 현대 복음주의를 분열된 제국으로 비유하고, 그것을 6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근본주의, 구 복음주의, 신복음주의, 정의와 평화 복음주의, 은사적 복음주의 및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완전 무오성을 신앙적 신실성의 표준으로 간주하며, 논쟁적이고 분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구 복음주의는 신앙의 체험적 측면에 우위권을 두며 개인적 중생 체험과 대중적 복음전도 운동을 강조한다. 신복음주의는 신앙의 사회적 의의와 변증적 설득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의와 평화 복음주의는 활동적 복음주의로 급진적 정치적 견해를 주장한다. 은사적 복음주의는 성령과 그 사역, 방언, 치유, 축제 형식의 예배를 강조한다. 에큐메니칼 복음주의는 광범위한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을 맺는데 관심이 있으며, 공통 사회적 관심사를 위해 주류 교단들과 협력한다.
웨버(Timothy P. Weber)는 4개의 가지를 지닌 복음주의 가계도(family tree)를 제시했다. 고전적, 경건주의적, 근본주의적, 그리고 진보적 복음주의다. 고전적 복음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교리, 즉 성서의 궁극적 권위, 믿음에 의한 칭의, 대속 등에 충실하다. 따라서 고전적 복음주의자는 신학에서 종교적 경험 보다 교리의 역할을 중시하는 신조주의자다. 대륙의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그리고 19세기 구파 장로교(Old School Presbyterianism)가 여기에 속한다.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전통에 경건주의, 청교도운동 그리고 18세기의 대 각성운동의 경험적 강조점을 결합시킴으로써 그것을 완성하려고 한다. 경건주의적 복음주의자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능력과 회심 및 거룩한 삶을 강조하고, 부흥, 사회개혁, 고상한 삶을 촉진하는 종교적 실용주의자이다. 19세기 대부분의 복음주의 체제들, 즉 감리교인들, 침례교인들, 오벌린 완전주의자들(Oberlin Perfectionists), 신파 장로교인들(New School Presbyterians), 성결 그룹과 오순절운동이 여기에 속한다.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근본주의자-현대주의자 논쟁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것은 고전적 그리고 경건주의적 복음주의 특징 중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 중 소수의 근본적인 것들에 촛점을 둔다. 근본주의자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출현한 신복음주의자가 여기에 속한다. 진보적 복음주의는 현대 의식을 가지고 정통주의 기독교 요소들을 유지하려고 한다. 성서의 무오성과 성서비평주의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 근본주의를 개혁하려고 하는 일부 신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적 분리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주류 교회 안에 남아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데이턴은 복음주의자라는 명칭이 사용되게 된 개신교 역사을 주목하고, 복음주의를 세 유형, 즉 프로테스탄트/루터란 복음주의, 부흥운동적 복음주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로 구분했다. 복음주의자들은 종교개혁 시대, 기독교 신앙에 성서적, 그리스도 중심적 표현을 부여했다. 18-19세기 미국의 대 각성과 부흥운동 기간 회심을, 그리고 20세기 근본주의자/현대주의자 논쟁 기간 정통주의와 보수주의적 가치들을 강조했다.
바레트(David Barrett)는 [세계 기독교 백과사전](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서 복음주의를 세가지 형태로 나누었다. 근본주의자, 보수적 복음주의자, 신복음주의자이다. 근본주의자는 그 창립정신을 고수하고 기독교의 일곱가지 근본 교리를 주장한다. 성서의 무오와 문자적 영감설, 동정녀탄생, 그리스도의 기적들, 육체의 부활, 인간 존재의 전적 타락, 대리적 속죄, 천년왕국 이전의 재림 교리이다. 보수적 복음주의자는 근본주의의 내용을 고수하기 원하나 보다 개방적이고 비판적 형태를 원한다. 에큐메니칼 복음주의자 또는 신복음주의자는 교회 일치와 협력에 개방적이며, 세계교회 협의회와 미국 복음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성서의 제한적 무오성을 확신한다.
웨버의 견해는 복음주의 흐름 이해에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패커의 분류는 더 압축될 수 있는 반면, 바레트나 데이턴의 분류는 복음주의의 현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20세기 이전의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적 복음주의와 청교도운동, 경건주의운동, 부흥운동에 토대를 둔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여기에 20세기 초반 복음주의를 대표했던 근본주의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근본주의를 개혁하려한 신복음주의 또는 진보적 복음주의를 첨부할 수 있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또는 신복음주의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근본주의는 19세기 미국의 두 신학 조류인 프린스톤 신학과 세대주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펴고 일어난 신학운동이다. 근본주의는 특히 1920-40년대 사이 미국 개신교권 내의 한 운동을 말한다. 그것은 현대주의 도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정통주의 기독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재천명한 것이다. 그 기본 정신은 저항주의와 분리주의로 요약된다. 그것은 반문화적 운동과 기존 교단으로부터의 분리로 표현되었다. 근본주의의 주 관심사는 바른 교리였다. 근본주의는 교리 중심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근본주의는 자유주의 흐름을 차단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반면, 사회적 비젼을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독교 복음의 한 측면만을 강조했다. 근본주의는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며, 반지성적, 비교화적이어서 교육받은 대중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1940년대에 근본주의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출현한 것이 신복음주의다. 미국의 근본주의 안에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성적 표현을 추구하는 젊은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헤롤드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이다. 그들은 개신교 정통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가졌던 온건한 근본주의자들이었다. 신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주류의 입장을 회복하면서 특히 세상을 긍정하고 문화를 포용하는 복음주의적 비젼을 지니고 있었다. 신복음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에 대한 비젼을 회복한 것"이다. 신복음주의의 출현과 더불어 서구에 복음주의의 새로운 부흥이 일어났다. 최근 신복음주의란 명칭은 간단히 용어인 복음주의로 대체, 사용되고 있다.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차이는 신학보다는 그 양태(style)에 있다. 양자는 프로테스탄트 정통주의 신학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성서의 영감과 절대 권위에 대한 확신, 그리스도의 유일성 , 체험적 신앙, 세계 선교, 현대신학에 대한 불신 등에 대한 강조가 그것이다. 그러나 교리적 관심을 추구하는 방법에서 복음주의자는 보다 지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복음주의는 자유주의 보다는 보수적이나, 근본주의 처럼 보수적이지는 않다.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중간 길을 택하는 제3의 세력을 말한다.
복음주의의 흐름은 역사적으로 16세기 종교개혁, 17-19세기 청교도, 경건주의 및 부흥운동, 20세기 전반의 근본주의 그리고 후반의 신복음주의로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든 복음주의의 조류는 신학적으로 프로테스탄트 정통 교리에 토대를 두고 있다. 성서의 궁극적 권위, 예수 그리스도의 초자연성,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신앙에 의한 구원, 회심을 통한 성결과 전도에 헌신적인 삶이다.
한편, 기독교의 정통 교리를 주장하거나 강조한다고 해서 모두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음주의 신학을 독특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정통주의, 성서적 권위 또는 크리스챤 경험에 대한 독점적 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복음의 본질적 요소로, 신앙 고백으로 그리고 전도와 세계 선교에 대한 명령으로 표현하는 열정적 관심이다. 종교개혁적 신학개념과 갱신 및 회심의 정신이 결합되어야 복음주의적이 되는 것이다. 부흥과 갱신의 역동성이 복음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다.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교리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는 감정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복음주의를 신학적 신념이나 교리로 간주하는 것과 신앙운동과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은 모두 복음주의 전통의 양면 중 한 면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현대 복음주의는 신학인 동시에 운동이다.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신념에 토대를 둔 영적 부흥 및 갱신운동이다.
결론
복음주의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서구 세계, 특히 북미에서 큰 부흥을 이룩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주의의 영적 호소력과 낙관주의적 사고에 매료되고 있다. 정통 기독교 교리를 신봉하고, 복음전도에 헌신적인 것이 복음주의 매력이요 장점이다. 현대복음주의는 활동적이고, 대중적이며 실용적인 것이 특색이다.
현대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중간 길을 택하는 제3의 세력을 말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복음에 가해질 해악을 간과하고, 현대인이나 문화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복음을 변조시킨 것이다. 이런 급진적 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동시에, 극단적 보수주의, 즉 근본주의의 신학적 폐쇄성으로부터 자유한 것이 복음주의 신학의 중요한 업적이다.
한편, 복음주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성적 빈곤이다. 복음주의는 폭 넓고 심오한 지성적 노력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비판적 분석과 진지한 성찰 보다, 문제들을 단순화하거나, 영감과 은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세대주의, 근본주의, 케직운동, 오순절주의 등은 복음주의 생존 전략들이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들을 보존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반지성주의적 경향을 지닌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대중적 차원에서는 큰 성과를 이룩했으나 지성계나 문화계 상류층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제2차 대전을 깃점으로 근본주의가 쇠퇴하고, 복음주의가 부흥되는 과정에 교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약해지고 있다. 그것이 복음주의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복음주의의 정체감을 보존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복음주의 운동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복음주의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부터 그 명칭이 유래된 것이므로, 그에 맞게 복음 위에 서야 한다. 또한 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청교도운동, 경건주의, 부흥운동 등 그 계보와 역사 속에서 다양한 자원들을 발견하여 세로운 세기를 대비해야 한다.
현대 후기는 근본주의와 현대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를 필요로 한다. 한스 큉에 따르면 "교회는 근본이 없는 현대주의와 현대성 없는 근본주의 사이에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 시대적 요구를 이상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복음주의다. 기독교의 미래는 복음주의 운동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