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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ing Worship, 2박 3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며..."리더의 삶의 태도" NWM 사무총장 에즈라 김목사(막6;14-29)중심으로....

"지금은 2박 3일의 시간이 끝내는 시간이지만, 다시 시작하는 "파송의 시간"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이다."

희망을 주는 리더가 되라.....리더는 원칙을 진실하게 실현하라.....리더는 용서할 수 있는 자가 되어라.!


예수님 당시 유대 백성들에게 최고의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로마 황제가 있었고, 그리고 실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총독과 분봉왕,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이들 모두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특히 이두메 출신의 헤롯 대왕은 10인의 아내를 두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아주 잔인하고 사악한 왕이었습니다. 권력욕이 대단하여 아내와 자식까지 죽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할 때 어린 아이를 학살한 장본인입니다.

그가 B.C. 4년에 악질에 걸려 70세로 죽자 세 아들이 나라를 나누어 차지하였습니다. 그 중 오늘 성경에 나오는 헤롯 안디바는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 출신의 어머니 말타케 사이에 태어난(B. C 20년경) 헤롯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헤롯 대왕 사후(死後)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어 근 40년간(B. C. 4-A. D. 37년)을 통치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권력자가 되면 무엇인가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그는 분봉왕이 되자 대규모 건설 사업을 통해 당시 폐허나 다름없었던 도시들(디베랴, 리비아스 등)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혈연에 얽매여 의인을 죽입니다. 자기 출세와 타락적 향락에 안주합니다. 진정 관심을 가져야할 국민의 평안과 공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27절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 바른 지도자, 나라를 건강하게 깨어있게 만드는 선지자 세례 요한을 죽입니다.

무자비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세례 요한을 처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8절을 봅니다. 헤롯 안디바는 자신이 이복 동생의 아내이자 조카인 헤로디아와 더불어 통간하고 또 그러한 불법을 정당화하기 위해 헤로디아와 정식으로 재혼하였습니다.

이것을 세례 요한이 지적했습니다.

헤롯의 행위는 간음과 근친상간을 금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헤롯은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는데 이 지적에 더욱 악감을 품은 자는 그의 아내였습니다.


19절입니다.

죽이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면 끝까지 감추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상대를 제거함으로 자신의 죄가 감추어질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그런데 왜 죽이지 못합니까,

20절입니다..

수치를 드러내는 그를 백성들이 의인으로 신뢰하고 있으니 참아 죽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왔습니다.


21절입니다.

남편 헤롯 왕의 생일 잔치가 대신들과 함께 베풀어졌습니다. 딸이 춤을 춥니다. 아주 만족해했습니다. 그리고는 딸의 요구에 따라 세례 요한을 참수형에 처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부정을 감추고 싶어하는 권력자 헤롯과 헤로디아와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음모에 의해 참수당했습니다. 그가 바른 지도자였다면 단호하게 딸의 요구를 거절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그 가정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는 백성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민족을 바르게 이끄러야 할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부정을 감추고 부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는데만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주는 리더가 되라

앞에서 이끄는 리더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따르는 사람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합니다.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태통령, 목사, 부모, 사장은 따르는 사람을 절망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참된 리더는 가야할 길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여 그 길로 인도하여 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가도록 설득할 뿐 아니라 그곳까지 데리고 가는 추진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한 목표점을 제시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절망과 소망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부정과 긍정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리더는 어떤 상황이든 소망의 관점에서 긍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위치가 그렇게 바라보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눈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30%의 긍정적인 감정, 70%의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무언가를 바라본다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우리 인간은 하루에 5만~6만 가지의 생각을 하고 그 많은 생각 중에 75%는 부정적인 생각이고 25%는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관리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누구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말을 오래 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말은 오래 하지 못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은 곧 지루해 하고 힘들어합니다. 리더는 긍정적인 말을 하려면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비전이 중시되고 있다. 비전가가 되기는 쉽지 않지만,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한 분야의 방향을 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잠 10:28)”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소망을 주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우리가 머무는 공동체에서 비전 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꿈꾸는 자 요셉처럼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사모하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모세처럼 우리 주변을 희망의 공동체로 만들어야 합니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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