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주일을 거룩히 지킬 것
1. 주일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의 당연한 의무이니(행 20:7, 고전 16:2, 계 1:10), 엿새동안 육신의 모든 사업을 계획성 있게 경영함으로 성경에 가르친 바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없게 할 것이다(출 20:8-11).
2. 주일에 사용될 식품과 기타 필요로 하는 것도 그전에 미리 준비하고, 이 날에는 가족이나 고용인으로 하여금 공동 예배에 참석하는 일과 주일을 거룩히 함에 구애가 되지 않도록 배려함이 옳다.
3. 주일 아침에는 개인으로나 가정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지교회 목사의 말씀 사역이 은혜로운 봉사가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엡 6:19), 공동 예배 행사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은혜가 임하기 위해 기도할 것이다.
4. 경건한 태도로 공동 예배를 마친 후에 이날 남은 시간은 신령한 일과 사랑을 행하는 데 사용할 수 있으니, 곧 묵상 기도와 성경 읽기와 성경 문답과 신앙 문제의 상담과 찬송함과 병자를 방문함과 구제함과 전도함이다.
5. 이 날에는 종일토록 거룩히 안식하고 다만 부득이한 일이나 자비를 베푸는 일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영리(營利)를 위한 일이나 육신의 쾌락은 폐할 것이다(출 20:10, 사 58:13).
제 2 장 교회 회집과 예배 석상에서의 신자들의 행위
1. 예배시에는 회중이 준비된 심령으로 모여 어떤 이유로든지 거룩한 규례를 행하는 데서 빠지지 말 것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
2. 예배를 위한 모임에 신자들은 단정한 옷차림과 경건한 태도로 참여해야 되나니, 그들은
(1) 주님의 날에 드리는 예배는 정한 시간 전에 참석하여 끝까지 참여함이 옳다.
(2) 하나님의 무한하신 엄위를 의식하면서 자기들의 무가치를 느껴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도우심과 받아 주심을 간구해야 하며,
(3) 인도자의 읽는 말씀 외에 다른 것에 주목하지 말 것이며,
(4) 더욱이 귓속말이나 상담이나 인사하는 것도 삼가야 하며,
(5) 강단 외에 다른 것을 주의해 본다든지, 졸든지, 그밖에 경건치 않은 행위를 자제해야 하며,
(6) 예배식에 들어온 뒤에는 사적으로 어떤 예배 행위를 따로 취하는 것도 자제해야 되며,
(7) 어린 아이들은(예배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에 있어서) 부모가 데리고 있음이 좋으니, 한 가족이 예배석에 같이 모여 있는 것이 마땅하다.
3. 예배시간을 주로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긴장된 기회이다. 전도서 5:1-2에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저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한다.
하박국 2:20에 말하기를,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하였고, 스가랴 2:13에 말하기를,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은 구약의 말씀이지만 신약의 말씀도 예배 석상의 질서를 명한다. 고린도전서 14:40에 말하기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한다. 여기 "적당하게"라는 헬라어 원어( )는 '합당하게', 혹은 '존경스럽게'란 뜻을 가진다. 이것은 규모 있게 행함을 가리킨다.
제 3 장 공예배 시에 설교 본문 이외의 성경봉독
1. 회중 가운데서 성경을 봉독함은 공예배 순서의 한 부분이다(느 8:1-3). 이것은 설교 본문 봉독과는 달리 회중의 성경 지식의 자라남을 목적한 것으로서 성경 어느 부분을 매주 얼마씩 계속 읽어 가도록 함이다. 그 읽는 분량에 있어서는 예배시간에 맞추어 적절히 정할 것이다.
2. 봉독할 성경은 신구약 성경이고(가경은 제외됨), 가장 잘 번역된 한글 성경으로써 분명히 읽음으로 온 회중으로 하여금 잘 알도록 해야 된다.
3. 낭독자는 성경책만 들여다보고 읽을 것이 아니라, 머리를 들고 회중을 가끔 주목하기도 하면서 알아듣도록 분명히 읽어야 된다. 이처럼 정신차려서 성경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복을 받는다(계 1:3).
4. 예배 순서에 있어서 설교 본문과 별도로 가지는 성경봉독은 초대 교회 때부터 있어 왔다. 고대 교회는 이 순서를 중요시하였으니 그 이유는, 회중에게 성경전서를 골고루 알도록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 4 장 시와 찬송
1. 거룩한 음악이 예배에 사용된 것은 성경에 있는 사실이다.
(1) 이스라엘의 출애굽 운동과 또는 광야 여행 때에 나타남(출 15:1-21, 민 21:17, 신 32:1-43).
(2) 예루살렘에서 예배할 때에 나타남(삼하 6:5, 대하 5:11-14, 시 150:1-5).
(3) 성전이 정화된 때에 나타남(대하 29:25-30).
(4) 둘째 성전이 세워진 때에 나타남(스 3:10-13, 7:7-10).
(5) 예수님이 성만찬을 잡수시던 때에 나타남(마 26:26-30).
(6) 사도 시대의 교회에 나타남(행 2:47, 고전 14:26, 엡 5:19, 골 3:16-17, 히 13:15).
2. 예배당에서 공동으로 시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책임이다. 찬송가에는 성경에 합한 말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언사가 사용되어야 한다(엡 5:19).
3. 하나님을 찬송하는 노래를 부를 때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자들이 그 부르는 찬송의 뜻을 깨닫고 은혜롭게 찬송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을 상대한 찬송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온 교우들이 반드시 찬송책을 준비하여 함께 찬송하는 것이 마땅하다.
4. 공식 예배 때에 찬송하는 시간은 목사 혹은 교역자가 조심하여 정할 것이다. 그 시간을 적절히 배정하여 교인 전체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는 순서를 통하여 귀한 은혜를 받도록 함이 중요하다.
5. 교회가 찬송가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교역자는
(1) 교인으로 하여금 은혜로운 찬송가를 반복하여 부르게 함으로 그 가사를 익히도록 하고, 그 가사의 뜻도 깨닫게 해야 됨.
(2) 교인들에게 곡조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찬송가를 바로 부르도록 훈련시켜야 됨.
(3) 찬송 부르는 기회에 교인에게 실생활의 성화(聖化)를 격려해야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름다운 찬송은 일상 생활에서 신앙을 지켜 경건하게 사는 자의 거짓되지 않은 입술의 찬송이다.
제 5 장 공예배 시의 기도
1. 기 원
기원은 짧아야 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인도자는 언제나 강단에 나아가기 전에 시간을 내어 미리 이런 기도를 준비해야 된다.
2. 공식 기도
찬송과 설교 어간에 드리는 기도는 공식 기도이다.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간구인 만큼 기도자는 모든 공적인 사항들을 들어 구해야 된다. 기도자는 여러 날 전부터 기구건들을 생각해 두어야 하며, 그 표현들도 성경적으로 준비해야 된다. 사욕을 위한 기도는 금물이다(약 4:2-3)
공식기도는 비교적 짧아야 되지만 그 간구의 내용은 광범위한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을 구하고, 교회의 성장, 순결, 화평, 그리고 교우들 중 병자들을 위한 간구와 세계인류의 회개, 선교사업의 확장, 환난 당한 자들을 위한 기도를 할 것이다.
(1) 영광 돌림: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송영함인데 성경에 나타난 내용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라고 한 말씀(딤전 1:17)과 같은 것이다. 송영의 기도는 특별히 계시록에 많다(계 4:8,11, 5:12,13, 7:12, 11:17, 15:3-4). 실생활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낮출수록 하나님은 높임이 되고 송영을 받으신다.
(2) 감사함: 감사건들을 생각해 찾으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고린도전서 4:7에 말하기를,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뇨"라고 한다.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보통 은혜와 특수 은혜와 영적 은혜와 기타 어떤 은혜든지 총칭한다. 특별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인하여 감사해야 된다(고후 9:15).
(3) 자복함: 기도자 자신이 그 현재의 교회, 혹은 교계의 죄와 허물을 통찰함으로 겸손히 고백해야 한다. 기도할 때에 특히 주의할 것은 어느 개인의 실수를 의식하고 말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공식 기도의 언사는 결코 직접 간접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 더욱이 회개의 기도는 그 기도자 자신을 포함시켜 "우리"라는 대명사로 말하는 것이 건덕상 유익하다. 남들의 죄에 대하여 "나"자신도 연대적 책임을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 예를 들면, 다니엘의 기도(단 9:3-19)에 "우리"란 말이 대략 27회나 나온다. 그 기도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것인데, 다니엘은 그 죄악에 대하여 연대 책임을 진 것이다. 잠언 28:13에 말하기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한다.
(4) 확신으로 간구함: 간구하는 자의 확신의 근거로서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①성경에 기록된 약속에 근거함.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는 말씀(대하 16:9)과 같은 것이 약속이다.
②우리는 부족하고 하나님은 풍성하신 사실에 근거하여 기도함(시 62:9-12, 103:13-14, 고후 8:9).
③예수님의 공로와 우리를 위한 그의 간구를 근거하여 기도함(롬 8:34, 히 7:25, 요일 2:1).
④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면 그 자신이 영광 받으신다는 진리에 근거하여 기도함. 시편 50:15은 말하기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한다.
제 6 장 설 교
1. 설교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의 능력이다. 그것을 전달하는 설교는 복음 사역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이다. 설교자가 그것을 잘함으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이 되며(딤후 2:15), 자기 자신과 듣는 자들을 구원한다(딤전 4:16).
2. 설교자의 자격
(1) 성경 원어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되며,
(2) 신학을 전반적으로 알고,
(3) 또한 신학에 수종드는 학문(문학과 과학)에도 상당한 지식이 있어야 되며,
(4)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일반 신자들의 수준 이상이어야 하며,
(5) 늘 기도로 구해야 할 성령의 조명과 기타 건덕상 필요한 인격이 갖추어져야 한다.
3. 설교 조직
서론은 간단명료해야 되며, 그것은 본문에서 끌어내야 된다. 본문을 분해함에 있어서 대소지를 많이 내놓으면 청중이 기억하기 어려우며, 명확하지 않은 문구를 사용함은 청중의 마음에 부담만 된다.
4. 설교의 명백성
이 점에 있어서 예화 등이 사용된다. 예화는 무엇보다 진리를 깨닫도록 밝히는 종류여야 하며, 영적 감동을 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편견 때문에 본문에 의심날 만한 것이 발견될 경우, 그것을 잘 해명해야 한다.
5. 일반적 주의 사항
(1) 진리를 바로 분변할 것(딤후 2:15)
(2) 교리와 행위에 대하여 밝히 지도해 줄 것
(3) 목적은 명확히 한 가지로 정하고, 그 설명은 쉬운 말로 할 것
(4) 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지 말 것
(5) 설교자는 자기의 지식이나 재능을 자랑하지 말 것
(6) 설교자는 그 행실로 모본이 될 것
(7) 지교회의 설교는 노회에서 보낸 사람과 당회나 그 교회 담임 목사가 허락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제 7 장 헌 금
1.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모든 사람과 물건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나 재산을 관리하는 관리인에 불과하며,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만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사업이 널리, 올바로 성취되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수입 중 얼마(적어도 10분지 1이상)를 헌금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단(一端)으로 삼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리스도 신자답게 바로 사용해야 한다(고후 9:5-7).
2. 국내외에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사업을 위하여 또 빈민 구제를 위하여 분에 맞는 연보를 규칙적으로 바치는 것은 성경이 분명히 명령하는 의무인 동시에 그것은 신자의 특권이다(고전 16:1-2).
3. 헌금 경영은 제직회의 결의대로 할 것이요, 목사는 헌금하는 일을 예배의 일부분이 되게 하기 위하여 헌금 전이나 혹은 헌금 후에 간단한 기도로 감사할 것이다.
4. 그 수납금은 공동의회에서 통과된 예산대로 제직회가 지출하되, 교회 각 부서와 기타 자선사업과 신령한 사업을 위하여 할 것이다. 혹, 헌금하는 교우가 특별한 소원이 있을 때에는 그의 원에 따라 실행할 것이다.
5. 주일학교나 기타 부속회와 기관에서 기관 사업이나 기타 목적으로 헌금하는 일은 당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당회의 허락 없이 헌금이나 모금하는 것을 금한다.
6. 목사마다 그의 섬기는 교회가 감사한 마음으로 헌금하도록 성경으로 양육하는 것이 마땅하니, 신도마다 다소를 물론하고 자기의 힘대로 바치게 할 것이다.
7. 성경은 가난한 자를 위한 헌금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행 11:27-30, 롬 15:25-29, 고전 16:1-4, 고후 8:1-15, 갈 2:10). 그리고 기타 주님의 일을 위한 헌금에 대하여도 성경은 말한다(마 6:20, 막 12:41-44,눅 8:3).
8. 헌금 행위에 대한 성경의 교훈은 헌금자의 자의적 헌납(自意的獻納)을 강조한다(출 25:2, 35:5, 21, 22, 29, 36:3, 대상 29:14, 16, 대하 31:5-6, 느 13:12, 눅 21:3-4, 행 4:34-37, 고후 8:11, 9:7). 강요(强要)에 의하여 헌금하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헌금하거나, 의식에 매어 헌금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다(사 1:11-13, 마 23:23, 행 5:1-11).
제 8 장 유아 세례
1. 유아 세례는 공연히 지체할 것도 아니요, 어떠한 형편을 물론하고 평신도가 베풀 수 없고 반드시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만이 베푼다.
2. 세례는 교회의 모든 회중 앞에서 베푸는 것이 통례이다.
3. 자기 자녀의 세례 받기를 원하는 자는 그 뜻을 목사에게 미리 고하고, 그 부모 중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다 그 세례 받을 유아를 데리고 참석할 것이다.
4. 세례 베풀기 전에 목사는 성례의 성질과 소용과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니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인표이다.
(1) 구약 때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할례를 받는 특권이 있었던 것과 같이(창 17:9-10) 복음의 은혜 아래 있는 성도의 자손에게 이 예식을 행할 특권이 있다.
(2) 그리스도께서 만국 백성에게 명하사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다(마 28:19),
(3) 유아들에게 축복하셔서 천국의 백성은 이와 같다 하셨으며(마 19:14),
(4) 복음의 약속은 성도와 그 집안에 미친다고 하셨고(행 2:39, 16:31),
(5) 사도들도 이와 같이 집안 세례를 베풀었다(행 16:15).
우리의 성품은 죄와 허물로 더럽게 된 것을 인하여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로 씻으며 성령의 권능으로 성결함을 얻어야 한다. 목사는 또한 다음과 같이 그 부모를 권면하여 삼가 부모의 책임을 다하라고 해야 한다. 즉,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가르치며, 신구약 성경에 가르친 거룩한 종교의 원리대로 가르칠 것이니 이 원리의 요령은 웨스트민스터 신경과 대ㆍ소요리문답서에 간단히 포함되어 있은 즉 이 책들은 부모의 직분을 도와주는 것이다.
(2)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며 친히 그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3) 그 아이의 눈 앞에 충성함과 경건함의 본을 보임으로 그 아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시는 힘을 얻어 힘써 주님의 교양과 훈계 안에서 자라게 되도록 하라고 할 것이다.
5. 목사는 다음과 같이 그 부모에게 묻는다.
(1) 그대는 이 아이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필요함을 인식합니까?
(2) 그대는 이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앙모하며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진력하는 것과 같이 이 아이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만 구원 얻을 줄 믿습니까?
(3) 그대는 지금 완전히 이 아이를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며 이 아이를 양육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인식합니까?
(4) 그대는 이 아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기로 서약합니까?
(5) 그대는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기로 서약합니까?
(6) 그대는 이 아이 앞에서 경건한 믿음과 행위의 본을 보이기로 서약합니까?
(7) 그대는 이 아이를 교회 기관에 참석하게 하여 주님의 교훈과 양육을 받으면서 자라게 할 것을 서약합니까?
6. 그 후에는 목사가 물로 그 아이의 머리에 세례를 주면서,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는 사람의 아들(혹은 딸) ○○○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한다. 예식이 끝난 후 목사는 축복하는 기도를 올린 다음 그 세례 받은 유아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 유아 세례 교인 된 것을 공포한다.
세례는 회중 앞에서 베푸는 것이 마땅하나 특별한 경우에는 사가에서도 행할 수 있으니, 목사가 그 일에 대하여 결정할 것이다.
7. 유아 세례 집례는 목사만이 할 수 있다. 성경을 보면 사도들이 세례를 실행하였다(요 4:2, 마 28:19, 막 16:15-16, 행 2:38). 다시 말하면, 세례는 말씀을 전하는 정규적인 사역자들이 실시하였다. 교회 시대에 목사들이 사도급 사역자는 아니지만 말씀 사역에 있어서 대표자들이다. 그러므로 유아 세례는 성인 세례와 마찬가지로 목사들만이 베풀도록 된 것이다. 사도행전 8:38을 보면, 빌립은 집사였으나 에티오피아의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런데 우리가 빌립을 집사로만 볼 수 없고, 그 때의 특수 성직이었던 "전도자"( )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전도자"란 사역자가 사도시대에 있어서 교회가 세운 직위는 아닐지 모르나,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서 전도에 종사했던 사역자였다(엡 4:11, 딤후 4:5). 이런 사역자는 그 때에 사도에게 순종하면서도 사도나 선지자처럼 단회적 성격의 사역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의 "전도자"는 오늘날의 "전도사"와 다르다.
제 9 장 성인 세례
1. 세례의 중요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효과를 가짐에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을 행하라고 주님이 명하셨기 때문이다(마 28:19, 고전 11:23-26). 그가 명령하신 대로 시행되는 세례와 성찬은 예식적으로 나타내는 행동 형태의 하나님 말씀이다.
세례가 상징적으로 실행되기는 하지만 거룩한 사건이고 참된 것인 만큼 집례자와 수세자는 구속사건과 관계하는 신중을 기해야 된다. 그러므로 세례를 실시함에 있어서도 세례 받을 자에게 미리 상당한 기간을 주어 진리 지식을 배우게 하고 또 기도로 준비케 해야 된다.
2. 누구를 막론하고 성인으로서 세례 받고 입교하려고 하면 성경을 상당히 알아야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리스도 신앙이 진실함에 대하여 만족한 증거를 당회 앞에 나타내야 된다. 나중에는 교회 공중 앞에서 자기의 신앙을 고백한 후에 목사가 세례를 베푸는 것이 통례이다.
3. 세례 후보자의 복음진리 지식을 확인하지 않은 채 쉽사리 세례를 베푸는 것은 성례를 소홀히 여기는 죄이다. 그것은 결국 교회를 부패케 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4. 세례 받을 자의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은 문답으로 성립된다. 세례식의 집례자는 세례 받을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1) 그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줄 알며 당연히 그의 진노를 받을 만하나, 그의 크신 자비하심으로 구원 얻을 것 밖에 소망이 없는 자인 줄 압니까?
(2) 그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죄인의 구주 되시는 줄을 믿으며, 복음에 말한 바와 같이 구원하실 이는 다만 예수 그리스도 뿐이신 줄 알고 믿으며 그에게만 의지하기로 서약합니까?
(3) 그대들은 지금 성령의 은혜만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좇는 자가 되어 그대로 힘써 행하며 모든 죄를 버리며 그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라 살기로 서약합니까?
(4) 그대들은 교회의 관할과 치리를 복종하고 그 청결과 화평함을 위하여 힘쓰기로 서약합니까?
5. 목사는 손에 물을 조금 취하여 세례 받을 사람의 머리를 적시고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는 ○○○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한다. 그 뒤에 목사는 기도하고 세례 받은 이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의 세례교인 됨을 공포한다.
6. 세례는 교회 공동체를 상대한 행사이니 만큼 교회 공석상에서 시행됨이 원칙이다. 다만, 세례 받을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도 예배에 출석할 수 없는 부득이한 사정(질병이나 기타 사정)이 있을 때에는 별도로 고려된다. 이 경우에도 그것이 교회적인 공직 행사가 되기 위하여 목사는 물론이고 교회의 대표자들이 그 본인의 처소로 가서 세례를 베풀 수 있다(행 8:36-38)
제 10 장 입교 예식
1. 유아 세례를 받은 자는 성년이 되기까지 진리 지식과 경건한 생활을 배우며, 입교 준비를 해야 된다. 그는 교리 공부와 기도하는 법을 잘 배울 뿐 아니라, 실생활에 있어서 죄를 미워하며 하나님(그리스도)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가 입교할 연령에 이르기까지 부모는 그에게 늘 기억시킬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출생 때부터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에 처해 있음을 명백히 또는 계속 인식시키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의 자녀 교육이 그러했다(출 12:26-27, 신 6:7, 시 78:4, 6-8). 다시 말하면, 부모나 교회가 입교 행사를 중대시해야 되는 것만큼, 입교할 자로 하여금 긴장이 있게 그 일을 준비토록 하여, 그의 평생의 대사로 알고 입교식에 임하게 하려는 것이다.
2. 소년의 성년 되는 연기(年期)는 15세 이상으로 하고, 일반 입교인의 자격을 살펴 작정하는 책임은 그 당회에 있다.
3. 신앙을 공식으로 고백할 때가 이르러 당회 앞에 정식으로 고백하고 당회의 승인을 받은 자들이 교회 앞에 섰을 때 목사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목사는 당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당회의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자들을 교회 앞에 세우고 성인 세례 때와 같은 서약을 하게 한다.
목사는 문답을 마친 후 이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올린 다음 말하기를, "일찍이 유아세례를 받고 성인이 되어 오늘 교회 앞에 신앙고백을 한 이들(○○○외 몇 사람)은 이제부터 믿음의 권속들 가운데서 그 유업에 관한 특권과 책임을 완전히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 입교인 됨을 공포합니다"라고 한다.
제 11 장 성찬 예식
1. 성찬 예식은 예수님의 거룩한 제도와 명령과 모본을 따라서 실시된다.
2. 성찬은 종종 베푸는 것이 좋으나 연중 몇 회를 거행하든지 각 지교회 당회가 작정하되 유익한 대로 정할 것이다.
3. 성찬을 시행하려 할 때는 교회에 공식 광고함이 마땅하니 적어도 일주일 전에 광고할 것이다. 그 광고하는 날에나 혹 그 주간 어느 날에 예비 예배를 통하여 모든 성도로 하여금 성찬의 의미를 알게 하여 합당한 마음으로 성찬에 참석케 할 것이다.
4. 목사가 설교한 뒤에 다음과 같이 회중을 권면할 것이다.
"이 성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유익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1) 현세의 나그네 생활과 영적 투쟁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위로와 힘이 계속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지식과 신앙과 회개와 사랑으로 성찬에 임하여 그리스도와 그의 도우심을 갈망해야 됩니다.
(2) 우리가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십니까?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성찬에 참여하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고전 11:28-29)이라고 하였습니다.
5. 진리 지식이 부족한 자, 수치스러운 범죄가 있는 자, 망령된 자, 성령을 거스르는 자, 양심적 판단을 거스른 자는 성찬에 참여하지 말 것이다(고전 11:27-32).
그러나 진실되게 회개하는 자, 더욱 은혜 속에서 장성하려고 사모하는 자는 마땅히 성찬에 참여할 수 있다고 목사는 격려해야 된다(마 11:28).
6. 떡과 포도즙을 상 위에 비치한 후 그 상을 단정하게 덮어야 한다. 그리고 참여할 신자의 좌석을 정돈하고 장로는 편리한 장소에 있게 한 후 목사가 감사 기도를 함으로 떡과 포도즙을 성별할 것이다.
목사가 분별하려고 할 때에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으므로 나도 지금 그의 이름으로 이 떡을 나누어 드리니 받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하셨습니다" 한다. 그가 장로에게 주어 교우들로 나누게 한 후 또 잔을 들고 말하기를, "우리 구주께서도 또한 잔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하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고 하셨습니다" 한다. 전과 같이 장로에게 주어 교우들로 나누게 할 것이다.
7. 성찬을 받는 순서는 모든 교우들이 받은 후에 목사가 받고 그 다음에 목사가 장로들에게 주는 것도 합당하다. 그러나 목사가 먼저 받고 그 다음에 교우들이 받고, 그 다음에 목사가 장로에게 줌이 좋다. 이렇게 성찬에 참여할 자 전원이 먼저 떡을 받아 가지고 기다리다가 집례자의 지시에 따라서 동시에 먹고, 다음에 잔도 그와 같이 받아서 일제히 마심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할 때에 교회의 한 몸된 일치성을 확고히 한다(고전 10:16-17).
8. 집례자는 교우들을 권하여
(1)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 은혜를 기억하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할 것이요,
(2) 신분이 합당치 않아서 성찬에 동참하지 못한 교우들로 하여금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 생활이 얼마나 위험한 사실을 기억시켜야 하며,
(3) 집례자는 다음 사항들을 들어 기도할 것이다. ①성찬을 인하여 감사함. ②성찬 거행 중 나타난 결정에 대하여 용서를 구함. ③성찬에 참여한 자들의 인격과 행사를 받아 주시기를 원함. ④그들이 받은 은혜를 굳게 잡고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게 되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함. ⑤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나타내는 동시에, 그의 생명을 나타내게 해 주시기를 구함. ⑥그들의 생활의 빛이 불신 세계에 비취어 거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
제 12 장 축복 기도(고후 13:13)
1. 구약시대 축복 기도의 유래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의 잘됨을 기원함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높은 자로서 그를 축복하였다(창 14:18-19, 히 7:1,7). 멜기세덱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니 만큼 아브라함보다 큰 자였다. 그리고 아론은 대제사장이었던 점에서 역시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히 9:9-10). 그러니 만큼 그도 이스라엘을 축복할 수 있었다(민 6:22-27). 그뿐 아니라 족장들도 그 가족들에게 제사장 격이었다. 그들은 그 자손들을 축복하였다(히 11:20-21).
그러나 신약시대 일반 신자들이나 일반 목사들은 위에 언급된 자들과 같이 동급이 있는 것이 아니다. 칼빈주의 교회가 사용하는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서에 울시너스(Ursinus)는 주석하기를, 목사를 제 3위치에 놓았었다는 뜻으로 말한다. 즉,
(1) 선지자와 사도: 이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직접 불러서 썼는데 그들이 성경도 기록하였다.
(2) 사도의 동역자들: 이들은 사도가 직접 불러 동역한 사람들인데 디모데, 누가, 디도 등이다.
(3) 교회가 불러서 세운 자들: 이는 목사, 장로, 집사 등이다. 목사들이 교회보다 높은 자들이 아니고 교회의 지체들 중 하나로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사역과 치리 사역을 받들어 교회를 섬기는 자이다(고후 4:5).
2. 신약시대 축도의 유래
성경의 예배 순서로서의 축도란 것이 기록된 데가 없다(고전 14:26-33). 다만 고린도후서 13:13에 교회 상대 서신의 결론적 축사도 나와 있으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지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 "있을 지어다"란 말은 헬라 원문에는 없는 것인데 보역한 것이다.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축도해 온 것이 통례이다. 목사는 교회가 세웠으니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사도와 다르다. 그의 위치는 일반 교우와 마찬가지이고(벧전 2:9), 다만 가르치는 은사에 의하여 인도자격으로 봉사한다(벧전 4:10-11,5:3) 그의 인도자격은 안내자의 성질을 지녔고 지배자는 아니다.
3. 축도자의 자격
장로교에서는 목사만이 축도할 수 있다고 믿어 온다. 인도자 위치에 있는 목사가 그런 기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목사의 직위 그것에서만 그런 기도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하면 안된다. 그런 사상은 사제주의이다. 목사의 직위는 그의 겸손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는 높기 때문에 축도를 한다'고 생각하는 목사가 있다면 사실상 그에게는 축도할 자격이 없다. 교회의 세움을 받아 교회를 봉사하는 사역자는 약할 그 때에 강해지고(고후 12:10), 겸손할 때에 존귀해지고(잠 15:33), 충성할 때에 하나님에게 쓰임이 된다(잠 25:13, 고전 4:1-2). 평소에 겸손한 목사라도 시험을 받아서 심령에 흔들림을 받았을 때에는 축도 대신에 주기도로 예배를 폐할 수 있다.
제 13 장 주일 학교
1. 주일 학교는 주일마다 적당한 시간에 유년으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분반하여 모여서 성경은 물론이고 신조나 헌법 등도 배우는 교회 학교이다.
2. 주일 학교에서는 국내 선교 또는 외국 선교와 기타 영적 목적으로 헌금도 하도록 장려한다.
3. 부모들이 신자라면 그 자녀들로 하여금 유년 시절부터 주일 학교에 근실히 출석하도록 장려할 책임이 있다.
4. 주일 학교는 당회의 관할을 받아야 하나니,
(1) 당회는 교우들 중에서 진리 지식이 있는 자들을 교사로 택할 것이고,
(2) 연말에는 한 해의 업적을 검토하여 교사들을 임명해야 하며,
(3) 당회원이 그 학교에 교장(혹은 교감)이 되며,
(4) 당회원들은 각기 직임대로 각 주일 학교 시간에 참석하여 교사와 학생들을 격려함과, 기도로 협력할 것이며,
(5) 담임 목사는 주일학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필 뿐 아니라, 종종 유년과 중ㆍ고등 학생들의 예배시간에 참석하여 성경을 직접 가르침으로 그들의 신앙증진을 도모할 것이다.
5. 주일 학교 교사는 무료 봉사이기 때문에 더욱 주님을 위하는 보람을 느끼며 믿음이 진실해야 되고 또 그 책임에 근실해야 된다.
(1) 성경 중심으로 공과를 잘 준비해야 되며, 또 자기의 맡은 학생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하며,
(2) 순종이 부족한 학생을 권면하며,
(3) 병든 학생을 위하여 심방, 위로, 기도해야 하고,
(4) 계획성 있게 학생들을 동원하여 어린이들에게 전도하여 주일학교에 데려오도록 힘써야 한다.
6. 주일학교는 주로 두 가지 목적을 가진다.
(1) 학자 양성보다는 신자들의 믿음과 경건을 배양하는 것이고,
(2) 불신자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복음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수방법은 건조한 연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구원의 도리를 알기 쉽게, 또 감화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제 14 장 기도회
1. 정기 기도회
이것은 수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막 1:35) 같은 것이다. 이 기도회에서는 예배순서 중에 참가 회원들로 하여금 공적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몇 차례 합심기도, 혹은 몇 개인이 대표로 기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때에 대표로 기도하는 이들은,
(1) 사회자가 자기에게 부탁한 기도제목과 관련된 내용만 기도할 것이며,
(2) 기도자들은 명심하여 간단하게 기도할 것이다(마 6:7).
2. 특수 기도회(행 12:5, 삼상 7:5-9)
이것은 교회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역경이나 난관을 만났을 때에 개최하는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 명심할 것은
(1) 인도자들은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바로 판단될 때에 개최할 것이며,
(2) 이런 기도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도할 기회를 줄 것이며,
(3) 하나님께 매어 달리는 간절한 기도회가 되도록 할 것이다.
3. 철야 기도회
예수님은 밤을 맞도록 기도를 하신 적이 있었다(눅 6:12). 회중이 이런 기도회를 가지는 때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원하여 이 기도회를 가지는 신자들이 명심할 것이 있다.
(1) 개인주의적인 사욕으로나 일부 신자들의 편파적인 동기로 이런 기도회를 가짐은 금물이다. 그런 회집은 교회 안에 당파심을 배양하기 쉽다.
(2) 철야기도회는 공명 정대한 교회유익을 위하여 실행되어야 한다.
(3) 질서 정연하여야 하고 세속적인 담화는 금지되어야 하며 은혜로운 간증의 순서는 필요하다.
(4) 무리하게 철야할 것은 없고 은혜로운 회집이 되도록 배려해야 된다.
(5) 신자들이 철야기도란 명목을 내세우고 그 밤에 피곤해지기만 하므로 그 다음날의 사무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말 것이다. 필요하면 밤이 늦도록 이런 기도회를 가지고 그 뒤에는 집으로 돌아가서 쉼으로 그 다음날의 책임 수행에 지장이 없게 할 것이다.
4. 교회적 행사로서의 모든 기도회는 당회의 주관이나 혹은 당회의 허락 하에 모여야 한다.
제 15 장 금식일과 감사일
금식일은 언제 선포되어야 하는가? 어떤 위급한 심판이 국민에게 임할 때나 전 교회적으로 시행해야 할 중대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만한 때이다(에 4:16, 행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