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되었다
우리교회에 한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사람에 대한 피해의식이 항상 있었다 누가 자기에게 친절을 배풀어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누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말을 하기만 하면 그것 때문에 꽁하며 마음에 칼을 갈고 있다가 순간 기회가 포착되면 어김없이 공격을 감행하셨다
나이가 연로하시기 때문에 그분에 공격에 응수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사람과의 관계를 이런식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상담도 해보고 야단도 쳐보고 달래보기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 어김없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목사님은 참 좋으신 분인데 이집사 김집사 박집사 구권사 이권사 등등은 사람이 아주 못되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체험하였는지 모르겠어요"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비방하고 헐뜯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관심을 보여 드리고 심방도 하며 이렇게 저렇게 해서 2-3년간을 갈 수 있었다
올 것이 왔는지 어느 날 부터인가 교회 출석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셨고 교회에 아무런 통보없이 교회를 훌쩍 떠나버리셨다
사람 때문에 시험이 들었다
사람 때문에 넘어진 분이다
이런 분이 어떻게 한 교회의 믿음의 반석처럼 권사가 되었을까
초신자와 같은 분이 아닌가
그렇다 사람과 사람 관계는 참으로 미묘하다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람 때문에 일어나고 사람으로 인하여 생기는 사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학문에서도 대인관계라는 과목이 있을 정도로 대인관계 관계심리학 등 많은 학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로는 21세기의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 사랑의 기술의 저자인 에릭프롬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성공할 때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 많큼 사람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 역시 Nyskc Movement로 인하여 미국 저녁은 물론 전 세계의 많은 목사님들과 관계를 맻고 있다
가깝게는 북미주 만해도 9개의 나이스크 본부들이 세워져 있고 그 외에 남미와 중미 유럽과 오세아니아 중동지방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오세아니아등 많은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목사님들과의 동역으로 관계를 맻고 있다
그중에 가장 가깝고 자주 뵙는 분들도 있다
전화는 물론 자주 만나 는 분들이다
그런데 멀리 떨어져 있으며 별로 대화 할 일도 없다
있다면 문안을 한다든지 혹은 일에 대한 의논 외에는 서로 부딪힐 것이 없어서 그런지 관계에 있어서 나쁘게 보일 것도 없고 볼 수도 없어서 서로의 관계가 나쁘지 않는데 비해 자주 뵙는 분들과는 어쩐지 많은 것들에서 이해가 상충되고 대화의 방향 생각하는 것이 달라 의견이 충동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서로 마음에 앙금이 가라 앉아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만큼 대화 속에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그것으로 찌르고 협박을 하면서 적당한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그 사람이 좋아하는 대화를 고르게 되고 언제 부터인지 그 분에 코드에 맞추어 상대 역할 놀이를 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참 괴롭고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만날 때 두렵고 만나 대화를 하는 동안 상대의 표정이나 관심사항을 살피며 대화를 하니 머리가 아프고 속상하다 그래서 그 이후에 점점 멀어져 가고 상대를 하기가 싫어진다
기억하건데 대인관계가 흔들릴 때를 생각해 보면 “어떻하면 그분들에게 도움을 받을까” 하고 요구하는 마음이 갖었을 때 관계는 무너지고 말았다
또 기도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내 자신에게 은혜가 없을 때가 아니였는가
여기서 심리학자 Rover lee가 말하는 원만한 대인관계 유지 10가지 방법을 보자
1. 사람들을 향해서 말하라. 명랑한 인사말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은 없다.
2. 사람들을 만나면 웃어라. 그러면 같이 웃을 것이다.
3. 사람들을 만나면 이름을 불러라. 그러면 더 친숙해 질 것이다.
4. 친절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
5. 성실한 사람이 되라.
6. 진실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라.
노력한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할 것이다.
7.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라.
8. 서비스를 신속하게 하라. 남을 위해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9. 칭찬을 아끼지 말며 관대한 사람이 되라.
10. 이 모든 것에다 유머와 인내, 그리고 겸손을 더하라.
이 열 가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임을 발견한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말라 겉이 검다 한들 속조차 검을 소냐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고려가 망하자 고려 유신들은 절의를 지키며 초야에 묻혀 망국의 한과, 새 왕조에 가담한 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던졌다. 이에 새 왕조에 가담한 이들은 자기 합리화와 정당성을 글로 나타내었다.
이직은 고려 유신의 한 사람으로 새 조선조의 개국 공신으로 벼슬을 하였다. 두 왕조를 섬긴 자신을 '가마귀'에 비유한 것은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자신의 처신이 바른 것만은 아님을 밝히고자 했고, 속마저 검은 것은 아니라고 함으로써 자신의 양심은 부끄럽지 않음을 강조한 것이다.
겉으로는 군자(君子)인 척하면서 실제 내면은 그렇지 못한 소인(小人)배들을 풍자한 작품이다. 도량이 좁고 한때의 지조와 의리만을 밝히는 이들의 겉다르고 속다름을 훈계한 시조이다.
'까마귀'와 '백로', '겉'과 '속', '희고'와 '검은'은 적절한 대조를 이루어 군자와 소인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섬기며 양심을 보여주고 있다
'가마귀'는 '처신이 올바르지 않아 오해를 살 수도 있지만 양심은 올바른 존재'이고, '백로'는 처신은 올바른 척 하지만 양심은 바르지 못한 존재'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까마귀와 해오라기(白鷺)의 경우와 비교, 곧 우유(寓喩賣 ; allegory)에 의해 겉과 속이 다른 소인배들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비록 까마귀는 겉은 검고 흉악한 모습일지라도 새끼가 다 자란 후에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보답할 정도로 효행(孝行)이 지극한 동물이라 하여 예로부터 흔히 반포조(反哺鳥)라 불리고 있다.
여기에 비해 해오라기는 겉은 청순하고 순결하며 아름다운 듯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 속담의 '빛좋은 개살구'격이라고나 할까. 겉으론 군자인 체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믓한 사람들처럼 나 역시 누구를 판단할 만한 사람은 못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판단하지 말라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그렇다 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 자신이 그분들에게 필요가 되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고 기쁨과 감사가 되지 못한다면 그분들이 나와 왜 동역을 하겠는가
그리고 왜 나와 함께 Nyskc Movement 를 하시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다시 이렇게 내 자신에게 새로운 관계설정을 해 본다
1.너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라
십자가의 고난 죽음을 넘는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2.나를 도움에 필요로 느낄 수 있도록 섬김과 희생을 오히려 감사로 받아드려라
3.도움을 생각지 말고 오히려 그분들에게 기쁨과 감사가 되게 하라
4.성령으로 충만함을 잃지 않도록 힘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