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I.들어가는 글


개혁신학은 루터가 독창적으로 착상했던 것을 칼빈이 조직적 체계화한 것이다. 개혁 정신의 핵심은 중세로마카톨릭교회가 교회제도와 전통과 기구의 권위에 치중함으로써 상실했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다시 회복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신 주권으로 하여금 그 교회와 歷史속에 役事하도록 하자는 데 있다.

보고자는 세계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를 택스터로 하여 제 2부 개혁교회의 고전적인 신앙고백서의 내용과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신앙고백서를 비교 성경, 칭의, 성화, 성찬, 예정, 교회순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II. 정리된 글


1)성경

스위스와 프랑스, 화란, 스코틀랜드 개혁교회의 신양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리를 특별히 강조했다.

성서의 권위가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성령에 의해서 기록된 성서가 교회의 권위 위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에 호소한다. 경전을 구성하고 있는 신적 계시와 인간의 기록문서들 사이의 정확한 관계성은 개혁교회와 로마카톨릭 속에 논쟁의 주제가 되었고 여전히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리의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증언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 자신에 대한 증언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성서의 권위를 교회 위에 두고 있으며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서(Sola Scriptura)만이 개혁신학의 최고의 권위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성경은 성령에 의해서 기록된 신구약성경임을 확인하고 신앙과 사랑을 중심으로 해석하며 성령이 복음을 통하여 역사 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신앙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성경중심임으로 성경전체의 영감된 진리는 이 중심에 의하지 않고는 바르게 해석될 수 없다. 성경의 권위는 진정한 의미의 저자인 하나님께로 난다.

1946년 스코틀랜드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하나님의 말씀의 지고의 재판관임을 선언한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에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을 강조하며 성경으로 성경해석을 이야기하며 기록된 말씀과 선포된 말씀의 내적 조명을 강조하며 외경의 권위를 부정한다.

웨스트민스트 요리문답에서는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의무에 대한 가르침이라 고백한다.

장로교신앙고백서는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대한 규범이라는 것이며 성경은 결코 이 세상의 진리를 말하려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성부하나님이 성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와 우주통치및 종말적 성취와 심판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4조에서 성경전체의 영감을 주장하면서 그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가 계심을 강조하며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며 성경해석은 신앙의 지식을 추구함에 유용하다고 정의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사람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으나 진정한 저자는 하나님이시고 성경전체가 정확무오하며 완전하며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의 참된 교사는 성령이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2)칭의

신앙이란 십자가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값주고 사신 구원을 받아 드리고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는다고 천명하고(갈3;2) 신앙은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엡2:8-9)이다 는 것이다.

신앙은 단순히 지적동의가 아니라 인간 안에 일어나는 영적 변화이고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이해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이다.

"오직 신앙"(Sola Fide)에 의한 칭의라는 주제는 성경전체를 통해서 발견된다(롬3:21-22, 갈2;16,21,25, 3;24-26)

성서바탕위에서 출발한 루터의 종교개혁은 칭의의 개념에서 그의 신학이 출발점을 가지고 있으며 칭의론은 개신교 신학의 맥락을 형성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개신교 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 칭의에 대한 신앙이다.

구원신앙은 곧 칭의의 신앙인 것이다. 칭의론은 초대교회에서는 별다른 관심의 대상이 되지못하다가 암브로시우스와 어거스틴의 칭의론을 강조한 이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종교개혁에 있어서 칭의론은 개혁의 출발점을 형성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루터는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칭의론을 재발견함으로써 카톨릭교회의 업적의 의를 거부하고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기틀을 마련하다. 칭의는 ① 오직 은혜로서만(gratia) ② 오직 그리스도때문에(propter Christum) ③ 오직 신앙으로서만(perfidem)가능하다는 것이다.

칼빈의 칭의론은 "종교의 유지를 위한 결정적 구심점"이다. 그러므로 칭의의 근거는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생은 그리스도인들의 계속적인 반복적인 사건이다. 칼빈은 성화와 칭의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가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인간의


선행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보잘것 없는 선행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용납하고 보상해주신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성령에 의해서만 칭의와 성화가 나타나며 성경중심인 신앙과 행위는 하이델베르그신앙고백과 같이 이신칭의는 성령의 주된 열매란 것이다.

제2스위스신앙고백에서는 칭의란 회개에 전제된 이신칭의를 말하며 죄책과 형벌에서 사멸을 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이 의롭게 되고 우리의 능력이 율법을 준행하기에 너무나도 역부족하기에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서 하나님께서 효과적으로 부르신 사람들을 칭의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의인처럼 여기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으로 오직 그의 의에 힘입어 칭의를 얻는다. 하나님은 칭의 받은 자의 죄와 허물은 계속 용서하신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은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로서 우리의 믿음을 강조한다.

장로교 신앙고백은 회개를 통한 하나님과 화목관계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개혁주의의 전통에 따라 칭의를 구원의 관건으로 보면서도 결코 칭의와 분리될 수 없는 성화를 강조한다.


롬 5:1의 "의롭다함을 입었은즉'은 법적인 용어로서 유죄한 자가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것이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성취된 의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복음을 수용함으로써 칭의 혹은 의인을 받을 때 이 칭의의 근거는 밖으로부터 온 의(iustitutia aliena)이다.

따라서 이신칭의란 인간의 내적 발전이나 경험에 얻어진 계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 얻어지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신칭의는 성화의 과정이 아니라 성화의 기초가 된다.


3)성화

신학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개관할 때 성화는 중요한 관심대상이 되지못하였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칭의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고 칭의를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기 위하여 인간의 성화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여 성서에 있어서는 성화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나타난다. 나 야웨가 너희 하나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 11:44)는 계명은 성서의 중심 계명으로서 사랑의 계명과 직결되어 있다.

루터는 신앙과 성화란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말한다. 그는 성령의 역사는 일회적인 역사적 예수의 구속사건을 날마다 신자들 마음속에 영적으로 적용시킴으로써 의인(義認)과 성화(聖化)를 성취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1권에서 하나님의 지식의 필수조건은 이성이 아니라 신앙과 경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칼빈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성화(sanctification)을 강조한다.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성령의 역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칼빈이 강조한 계몽과 성화는 성령역사의 두개의 축이다. 계몽도 성경의 영감과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납을 가능케 하고 그리스도에 의해 이룩된 공로의 신앙에 적용되어 새로운 영적 삶을 산출시킨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칭의와 성화는 성령 안에서 일어나며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도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죄에 대립하는 갈등의 경험을 가지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평생토록 죄를 극복하고 성화에로 투쟁해야 한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자유케 된 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의 이중적 사상의 전제이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에서 신앙을 전제한 선행을 취급한다. 복음설교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구원의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성장 강화된다. 이 선행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이요, 이웃의 유익을 위함이다. 우리는 칭의로 인해서 구원받았다고 선행을 무시해서는 안되며 선행에 대한 보상은 하나님의 은혜지 인간의 공로가 아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에서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피택자들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칭의얻고 양자된 사람은 중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되었다. 말씀과 성령이 이들의 마음과 정신 안에 거하신다. 성화의 성령이 도우사 중생한 사람은 계속 성화의 삶을 살면서 영화의 차원을 지향한다. 그러나 중생한 사람은 늘 부족한 죄인이므로 죄에 대한 투쟁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여 칭의와 성화 영생을 누리는 것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선행은 이신칭의의 양자에게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효과적으로 부르셨으며 칭의하셨으며 양자삼으셨고 성화시키시어 택하신 백성을 결국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소망과 피택 성령 안에서의 평화와 기쁨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그들의 순종을 통해서 확증해야 한다.

웨스터민스트 소요리 문답에서 성화는 하나님께


서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사역이고 은혜 안에서 죽을 때까지 지녀야 할 견인이라는 것이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신앙고백에서는 사람은 믿음으로만 값없이 의롭다함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칭의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화의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칭의의 은총은 이례적이나 성화의 생활은 일생을 통해서 계속된다. 성화의 과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늘 부족한 죄인임을 밝히고 평생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칭의가 구원이고 이 칭의를 얻은 사람은 성화에로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야 한다. 성화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4)성찬

"성찬"이란 단어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라틴어 Sacramentum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로마의 군인들이 군사적으로 하는 맹세로서 사령관에게 충성하고 군기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서원이었다.

성찬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의미에서 생명과 죽음의 양자택일적인 헌신으로서 교회에서는 세례시에 최초로 사용하였다.

제1세기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대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의식들이 있었고 중세에 이르러서는 7개의 성례 전으로 개혁주의자들은 세례와 주의 만찬을 성례전이라 주장하였다.

중세로마 카톨릭주의자들은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뀐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화체는 성물의 실재 혹은 "본질"을 그리스도의 신체적인 피와 살이 되게한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중세미사에서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다시 한번 희생해야 했다.

바로 이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하여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일관되게 반대했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화체설을 대치하기 위한 주의 만찬 이론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했다.

루터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이라는 이론을 주장 주의 만찬에 그리스도께서 신체적으로 육체적으로 임한다고 주장했고 쯔빙그리는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그리스도의 분명히 은유적 혹은 상징적이었으며 칼빈은 루터의 신체적 화체적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했으며 또한 쯔빙글리의 기념적 상징적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철학적으로 그리고 언어적으로 칼빈은 쯔빙글리와 일치하였으다. 그러나 칼빈은 루터적이며 로마카톨릭적 입장의 근본적인 가치를 즉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주의 만찬에 임재하시고 신자들은 그 만찬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칼빈의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의 만찬에 신체적으로서가 아니라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하나님께서 성례전을 제정하신 목적은 언약의 백성과 언약밖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함이요 그의 자녀들의 신앙을 훈련시키기 위함이요 성례전에 참여시킴으로 저들의 마음속에 그의 약속을 인봉하기 위함이요 택함을 받은자들이 이들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와 축복에 넘치는 교제와 연합에 이르기 위함이다. 성례전은 상징이 아니라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영혼과 양식이 되신다. 우리들이 성찬을 올바로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연합되게 된 것은 성경에 의한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가견적이고 거룩한 표시요 인정이다. 십자가상에서 성취하신 유일회적인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때문에 그리스도는 죄의 용서와 영성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다. 성만찬에 있어서 봉헌된 떡이라도 그리스도의 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이 거룩한 표시를 입으로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를 기억할 때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참 몸과 참 피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제 2 스위스신앙고백에서 기념설을 주장한다. 우리가 성만찬을 통하여 죄, 영원한 죽음 및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사 갈보리언덕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회적 희생제사를 회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떡과 즙을 물질적으로 먹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떡과 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받아 영생에 연결되는 중요한 것으로 본다. 칼빈이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실제적 임재와 비슷하다. 그러나 볼링거는 칼빈과 달리 쯔빙글리의 기념설을 더 첨가하여 주장했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서 본 항목은 쯔빙글리의 기념설과 칼빈의 영적 임재설을 다 받아드리고 있다. 세상끝날까지 이 성찬을 행함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희생제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이 십자가가 믿는 사람들에게 모든 은택을 확인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며 강건해지며 예수그리스도와 연합이다.


유일회적인 희생제사를 기념하는 것이고 성찬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교제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에서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자들이며 성찬에 떡과 즙을 주고받음으로 영적 양육을 받는 것이다.

장로교 신앙고백에서는 교회론 안에 기록했으며 주님의 구속적 사역인 십자가 사건을 기억하고 영적으로 그 사건에 동참하기 위하여 성만찬식에 참여하고 이 예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교제하고 성례전을 통하여 그리스도안에서 신앙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성찬예배에서 집례자가 제정의 말씀과 더불어 봉헌한 떡과 즙을 믿는 성도들이 받아 먹고 마실 때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떡과 즙이 참살과 피로 화채 것도 아니요 떡과 즙속에 예수님의 신비체가 갇히는 것도 아니다.

"성만찬 예전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인 것이다. 성령에 의해서 매개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임재(믿는 사람들 마음 마음속에서)인 것이다"


5)예정론

예정론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은 구원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긍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구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 때에 구원의 확신이 온다. 칼빈은 예정교리로 구원의 확실성을 도와준다. 예정론의 근본적인 핵심은 하나님의 선택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하나님의 자유로운 주권적인 은혜로서 인간에게 공권은 없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선택이 우리의 조건과 자격이 아니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신하게 하는 것이다.

예정론의 본래 의도와 목적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은혜를 확인하는 데 있다. 기독교강요에서 예정론은 3권 구원론의 끝부분에서 칭의, 성화 다음에 예정에 관해서 기록했는데 은혜로 구원받는 사람, 복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정론은 칼빈의 예정교리의 핵심인데 예지 예정론은 칼빈주의자들에 의해서 배척당했다. 예정은 우리의 공로에 믿음에 대한 예지에서 예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구원을 주는 것으로 예정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내적사건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예정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예정론이 없다

제2스위스 신앙고백서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 예정에 관하여 논한다. 오직 은총과 오직 신앙에 의한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예정 혹은 선택을 전제로 한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선택을 강조한다. 피택의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역설한다.

웨스트민스트신앙고백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이중예정론을 주장하며 구원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는 것은 강하게 서술하나 버림받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지극히 약하게 서술한다. 택한 받은 자만이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다. 즉, 칭의, 양자, 성화를 거쳐 완전히 효과적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은 택함 받은 사람들 뿐이다.

웨스트민스트 소요리문답에는 하나님이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정하셨는데 이 모든 것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예지,예정을 주장하는데 택한 사람은 은혜의 계약을 맺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의 신분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장로교신앙고백서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정섭리는 인간의 자유나 선행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삶에 있어서 예정신앙과 자유의지는 서로 보완해야 한다.


예정론의 올바른 강조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데 있다. 전형적인 장로교에선 이중예정론이 결정론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를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일어날 모든 일을 태초부터 그의 뜻에 따라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에 의하여 자유롭고 불가변적으로 정하셨다(엡 1:1 롬 11:33).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죄의 창시자가 아니다. 인간들에게 허락하신 의지를 강압하시지도 아니하시고 제2의 원인들의 자유의지와 우열성이 결코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확보 확립하는 것이다.

예정교리는 기독교적 숙명론이 아니라 구원받은 신자들의 위로와 확신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자유로이 주시는 은총을 찬양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6)교회론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가 있다. 참교회는 외형적인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회중,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교회보다 보이지 않는 교회가 참 교회이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은 가시적인 교회에 있다. 가시적인 교회는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안에서 계속 재창조되어야 한다. 교회는 참 일치를 이루어야 하는데 참된 일치는 같은 예식 같은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일치되어야 한다.

교회의 참된 표시는 복음을 순수하게 가르쳐야 되며 성례전을 바르게 집행해야 한다.


스코틀랜드신앙고백에서 교회의 역사가 구약의 이스라엘백성에게까지 소급해서 보며 선택교리에 입각한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고 예배하는 하나님의 피택자들을 교회가 정의하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신다고 하며 나아가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한다. 교회는 초월적인 보편적인 하나의 교회로서 불가시적이라는 것이다.

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에서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리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하고 있다. 구원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기쁘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되며 하나님께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와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는 이중적인 사랑의 전제이라는 것이다.

제2스위스에서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를 논하며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는 이 땅위에 있는 동안 죄악과 싸우는 전투적인 교회로 승리적인 교회는 하늘나라에만 가능하며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무이한 머리이시며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하며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는 창 3장 15절의 원복음시대로 소급한다.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에서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구분하며 가시적 교회란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되고 성례전이 베풀어지고 이에 대한 신앙과 순종이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개교회이다. 교회를 통해서 구원이 일어나며 성장과 봉사가 진척된다. 가시적 교회안에는 세상끝날까지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다.

장로교의 신앙고백은 교회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교회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설교되며 세례와 성만찬을 올바로 베푸는 것에 말씀 듣고 혹은 순종의 측면을 하나더 추가한다.


하나의 교회는 교파간의 연합사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거룩한 모임은 세상적인 더러움과 구분되어야 하고 사도적 믿음과 가르침 증언 위에 세워지며 개별성을 가지는 동시에 보편성을 견지해야 한다. 교회는 밖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과 세상속에 복음을 전파하여 땅위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본 신앙고백은 승리적 교회가 아니라 역사안에서 실존하는 전투적 교회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개혁교회는 영성과 제도가 통일된 하나의 보편적이고 거룩한 사도적 공동체이다. 이러한 사도적 교회론에 입각해 칼빈을 중심으로 한 개혁교회 신학의 전통은 연합하고 일치하고 복음적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여 왔다.교리상 불일치가 교회의 본질 연합을 깨드리는 것이 아니다. 본질상 중요한 교리는 변질될수 없지만 비 본질적인 교리가 교회의 연합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의 연합일치운동은 오늘날 많은 파벌로 갈라져 이합집산하고 아직도 반복질시하고 있는 한국장로교회 상황에서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할 귀중한 보고요 유산이다. 교리상 불일치가 교회의 본질 연합을 깨트리는 것이 아니라 본질상 중요한 교리는 변질될 수 없지만 비본질적인 교리가 교회의 연합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III 나가는 말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과 영광 사상에서 출발한다. 이 주권적 은총은 개인의 심령적 차원뿐만 아니라 우주적 차원에 가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혁 사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을 그의 주권적 은총의 표현이다 이 선택사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숙명론이 아니라 신앙고백이다.개혁사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과 사고와 행위에 있어서 지고의 권위로 인정을 한다.

개혁교회의 본질이란 끊임없는 자기개혁운동이다. 개혁교회의 발생이 로마카톨릭교회 제도의 갱신과 개혁에서 출발했다 개혁교회는 자신이 하나의 보편적이고 거룩한 사도적 교회로 이해해야한다.

개혁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 신앙에서 출발해서 궁극적으로 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를 이 세상에 모든 삶의 영역속에서 구현하여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가 되도록 한다.

개혁신학 사상은 단순히 16세기 역사적 종교개혁 사상의 되풀이가 아니다 그것은 "성서만으로"라고 하눈 종교개혁 정신을 역사적인 구체적정황과 대화하면서 구현하는데서 새롭게 생성된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신앙고백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바른 신앙고백으로 현실을 살아야 할 것이다.

NYSKCIAN(성경공부)

*. Nyskcian 1.Nyskcian으로서 꼭 외워기억해야할 말씀을 적어보세요 암9:11-15(11-12) 요4:23-24, 롬12:1-2, 히11:1-4, 2.Mission of Nyskc World Mission,은 어떤 기관입니까? 3.Theme of Nyskc :“ When the worship is restored, the church is r

NYSKC MOMENTUM CONFERENCE

"Nyskc Momentum Conference" *Nyskc Movement Staff를 세우기 위한 Momentum이다. 예배회복운동을 이루기 위하여 NWM은 매년 정기적으로 Family Conference를 열고 교역자(NIST & MH)는Forum에 참여하고 장년(NS)들과 청년, 청소년(NP) 아동 및 유년(NF) 들을 각각의 Track을 구분하여

모형과 원형

여호수아 20:1-9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3.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4.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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