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어린 아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4-15)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적을 침묵시키다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직접 가르쳤다.

그는 디모데에게 교리만 들려준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해 주고, 우리의 삶을 우리의 말과 일치시켜 보여줄 수 있다. 진리와 거룩은 과실과 불의의 해독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바울이 또 강조한 것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젊은 디모데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것은 디모데가 영적인 아픔을 겪을 때 효과적인 치료제였다.

그것은 젊은 디모데를 가장 훌륭하게 보호해준 보호막이었다.

그것을 힘입어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시련을 이겨 냈다.

그것은 영혼의 닻처럼 그를 붙잡아 주었다. 그 때문에 디모데는 나이가 들수록 이 세상의 망망대해에서 무섭게 표류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사도가 다음과 같이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릿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우리는 장차 이 세상의 악한 영과 투쟁하기 위해 대비해야 한다.

그를 위해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대로 살아야 한다. 또한 주위를 기울여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이중에서 특히 후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적을 침묵시키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교훈으로 사람을 가르치는데 만족하거나,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한심한 생각이다. 아니다! 불뱀이 사람을 무는 곳에 서는 어디서나 놋뱀을 들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민수기 21:8-9). 아이들을 끌어내어, 그들을 높이 들어서, 그들의 작은 눈이 하나님의 준비해 놓으신 치료책을 보도록 해야 한다.


아직도 그것을 보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지금도 사람의 피에 독을 주입하는 뱀의 여러 가지 독을 물리칠 수 있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한밤중에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떠오르는 태양뿐이다. 어두운 세상에 희망은 없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그 빛 이외에는 오, 의의 태양이 비추면, 안개와 구름과 어두움을 사라질 것이다.


교사들이여, 사도들의 계획을 계속 실행하라. 사도들과 같은 성공을 확신하라. 그리스도를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할(디모데후서 4:2) 아이들을 가르치라. 하나님이 그의 밭을 가라지에서 지키는 주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밭에 일찍이 밀을 뿌리는 것이다. '아기 때'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은 처음 가르침부터였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가르침의 때를 주의하라. "어려서부터"란 표현은 "아주 어려서부터"란 말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또는 개역성경에 나온 것처럼 "아기 때부터"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어린이란 다 자란 어린이나 청년이 아니라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어난 어린이를 말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디모데는 성경을 알았다.

이 표현은 의심할 나위 없이, 아무리 어린아이에게 성경의 지식을 스며들게 해준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지나치게 이를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도 전에 아이들은 어떤 인상을 받는다.


아기의 생애 중 처음 몇 달 동안 아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아기는 어머니의 사랑을 배우고 또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배운다. 어머니가 만일 현명하다면, 아기는 복종의 의미를 배우게 되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자신보다 더 높은 이의 의지에 복종시켜야 할 필요를 배우게 된다. 이것은 사실 아기의 미래의 전 생애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만일 아기가 복종과 순종을 일찍 배운다면, 그로 인해 어머니의 가슴에 멍을 들게 하는 일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고, 아이 자신의 눈에서 눈물 흘릴 일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아직 아기일 때 아이를 잘 교육시키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면, 그 아이는 아주 특별한 이득을 잃게 되는 셈이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부터 성경을 배울 수 있다. 내가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린 아이들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성경으로부터 읽기를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언어가 아주 단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사실이 그렇다고 믿는다. 보통 역사에 나오는 사실들은 종종 잘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어린양이 건널 수 있는 조그만 시내


성경에는 모든 영련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 있다. 즉 어린아이들에게도 알맞은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종종 저지르는 잘못은, 아이들에게 성경을 직접 읽히기 전에 뭔가 다른 것으로 먼저 아이들을 가르친 다음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성경은 직접 읽기 전에 따로 다른 예비서가 필요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직접 읽을 만한 책이다. 성경의 일부분은 아이들의 정신능력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어른 중에 지극히 똑똑한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거대한 바다짐승이 헤엄칠 수 있는 깊이도 있지만, 어린양이 건널 수 있는 조그만 시내도 있다. 현명한 교사는 그들의 어린 제자들을 조용한 물가 옆의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즉, 쉐이프츠베리 백작을 우리가 잃은 것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아주 무겁게 짓누르는 슬픈 일인데, 그의 일생에 있어서 그에게 최초로 종교적 감동을 일으켜 준 사람은 한 비천한 여인이었다.


쉐이프츠베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나 사람의 친구가 된 것은 그가 어릴 때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어린 애쉴리 경에게는 한 경건한 유모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에게 하나님에 관해서 말해 주었다. 그가 7살이 되기 전에 그 유모는 죽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생의 초기에 하나님의 영의 인을 그의 마음에 받았다는 증거다. 그것도 비천한 여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우리는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 선택된 어린아이에게 거룩한 가르침을 베풀어주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여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해 엄청난 일을 행한 복 받은 한 여인이 되었다. 젊은 유모들이며, 이 사실을 기억해두라.


옛 노래는 우리 입술에, 옛 생각은 우리 마음에


어린아이의 처음 7년을 우리에게 달라.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저 불멸의 영혼을 파괴하는 이 세상과 육신과 악의 세력을 간단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의 처음 몇 년은 아직 그 육신의 진흙이 부드러워. 그것을 변화시키기 쉬운 때다.

그 그릇의 형태를 우리의 뜻대로 결정할 단계에까지 갈 수 있는 때이다.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당신의 직책이 더 나이든 사람들을 주로 다루는 우리의 직책보다 조금도 평등하다고 말하지 말라. 아니다.


당신은 이 고귀한 어린 영혼들을 다룰 첫번째 기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처음 나오는 때로부터 당신이 그들에게 주는 감동은 그들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 감동이 훌륭한 것, 오직 훌륭한 것뿐이길 기도한다.

노인이 천국에 가기 전에 떠오르는 생각 중에서 가장 많이 나는 생각은 전에 그가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있을 때 그에게 떠올랐던 생각이다.


구스리 박사가 죽기 전에 "어린아이의 찬송가"를 들려달라고 요구했던 것은 우리 본성의 본능이다. 우리의 본성은 생의 처음과 끝을 이음으로써 우리 생의 원을 완성하고자 한다.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노인들도 가장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를 얽어매는 줄을 떨어버리고 좀더 본연의 우리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옛 노래는 우리 마음에 남아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받은 가르침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우리 마음판에 새겨진다. 그것은 70년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 그러한 인상이 가장 고상한 목적을 위하여 새겨지도록 주의 하자.


존중할만한 교사들을 선정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누가 어린 디모데를 가르쳤는지 금방 지적할 수 있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에서 바울은 말한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딤후 1:5)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이 어린아이를 가르치는데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부모가 아니면 누가 아이들을 가르치겠는가? 디모데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으며, 아마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아이는 흔히 모든 친족 중에서 어린아이에게 가장 친근하기 마련인 존중할만한 할머니가 있었기에 행복하였다.


그에게 또한 은혜로운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도 축복받은 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 때 경건한 유대교인이었으나 후에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그녀는 매일 그녀의 사랑스런 아이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기쁨이었다.


어머니와 모세와 솔로몬


오 사랑하는 어머니들이여, 하나님이 당신을 지극히 거룩하게 신뢰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제발 이해하시오! 하나님은 사실상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출 2:9)


당신은 미래에 하나님의 사람이 될 아이를 잘 준비시키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면 그 아이는 아마도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될 것이다"(디모데후서 3:17)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당신은 나중에 그 예쁜 소년이 자라서 수천 명을 향하여 설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당신의 마음속에서는 달콤함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즉 아이 방에서 행한 조용한 가르침이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섬기게 만들었다는 것을.


아이 때문에 집안에 남게 된 여인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건한 어머니도 예배당에 가기 위해 집안을 떠나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교회에 봉사할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와는 정반대로 그녀는 주님을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들이며, 당신의 아이를 경건하게 단련시키는 일은 당신이 행해야할 첫번째 가장 필요할 의무이다. 그리스도인인 여인들은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주님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것과 같은 역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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