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Nyskc Movement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역대하 31:20,21).


Ⅰ. 히스기야 왕은 예배의 회복, 예배의 부흥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Ⅱ. 히스기야는 삶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Ⅲ. 히스기야 왕이 받은 복입니다.


예배와 삶과 복은 삼박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와 축복은 하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의 삶을 살면 잃었던 기업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예배라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기업을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따라서 예배는 삶의 승리요 승리된 삶은 축복과 연결됩니다

또 예배 회복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신 대로 변화되어 기업의 회복으로 연결됩니다


성령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에 대하여 29장에서부터 32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4장에 걸쳐서 그의 행적을 기록하여 자기 백성들인 우리들이 읽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히스기야의 예배와 삶과 그리고 그가 받은 복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교훈이 많기 때문입니다.


본문 20,21절은 히스기야의 일생의 특징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성전에서 수종드는 일 곧 예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삶에서 전력하여 율법과 계명을 좇아 살았습니다. 이것이 히스기야 왕의 2대 특징입니다. 그 결과 그는 형통하였습니다.


Ⅰ. 히스기야 왕은 예배의 회복, 예배의 부흥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배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21절에서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아비 아하스 왕을 이어 25세 때에 남 유다의 제13대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히스기야가 왕이 즉위할 즈음에는 그 부친 아하스 왕의 실정으로 나라는 심히 피폐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피폐한 국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최우선적인 국정 과제를 종교 개혁에 두었습니다. 즉 예배 회복, 예배 부흥에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 왕은 남 유다의 열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은 북조 이스라엘 열왕처럼 하나님 앞에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바알의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역대하 28:2). 힌놈의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이방 사람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아 자녀를 불태워 몰렉에게 바쳤습니다(역대하 28:3). 산당과 유다의 푸른 나무 밑에서 제사를 하며 분향을 했습니다(역대하 28:4).


아하스 왕은 에돔과 블레셋의 침공을 받아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역대하 28:20).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를 했습니다(역대하 28:23).


거기에 더하여 아하스 왕은 더욱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성전의 기구들을 훼파하였습니다. 성전의 문에 빗장에 치고 성전을 폐쇠했습니다(역대하 28:24). 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석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하였습니다(역대하 28:24,25).


아하스의 이같은 악정과 범죄는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아람과 북조 이스라엘의 손에 유다를 붙였습니다. 유다는 아람과 북조 이스라엘의 침략을 받았으며, 심히 많은 백성들이 아람으로 끌려갔습니다. 하루 동안에 용사 12만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역대하 28:5,6). 또 에돔 사람들이 유다를 침공하여 백성을 사로잡아 끌고 갔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를 침공하여 국토를 유린하고 점령했습니다(역대하 28:18). 아하스 왕은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구했지만, 오히려 앗수르 왕은 아하스 왕을 군박했습니다(역대하 28:21).

히스기야는 부친 아하스 왕의 실정으로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승계받았습니다.


1. 히스기야 왕은 종교 개혁, 예배 회복에 부국강병의 길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선왕 아하스 왕 때 왜 유다가 적들의 침공을 받고 고통을 당해야 했는가?왜 북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 원인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유다 고통을 당하고, 북조가 멸망을 당한 원인이 무능한 왕에게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앗수르, 에돔, 아람, 블레셋 등이 강했기 때문도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유다가 시련을 당하고, 북조가 멸망을 당한 것은 왕과 백성들의 죄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과 나라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나라가 회복되고 부국강병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에 그는 나라의 죄를 청산하고 유다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하여 종교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종교 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예배 회복은 종교 개혁의 핵심입니다. 예배 회복은 종교 개혁의 시작이며, 진행이며, 마지막입니다. 예배 회복은 부흥과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예배 회복은 하나님의 복과 은총과 평강의 강물을 다시 흐르게 하는 기폭제입니다.


시련과 역경 가운데 있습니까? 예배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벧엘로 올라가지 않고 세겜에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딸 디나가 세겜 땅 여자를 보러 갔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추장 세겜이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했습니다. 이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사람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한 후에, 세겜 남자를 모두 죽이고 가축과 재물을 약탈했습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이 세겜 사람을 살해한 사건으로 인하여 가나안 족속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떨었습니다. 야곱은 시련과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고 하셨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단을 쌓으라” 이는 신앙을 회복하라, 예배를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신앙과 예배가 회복될 때, 시련과 역경과 환난과 가난은 물러갑니다.


혹 우리들 중에 시련과 역경과 환난과 가난 가운데 있는 자가 있습니까? 그러한 시련과 역경과 환난과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신앙과 예배를 회복하면 시련과 역경과 환난과 가난은 도망하게 됩니다.


2.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 신앙과 예배 회복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떻게 종교 개혁, 예배 회복 운동을 꾀했는가?


1) 성전의 문을 열었습니다.

역대하 29:3에“원년 정월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였다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며,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은, 성전 문을 닫고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히스기야의 그 같은 생각을 역대하 29:6-10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한 고로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진노하시고 내어 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라 이로 인하여 우리의 열조가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가 사로잡혔느니라”


이 때문에 그는 유다가 회복되어 부국강병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왕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레위인들에게 명하여 몸을 성결케 하고, 폐쇄되었던 성전의 문을 열고, 훼파된 곳을 수리하도록 하였습니다.


또 성전을 성결케 하고, 더러운 것들을 성전에서 없애라고 하였습니다(역대하 29:5). 레위 사람들이 왕명을 좇아 자신들의 몸을 성결케 하였습니다. 성전 안에 더러운 것들을 가져다가 기드론 시내에 버렸습니다.


레위인들은 성전 정화 작업을 정월 초하루에 시작하여 정월 십 육일에 마쳤습니다. 무려 16일 동안 성전을 대대적으로 청소하고 성결케 하였습니다.

성전 정화 작업을 끝낸 후에 레위 사람들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가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기구를 깨끗하게 하였고, 또 아하스 왕이 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기구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케 하여 여호와의 단 앞에 두었나이다”(역대하 29:18,19).



성전의 문을 열고 훼파된 것을 수리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 걸음입니다. 그 동안 성전의 문은 닫혀 있었고, 번제단과 떡을 진설하는 상이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교회, 하나님과 성도들이 단절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교회 안에 침투한 각종 더러운 것들과 죄악들을 교회 밖으로 끌어내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침투한 물량주의, 인본주의, 맘몬주의를 제거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대신에 자기 꾀를 따릅니다.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기보다는 사람들이 고안한 방법과 제도와 프로그램에 더욱 열중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교회를 버렸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길을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사랑과 기쁨과 기도와 찬양과 거룩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는 사랑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기쁨보다는 불평과 원망의 가시가 자라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보다 토론하고 회의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사람의 즐거움을 위하여 찬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룩함은 사라지고 죄악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우리들은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는 물량주의, 인본주의, 맘몬주의를 갖다가 버려야 합니다. 불평과 원망의 가시를 교회 안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각종 은밀한 죄악들을 교회에서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배를 드리기 전에 우리들 자신과 예배의 제단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낭패를 당했을 때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야곱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야곱은 벧엘 제단에 올라가기 전에 가장 먼저 자기와 자기 가족들 전체에 정화 작업을 단행했습니다. 야곱은 가족들과 함께 한 자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창세기 35: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벧엘에 도착한 후에 제단을 수축했습니다(창세기 35:7).


하나님은 예배의 제단과 예배자가 더러울 때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예배의 제단이 성결해야 합니다. 또 예배자가 성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 숙청을 작업을 하여 성결케 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의 제단을 성결케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어떤 더러움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2) 정성을 다하여 예배들 드렸습니다.


① 히스기야 왕은 성전을 성결케 한 후, 가장 먼저 나라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는 번제와 속죄제를 위하여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과 어린양 일곱과 수염소 일곱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역대하 29:20,21). 감사 제물로 수많은 수소와 양들을 드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번제와 속죄제와 감사제를 드릴 때, 제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연주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왕은 레위 사람들을 찬양대로 세워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역대하 29:30)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예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② 유월절에 거국적, 거족적 부흥 성회를 개최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절기를 맞이하여 보발군을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보내어 모든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와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왕명을 받고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온 백성들은 크게 즐거워하며, 칠일 동안 절기를 지켰습니다. 절기 동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역대하 30:21).


유월절 절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온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또 다시 칠일 동안 유월절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즐겁게 절기를 지켰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 왕은 유월절 절기에 참여한 백성들에게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주었습니다. 또 방백들도 백성들에게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 만을 주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유월절 부흥 성회가 14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유월절 부흥 성회를 통하여 예배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성경 역대하 30:25,26에서“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온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와 유다에 거한 나그네가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 부흥 성회를 통하여 신앙이 회복되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③ 날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절기가 끝난 후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였습니다(역대하 31:2). 아침과 저녁,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를 지키도록 했습니다(역대하 31:3).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식물을 제공하여 오직 제사와 율법에 전념하도록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히스기야 왕이 절기에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만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예배를 드리게 하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히스기야 왕은 예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들은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나의 사랑이 녹아 있는가? 하나님께 올리는 찬양에 나의 혼이 들어있는가? 하나님께서 봉헌하는 예물에 나의 정성과 감사가 녹아 있는가? 우리들은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다윗은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솔로몬도 예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또 우리들은 주일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단 하루도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일년 365일 동안 매일 매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Ⅱ. 히스기야는 삶에서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신앙과 예배의 회복과 부흥은 삶의 갱신으로 이어졌습니다. 본문 20절에서“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또 21절에서는 “…율법이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1.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1절에서 히스기야 왕이 “그 하나님을 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율법이나 계명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좇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율법과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는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갔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 멈추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자신의 발과 길에 등과 빛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말씀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을 구하였다는 것은 순경이든 역경이든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였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순경을 길을 걷는 동안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시련과 환난 등 역경 속에서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히스기야는 순경에는 물론 역경의 때에도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앗수르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유다의 군대로는 앗수르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도우시는 하나님을 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에도 역시 눈물로써 하나님을 구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순경은 물론 역경의 때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까? 우리들은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일심으로 행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일심으로 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심으로 행하였다는 것은 초지일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좇았다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길에서 일탈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길을 따랐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고, 중간에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고, 마지막에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습니다. 그의 삶이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는 하나님의 길에 서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언제나 일직선의 길을 걸었고, 일직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같은 삶을 살았던 히스기야는 그가 병들었을 때, 감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이사야서 38:3)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이 이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길, 말씀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길은 얼마나 구불구불합니까? 우리들도 히스기야처럼 일직선의 길을 걸ㄹ으며, 일직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Ⅲ. 히스기야 왕이 받은 복입니다.


예배에 목숨을 거는 자,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이 받는 자들이 어떤 복을 받을까요? 삶에서 오직 하나님만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는 자들이 어떤 복을 받을까요? 성경은 히스기야가 받은 복에 대하여 본문 21절 하반절에서


“형통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역대하 32:30에서도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형통한 인생의 복을 받았습니다. 형통하다는 소극적으로 히스기야가 국정을 수행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낭패를 당하는 일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나라가 융성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국정의 우선 과제를 예배의 회복과 부흥에 두었던 히스기야가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1. 국론이 통일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통치할 때 국론이 통일되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보발군을 보내어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초청했습니다.


이 때,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스불론 지파 사람들이 조롱하고 협조를 하지 않았습니다(역대하 30:10). 또 유월절 명절에 참여한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 중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유월절 양을 먹었습니다(역대하 30:18).


히스기야는 왕명을 거역한 에브라임, 므낫세, 스불론 지파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기 죄를 가지고 유월절 양을 먹은 에브라임, 므낫세, 잇사갈 지파의 사람들에게 분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히스기야 왕은 저들을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역대하 30:18,19).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 지파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용서는 유월절 명절에 올라온 모든 지파의 사람들을 한 마음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역대하 30:25,26에서 그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에서 온 온 회중과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나그네와 유다에 거한 나그네가 다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유다 지파와 북조에서 온 지파와 남조와 북조에서 온 나그네가 모두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예배의 회복과 유월절 부흥 성회를 통해서 유다의 국론이 하나로 통일되었습니다.


국론이 분열되면 나라를 통치하기가 힘듭니다. 이쪽이 찬성하면 저쪽이 반대합니다. 그러나 국론이 통일되면 백성들이 국정에 적극적으로 협력합니다. 국론이 통일되면 통치하기가 쉬어집니다.


국론이 통일되면 나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발전과 성장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국론 통일이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예배 회복, 예배 부흥이 일어날 때 교회는 한 마음이 됩니다. 한 마음이 된 교회는 성장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기도가 응답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히스기야가 받은 또 다른 형통한 복은 기도 응답의 복입니다. 유월절 축제의 날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 백성을 축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축복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였으니 그 소리가 들으신 바 되고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하였더라”(역대하 30:27).


하나님께서 제사장 아론과 그 뒤를 이을 제사장들에게 백성들을 어떻게 축복하라고 하셨나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수기 6:24-26).


히스기야 시대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백성을 위하여 이같은 축복의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은총인가?

또 히스기야 자신도 기도 응답의 복을 받았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적들을 송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가 병들었을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예배 회복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복을 주십니다. 남편을 위한 축복의 기도, 가정을 위한 축복의 기도, 자녀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 직장과 산업을 위한 축복의 기도, 교회 부흥을 위한 축복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 회복, 예배 부흥을 위하여 노력하십시오.


3. 국력이 융성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남조에 예배가 회복되고 부흥될 때,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백성들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과 모든 것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가져왔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십일조를 가져왔는지요? 역대하 31:6,7에서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삼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월에 마친지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가져온 십일조의 예물을 3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7월에 끝마쳤습니다. 무려 다섯 달에 걸쳐서 마당에서 창고로 옮겼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성전 마당에 쌓인 더미를 보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때 사독 족속 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기를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역대하 31:10)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복을 주셨다!” 이 얼마나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인가? 백성들이 우상과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고,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에 부흥이 일어날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1,000배의 복을 쏟아 부어주셨습니다.


히스기야 부친 아하스 왕 시대에 저 유다는 암몬, 아람, 북조 이스라엘, 앗수르, 블레셋 등의 침략을 받아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저들이 죄악에서 떠나고 예배를 회복했을 때에, 하나님은 1,000배의 복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또 히스기야는 어떤 복을 받았는가? 역대하 32:27-29에서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국고를 세우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하는 복을 히스기야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백성들이 죄에서 떠나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은 국력을 융성케 하셨습니다. 백성들의 쌀독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을 넘치게 하셨습니다. 외양간과 우리에 소와 양 떼들이 떼를 이루어 눕게 했습니다.

시련과 역경과 가난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첩경은 죄에서 떠나 예배를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예배의 부흥이 일어날 때, 교회가 성장합니다. 개인과 가정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부친 아하스 왕의 실정으로 인하여 피폐한 나라를 회복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는 최우선적인 국정 과제를 종교개혁을 통하여 예배 회복, 예배 부흥에 두었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삶에서 갱신이 일어납니다. 히스기야는 예배의 부흥, 삶의 갱신에 국운이 달려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가 회복되고, 예배의 부흥이 일어날 때 삶이 갱신이 일어납니다. 그 때, 교회는 성장하고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산업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교회에서 예배 부흥이 일어나고, 자기 백성들 속에서 삶의 갱신이 일어날 때, 그 손에 1,000배의 복을 들고 찾아오십니다.


지금 우리들의 예배는 어떠합니까? 정성과 마음을 쏟아 붓는 예배인가? 흥분과 기쁨과 즐거움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삶은 어떠한가? 죄악에서 완전히 떠났는가? 히스기야처럼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구하고, 일심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소낙비를 갈급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을 사모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예배의 회복과 예배의 부흥을 위하여 전력해야 합니다. 삶에서 갱신이 또한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고 삶에 갱신이 시작될 때, 하나님은 교회와 우리들의 머리 위에와 가정과 자녀들과 직장과 사업 위에 복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려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6 Powerful "I WILL" Promises of Jesus

praying in the spirit Christians are quite familiar with the “I AM” statements in Scripture. They are powerful and share much about the character of Christ. They share God’s will for His son and for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