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와 신학

동방 정교회라고 불리우는 이 교회의 원래 명칭은 희랍 정통 가톨릭 사도교회이다.


① 교회관

이들의 교회관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비슷하다. 참된 교회는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그 교회는 헬라 정교회라 한다. 가견적인 교회와 불가견적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외면적 조직체로서의 교회에 강조점을 둔다.

교회의 본질을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에서 찾지 않고 교황직을 반대하면서도 감독 교직단에서 찾고 있다. 교회의 무오성은 감독들에게 있으며 교회의 회의와 대회들에 있다.

불가견적인 교회는 신적인 은사들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으며 인류를 하나님의 왕국으로 변형시키는데 이바지 한다.

가견적인 교회는 공통된 신앙을 고백하며 관습들을 준수하며 은혜의 가견적인 방편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교회는 현실적이며 실체적이며 가견적인 실재(entity)이다. Gavin, Greek Orthodox Thought, pp. 241f.


희랍 정교회의 신학은 오리겐에서 시작되었으며 올림푸스의 메토디우스에서 수정되었다.

오리겐은 교회의 정통과 성서의 권위 그리고 희랍철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성경에 대한 그의 은유적 해석 방법은 기독교와 철학의 통일을 도모하는 사변에의 길을 열어 주었다. 동시에 기독교의 전통을 존중하는 그는 보수적 입장을 갖게 된다. 성경를 존중하는 태도는 광범한 주석을 시도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그는 사도적 전승의 형식으로 된 복음을 신플라톤주의 철학과 결합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이는 기독교와 헬레니즘이 일치하는 것이라고 하는 확신에서 온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에게는 하나님은 아가페인 동시에 에로스 이었다.

메토디우스는 오리겐의 순리주의적인 이단사상과 은유적 해석방법을 성서와 사도적 전승인 신앙의 표준을 중시하는 이레네우스의 신학에 비추어 단호히 거부하였다.


② 구원관

희랍교부들의 구원관은 죄의 성질보다도 죄로 인해 인간에게 초래되는 결과를 중시하였다.

죄의 결과는 하나님께 이르는 지식을 가로막는 인간의 영적 시력을 상실하는 것으로서 구주 예수는 인간의 죄된 성질을 제거하는 분이라기보다는 죄로 인한 피해를 회복시켜주는 분이시다.

그리스도를 신적 생명의 수여자, 죄로 인해 초래된 부패를 제거하는 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는 자라는 데 강조점을 두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의 용서를 가져온다는 것은 강조되지 않았다. 바울의 의인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신앙은 인격적 태도 즉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라는 성경적 의미를 상실하였으며 형식적 진술에 불과한 교의상의 정통주의로 대치되었다.


③ 밀의전수적(密儀傳授的) 성격

소크라데스에게 있어서 지식은 덕이었기 때문에 희랍정신은 진리에 관한 깊은 관심이 있어왔다.

바울 역시 “희랍사람들은 지혜를 구한다”(고전 1:22)고 말한다.

영지주의는 높은 지식에서 진정한 종교를 찾았으며 신앙으로써 그 지식을 성취하였다.

클레멘트나 오리겐은 신앙은 종교에 있어서 저급한 단계이며 지식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신앙에 바탕을 둔 지식을 추구하는 신앙(fiducia querens scientiam)을 말한다.희랍 신학자들의 임무는 종교의 본질을 교의의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철학적 진리는 일정한 형식으로 표현되고 구체화 된 다음에는 추종자들의 생활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희랍의 신비의식을 낳게 하였다.


밀의 의식의 목적은 진리를 더 충분히 나타내고 전달하는 것이었으며 예배자의 기능이 계속 발휘하도록 보존해 주는 것이었다.

영혼의 지적, 이론적 활동은 은유와 표상으로 된 밀의를 통해 직접적 관조의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신화와 철학을 혼합시키고 동양적인 종교와 사상 그리고 의식 등을 통해 보다 높은 생명을 얻게 하려는 영지주의는 이러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시릴이 가르친 「밀의 전수 문답서」는 하늘의 일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밀의를 사용하였는데 삼위일체와 화육의 교리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동방교회는 결국 의식주의에 빠져 기독교 생활이 침체되고 창조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④ 신비적 합일(unio mystica)

동방교회가 독특한 하나의 교파로 정착되기까지는 5세기 경 아레오파기테의 디오니시우스(Dionisius)의 영향이 크다.

시리아 사람에 의해 쓰여진 그의 저서는 하나님의 이름들, 신비적 신학, 하늘의 성직 그리고 교회의 성직으로 되어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추상적 신개념과 교회의 삼위일체 교리 그리고 화육하신 그리스도의 개념이 결합되어서 어떠한 속성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은 창조된 세계의 성직들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둘레에는 세 가지 서열로 된 천사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교회의 성직인 감독과 제사장들과 집사들로 되어있다.

마지막에는 수도사들과 일반 신도에 이르기까지 일반적 성직이 있다.

이 모든 서열의 머리에는 최고의 성직인 그리스도가 있다. 말씀과 예전, 성령의 은사 등은 신격화의 과정에 들어가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지성과 이해력을 빌리지 않고 신비적 방법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에 도달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비의 전수의 체계를 보면 감화력이 최고의 성직에서 나와서 천사를 거쳐 제사직을 통해 평신도에 이른다.

영적 신앙을 촉진시키는 예배를 통해 영혼은 '신적 존재'(θεοποίησις, making a deity)에까지 참여 하여 상승된다.

인간을 하나님과 합일 시키는 일은 성직의 일이다.

그리스도 자신은 성직의 근원이요 능력이다. 여기에 권위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러한 원리가 기독교를 제사직에 의해 지배되는 의식제도로 변질되어 남용된 것을 보게 된다.

동시에 밀의 전수 신학이 동방 민족들의 깊은 종교적 신앙 특색을 표현하는 데 유용하였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⑤ 성상숭배

기독교는 보편적인 신조들의 채택과 함께 실천적 분야에서 저급한 기독교가 발전되어 가고 있었다. 일종의 이교화된 종교이다.

성인들과 천사들에 대한 예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예배, 십자가, 성상에 대한 숭배 등이다.

4세기 이후 이러한 두 번째 규칙으로서의 기독교가 강력해 져서 결국 787년 니케아에서 열린 제7차 세계종교회의에서 성상숭배를 허용하도록 결정하였다.

신학자들과 수도사들은 성상숭배를 지지하였으나 황제와 군인들은 반대하였다.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성상숭배는 사사로운 신비적 경건이었으며 회교도들과의 생사를 건 싸움에서 사기를 저해하는 것이었다.

비 현실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것은 도피적인 삶을 가져 오기 때문이었다.

성상숭배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신플라톤주의의 천상적 세력이 지상의 모든 상징과 형상을 통해 역사한다는 원리를 뒷받침하였으며 후기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가운데 시릴의 단성론은 인간 예수의 상이 그의 신성의 상징이라고 간주되기도 하였다.

성물을 신성시하는 정령 숭배적인 신앙적 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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